2005년 8월 23일 평양 정주영체육관에는 남한의 국민가수 조용필이 있었다.
‘조용필의 북한콘서트‘
그런데 공연을 두시간 앞두고, 북한관계자가 찾아와 악보하나를 불쑥내밀었다.
“조선생, 마지막 노래는 이걸 부르는게 좋겠소!”
악보를 본 조용필은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다. 처음보는 노래에다, 악보도 우리와 다른 북한식
이었지만, 생애처음 북한공연이라 조용필은 이 황당한 요구를 수락하고 바로 연습에 들어간다.
북측관계자가 건내준 이노래는 공연의 대미를 장식했고, 정주영체육관을 가득 메운 평양시민
들은 열렬한 합창으로 화답했다. 그들의 열열한 합창에 조용필은 북한의 최고 인기가요쯤으로
알았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조용필은 그노래가 남한의 대중가요라는 걸 알았다고 한다.
- 홀로 아리랑 -
“저 멀리 동해 바다 외로운 섬”독도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잔잔한 애절함으로 와닿는 이노래는
음악가 한돌이 89년에 만들었다. 그때이후 조용필도 가끔 콘서트에서 이노래를 불렀지만,
우리에겐 서유석의 목소리가 더 익숙한 노래이다. 한돌은 신형원이 부른 개똥벌레, 터, 불씨
뿐아니라, 한영애의 ‘조율’이란 금옥 같은 노래도 만들었다.
한돌은 가수로는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의 노래곡과 노래말은 한편의 서정시를 읽고 있는듯한
느낌을 준다. 풍부한 오감의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노래들은, 주로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고
불리워지고 히트치곤 했다. 사람들은 그의 노래를 민중가요라 부르고 민중음악가로 불렀다.
한돌의 노래를 듣다보면 대중가요와 민중가요의 차이가 무엇인지 점점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
상업성에 치우친 노래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회비판적 가요라고도 할순 없지만 그의 노래가
대중가요보다는 민중가요쪽으로 치우치게 만든것은 은유적표현이 많고, 노래가락의 애잔한
정서때문이기도 하다.
민중과 대중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물음에도 나는 선뜻 명쾌한 정의를 내리기 어렵다.
다만 대중이 불특정다수의 모든,,..전체구성원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민중은 마이너리티의
성격을 지닌 구성원정도라고나 할까?
예부터 그런 의미로 쓰여온 용어인지, 아니면 격동의 현대사에서 자연스럽게, 민중은 약자또는
피지배층이라는 의미로 고착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민중가요의 오리지날은 ‘아리랑’으로 대표되는 옛날 구전가요같은 것이다.
시집살이, 더부살이 등 민초들이 삶의 애환과 굴곡을 노래하던 가락이었다.
그의 노래를 듣고있으면 애절한 한과 간절한 소망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그것은 그의 정서와 노래가 매우 토속적이고 대단히 한국적이며, 시대를 너머 이어져온
한민족의 DNA가 도도히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한돌이 민중가수, 또는 민중음악가로 불리워지고 그 협소한 틀안에
자리매김하는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아스팔트위에서 붉은 홍기를 들고 한돌의 정서를,
아니 그의 노래가락정서가 그들의 도구와 수단으로 이용되어지는 것을 가슴아프게 생각한다.
순수하고 정당한 민초적 저항이 아닌, 그들의 집단적 이기와, 이념의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그의 음악을 이용하는 무리들이 한없이 고약하고 미운것이다.
행진곡으로 대변되는 살벌무도한 노래가락들이, 민중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자 대중가요를
개사하고, 서정적인 노래들을 앞세워 이기주의를 정당화시키고, 폭력주의 희석시키는 것이다.
그의 노래말과 곡 어디에도 기득권이니 억압이니, 또는 이념을 떠올리는 단어도 흔적도 없다.
노동자들이 불렀다고 저항가요가 될 수 없고, 운동권들이 애창했다고 해서 이념가요가 될수
없으며, 북한에서 불리워진다고 해서 붉은가요가 될수는 없다.
노래는 노래 그자체이고, 시대 그자체이며, 삶 그자체이기 때문이다.
감상과 느낌은 온전히 듣는이 모두의 각각의 몫이다.
한돌이 만든 노래 ‘조율‘을 슈퍼허스키 한영애의 목소리로 감상해 보자.
그저 마음가는데로.... 필(feel) 가는데로....
- 조 율 -
알고 있지 꽃들은
따뜻한 오월이면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 철새들은
가을하늘 때가 되면 날아가야 한다는 것을
문제야 무엇이 문제인가
가는 곳 모르면서 그저 달리고만 있었던 거야
지고 지순했던 우리네 마음이
언제부터 진실을 외면해 왔었는지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주세요
정다웠던 시냇물이
검게검게 바다로 가고
드높았던 파란 하늘
뿌옇게 뿌옇게 보이질 않으니
마지막 가꾸었던 우리의 사랑도
그렇게 끝이 나는 건 아닌지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주세요
미움이 사랑으로 분노는 용서로
고립은 위로로 충동이 인내로
모두 함께 소원 참는다면
서성대는 외로운 그림자들
편안한 마음 서로 나눌 수 있을 텐데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주세요
내가 믿고있는 건
이땅과 하늘과 어린 아이들
그들이 열린 가슴으로
사랑의 은혜를 실천할 수 있도록
잠자는 하늘님이여….
잠자는 하늘님이여…
잠자는 하늘님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