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가 녹는 머나먼 북쪽 어디쯤
해안가로 수십만 무리가 몰려온다
해안마저 잃고 살기 위해 절벽을 오른다
한 몸 누일 곳을 찾아 기어오른다
지느러미를 팔다리 삼아
기다란 송곳니를 지렛대 삼아
배밀이 구걸을 하듯
더 기어오를 수 없는 절벽 끝은
찰나의 유빙, 착시의 바다, 그때
허공에 지느러미를 펼친다
옥상에서 난간에서 사지를 펼치듯
절박이 절벽을 부르고
착시가 착각을 부른다
내장이 터지는 줄도 모르고
퍽퍽 떨어지는 옆으로 줄지어 오른다
모두가 바다로 가는 길인 줄 안다
정끝별, 바다코끼리 이야기가 아니다
-계간 《시와 함께》 2020년 봄호
첫댓글 슬퍼요. 무섭기도 하고..
시는 여운이 많이 남아 좋아요. 읽을 때 마다 생각이 달라지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그래서 시라고 하는 거겠죠.
시는 아무나 쓸 수 있어 좋다
시는 아무나 잘 쓸 수 없어 더 좋다
시는 천차만별이어서 좋다
시는 쓰면 쓸수록 막막해서 좋다
시는 쓰면 쓸수록 모르는게 많아져 좋다
시는 쓰면 쓸수록 바보가 되어 좋다
시는 쓰면 쓸수록 가난해져서 좋다
시는 쓰면 쓸수록 아무나 동네북처럼 두드려대고 무시해서 좋다
시는 중독된 폐인을 만들므로 좋다
시는 시를 빙자한 사기꾼도 품으므로 좋다
시는 막장 드라마가 없어도 좋다
시는 바위를 손뼉치게 하므로 좋다
시는 시 아닌 것을 시라 하므로 좋다
시는 개똥철학을 개똥과 철학으로 해체하고, 개똥을 개와 똥으로 다시 해체하고, 개와 철학을 결합, 개철학을 생성하고 철학의 관을 똥으로 치환하여 똥철학을 피력하므로 좋다. 나아가 개. 똥. 철학. 사이에 점을 찍어 단절시키고 파편이 된 단독자로 홀로 세워두므로 더 좋다.
최정란시인님의 페이스북 중에서..
오후시간도 달달하게 보내세요..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