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고 방관하는 사람도 공범입니다.
<연중 제4주간 금요일 강론>(2026. 2. 6. 금)(마르 6,14-29)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이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일이 있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헤로데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좋은 기회가 왔다. 헤로데가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무관들과 갈릴래아의 유지들을 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다(마르 6,17-21).”
1) 헤로데 영주가 세례자 요한을 죽인 것은, 단순히
체면이나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세례자 요한의 ‘대중적인
인기’가 권력 유지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당시 임금이었던
헤로데 왕이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것과 같습니다.
<아버지의 죄를 아들이 그대로 물려받은 셈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언자였는데도,
정치권력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 것은, 헤로데 영주의
권력이 그만큼 허약한 것이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는 로마제국의 식민 지배를 받는 하수인이었을 뿐이고,
백성의 지지도 못 받고 있었고, 늘 불안한 상태였습니다.
그는 세례자 요한을 죽인 다음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예수님도 죽이려고 했습니다(루카 13,31).
2) 세례자 요한은 회개를 선포할 때, 막연하게 ‘회개하여라.’
라는 말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면서 꾸짖었고, 삶을 바로잡으라고 촉구했습니다.
요한은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을 향해서는,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마태 3,7-8).” 라고
꾸짖었고, 일반인들을 향해서는,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3,11).” 라고 타일렀습니다.
또 세리들을 향해서는,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루카 3,13).” 라고 말했고, 군인들을 향해서는,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루카 3,14).” 라고 말했습니다.
요한이 헤로데와 헤로디아의 결혼을 꾸짖은 일도,
권력층 사람들을 꾸짖은 일들 가운데 하나였을 것입니다.
<복음서에는 없지만,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만 꾸짖은 것이
아니라, ‘헤로디아’도 직접 꾸짖은 것으로 보입니다.
19절에 있는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라는 말은,
요한이 헤로디아를 직접 꾸짖었음을 암시합니다.>
3) 겉으로 보이는 표현만 보면, 헤로디아는 세례자 요한을
죽이려고 했고, 헤로데는 요한을 보호해 준 것으로
생각하기가 쉬운데, 그것은 아닙니다.
헤로데가 세례자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묶어 둔 것은
‘적당한 때’에 요한을 죽이려고 그랬던 것입니다.
헤로디아는 앞뒤 가리지 않고 세례자 요한을 죽이려고
했지만, 헤로데는 백성의 여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보면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래서 헤로디아의
경솔한 행동을 막은 것입니다.
20절의 “헤로데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보호해 주었다.” 라는 말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로)
믿고 있는 백성의 여론이 두려워서, 헤로디아가 성급하게
요한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막았다.”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여론만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들을 때에 몹시 당황해하면서도 기꺼이 듣곤
하였다.” 라는 말은, “요한의 말을 듣기 싫어하면서도
경청하는 척 했다.” 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예언자의 말을 경청하는 척 하면, 백성의 여론이
유리한 방향으로 돌아설 것이라고 계산했던 것 같습니다.
<정말로 요한의 말을 ‘기꺼이’ 들었다면 요한을 석방했을
텐데, 감옥에 가두어 둔 채 요한의 말을 기꺼이 들었다는
것은 듣는 척만 한 것이고, 그것은 ‘위선’입니다.>
4) “좋은 기회가 왔다.”는, “세례자 요한을
죽이기에 좋은 기회가 왔다.‘입니다.
헤로데는 요한을 감옥에 가두어 놓은 일에 대해서 백성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을 확인했던 것 같고,
고관들과 유지들이 보는 앞에서 요한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야기에 언급되어 있는 ‘고관들과 무관들과
유지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당시 갈릴래아 지역의 ‘기득권층’ 사람들이었고,
독재자 헤로데의 추종자들, 또는 동조자들이었습니다.
원래 독재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못합니다.
추종자들이 있기 때문에 독재를 하게 됩니다.
독재를 방관하는 사람들도 추종자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기득권층 사람들이 헤로데의 살인죄에 대해서 침묵을
지킨 것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인데, 그들은 모두 헤로데와 헤로디아가
저지른 살인죄의 공범들입니다.
<백성들도 대부분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들도 공범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예언자가 살해당한 일을,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로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세례자 요한의 선포를 받아들여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은 것은 모두 진심으로 한 일이 아니라,
형식적인 일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백성들도 대부분 침묵을 지켰습니다.
그들도 공범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예언자가 살해당한 일을,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일로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