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 항주 기행문
중국은 20년 전 계림을 여행한 후 두 번째이다. 15~6억을 얘기할만큼 사람도
많아졌고 경제도 크게 발전했다. 만만디는 옛날 얘기이고 중국도 이제는 바삐
돌아간다. 지금은 인구를 줄이기 위해 1가족 당 한 명의 자녀만을 입적시키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어 무호적자도 많고 친 조부모, 외 조부모, 부모 이렇게 6
명이 한 명의 자녀를 키우는 나라가 되었다. 상해는 인구가 1,800만 명이나
되는 세계적인 금융의 중심지이다.중심가 건물 옥상에 한국의 미래에셋 간판
도 보인다.달인약(달리는 인천 약사들) 가족 20명을 태운 비행기가 인천을 출
발해 2시간만에 상해 포동공항에 살포시내려 앉았다.거의 1년 전부터 계획을
세워 이제야 여행에 나서게 되었다.나도 20년만의 해외여행이라서 기대가 컸
다. 높은 리무진버스가 우리를 태우고 황포강을 지나 상해 임시 정부 청사에
선다. 생각보다 너무 협소하다. 살림이 그만큼 어려웠다는 얘기이겠지.그래도
이좁은 곳에서 우리의 열혈 독립운동가들이 크나큰 일을 해왔을 거라는 생각
을 하니 김 구 선생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희생에 오늘의 우리가 있음을 느끼
게 해 준다.노천카페거리를 지나 도시역사가 7천년이된다는 상해박물관을 들
러 보았다. 자기류가 주류이다. 옆에 한글로 된 김밥집이 보인다. 반갑다.우리
나라의 인사동같은 예원거리로 갔다. 전통 양식의 커다란 건물들로 이루어진
크나큰 시장에 사람이 많기도 하다. 주말이라서 주변의 현지인들도 엄청 많이
모여 들었다.전통 장식품이랑 먹거리 위주로 상점이 구성돼 있다.품질은 떨어
진다고 구경만 하고 사지는 말란다. 한류로 유명해진 전지현의 사진이 바깥쪽
상가 앞에 줄줄이 걸려 있다.상해는 만두가 유명하대서 여기서 저녁으로 여러
가지 만두를 맛보았다. 그냥 그렇다. 중학교 3학년으로 전교 회장을 맡고있는
홍염미 약사의 아들은 억지로 끌려와서인지 표정이 없다. 박찬수 약사는 장모
님까지 5명의 가족이 동행했다. 이 집이 가장 신난다. 장모님이 나보다 세 살
아래이니 내가 나이를 많이 먹긴 했나 보다.써커스를 관람했다.묘기 대행진이
다. 그래도 북한보다는 한 수 아래란다. 구형(球形) 그물망 속에서 8명이 오토
바이 타기를 하는데 한사람이 추가 투입될 때마다 목숨이 위험할것 같은 생각
이 들 정도로 조마조마해 스릴 만점이다. 전에는 경극을 본 적이 있는데 요즘
은 인기가 식어 잘 안한단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호텔로 들어왔다. 첫 날 밤을
그냥 보낼 수 있냐고 호텔 옆에 있는 한국브랜드 훼밀리마트에서 고량주, 맥주
랑 안주를 사다가 놓고 양승철, 이창훈 약사 그리고 나 이렇게 혼자 온 세 사람
이 묶고 있는 방에 모여 가볍게 얘기를 나누었다.시간도 밤 11시가 넘었고 장
소가 야외나 별도의 공간이 아니라 호텔방이다 보니 분위기가 살지를않는다.
새벽 1시가 지나서야 잠에 들었다.이 호텔은 대기업인 녹지그룹이 운영한다.하
루가 지났다. 남송의 도읍지인 항주로 향했다. 고속도로 변 농가들은 뉴질랜드
의 농가만큼이나 깔끔하게 지어있다. 항주 농민은 중국에서 가장 잘 산단다. 고
속열차가 멀리 보인다. 항주는 온난하면서 습해서 1층은 비어놓고 난방 시설이
없다. 평야지대라서 주로 쌀농사를 하지만 민물진주 등 특산물 재배를 해서 높
은 소득을 유지하고 있다.산비탈엔 중국 국민차라고 할 수있는 용종차 밭이 즐
비하다. 하늘엔 천당이 있다면 중국엔 소항(소주와 항주)이 있다고 할만큼 관광
과 농사로 풍요롭고 여유있는 도시이다. 중국의 행복도시 1위란다. 폭군 수양제
가 북경과 연결하는 경항대운하를 만든 이후 상업의 중심지로 크게 발전하였다.
서울 크기만하고 인구는 6백만명이다.송나라(남송) 역사테마파크인 송성(宋城)
부터 관람했다.송나라를 느껴볼 수 있는 송나라의 황궁, 성벽과 건물, 문물을 부
문 별로 배치하고 당시 성했던 불교를 보여주는 대형 불상과 와불에다 석굴 속
에 많은 소형 불상을 만들어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광장에서는 공주의 행차가
있고 당시의 시정거리를 만들어 음식도 먹고 장식품도 구입할 수 있도록하였다.
물엿으로 새나 짐승 모양 그림을 만들어 파는 사람도 있다. 구경을 마치고 버스
에 타려는데 구걸하는 사람이 다가온다.끈질기게 따라붙었지만 아무도 돈을 주
지 않았다. 상해에서도 한 명을 보았다.거지가 직장인보다 많이 버는 경우도 있
단다. 공산주의국가에 거지가 있다니 믿겨지지가 않는다. 하기는 중국 잡상인도
거지나 다를 바 없기는 하다. 계속 쫓아다니며 귀찮게 하니까. 하지만 상해나 항
주에는 잡상인은 없고 호객행위도 없다.거지가 아주 드물게 있기는 하지만 그만
큼 삶이 각박하지 않다는 얘기인 것 같다.이어서 송성가무쇼를 관람했다.공연이
웅장하고 의상이나 조명이 화려하기도 하지만 즉석무대가 여기저기서 다양하게
나타나고 출연자가 관람석 뒤에서도 나온다. 앞 관람석은 관람석 자체가 이동하
기도 한다. 송궁 안무로 부터 시작해 진짜 대포를 쏘는 전쟁 장면이 나오는가 하
면 <백사전>이라는 전설이 나오는데 이때 천정에서 우산이 내려오기도 하고 객
석에도 천정에서 물을 분사해 비오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지다 보니 아리랑 공연도 보여준다. 문제는 이 장면이 우리나라가 송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모습이라는 데 있다. 기분이 야릇하다.우리나라 관광객을 상대로
이런 내용의 공연을 하다니. 상대가 대국이란 점을 인정해야 할까? 항주의 유서
깊은 세계문화유산이자 대표 관광지인 서호로 갔다. 거대한 호수 안에 세 개의
섬은 인공으로 만들었고 중국 대표 시인 소동파가 시장일때 만들었다는 둑인 소
제가 있다. 인공섬에 탑이 셋있고 탑마다 각 5개의 구멍을 통해 물에 비친 모습
과 직접 보는 달 합해 32개의 달을 볼 수 있다.1위안짜리 지폐에 세 개의 탑 모
습이 들어있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쌓여 있고 한 쪽은 공원을 조성해 놓아 경치
가 무척 좋다. 유람선으로 호수를 한바퀴 돌았다. 항주의 남산 격인 성황각에 올
라 시내 경치를 둘러보고 나서 이 곳 옛시장인 청화방엘 들렀다. 공예품을 비롯
해 오밀조밀 볼거리가 많다. 셋째날이다.상해 근교에 있는 주씨 집성촌인 주가
각엘 갔다. 이 곳이 동양의 베니스로 불리는 곳으로 자연 수로를 이용한다. 주민
들도 그대로 살고있으나 관광지가 되면서 수로 주변은 상점만이 즐비하다. 청나
라 시대의 작은 우체국도 살펴보았다.6인승 작은 배로 동네를 잠깐 들러 보았다.
나도 그렇지만 버스에만 오르면 20명 모두 조용하고 잠에 빠진다. 단체 관광이
늘 그렇듯이 아침 6시에 일어나 밤 10시에나 호텔에 도착하는 강행군의 연속이
라서 그런 것 같다.처음으로 한식인 삼겹살로 배를 채우고 같은 건물에서 발 맛
사지를 받았다. 그리 특이하지는 않다.각질이 심하다고 권해서 각질제거도 했는
데 발바닥 전체를 하는 줄 알고 했더니 발뒷꿈치만 하는데 만오천원이나 한다.
속은 느낌이다.우리나라의 강남지역이랄 수 있는 포동 지역을 지나 지하 터널로
포서지역의 상해 중심가로 왔다. 미래에셋 간판도 보인다. 468m로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동방명주탑에 올랐다.중간 쯤에 위치한 전망대에서는 상해 시내
가 다 내려다 보인다. 1층에 있는 상해 역사발전진열관도 들러 보았다.곧 상해의
명동이라고 할 수 있는 남경로거리로 갔다. 이 곳은 완전 서구화되었다. 세계 유
명 브랜드들이 다 모여있다.삼성전자 스마트폰 판매점이 보인다.길 한 가운데는
관광 전차가 다니고 중형의 입간판에 갤럭시S 6 광고가 줄줄이 걸려있다. 유명
고량주라는 공부가주를 곁들여 사천의 대표 요리라고 하는 샤브샤브로 저녁을
마치고 황포강으로 향했다. 저녁 9시 경 유람선에 올랐다.야경이 멀리까지 화려
하다. 전기료는 90%를 정부가 부담한단다. 갑판에 오르니 바람이 강력하다. 낮
엔 덥더니 이젠 춥기까지 하다. 그래도 모든 사람들이 멋진 야경에 취해 즐거운
표정들이다.배 안엔 거의 다 한국사람 뿐이다.양승철 약사는 고향인 고흥사람도
만났다. 밤 11시 밖에 안 됐는데 모두들 피곤하다고 마지막 밤을 뒤풀이없이 잠
자리에 들었다.마지막 날은 호텔에서 공항으로 직행이다. 출국 절차를 마치고 면
세점을 어슬렁거리다가 비행기를 탑승했다. 갈 때는 짐을 부쳤는데 캐리어 백이
파손돼 올 때는 비행기 안에 가지고 들어갔다. 가이드에게 물어 보니 배상받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얘기했지만 용기를내어 스튜어디스에게 가방이 깨졌다고 얘기
했다.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해 나올 때 담당 직원이 있는 분실물센터를 알려
준다. 그 곳에 가니 화물표, 비행기표를 보여 달라고 하고는 동행자 여부만 확인
하고는 바로 같은 모델의 신품 가방을 내준다. 이런 걸 빙고라고 하겠지. 20년이
상돼 쉽게 균열이 일어난 것 같다.하여튼 덕분에 신품 여행가방을 장만하고 장거
리여행을 마감하였다.입국 절차를 마치고나오니 달인약의 김지연 약사가 플래카
드를 들고 마중을 나왔다. 예쁜 짓만 한다.여행에서는 사고 싶은 물건이 많다. 하
지만 나중엔 별로 의미를 못 느끼는 경우가 많아 아무 것도 사지 않기로 했는데
주가각에서 간단한 목각 바구니를 하나 샀다. 동방명주탑에서는 갔다 온 기억을
남기기 위해 탑 모형을 기념으로 하나 구입했다. 중국은 5월 1일부터 3일까지 노
동절 휴무라서 어딜 가든 관광객이 넘친다. 올해는 한국도 징검다리 휴무라서 중
국에 많은 관광객이 몰려 서로 바꿔치기 여행을 하고 있다. 어디엘 가도 한국말을
들을 수 있다. 외국인 관광객 중 한국사람이 가장 많단다. 중국의 상징인 붉은 색
을 예원거리를 빼고는 거의 보지 못 했다. 특히 현대화된 거리에서는 그렇다. 중국
은 신분증에 민족 표시를 하는데 조선족은 대한민국 덕에 중국에서 무시 당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제 남쪽 중국은 한국만큼이나 발전했다. 상해는 서울이나 다름없
다. 한국의 이건희 회장 같은 부자가 3천명이나 된다니 놀랍다. Benz같은 세계적
인 고급승용차 판매전시장이 즐비하다.중국도 노동력으로가 아니라 기술력으로 먹
고 사는 나라로 진화하고 있다. 중국 남쪽 지역은 이제 대만을 능가하는 것 같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