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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잘 하시던 우리 집사님이 어느 날 사업을 시작했다. 장사가 너무 잘 되었다. 사업 특성상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나올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점점 예배와 멀어질 즈음, 2호점을 개업을 했다. 두 군데 다 너무 장사가 잘 되었다. 그런데 그의 얼굴 표정은 점점 어두어져 갔다. 2호점을 여느라 들어간 권리금, 인테리어비등 처음 투자한 투자금을 회수하기까지 직원들을 줄이고 직접 뛰어야 한다는 생각에 1호점, 2호점 두 군데를 불철주야 뛰다보니 점점 체력이 딸렸다. 그리고 병약한 남편이 자기의 뜻에 부응을 못해주고 매일 ‘아프다, 힘들다, 2호점은 왜 열어가지고 이 고생을 하느냐’ 하는 소릴 할 때마다 ‘누구 땜에 이 고생을 하는데’ 하는 미운 생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매주 그의 어두운 얼굴 기색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팠다. 저를 도울 길은 오직 기도와 말씀뿐인데 지금은 그런 얘기조차 할 수 없었다. ‘내가 이렇게 육체적으로 힘들어 죽겠는데, 매일 발이 퉁퉁 붓고 발바닥에 염증이 생겨 매일 치료 받으러 가기도 바쁜데’ 하면서 더 이상 얘기를 못 꺼내게 하였다. 요즈음은 카톡을 보내도 답변도 없고 정말 맘을 닫고 살고 있었다. 그 집사님께 용기를 내서 카톡을 보냈다. “집사님! 오늘 여름성경학교 교사 평가회 하면서 서로 은혜를 나누었어요. 작년 이맘 때 여름성경학교 끝나고 집사님이 맛있는 걸로 교사들 대접했던 얘기를 막 나누는데 아름이가 자기는 집사님이 너무 좋대요. 이런 얘기하면 아부하는 거 같아서 말은 안했지만 자기 부모님도 식당경영하면서 너무 힘들어 했기 때문에 왠지 집사님 고생하는 그 마음도 이해가 된다면서요. 그리고 자기가 찬양 인도할 때 제일 많이 호응해 주시고 눈물 흘리는 모습 보고 넘 은혜를 받았다고 하네요. 집사님 오늘밤도 푹 쉬고 새 힘을 받아 내일부터 열심히 기쁨으로 일하세요.” 한동안 아무리 좋은 글귀를 보내도 답장도 없었기에 기대도 안했다. 그런데 ‘카톡’하면서 답장이 왔다. “사모님 감사해요. 항상 웃기만 하시는 사모님이 부러워요.” 정말 오랜만에 받는 답장이었다. “집사님 그냥 모든 게 감사하다 생각하니 그런 거 같아요. 나는 아무 능력도 없고 연약한데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이 감사하고 나는 너무 부족한데 섬기는 교회와 성도가 있으니 감사하고 매주 힘들게 살다가 지쳐 쉬고 싶을 텐데 하나님 앞에 나오는 성도들이 감사하고 또 맘을 합하여 열심히 섬기는 성도들이 있으니 감사하고 자녀들과 식구들이 건강하니 감사해요. 어제는 모기장 쳐놓고 모기장 속에서 모기걱정 안하고 편안하게 누워 있다가 ‘우리 예수님도 이렇게 모기장 두르듯이 마귀로부터 나를 지켜주시는 구나’ 생각하니 감사가 절로 나왔어요. 또 송권사님처럼 말 못하고 병상에서 꼼짝 못하는데 맘대로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어 감사하고 그냥 다 감사해요. 집사님도 그냥 모든 거 감사로 생각해 보세요. 집사님의 어려운 고비도 다 지나갈 거예요. 반드시 웃을 날이 속히 올 거예요. 힘내세요.” 그러자 그 집사님이 “저도 감사할게 참 많은 사람인데 항상 이러네요.” 하고 답장이 왔다. “사람들은 보통 감사한 것을 보기보다 문제 있는 쪽만 바라볼 때가 더 많기 때문이에요. 문제가 있는 쪽은 대부분 내 뜻대로 안 되는 것들이 많거든요. 예를 들어 자식의 학교 성적 문제나 남편의 습관이나 버릇, 성격 문제 등등. 고쳐지지 않는 거거든요. 그런데 대부분 그 문제에 너무 집착해요. 안 변하는 걸 왜 안 고치냐고 자꾸 답답해하다가 싸움이 나지요. 그럼 나만 힘들어요. 그냥 다 내려놓고 그것 말고 좋은 쪽 감사한 쪽 바라보며 살아야 해요. 그런데 그런 마음은 기도하고 말씀 읽을 때 가능해요 말씀을 읽다가 주신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할 때 맘에 평안이오고 기쁨이와요. 집사님도 일하면서도 맘 속으로 늘 기도하세요. 그리고 자그만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사소한 일은 그냥 흘려보내고 모든 것을 선하게 돌아보세요” 하고 보냈더니 “네 알면서도 그게 안돼요. 자꾸 남편이 미워요. 내가 이 고생하는 거 알면서 그냥 수고했다. 고맙다 그러면 다 풀릴텐데. 자꾸 내가 하려고 하는 일에 트집을 잡고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자기가 먼저 아프다고 그러면 정말 화가 나요.” “집사님! 어제 최집사님 속회 드리는데 자신이 예전에 눈이 잘 보일 때 얘기를 하더라구요. 큰 집에 형님이 참 부자였는데 이유도 없이 우울증 비슷하게 병원에 입원하셨대요. 그래서 병문안을 갔더니 하얀 옷에 혼자 독방에서 천사처럼 쉬고 있더래요. 그 때 자기는 양장점 하느라 너무 바쁘고 고달팠대요. 그래서 속으로 ‘나도 좀 저 형님처럼 저렇게 편안히 병원에 입원해서 쉬었으면 좋겠다’ 했는데 그 이후에 눈이 안보이고 병원신세를 계속지면서 그런 말을 왜 했을까 많이 회개했다고 하더라구요. 계속 눈을 콕콕 찌르는 고통 속에 대수술을 두 번씩이나 하면서 집 두 채를 다 팔아 수술비를 댔는데도 지금은 한쪽 눈은 아예 안보이고 한쪽도 희미하게 형체만 알아볼 정도로 보시잖아요. 어떤 때는 눈이 안보이니까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절망하다가도 한쪽 눈을 감으면 아예 먹물처럼 깜깜한데 다른 한쪽은 큰 글씨라도 희미하게 보일 때는 이거라도 보이는 게 얼마나 감사한가 너무 기적이라 생각이 들어 ‘감사합니다’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네요. 집사님 오늘도 힘들고 몸도 아프지만 기도하면서 새 힘을 얻으세요.” 하고 보냈더니 “네 알겠어요. 사모님 감사해요.” 라고 답변이 왔다.
상담심리학을 배우다보니 로저스라는 유명한 학자의 심리 상담의 세 가지 원칙을 알게 되었다. 첫째는 상담 받으러 오는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수용을 해주는 것이다. 그가 뭐라 말하든, 엉터리 말을 하든, 뒤죽 박죽 혼란스럽게 말해도 무조건적으로 당신 말을 수용합니다라는 표현을 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 내담자는 자기의 모든 속을 다 털어놓고 문제를 해결함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자녀들을 키울 때에도 아이가 하는 모든 이야기를 수용해 주어야 한다. ‘그랬어? 너는 그렇게 생각했어?’ 이렇게 해 주어야 하는데, ‘네 생각은 틀렸어. 넌 어떻게 그렇게 생각을 할 수가 있어?’ 이렇게 나오면 아이는 거부당했다는 생각으로 마음에 분노가 생긴다. 그러므로 부부사이에도 ‘당신 말이 맞아요. 당신은 정말 대단해요. 당신 생각이 옳아요.’, 그렇게 수용해 줄 때 행복감을 느끼게 되고 아무리 힘들게 살아도 버티고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상대방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그 심리가 건강한 심리를 만들어낸다. 그런데 우리 집사님 내외는 그 방법이 서툴러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또 하나는 공감적인 이해이다. 내 뜻을 남에게 이해시키려고 하지 말고 그의 뜻을 받아들여 이해의 공감대를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렇게 할 때 건강해질 수 있다. 자식이든 남편이든 내가 상대방의 뜻을 공감해주어야 한다. 사랑한다고 하면서 내 뜻을 밀어붙일 생각밖에 없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그가 무슨 불평을 이야기하든, 속상함을 이야기하든, 공감을 해 주는것이다. ‘그랬구나, 힘들었겠구나. 네 마음이 슬펐겠구나. 얼마나 힘들었니? 네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런 공감적인 충분한 이해가 따라가야 비로소 정신적으로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믿음과 진실이 있어야 한다. 상담하러 온 사람을 믿어주는 것이다. 그래야 그 내담자도 상담자의 말을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서로 신뢰감이 먼저 쌓여야 그 다음 상담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그리고 항상 상대방에게 정직해야 한다. 진실되게 그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그때에 정신의 문제를 상담 받으러 온 내담자가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치료를 받게 될 수 있다. 이 이론은 우리 삶 속에서도 적용이 된다. 위에 집사님 같은 경우도 사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이겨낼 수 있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공감해 주지 않고 오히려 서로 비난하기 때문에 일이 즐겁지가 않고 기쁨을 잃어버린 것이다. 일을 다 마친 후 서로에게 ‘오늘 힘들었지, 고생했어.’ 이 한마디를 서로가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여보! 당신 몸도 아프고 힘든데 집에 먼저 가 쉬세요.’ 이 한마디가 서로를 받치고 서로를 위로하고 내일 다시 일터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인데, 그 전달하는 방법이 미숙했기에 그것이 쌓이고 쌓여서 불만으로, 얼굴 표정으로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사랑한 시간만이 진정한 나의 시간이다. 미워한 시간은 빼앗긴 시간이다. 사람들은 이걸 잊고 산다. 사랑으로 꽉 찬 시간만이 살아있는 시간이다. 섭섭해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그건 다 낭비된 시간이다. 하루를 살아도 서로 위로하고 서로의 마음을 공감해주고 진실되게 믿어주고 상대방의 말을 수용해주는 태도가 세상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 |
첫댓글 주신 글 감사합니다. ..
귀한 방문하셔서 댓글 주시니 감사합니다. 샬롬^^
은혜의 말씀 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샬롬^^
감사합니다.
귀한 댓글 감사드려요.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