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꿩(꺼병이)을 만지며
산그늘이 내리는 저녁 무렵이면 걷기 운동을 한다.
산모롱이를 돌아 오르다 아직 날개가 자라지 못한 어린 꿩 한 마리를 잡았다. 어미 따라 산보 나왔다가 길가에 해 둔 도로 방지 턱 아래로 떨어졌던 모양이다. 방지 턱이 높아 오르지 못하고 숲으로 갈 길을 찾아 헤매다 내 손에 잡힌 것이다. 내가 손을 내밀자 놀라 달아나지만 내 둔한 걸음에도 금세 손아귀에 들어온다. 팔딱거리는 어린 꿩의 심장이 느껴진다. 짙은 밤색에 노랑과 갈색, 회색이 섞인 뽀송한 털이 너무도 사랑스럽다. 까만 눈이 별로 겁먹어 보이지 않는다. 조심스럽게 쥔 손바닥에 후끈한 열기가 느껴진다. 어린 꿩은 제 어미 품처럼 따뜻한지 가만히 있다가도 도망가려고 발을 뻗대 보기도 한다. 날카로운 발톱과 발 갈퀴와 가늘지만 딱딱한 다리에서 힘이 느껴진다. 뭘 먹고 살까. 놔 주면 어미를 찾아갈 수 있을까.
이맘때면 흔히 산길에서 꿩 가족을 만나곤 한다. 주로 어미를 따라 대여섯 마리가 줄을 서서 다니는데 그 중에 꼭 한 두 마리는 이렇게 낙오를 한다. 적이 나타나면 순식간에 숲으로 도망을 치는데. 그 적이 인간일 때가 그들에겐 가장 무서운 게 아닐까. 숲에 놔두려다가 그 보드라운 감촉에 그만 욕심이 생긴다. `조금만 더 나랑 눈 맞추다가 보내줄게.` 하며 손아귀에 넣고 만지다가 무엇이든지 좋은 것, 사랑스러운 것, 귀한 것을 갖고 싶어 하는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상처받는 사람과 동물과 식물이 있다는 생각을 하자 ‘어미 찾아 가겠니?’ 어린 꿩의 눈을 바라봤다.
처음 산속에 들어와 살 때, 꿩 새끼를 잡으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키워 보고 싶어서 집에 가져왔다가 결국은 며칠 만에 목숨을 빼앗은 아픈 기억이 있다. 그 뒤론 구경만 했는데 오늘은 방지 턱을 벗어나게 해 줘야할 것 같아 잡았지만 금세 숲으로 보내기 싫어진다. 너무 보드랍고 사랑스러운 탓이다. 갖고 싶은 욕심, 애완용으로 키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며칠 전 친정집 대밭에서 본 광경이 떠오른다.
친정어머니랑 죽순을 꺾고 있는데 어디서 사람 말소리가 들렸다. 분명 사람 말이긴 한데 영어도 아니고, 새가 지저귀는 것 같은 이상한 말이었다. 길 있는 쪽을 봤더니 세 여자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 여자는 잘 가라는 뜻으로 손을 흔들고, 두 여자는 예닐곱 달 되어 보이는 어린 아이를 안고 아이를 어르면서 서로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세 여자 모두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내 딸 같이 어리고 44 사이즈 옷을 입어도 딱 맞을 만큼 날씬한 몸매에 예쁘장한 여자 셋이었다. 베트남에서 시집 온 여자들이었다. 친정 이웃에 온 여자는 두 달 정도 되었다고 했다. 남자가 장애인이다. 남자의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산나물 뜯으러 산에 갔다가 굴렀는데 그 때 잘못 되었는지 팔다리도 정상이 아닌 저능아로 태어났던 것이다. 그 남자의 아내로 온 여자는 아직 한국말을 한 마디도 못한다고 했다. 그러니 아래 마을에 같은 베트남 여자들이 얼마나 반갑겠는가. 벙어리 아닌 벙어리로 하루하루를 견뎌야 했을 그녀에게 동족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행복이 아닐까. 이웃에 먼저 와서 이미 애 엄마가 되고, 한국말도 제법 익힌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그녀에겐 진짜 큰 힘일 것이다.
어린애 울음소리가 오랫동안 없던 고향마을에서 젖먹이 어린애를 안은 새댁을 보니 반가운 마음도 있었지만 그래도 타국에서 온 어린 새댁들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아이를 안은 두 여자는 서툰 한국말로 반갑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나도 인사를 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들이 가는 것을 보고 어머니께 물었다. 베트남 처녀 데려오는데 얼마나 든다하더냐고. 이웃집 처녀는 결혼 알선 업체를 통해서 데려오는데 천오백 만원 들었다 하더란다. 천오백 만원이라면 농촌에서는 큰 돈이다. 베트남에서는 더 큰 돈이겠지. 새댁들에겐 미안했지만 노인들만 늘어나는 농촌에 아내를 외국에서 사 올만큼 젊은 농사꾼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반갑기만 하다.
그런데 왜 어미를 잃고 혼자 떨어져 떨고 있는 어린 꿩을 보는 순간 베트남 새댁이가 생각나는 것일까. 국제결혼을 선택할 만큼 당찬 타국의 어린 처녀들이 한국 땅에 오는 것은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이상과 꿈을 향해 높이 날고 싶다는 열망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녀들은 자신이 박차고 나온 고향과 부모와 모든 생활 습관을 버릴 각오를 하고 왔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높이 오르고 싶고, 좋은 것을 갖고 싶어 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 아닐까. 낮은 곳보다 높은 곳을 선호하고, 남보다 나의 직장에서 높은 직위에 오르고 싶고, 남보다 좋은 집에서 풍족하게 살고 싶고, 남보다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열망이 있기 때문에 사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인간이 살아가는 힘이 그 열정에서 나오는 것인지 모른다.
문득 ‘나는 어떤가.’ 반문해 본다. 나 역시 푹신한 잔디밭을 맨발로 걷기도 하고 산마루에 올라 멀리 들과 마을과 길을 바라보며 나도 높은 곳을 좋아하고, 높은 곳에서 아래를 굽어보길 좋아한다. 가파른 산길을 걸어 오르다 돌아서서 멀리 들과 마을과 길을 내려다보면 참 기분이 좋다. 눈 아래 내려다보는 풍경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또한 산마루에 올라 앞이 확 터인 곳에서 내려다보는 즐거움 때문에 다리가 아파도 끝내 정상에 서는 것도 정복하고 싶은 욕망 때문은 아닐까. 중간에서 그만둔다는 것은 나에게 지는 일 같아서 억지로라도 정상에 오른다. 나이 들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정상을 향해 걷다가 숨도 가빠지고, 다리도 아프면 길섶에 주저앉아 야생화 구경도 하고, 바람과 숲 향기도 맡으며 사방에서 뻗쳐오르는 신록의 힘찬 기운을 함께 느껴보는 것이다. 이렇게 살기까지 내게도 보다 나은 삶을 향해 치열하게 산 날들이 있었다. 그녀들처럼 국제결혼을 결심하진 못해도 모든 것 다 접어버리고 사랑 하나만 믿고 택한 농촌 총각과의 결혼이 아니었던가.
어린 꿩이 손바닥 안에서 땅으로 내려가려고 버둥거린다. 살그머니 길섶 너머 풀숲에 놓아주었다. 그리고 가만히 기도한다. 어린 꿩이 천적들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길, 타국에서 온 그녀들이 한국의 작은 산골에서 뿌리내리길 기도하며 산마루를 향해 천천히 걸어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