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세대의 눈에 비친 일본천황은...
-'덴짱' 그리고 '덴노오헤이카 반자이'
1980년의 일이다. 새 봄의 시작과 함께 일본 황실에는 경사가 거듭됐다. 역사속에서만 왕을 배웠을 뿐인 ‘민주공화국’ 출신의 나로서는 일본 황실의 경사를 보며, 과연 일본과 일본사람들에게 있어 천황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됐었다.
그 봄, 히로히토 천황의 부인이 3월6일로서 喜壽(77세 생일)를 맞았고, 앞서 2월23일에는 또 천황의 맏손자가 만 20세의 성년이 됐던 것이다. 황후의 생일이야 해마다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77세까지 장수한 황후는 일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해서 각별한 의의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히로노미야(浩宮)라는 이름을 가진, 먼 장래의 일본 천황은 당시 학습원 대학 사학과 3년생이었는데, 그를 위한 성년식이 이채로웠다.
3대의 황실 일가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마도 21세기의 일본에 군림할 그의 성년을 축하하는 <加冠의 儀>가 생일인 2월23일에 궁성 안의 <春秋의 間>(우리식으로는 室)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때마침 출연 영화의 선전을 위해 방일중이던 유명 여우 쥴리 앤드루즈(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여주인공)는 이 성인식을 TV 중계를 통해 열심히 지켜보며, 그녀의 눈에는 특이했을 동양 전통에 <원더플>을 연발했다. 그러나 같은 날 같은 TV 중계를 지켜본 한국기자의 감상은 약간 달랐다.
이날 행사에서 20세가 된 청년 히로노미야는 ‘平安시대’(8세기말~12세기초까지 일본사상 가장 태평했던 시대)의 전통적인 궁중의상을 입고 있었는데, 그의 인사를 받는 천황 및 그의 부모가 되는 황태자(註:현재의 천황)부부는 각각 검은색과 흰색의 양복 양장 차림이었다.
성인식 행사가 화려하고 엄숙하게 진행되는 동안 이 같은 황실 一家의 복장이 무엇보다도 한국 기자인 나의 눈길을 끌었다. 그것은 바로 현대 일본의 기막힌(?) 조화와 모순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 전통과 현대가 어떻게 보면 조화로서, 어떻게 보면 모순으로서 어울려 공존하는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식민지시대의 <조선 어린이> 들도 일부 그랬던 모양인데, 현대의 버르장머리없는(?) 젊은이들의 일부도 천황을<덴짱>이라고 부른다. <.....짱>은 인칭대명사나 고유명사 뒤에 붙이는 애칭이다. 그런 식으로 ‘덴노오헤이카’의 <덴>자 발음 뒤에 <짱>음을 붙여 부르는 것이다. 애칭이라고는 하지만 무엄하기 그지없는(?) 호칭 방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덴노오헤이카를 <덴짱> 정도로 부를 수 있는 비슷한 의식구조는 반드시 젊은이의 일부에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여자 기자로서는 일본 언론계에서 최초로 뉴욕 특파원을 역임했던 Y라는 40대 후반의 여성이 있다. 그녀는 1978년에 그녀가 소속해 있는 G통신사를 사직했는데, 사직의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천황가에 대한 일본 매스컴의 비민주적 언어 표현이 참을 수 없어서」라고 밝힌 적이 있다.
자유언론을 구가하는 일본 매스컴이 비민주적이라니? 사연인즉 이렇다. 그녀가 사직을 결행하기 6년전인 1972년 가을, 히로히토 천황의 방미 기간중 UN총회를 시찰하던 날 뉴욕의 날씨는 더할 수 없이 맑았다. 천황의 행차를 수행 취재한 뉴욕 주재 일본 매스컴의 특파원들은 이날 뉴욕의 날씨를 한결같이 <덴노오바래(天皇晴)>라고 표현했다.
일본어 명사는 <덴노오>가 앞에 수식되면 대체로 성스럽고 최고라는 의미가 된다. 더할 수 없이 맑은 뉴욕의 날씨를 일본 기자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덴노오바레>라고 표현한 것이다. 「아니, 뉴욕의 날씨가 쾌청한데 어째서 덴노오바레가 된단 말인가?」-똑똑한 여기자 한 사람이 언론계를 떠난 이유 가운데는 일본 매스컴의 天皇家에 대한 이같이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비민주적인 표현 습성이 도무지 개선될 기미가 없는데 분통이 터졌기 때문이었다는 후일담이 있었다.
그 여기자의 불신에 일리가 없는 건 아니라 하더라도, 황족에 대한 매스컴 용어가 변할 리도 없고 천황의 상징적 권위가 어떻게 될 까닭도 없다. 버릇없는(?) 일부 젊은이나 천황제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상당수의 진보적 지식인을 제외하고는 일반 대중이 천황에 갖는 존경과 애정이 달라질 리도 없다. 일본의 모든 매스미디어는 천황가에 대한 기사만은 최고의 경어 사용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다.
외국인의 눈에는 모든 매스미디어의 이같은 특별난 경어 사용이 어딘가 낯설기만 한데, 일본인으로서 그것에 갈등을 느끼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황제도 아니고 왕도 아닌 <천황>이라는 극존칭을 쓰는 나라는 세계의 입헌군주국 가운데서도 일본뿐이다. 말하자면 일본인에게는 천황은 초월적 존재였고, 지금도 어느 계층에게는 그 같은 인식이 강하게 남아 있다.
<식민지 교육>을 받지 않은 입장의 나로서는, 과거의 역사속에서 일본인의 의식에 천황의 초월적 절대성이 어느 정도이었는가를 나름대로 파악해 볼 수 있는 길은 <과거>를 묘사한 영화나 문학작품 등을 통하는 수밖에 없었다. 청일- 노일 전쟁 등을 소재로 한 영화나 TV 따위를 보면서 천황의 절대성으로 빚어진 일본의 세계에 대한 범죄와 일본 민중의 비극이 어느 정도였던가를 절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전쟁에 출전하는 병사, 전장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이 외치는 것은 <일본 만세>가 아니라 <덴노오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였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일본을 몰랐고 더 더구나 천황제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나에게 덴노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는 장면들은 천황제의 가혹성으로 받아들여지곤 했다.<계속>(조규석 지음 ‘섬나라 그리고 경제대국'(1981년 발행)에서 발췌)
첫댓글 천황을 신으로 받드는 것이 지금도 계속되는 모양이군요. 일본인들의 구심점이 되기도 하지만 대장이 절벽으로 떨어지면 따라가던 모든 쥐들이 모조리 떨어진다는 들쥐가 연상되는군요. 그렇군요, 천황이라고 부르는 나라는 지구상에 일본 하나군요.
고조선이래 삼천년이 넘는 왕정을 이어온 우리나라는 이제 왕의 자취도 없어졌는데 일본은 막부정치/명치유신 등
격변기를 거치면서도 그들의 천황을 국민들의 정신적인 지주로 받들고 이를 중심으로 단결하여 국력을 결집하고
있읍니다. 우리사회가 정신적인 구심점을 잃고 혼란의 와중에서 좌와우가, 보수와진보가 극한 대립하는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상징적인 왕이 있었으면 어떨까 생각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