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국군의 날에 전두환 노태우에 의한 12.12 쿠데타 당시 반란군에 맞서다 전사한 고 김오랑 중령(소령에서 특진)과 고 정선엽 하사(병장에서 특진)에게 유족을 통해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했다고 합니다. 사후 47년 만입니다.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이었던 김오랑 소령은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고 조명을 받아 왔습니다. 반면, 조선대 재학 중 입대한 정선엽 병장은 고향이나 다름없는 전남광주에서도 그가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김오랑 중령 추모사업회가 꾸려지고 훈장이 추서되는 동안에도, 80년 5.18에 앞서 반란군에 맞섰던 정선엽 병장에 대해서는 동문인 동신고등학교 이외에 지역사회 어디에서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가 사병이어서일까요? 80년 5월 광주에 없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무엇 때문일까요?
정 병장은 서울 용산 국방부 헌병으로 복무하다 제대를 3개월 앞둔 1979년 12월 13일 새벽 지하벙커 초병 근무 중 반란군의 항복 요구를 거부해 실탄 4발을 맞고 숨졌습니다.
그가 살려고 했다면 얼마든지 살 수 있었습니다. 물리적으로 불가항력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항복하면 됐을 일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불의에 맞선 김오랑 소령과 정선엽 병장의 죽음에서 하등 다를 게 없습니다. 직업군인으로서 김오랑 소령의 위치와 3개월 후면 무난히 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던 정선엽 병장의 위치를 생각하면 오히려 정선엽 병장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참군인’의 표상에 더 가까우면 가깝지 결코 뒤처질 리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늦게나마 국가가 그의 죽음을 ‘순직’에서 ‘전사’로 바로 잡은 데 이어 충무무공훈장으로 군사반란에 맞선 의로운 죽음에 대해 예우한 것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러나 이런 소식마저도 지역 언론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참군인 김오랑 기념사업회’가 참군인 김오랑 중령의 숭고한 정신을 알리기 위해 특수전사령부 앞에 동상을 건립하기 위해 범국민 모금 캠페인을 추진한다는 소식입니다. 반면, 지역에서는 아직도 아무도 기억하지 않고 있는 그저 쓸쓸한 죽음입니다.
80년 5.18 항쟁에 앞서 12.12 쿠데타 세력과 맞섰던 전남광주의 아들,
'참군인' 정선엽 병장에 대해 이렇게 무심히 둬도 될 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