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보라와 바락의 승리
삿 4:11-16
11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
12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오른 것을 사람들이 시스라에게 알리매
13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 병거 구백 대와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을 하로셋학고임에서부터 기손 강으로 모은지라
14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 주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에 앞서 나가지 아니하시느냐 하는지라 이에 바락이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15 여호와께서 바락 앞에서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걸어서 도망한지라
16 바락이 그의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하로셋학고임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없었더라
삿 4:11-16 / 겐 사람은 모세의 장인이었던 호밥의 후손들이었다. 그런데 겐 사람 헤벨이 자기 일가붙이들과 함께 살던 곳을 떠나서 이사하여 게데스 부근 사아난님 가까이에 있는 상수리나무가 있는 곳까지 옮겨 오게 되었다. 헤벨은 그곳에 자리잡고 살았다.
12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군대를 이끌고 다볼산으로 올라갔다는 말을 전해 들은 시스라는
13 병거가 900대나 되는 병거 부대와 그밖에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군병력을 모두 하로셋에서 기혼강으로 집결시켰다.
14 시스라가 이렇게 움직이자 드보라가 바락에게 말하였다. `자, 그러면 우리도 행동을 개시합시다. 여호와께서 오늘 시스라와 그가 이끄는 군대를 모두 당신의 손에 넘겨 주셨소.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시오. 분명한 것은 여호와께서 당신보다 앞장 서서 싸우신다는 사실아니오?' 그러자 바락이 힘을 얻어 군병력 1만 명을 이끌고 다볼산에서 계곡으로 달려갔다.
15 여호와께서는 바락과 그가 이끄는 군대보다 앞장 서서 싸우셨는데, 시스라와 그가 이끄는 군대를 모조리 칼로 쳐죽이게 하셨다. 그러자 시스라는 너무 급한 나머지 자기가 타고 있던 병거에서 뛰어내려 도망 치기에 정신이 없었다.
16 바락과 그 군대는 도망 치고 있는 시스라의 병거 부대와 그 군대를 하로셋까지 추격하여 모조리 쳐죽였다. 시스라가 이끄는 군대는 바락이 이끄는 민병대의 칼에 처참하게 쓰러져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였다.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바락과 시스라의 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십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전쟁은 당연히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납니다.
전쟁터를 향하는 바락(11-14) 겐 족은 모세의 장인이 속했던 족속입니다(삿 1:16). 성경은 모세의 장인 이름을 여러 개로 말합니다(출 2:18; 18:1). 갑자기 등장하는 겐 족속의 헤벨은 앞으로 일어나게 될 사건의 복선입니다(17ff). 시스라는 바락이 군인들을 이끌고 다볼 산으로 올라갔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대응에 나섭니다. 시스라의 이런 움직임은 자연스러운 반응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이 그를 바락에게 붙이시기 위한 과정 중에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일, 시스라를 바락에게 붙이는 일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앞서서 행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을 이해한 드보라가 바락에게 상황을 설명해 줍니다. 이처럼 긴박한 상황일수록 나타나는 징조를 통해 영적인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또한 드보라의 설명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조건적으로 움직였던 바락에게 이 전쟁이 누구의 전쟁인지를 다시 확인시켜 주며, 그를 격려하면서 전쟁에 나설 것을 독려합니다.
여호와께서 바락 앞에서(15-16)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시스라의 병거와 군대를 바락 앞에서 혼란에 빠뜨리셨기 때문입니다. 훈련받은 군대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혼란이 일어났고, 시스라의 군대는 오합지졸과 같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혼란한 가운데 시스라는 도주하고, 적군은 전멸됩니다. 하나님이 전쟁에 개입하셨을 때, 전쟁이 어떻게 끝나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직접 개인하시면 불가능한 일이 가능한 일로 바뀌고 일어날 수 없는 일이 현실이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만이 이 일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락이 처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이런 믿음이 있었다면, 그는 주저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순종했을 것입니다.
적용: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분명히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이런 믿음이 당신의 삶에서 어떤 위안이 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도우시는 은혜와 인도하심 가운데 인간의 역사는 흘러갑니다. 때로는 낙심되어 넘어져 있을 때, 힘겨워서 기도할 힘이 없을 때, 우리가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절망 가운데 있을 때에도 우리의 삶 앞에서 이끄시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의 말씀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하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 가장 안전한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손 안에 머물 때에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 설 교 >
진정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삿 4장 14~24절 / 이수영목사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이스라엘이 다른 나라들처럼 왕정체제를 갖추기 전까지 사이의 기간 동안 필요할 때마다 이스라엘백성을 다스리도록 하나님께서 지도자로 세우신 이들이 사사라고 했습니다. 사사는 모두 열두 명이었습니다. 흔히 사사기에서 각 사사에 대하여 기록된 분량에 따라 여섯 명은 대사사 여섯 명은 소사사라고 분류합니다. 열 두 사사 중 유일하게 여성인 드보라는 대사사에 속하는 인물입니다. 열 두 사사 중 드보라에 앞서 세 번째로 소개되는 삼갈의 경우에는 그의 행적을 언급하는 데에 단 한 절(3:31)밖에 할애되지 않은데 비해, 드보라의 경우에는 4장과 5장이 온전히 그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일부입니다.
사사기의 모든 기록이 그렇듯 오늘 본문의 이야기도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배신, 이에 따른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와 이스라엘의 고통,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부르짖음, 사사의 출현과 이스라엘의 구원과 평화의 회복이라는 전형적인 틀 안에서 전개됩니다. 오늘 본문보다 앞서는 4:1-4절을 보면 "에훗이 죽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팔았으니 그의 군대 장관은 하로셋 학고임에 거주하는 시스라요 야빈 왕은 철 병거 구백 대가 있어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했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습니다. 5:8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철병거 구백 대가 있는 막강한 군대의 무서운 장군 시스라를 거느린 하솔 왕 야빈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5:8 전체를 다시 보면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이르렀으나 이스라엘의 사만 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가" 합니다.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여 외적의 침략을 받게 되었으나 4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의 군사 중 "방패와 창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대에 실제로 방패와 창이 없었겠습니까? 당연히 있었지만 방패를 들고 적의 공격을 막아내며 창을 들고 적을 향해 공격을 감행할 힘과 의지와 용기를 지닌 자가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는 뜻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자손은 그 침략군의 왕에게서 이십 년 동안 학대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은 또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는 새 사사로 드보라를 세우신 것입니다. 4절에서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다" 한 것으로 보아 드보라는 사사로 세우심을 받기 이전에 이미 선지자로 활동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 5절 끝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한 것으로 보아 그녀는 백성들로부터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5:7에 따르면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었음을 스스로 말하고 있습니다. 드보라는 바락을 지휘관으로 앞세우고 그와 함께 전장에 나갔으며 본문 16절에서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한 사람도 남은 자가 없었다"고 할 만큼 적군에 대하여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사십 년 동안 평온함을 누렸다는 말로(5:31) 사사 드보라 시대의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한 토막 시대에 있었던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합니까? 먼저는 하나님입니다. 우상숭배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범죄와 배신을 묵과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용서를 빌고 구원을 간청하는 당신의 백성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친히 싸우시는 하나님입니다.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당신의 뜻대로 성취하시는 하나님입니다. 본문 14-15절을 보면 적장 시스라를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에 앞서 싸우러 나가신 이도 하나님이시며,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신 이도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5:13에서는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내려오셨도다" 합니다. 5:20에서는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들이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다"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시스라와 그의 군대가 공포에 사로잡히고 전의를 상실하여 혼란 가운데 도주하기에 여념이 없게 만든 천둥번개 등 하늘의 자연현상들을 일으키셨음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또 5:21에서는 "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다" 하는데 이것도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추격해온 이집트 군사를 홍해에 수장시키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기손 강물을 범람시키셔서 시스라 군대의 철병거를 무력화시키시고 그 군대를 몰살시키셨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본문 23절에서는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하게 하신지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나안을 정복하던 여호수아와 함께하셨던 그 하나님을 다시 보게 됩니다. 그 하나님을 우리 또한 온전히 믿고 의지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전쟁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그 주역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홀로 싸우시지 않으시고 사람들을 택하셔서 이스라엘을 위한 당신의 승리의 도구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특별히 그 도구로 쓰임 받은 사람은 세 사람입니다. 여사사 드보라와 그가 만 명 이스라엘 군사의 지휘관으로 세운 바락과 막판에 등장하여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야엘이라는 또 한 사람의 여자입니다.
드보라는 하나님으로부터 사사로서의 소명을 받자 사람을 보내어 바락이라 하는 자를 불러오고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셨다.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넘겨 주실 것이다"(4:6-7). 그러자 바락이 드보라에게 말하기를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4:8)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로부터 승리를 약속하시며 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도 선뜻 받아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싸우려 하지 않고 사람의 도움을 바랬던 것입니다. 그러자 드보라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4:9). 바락이 하나님의 명령에 단번에 순종했더라면 얻을 것이었던 영광을 한 여인에게 넘겨주어야 할 것임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 여인은 드보라가 아닌 한 다른 여인임이 곧 드러납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바락은 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드보라와 함께 다볼 산으로 갔습니다(4:10). 이 소식을 들은 적장 시스라는 철병거 구백 대와 자기의 모든 군대를 기손 강으로 집결시켰습니다(4:12-13). 드보라가 바락에게 공격명령을 내리고 이에 따라 바락은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기손 강가의 시스라 군대를 향해 달려 내려가 전투를 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서 가셨고 친히 싸워주셨기 때문에 바락의 군대는 대승을 거두었습니다(14-16절). 그러나 옛날의 전투에서의 완전한 승리는 적장의 목을 베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손 강을 범람시키시고 철병거들을 표류시키시자 적장 시스라는 그의 병거에서 내려 걸어서 도망하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범람한 강가에서 병거가 잘 달릴 수도 없었거니와 군대장관의 병거를 타고 적으로부터 표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하기도해서였을 것입니다. 시스라가 걸어서 도망쳐 자기의 주군인 하솔 왕 야빈과 평화조약을 맺은 겐 사람 헤벨의 야영지로 들어갔습니다. 평화조약을 맺은 사이였으므로 안전과 보호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시스라는 거기서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을 찾아갔습니다(17절). 그는 여인의 장막은 침범하지 않는 관습을 이용하여 보다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바로 거기에 이 전쟁을 끝내시는 하나님의 결정적인 비책이 숨어 있을 줄을 상상도 못했던 것입니다. 사람의 꾀를 훤히 꿰뚫어 보시고 앞서 가 계시는 하나님의 손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유혹과 그녀가 가한 결정타였습니다. 야엘이 어떤 동기로 어떤 계기에 자기 남편과 평화조약을 맺은 시스라를 자기 장막으로 끌어들여 죽일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역사이고 야엘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명령을 그대로 수행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야엘은 그녀의 장막 밖에 나가 시스라에게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며 그를 영접했습니다. 시스라가 그 장막에 들어가자 야엘은 이불로 그를 덮어주었습니다(18절). 친절을 베풀며 시스라를 안심시킨 것입니다. 야엘은 시스라가 "물을 조금 마시게 하라. 내가 목이 마르다" 하자 우유 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게 하고 그를 덮어주었습니다(19절). 치열한 전투와 공포 속의 도주로 극도의 피로상태에 있었을 시스라를 잠재우기에 적합한 친절이었던 것입니다. 시스라는 야엘에게 장막 문에 서 있다가 만일 사람이 와서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없다"고 말해달라고 당부하고서는 깊이 잠들었습니다(20-21절). 그러자 야엘은 장막 말뚝 하나와 방망이를 들고 잠든 시스라에게로 가만히 다가가서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대고 방망이로 내리쳤습니다. 얼마나 힘껏 내리쳤는지 말뚝은 시스라의 머리를 꿰뚫고 땅에 박혔으며 그는 기절하여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22절). 얼마 후에 적장 시스라를 쫓던 바락이 야엘의 장막 앞에 이르자 야엘은 나가서 그를 맞으며 말했습니다: "오라. 네가 찾는 그 사람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22절). 그 말을 따라 바락은 야엘의 장막에 들어가 관자놀이에 말뚝이 박힌 채 엎드러져 죽어있는 시스라를 찾았으나 드보라의 예언대로 적장을 죽여 승리의 영광을 차지할 기회는 이미 여인 야엘의 몫이 되고 만 후였습니다. 바락은 뒤에 드보라와 함께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5:24) 노래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이십년간 학대한 하솔 왕 야빈과 그 군대장관 시스라의 군대와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안겨준 세 명의 영웅 중 두 명이 여인이고 한 사람이 남자였습니다. 그나마 남자 바락은 일만의 군사를 이끌고 전투의 최전선에서 싸워 이긴 지휘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절대적 신뢰와 즉각적인 순종의 결여 때문에 그에게 주어진 영광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충직한 선지자요 신망 있는 지도자였던 드보라는 사사로서 받은 하나님의 명령도 성실하고 용기 있게 수행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녀가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었다는 것은 이십년간 이스라엘을 학대한 이방의 왕과 그 군대를 진멸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했으며 백성들로 하여금 그 후에 사십 년간 평화를 누리게 한 공로를 백성들이 그녀에게 돌렸다는 뜻입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사랑과 신뢰와 존경과 순종과 감사를 드보라에게 바쳤다는 것입니다. 야엘은 이스라엘 여자도 아니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과 담대함으로 이스라엘의 적장을 죽이는 영광을 차지했으며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라는 칭송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한 시대가 믿음과 순종의 두 여인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라는 이름이 갖는 뜻은 꿀벌이고 이라는 이름의 뜻은 산염소라는 사실은 놀라운 의미를 갖습니다. 산염소는 젖을 내고 꿀벌은 꿀을 만듭니다. 꿀벌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한 여인이 정의로운 심판을 통해 꿀과 같이 단 공의가 강물같이 흐르게 하였으며 용기로 민족을 이끌어감으로써 20년간 이방왕의 학대에 신음하던 민족을 살려내었고, 산염소를 뜻하는 이름의 한 여인이 무서운 적장을 죽여 없앰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의 시름을 씻어내고 사십년간의 평화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젖과 꿀이 흐르리라고 약속된 가나안 땅이 진정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회복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는 것은 땅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달린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하나님께 온전한 믿음과 철저한 순종을 드리는 이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인 것입니다. 아무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하드라도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배신하여 환난과 고통을 자초하면 그 땅에 흐르는 젖과 꿀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 삼천리금수강산이 일제하에서나 공산치하에서 우리에게 무슨 행복을 줄 수 있었습니까? 우리가 누리지 못하고 악한 자들에게 수탈당하는 젖과 꿀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대한민국과 이 삼천리금수강산이 우리 모두에게 진정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도록 하나님께 온전한 믿음과 순종을 바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부른 노래인 사사기 5장의 끝에서 드보라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원수들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5:31). 이 드보라의 기도처럼 우리 모두 주님을 사랑하고 그래서 우리 민족에게 힘차게 돋는 희망과 위로의 햇빛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주님께 감사하라
삿 4장 12~16절 / 지용수목사
6.25사변 때 있었던 일입니다.
한 어린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끌려가서 나무에 묶였습니다. 인민군들이 끌고 온 사람들을 나무에 묶어 놓고 한 사람 한 사람 차례로 죽였습니다. 이제 어린아이가 총살당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때 한 인민군이 그 아이를 죽이려는 인민군의 손에 돈을 쥐어주면서 말했습니다.
“저 아이는 내가 더 조사한 후 죽이겠으니 저 아이를 내게 맡기시오.”
그러자 아이를 죽이려던 인민군이 돈을 받고 아이를 넘겨주었습니다.
돈을 건네 준 인민군이 아이의 손을 잡고 산등성이를 넘더니 말했습니다.
“얘야, 빨리 도망가라.”
“아저씨는 누구세요? 왜 저를 살려 주시는 거예요?”
“나는 이러 이러한 사람인데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너를 살려 주는 것이 아니다. 어린 네가 총살당하는 것이 불쌍해서 살려 주는 것이니 어서 도망가거라.”
아이는 그 자리에서 도망쳐 남한으로 왔습니다. 그 어린아이가 지금 우리 나라 굴지 기업의 회장입니다. 그 기업의 이름을 말하면 여러분도 다 아실 것입니다.
그분이 지금도 인터넷은 물론 각 방면으로 자기를 살려 준 생명의 은인을 찾고 있습니다. 생명의 은인을 찾기만 하면 정성을 다해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데 아직까지 찾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그 인민군 아저씨가 아니었으면 벌써 이 세상에서 없어졌을 텐데 그분 때문에 살았으니 그 회장님은 그분이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그 회장님뿐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도 인생의 발자취를 돌이켜보면 고마운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에게 고맙게 해 주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복이 없는 사람은 자신에게 은혜를 끼친 사람은 다 잊어버리고 자신을 해치고 배신한 사람, 자신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만 기억하고 이를 갈면서 복수합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내게 섭섭하게 하고 잘못한 사람은 잊어버리고 고맙게 해 준 사람을 기억하여 은혜를 갚으며 살아갑니다.
스피로스 제임스 하데스는 말했습니다.
“모든 상황에 감사하는 것은 상황을 밝게 하고 이기는 비결이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있어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 상황이 밝아지고 그 상황을 이기게 될 줄로 믿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제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오늘의 모습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너무 고맙습니다. 또 제 과거를 돌아보면 고마우신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우선은 가장 고마우신 분이 부모님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핏덩이로 태어났는데,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한이 없습니다. 제가 이번에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도 가장 기뻐하신 분은 여러분이 아니라 제 어머니이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제가 좋아하는 빵과 떡을 해 놓고 기다리셨습니다. 연세가 80이 되셨어도 자식을 위해 바치는 사랑을 어떻게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우리가 아버지 어머니의 은혜를 아무리 갚으려 해도 갚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아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제가 행복하고 기쁘게 목회를 하지만, 목회 생활이 쉽지만은 않아 때로는 울 때도 있습니다. 이번에 미국에 가서 두 달 동안 많이 울었습니다. 한번은 설교 전에 찬송하다가 자꾸 울음이 나오는 바람에 설교를 하지 못할 뻔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든 울지 않을 수 없는 일들이 있는 것입니다.
열한 명의 교인을 섬기면서 목회를 하시는 한 목사님이 너무 힘들고 어렵게 목회를 하셨나 봅니다. 그 열한 명의 교인 중에도 목사님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었나 봅니다. 하루는 “뻐꾹 뻐꾹”하고 처량하게 우는 뻐꾸기의 소리를 들은 목사님이 “뻐꾸기야, 뻐꾸기야, 너는 목회도 안 하는데 왜 그렇게 우니?”라고 했답니다. 또 시커멓게 썩은 고목을 보고는 “고목 나무야, 고목 나무야. 너는 목회도 안 하는데 왜 그리 속이 썩었니?”라고 했답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힘든 일도 있는데, 제 아내가 도망도 안 하고 가출도 안 하고 이렇게 살아 주는 것이 고맙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는 동안 좋은 집에서 살았을 것이라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교회에 임시로 방 한 칸을 넣어놓고 거기에서 살았습니다. 화장실 바로 앞에 두 평도 안 되는 방을 임시로 마련해 놓고 사니 냄새도 나고, 또 제 아내가 교회 살림을 사느라 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제가 남편으로 아내에게 퍽 미안해서 “여보, 미안하오.”라고 했더니, 아내가 “하나님 일이라면 머슴살이를 해도 감사할 뿐이지요.”라는 예쁜 말을 했습니다.
어쨌든 아내도 참 고맙습니다.
또 귀한 우리 장로님들도 고맙습니다. 세계 어느 교회를 가 보아도 우리 장로님들처럼 귀한 분들은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모두 귀하고 고맙습니다.
또 저는 황보 선생님을 잊지 못합니다. 저희 집이 가난해서 제가 상급 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있었을 때 선생님이 저희 아버지를 여섯 번 일곱 번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용수 아버지, 용수는 공부를 해야 될 아이입니다. 용수는 상급 학교에 진학해야 됩니다.”
“선생님, 압니다. 하지만 먹고사는 것이 바쁜데 어떻게 상급 학교에 보냅니까?”
“그래도 보내야 합니다. 용수는 보통 아이가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여섯 번 일곱 번 저희 아버지를 찾아오셔서 우시며 사정하시니, 결국 아버지께서 설득을 당하시어 저를 진학시키셨습니다. 그때 진학하지 않았으면 지금 저는 머슴살이를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황보 선생님의 은혜를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또 저는 태재 형도 잊지 못합니다. 저보다 열 살이 많은 고향 마을의 형인 태재 형이 저를 얼마나 사랑해 주었는지 모릅니다. 저는 책상 앞에는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즐거운데, 그 외의 일은 잘하지 못합니다. 특별히 소 풀을 베는 일은 왜 그렇게 힘드는지, 풀은 잘 베이지 않고 자꾸 제 손만 베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태재 형이 “야, 너는 소 풀을 하지 말고 나만 따라 다녀.”라고 하더니, 자기 소 풀을 한 다음에 풀을 척척 베어서 제 다래끼에 넣어 주었습니다. 형이 세 줌만 베어 주면 제 다래끼에 풀이 가득 찼습니다. 제게 그렇게 고맙게 해 주신 형이 지금 농사를 짓고 계시는데, 이번 태풍에 피해를 보았을 것 같습니다. 정말 고마운 형이라 제가 미국에서도 전화를 했습니다.
또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니지 못했을 때 제 짝인 권오연이가 하얀 쌀밥 도시락을 두 개씩 싸 갖고 와서 한 개는 자기가 먹고 한 개는 저를 주었습니다. 그때 저희 집은 보리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 때인데 하얀 쌀밥을 싸 가지고 와서 저를 주었습니다. 저는 부끄럽기도 하고 자존심도 상했지만 고맙게 그것을 받아 먹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친구를 잊고 살았습니다.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혹 오연이가 이 설교를 들을지 모르겠습니다.
“오연아, 이 설교를 듣는다면 연락해라.”
오연이와 연락이 된다면 제가 대접을 잘 할 것입니다. 권오연, 참 고마운 친구입니다.
이렇게 주마등같이 스쳐가는 고마운 분들이 참 많습니다.
여러분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장 감사할 대상은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허물과 죄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외동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시고, 그 아들을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시어 우리 죄를 사하시고, 마구간 같은 우리 가슴에 성령을 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만 입이 있어도 다 감사하지 못합니다. 또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된 다음에도 해서 안 될 일을 하고, 품어서 안 될 생각을 품고 잘못을 많이 했는데도 다 용서하시고, 계속 새롭게 하시고 써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어찌 다 갚을 수 있습니까?
성경을 읽을 때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커서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큽니다. 성경 한 절 한 절마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합니다.
그 은혜를 우리가 다 갚을 수 없고 다 찬송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제가 두 주 동안 계속해서 읽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니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가나안 왕 야빈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일본 사람들의 압제 아래 36년간 고생했듯이, 이스라엘 백성도 가나안 왕 야빈의 압제 아래 20년간 한숨을 쉬면서 고생의 떡과 물을 먹고 마시며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유가 없었습니다. 애써 농사를 지어도 다 빼앗겼습니다. 가축을 길러 놓아도 좋은 가축은 다 빼앗겼습니다. 무기가 없어서 군사 훈련도 시키지 못했습니다. 나라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드보라를 비롯한 뜻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회개하며 하나님을 향해 소리쳐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바락을 세우시어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에서 군사 일만 명을 뽑게 하시고, 그 일만 명의 군사를 통하여 야빈 왕의 엄청난 군대를 쓸어버리셨습니다.
야빈 왕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나라의 가장 큰 무기인 철병거(탱크) 900대와 온 군사를 기손강으로 유인하여 다 쓸어버리셨습니다. 사사기 5장 4절에 보면 하늘의 구름이 비가 되어 내려오고, 사사기 5장 5절에 보면 지진이 일어나서 그들을 흔들어버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사사기 5장 21절에 보면 강물이 갑자기 불어나서 그들을 휩쓸어 버렸습니다. 철병거에는 구멍이 뚫려 있어 사람이 그 안에 숨어서 화살을 쏘아 적을 쓰러뜨리는데, 강물이 불어나 철병거에 물이 가득하니 그 안에 있는 사람이 그냥 죽었습니다. 또 그 병거에서 뛰쳐나와 보았자 물결에 휩쓸려서 죽었습니다. 그러니 모든 군사와 말이 휩쓸려 청소를 당했습니다. 수영을 잘 해서 강 위로 올라온 사람은 일만 명의 이스라엘 군사가 다 쳐죽였습니다.
그래서 야빈 왕의 그 많은 군사는 삽시간에 전멸을 당하고 이스라엘은 회복되었습니다.
본문을 보아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사랑이 한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망했는데도 하나님께서는 떠나지 않으시고 고생하는 그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자녀가 혹 실수해서 감옥에 가도 부모의 마음은 그 감옥에 가 있습니다. 아들이 군에 가 있으면 그 부모의 마음도 군에 가 있습니다. 아들이 이탈리아에 가 있으면 부모의 마음도 이탈리아에 가 있고, 아들이 감옥에 가 있으면 부모의 마음도 감옥에 가 있는 것입니다.
자식이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부모는 그 자식을 잊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순종하며 복되게 살 때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방탕하게 살고 막 살아도, 하나님의 진노의 자리 하나님께 채찍 맞을 자리에 있어도 우리를 떠나지 못하시고 거기에 함께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못하십니다. 한 번 택하신 사람은 버리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도 한 번 택한 사람은 잘 버리지 않습니다.
저도 직원을 한 번 택하면 더 좋은 길이 있어서 나가기 전까지는 끝까지 함께 일합니다. 잘못하면 고치고 바로 잡아 주지, 그만 두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셔서 한 번 택하신 사람은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 인생 길에 하나님께서 늘 함께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주 전, 한 가게에 갔다가 은혜로운 그림이 눈에 띄어서 사 가지고 왔습니다. 바로 이 그림입니다. 이 그림의 내용은 세계인에게 알려진 감동 깊은 이야기로 한 분이 꿈속에서 체험한 신비로운 사건의 간증입니다.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자신의 일생을 비추어 주는데, 그 일생이 해변을 걷고 있는 장면으로 나타났습니다. 인생의 여러 장면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모든 장면마다 자기 혼자 걷는데 발자국은 언제나 두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이상하다. 나 혼자 걸어왔는데 왜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지?’
그때 주님께서 가까이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아이야(어른이지만 주님께서는 아이라고 부르셨습니다.), 한 발자국은 내 것이다. 내가 항상 너랑 함께 걸어왔다. 나는 너를 떠나지 않는다.”
그는 너무 기뻐서 “아! 하나님께서 항상 나와 함께 하셨구나. 주님께서 나와 함께 걸어오셨구나.”하며 흥분합니다.
또 다른 장면이 나타납니다. 신비로운 빛이 해변을 걷는 자신의 모습을 계속해서 비추어 주는데,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이 없고 가장 슬프고 가장 고통스러울 때의 장면이 보입니다.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고통스러운 모습인지…. 그런데 뒤에 나타난 발자국이 한 사람 것뿐입니다. 이제까지는 언제나 두 사람의 발자국이 나타났는데,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없는 것을 보고 그가 주님께 따집니다.
“저는 당신을 이해 못 해요(I don't understand you). 저는 당신을 이해 못 해요. 절 버리지 않고 항상 저와 함께 걸어가신다고 약속하시고선 제가 가장 힘들고 슬프고 어려울 때는 왜 저를 떠나셨어요? 왜 약속을 깨셨어요? 저는 이해 못 해요. 제가 당신을 가장 필요로 할 때 당신은 저를 버리셨군요.”
그때 주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영어 그대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둘도 없는, 하나뿐인 나의 아이야, 나는 변함없이 너를 사랑한단다(My precious child, I love you). 나는 너를 떠나지 않아. 네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도 나는 너를 떠나지 않았어. 다시 보렴. 그 발자국이 누구의 발자국인지. 네가 너무 힘들어할 때는 내가 너를 내 가슴에 안고 옮겼기(carry) 때문에 발자국이 하나뿐이란다. 그 발자국은 네 발자국이 아니라 내 발자국이야."
그는 그 발자국을 다시 봅니다. 자기 발자국이 아니라 주님의 발자국입니다. 보통 때는 주님께서 그와 함께 걸으셨는데 그가 너무 힘들어 할 때, 지쳐 있을 때는 주님께서 그를 안고 걸으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이 그림을 보고, 모래 위의 발자국, 주님의 발자국을 보고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의롭게 살고 거룩하게 살 때도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방탕할 때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때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지켜보십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께서는 끝까지 그냥 지켜만 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왕 야빈의 말발굽 아래에서, 철병거의 세력 앞에서 20년간 고통 당하는 자기 백성을 끝까지 그냥 보고 계시지만 않고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늘의 별들을 움직이시고 지진을 일으키시고 홍수를 일으키시고, 바락 장군에게 용기를 주시고 일만 명의 군사에게 힘을 주셔서 가나안 군사를 치게 하심으로 다시 자유를 주셨습니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기회를 주신다.”
여러분과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도 우리 하나님께서는 함께 하시지만, 어려운 대로 끝까지 두지 않으시고 다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짓눌려 살 때도 함께 하시지만, 항상 짓눌려 살지 않게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도 기회를 주지 않으셨으면 오늘의 저희 가정은 없었습니다.
제가 결혼하고 11년 동안 아내랑 많이 다투었습니다. 그러다 결혼한 지 11년째 되던 해에는 이혼을 하기로 아내와 합의를 보았습니다. 위자료는 줄 것도 없어서 아이들 문제만 해결하면 되었습니다. 큰애와 둘째는 제가 데리고 살고, 막내는 아내가 데리고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모든 것을 끝내고 이혼 도장만 찍으면 되는 상황이었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셔서 오늘의 저희 가정이 있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때 공부를 꽤 잘 한 우리 교회의 한 학생은 서울대학교 하위권 학과에 지원했는데 불합격했습니다. 자기 딴에는 공부를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상위권 학과도 아닌 하위권 학과에 떨어졌을 때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는지 모든 것을 끝내고 싶더랍니다. 그래서 가출하려고 했답니다. 그러나 고요히 기도하다가 깨달았답니다.
‘아! 내가 주일에도 공부했구나. 공부도 일인데 주일에 공부했구나.’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결심했답니다.
‘하나님, 또 대학 입학 시험에 떨어져도 이제 주일에는 공부하지 않겠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겠습니다.“
그 후로 주일에는 예배드리고 성경을 읽고 푹 쉬고, 월, 화, 수, 목, 금, 토요일에는 열심히 공부했답니다. 그 다음 해에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서울대학교 상위권 학과에 수석으로 합격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은 학교에서 장학금을 주어도 받지 않고 자기다 형편이 더 어려운 학생에게 양보한답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런 착한 마음을 갖고 공부하는 그 학생이 지난 학기에 전 과목 다 A+를 받았답니다. 서울대학교 교수님들은 A학점은 주어도 A+학점은 잘 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전 과목 다 A+를 받았으니 아마 서울대학교에서 전체 수석을 했을 것입니다.
하위권 학과 입학 시험에 떨어진 학생을 수석하도록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도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베드로가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해 낙심해 있을 때,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네 그물을 던져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니 물고기가 그물에 가득 찼습니다. 할렐루야!
오늘 여러분 중에 의욕을 잃은 분, 희망을 잃은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가정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떤 일에 짓눌려 있는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분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다시 일어나는 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바락의 앞에서 싸우십니다. 바락과 일만 명의 군사가 싸우기 전에 앞에서 지진으로, 물로, 홍수로 적들을 쓰러뜨려 버리십니다.
하나님의 칼이 홍수고, 하나님의 칼이 지진이고, 하나님의 칼이 천재지변입니다. 하나님의 칼이 적들을 엎어버리십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여러분과 저의 적을 앞에서 막아 주십니다. 제거해 주십니다. 얼마나 고맙습니까?
지뢰 탐지반이 군인들이 오기 전에 지뢰를 제거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서 우리를 해치려는 지뢰와 함정을 발견하시고 제거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한 걸음 한 걸음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면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만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자.”
하나님을 거스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마가복음 5장에 보면, 거라사인 지방에 귀신들린 한 사람이 있습니다. 쇠사슬도 물어뜯는 그를 아무도 제어하지 못하는데, 그는 소리소리 지르고 날카로운 돌로 자기 몸을 찍어 피를 흘리며 무덤에서 삽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자기 몸을 어떻게 돌로 찍습니까? 그러니 미친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자기 몸을 찍습니다.
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망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술을 마시면 머리가 나빠지고 몸이 상하는데도 많은 사람이 밤마다 술의 돌로 자기를 찍습니다. 낮에도 술을 마시며 자기를 찍습니다. 또 담배는 건강에 얼마나 해롭습니까?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보다 폐암에 걸리는 확률이 18배 더 높은데도 사람들이 담배로 자기 몸을 찍습니다. 자기 폐를 자기가 찍고 있는 것입니다. 또 마약을 하면 자기 몸을 다 찍어 없애는 것인데 마약의 돌로 자기를 찍습니다. 간음하고 음란을 행하고 죄를 짓는 것은 자기 가정을 찍는 것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간음의 날카로운 돌로 자기 아내, 자기 자녀, 자기 가정을 찍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다 귀신의 짓이고 미친 짓입니다.
왜 그런 돌로 자기 몸을 찍고 자기 가정을 찍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말씀하십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
술이나 담배나 마약이나 죄나 다 우리를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풍성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 거역해서는 안 됩니다.
남편에게 거역하는 아내가 똑똑한 여자가 아닙니다.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가 복 있는 여자입니다. 부모님께 거역하는 자식이 잘난 인간이 아닙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는 자녀가 복 있는 자녀입니다. 선생님께 바락바락 대들고 대꾸하는 학생이 좋은 학생이 아닙니다. 선생님을 존경하고 선생님께 순종하는 학생이 좋은 제자입니다.
거스르면 좋지 않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역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에게 거역한 고라와 다단이 잘 한 것이 아닙니다.
순종이 복 있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레일라 버그의 ‘18가지 철학적 우화’에 보면, 항상 다투는 여인이라는 스칸디나비아의 설화가 나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가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남편은 성품이 좋고 원만했는데 그의 아내는 언제나 다투기만 하고 거스르는 여자였습니다. 다른 집에서 창문을 열면 닫고 창문을 닫으면 열었습니다. 언제나 다른 사람과 반대로만 했습니다. 닭을 보고도 오리라고 우기는 여자였습니다.
하루는 그 남편과 아내가 옥수수 밭을 돌아보려고 다리를 건너다가 남편이 말했습니다. “옥수수가 다 영글어 가는구먼. 화요일이면 다 영글겠네.”
그러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아니에요. 월요일이면 다 영글어요.”
“그래, 월요일에 다 영글겠지. 그러면 우리 월요일에 존과 에릭의 도움을 받아 추수합시다.”
“아니에요. 제임스와 로버트를 불러야 돼요.”
“그럽시다. 제임스와 로버트의 도움을 받읍시다. 그러면 월요일 7시에 합시다.”
“아니에요. 6시에 해요. 6시.”
“그러면 6시에 합시다. 월요일에 날씨가 좋을 거요.”
“아니에요. 비가 쏟아지고 날씨가 나쁠 거예요.”
그 말에 남편이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비가 오든 안 오든, 제임스든 존이든 상관없이 월요일 아침 6시에 큰 낫으로 우리 옥수수를 추수하는 거요.”
아내가 “아니에요. 낫으로 하지 말고 가위로 해요. 큰 가위로.”하고 말했습니다.
“아니! 옥수수를 어떻게 가위로 잘라? 큰 낫으로 잘라야지.”
“아니에요. 큰 가위로 해요. 큰 가위!”하고 아내가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그건 안 돼. 낫으로 해야 돼!”
“아니에요. 큰 가위로 해요. 큰 가위로!”
아내는 너무 화가 나서 앞을 잘 바라보지 않고 가다가 그만 강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물 속에 잠겼다가 잠시 떠올랐으면 “사람 살려!”라고 해야 되는데, 그 아내는 “큰 가위!”하고 소리질렀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큰 낫!”하고 외쳤습니다. 다시 물 속에 잠겼다가 떠오른 아내가 소리쳤습니다.
“가위!”
“낫!”
“가위!”
“낫!”
몇 번 물에 잠겼다 떠올랐다 하던 그의 아내는 입속으로 물이 자꾸 들어와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게 되자 손만 번쩍 치켜 올려 가위질을 했습니다. 그러다 나중에는 손도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아이고, 저 못 말리는 여자. 저 거스르는 여자.”하며 발을 굴렀습니다. 남편이 친구들을 불러서 아내를 찾기 위해 강 하류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아내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고, 내가 실수를 했구나. 아내는 분명히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 있을 거야.”
남편이 친구들과 함께 강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거기에 죽은 아내가 있더랍니다.
죽음 앞에서도 반항하고 거스르는 여자, 얼마나 불쌍합니까?
교회에서도 끝까지 반항하고 거스르는 사람이 있는 교회도 있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고 부모님께 순종하는 온유한 성품으로 복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또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바락과 일만 명 군사의 수레바퀴를 승리 쪽으로 몰고 가십니다.
시스라 군대의 900승 탱크와 그 대군을 일만 명의 군사가 어찌 맞아 싸우겠습니까? 도저히 맞서 싸울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승리의 수레바퀴를 바락에게 굴려 가시니 바락이 이겼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아들딸이나 손자가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해 보십시오.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달리기를 할 때 할아버지 할머니 아빠 엄마는 제발 자기 손자 손녀, 아들딸이 이기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 지구촌 운동장에서 삶의 경쟁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이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승리의 수레바퀴를 굴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수레바퀴를 승리 쪽으로 굴려 가시면 막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이 되게 하시니 사울 왕이 막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총리가 되게 하시니 사자들도 다니엘을 막지 못합니다.
사무엘하 8장 6절에 말씀하십니다.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사무엘하 8장 14절에도 말씀하십니다.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저는 이 말씀에 제 이름을 넣어 보았습니다.
“지용수가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지용수가 미국에 가도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지용수가 영국에 가도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지용수를 이기게 하시면 지용수를 막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양곡교회를 이기게 하시면 양곡교회를 막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이기게 하시면 여러분을 방해할 자가 없는 것입니다.
마귀는, 사탄은 여러분을 실패시키고 여러분 자녀를 실패시키고 여러분 가정을 깨뜨리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우리 자녀를 이기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와 우리 자녀는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3일 전 미국 우리 교회 옆에 있는 마켓을 지나가는데 아주 예쁘고 우아하게 생긴 한 아가씨가 담배를 피우며 “후우-”하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얼마나 잘 생겼는지 며느리를 삼고 싶을 정도였는데 담배 피우는 것을 보니 ….
사탄은 우아하고 고귀한 사람도 초라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님께서는 더러운 사람도 거룩하게, 가치 없는 사람도 가치 있게, 먼지 같은 사람도 진주같이 만드십니다.
오늘날 하나님 없는 사람은 막 살게 됩니다. 가정 주부도 아들도 딸도 막 살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술과 담배로 몸을 해치고 어려움을 당하는지 모릅니다.
한 아버지가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 다니는 세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요즘 많은 아이들이 담배 때문에 건강을 해치고 있다고 하지 않니? 그래서 너희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그 보상으로 아빠가 좋은 승용차를 한 대씩 사 주려고 한다. 너희 의견은 어떠냐?”
고등학생인 큰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약속을 깨뜨리지만 않으시면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
둘째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버지, 2년만 줄여서 열 여덟 살까지로 해 주시지요?”
초등학생인 막내 차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 그런 말씀을 왜 진작 하지 않으셨어요?”
초등학생이 벌써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경사 길에서 수레를 놓아 버리면 수레가 내동댕이쳐지듯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지 않으시면 사람처럼 살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이끌어 가시면 우리는 승리하게 됩니다.
여러분과 저는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하나님의 인도에 복종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수레바퀴를 승리 쪽으로 이끌어 가시도록 섬기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