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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순고식(因循姑息)
할미나 아이의 뜻을 따른다는 뜻으로, 낡은 관습이나 폐단을 벗어나지 못하고 당장의 편안함을 취함 또는 일을 행함에 있어 결단력 없이 우물쭈물함을 이르는 말이다.
因 : 인할 인(囗/3)
循 : 따를 순(彳/9)
姑 : 시어머니 고(女/5)
息 : 쉴 식(心/6)
(유의어)
고식지계(姑息之計)
고식책(姑息策)
동족방뇨(凍足放尿)
미봉책(彌縫策)
변통(變通)
일을 함에 있어 늘 하던 대로 하고 눈앞의 편안함만을 찾는 행태를 말한다. 근본적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고 임시변통으로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 무엇을 판단해야 할 때 우물쭈물하며 결단하지 못할 때를 가리키기도 한다. 고식인순(姑息因循)으로도 쓴다. 눈앞의 손익만 좇는 사람을 비판할 때도 쓰인다. 비슷한 의미의 사자성어인 구차미봉(苟且彌縫)과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인순고식(因循姑息) 구차미봉(苟且彌縫)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만년에 아들 박종채에게 세상만사가 이 여덟 글자로 인해 무너지니 이 말을 가슴에 품고 살라고 경계했다고 한다. 박종채가 아버지 연암의 기억을 기록한 '과정록(過庭錄)'에 나오는 말이다.
세상사 의미 있는 것을 이루려면 인순고식을 거슬러 행동하라는 경구다. 만사를 구습대로 따라하지 않고 편한 것을 버리고 일부러 불편함을 찾아 새로운 방도를 찾는 태도를 권하는 말이다. 또한 목전의 이익만 따지는 사람의 말을 들으면 화를 입는다는 의미도 있다.
회사와 나라도 인순고식에 매어 있으면 발전은커녕 퇴보할 것이다. 편하고 쉬운 것만 찾는 직원이나 공직자만 있으면 회사와 국가의 발전은 요원하다. 제품이나 서비스와 정책 개발을 하며 해오던 대로 살짝 겉만 바꿔 내놓는 일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인순고식을 척결하고 도전과 창의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경영과 국정의 요체일 것이다.
비슷한 의미의 사자성어로 고식지계(姑息之計), 임시방편(臨時方便), 윗돌 빼서 아랫돌 괴고 아랫돌 빼서 윗돌 괸다는 뜻의 상하탱석(上下탱石) 등이 있다. 언발에 오줌 누기란 뜻의 동족방뇨( 凍足放尿 ) 등이 있다.
▣ 因循姑息 苟且彌縫(인순고식 구차미봉)
만년에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이 병중에 붓을 들었다. 먹을 듬뿍 찍어 빈 병풍에다 여덟 글자를 크게 썼다. '인순고식 구차미봉(因循姑息 苟且彌縫)' 그리고 말했다. "천하만사가 이 여덟 글자 때문에 이지러지고 무너진다." 아들 박종채(朴宗采)가 아버지 연암의 기억을 기록한 '과정록(過庭錄)'에 보인다.
연암은 이 말을 즐겨 썼다.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큰 근본이 무너지면 백성의 뜻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게 되어 모든 일에 요행을 바라게 된다. 임금이 날마다 부지런히 계책을 내지만 마침내 인순고식(因循姑息)으로 돌아감을 면하지 못하고, 신하들이 그 명을 받들어 이랬다저랬다 해 봤자 구차미봉(苟且彌縫)에 그치고 만다. 이것이 진실로 천하의 큰 근심이다."
세상일은 쉬 변한다. 사람들은 해오던 대로만 하려든다. 이제까지 아무 일 없다가 오늘 갑자기 문제가 생긴다. 상황을 낙관해서 '그저 지나가겠지!', '별일 없겠지'하고 방심해서 하던 대로 계속하다가 일을 자꾸 키운다. 이것이 인순고식(因循姑息)이다. 당면한 상황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인순고식(因循姑息)의 방심이 누적된 결과다.
차근차근 원인을 분석해서 정면 돌파해야 한다. 하지만 없던 일로 하고 대충 넘어가려 한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차곡차곡 쌓인다. 어쩔 수가 없으니 한번만 봐 달라는 것이 구차(苟且)다. 그때그때 대충 꿰매 모면해서 넘어가는 것이 미봉(彌縫)이다. 그러다가 한꺼번에 터지면 손쓸 방법이 없다.
서명응(徐命膺)도 여측편(蠡測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허물은 꾸며서 가리면 안 된다. 꾸미려들면 내 마음을 크게 해친다. 하물며 구차미봉(苟且彌縫)하면 앞서의 허물을 바로 잡기도 전에 다음 허물이 잇따라 이르러 마침내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런 뒤에 이리저리 고민해 봤자 한갓 마음과 몸을 지치게 할 뿐이다."
아버지(박지원)께서 만년에 병환 중이실 때 붓을 잡아 큰 글자로 '인순고식 구차미봉(因徇姑息 苟且彌縫)'이라는 여덟 글자를 병풍에 쓰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천하 만사가 이 여덟 글자로부터 잘못된다"라고 하셨다.
여덟 글자란 무언가. 요컨대 개인의 사주(四柱) 뒤에 따르는 '팔자(八字)'가 아닌가. 그렇게도 읽을 수 있어서다. 여기서 나는, '자기개발'을 다하지 못하는 이유를 8가지로 천착(穿鑿)하고자 한다. 그리고 팔자를 반으로 줄여 사주로 읽고자 한다.
그러면 인순(因循)은 '적극성 부족함'으로, 고식(姑息)은 '부녀자와 어린아이 같은 편협한 생각'으로, 구차(苟且)는 '떳떳하지 못해서 마음이 가난함'으로, 미봉(彌縫)은 '임시변통의 땜질'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저마다 자기개발이 끝내 꽃을 피우지(發) 못하는(廢) 4가지 병통일 것이다.
▣ 참으로 구차한 시대
많이 사용하는 어휘 중에 의외로 의미의 외연과 유래가 간단치 않은 경우들이 적지 않다. '구차(苟且)하다'를 한국어사전에서 찾으면 '살림이 몹시 가난하다'가 첫 번째 뜻으로 나온다. 중국어사전에는 '그럭저럭 되는 대로 하다', 일본어사전에는 '일시적이다'가 통용되는 의미로 등재되어 있어서 거리가 꽤 있어 보인다.
가장 이른 시기의 출전으로 알려진 진(晉)나라 육기(陸機)의 글에서는 통치자에게 '구차한 마음'이 없어야 한다고 했다. 당장 눈앞에 놓인 이익에 좌우되지 말고 굳건해야 함을 강조하는 문맥이다. 한(漢)나라 순열(荀悅)은 진(秦)이 14년 만에 멸망한 이유로 '구차한 정치'를 들었는데, 성현이 제시한 보편적 예법을 따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많이 달라 보이던 의미들이 대체로 '원칙을 고려하지 않고 일시적인 편의에 따라 대충 봉합하며 지나치는 태도'로 수렴된다.
한국어사전의 두 번째 뜻인 '말이나 행동이 떳떳하지 못함'과 그 주된 용례인 '구차한 변명', '구차한 목숨' 등의 표현 역시 일맥상통한다.
18세기 작가 조귀명이 불구(不苟)를 호로 삼은 윤득형을 위해 지어준 '불구설'의 첫 문장이다. "성현의 도는 '구차하지 않음'에 있을 뿐이다." 그는 구차함을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움이 없음'으로 풀이했다.
무릎 꿇어야 할 때는 누울 생각이 나지 않고 서 있어야 할 때는 앉을 생각이 나지 않아야 구차하지 않다고 할 수 있지, 그저 무릎 꿇고 서 있는 동작을 예법에 맞추어 억지로 행하는 것으로는 구차함을 면치 못한다고 했다. 그러니 구차함과 구차하지 않음의 구별은 외면을 보고 판단할 수 없다. 떳떳한 원칙이 체화되어 자연스럽게 표출될 때 비로소 구차하지 않을 수 있다.
무엇이 원칙인지 생각조차 않는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 만년의 박지원은 병풍에 '인순고식(因循姑息) 구차미봉(苟且彌縫)' 여덟 글자를 크게 써두고, "세상 모든 일이 다 이 여덟 자 때문에 무너지는 법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해오던 대로 적당히 얼버무리고 임시변통하면서 문제를 덮어두는 태도를 경계한 말이다.
우리는 왜 그다지 빈궁하지 않은데도 이렇게 늘 옹색하고, 그 옹색함을 부끄러움으로 여기지도 않는 것일까? 나는 지금 내 자리에서 구차하지 않은지,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 구차한 반대와 찬성, 여기서 멈추자
구차(苟且)하다는 말처럼 한,중,일 3국의 해석이 다른 말도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한국어사전은 '살림살이가 몹시 가난하다'가 맨 앞줄에 있고, 중국어사전은 '그럭저럭 되는 대로 한다'고 돼 있다. 일본어사전은 '일시적이다' 얼핏 생각하면 나름 서로 통하는 바가 있을 듯하기도 하다.
그러나 박지원이 병풍에 써놓은 여덟 자를 보면 그 차이가 보다 분명해진다. 인순고식(因循姑息) 구차미봉(苟且彌縫), 풀이하자면 해오던 그대로 적당히 얼버무리고 임시변통하면서 문제를 어설프게 덮어두면 세상 모든 일이 무너진다고 경계했던 것이다.
요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무엇이 원칙인지, 무엇이 거짓이고 진실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모두들 진영으로 나뉘어 미쳐버린 게 아닌가 할 정도다. 나 자신 완전히 윤리적 패닉 상태"라고 토로한 진모 교수의 심정이 대다수의 생각을 대변한 것으로 여겨진다. 한마디로 구차스러운 찬성과 반대가 하향평준화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 중국인들에게 가장 화제를 많이 모으고 있는 신기란(申紀蘭)의 "나는 구차스럽게 살지 않았다"는 말은 되새겨 볼 만하다.
신기란은 올해 나이 90세. 이번 중국 건국 70주년에 최고의 영예인 '공화국 훈장'을 처음으로 받아 관심을 끌었고, 중국의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회의의 제1기(1954년) 이래 지금까지 대표가 된 유일한 인물이라는 데서 화제가 됐다. 더하여 고향 산시성에서 공산당 간부에 임명되고 30년간 월급을 한 푼도 수령하지 않은 데다 당연히 주어지는 관용 승용차를 거절하고 버스를 이용했으며 출장을 가면 가장 싼 여관, 가장 싼 음식을 찾았다. 마오쩌둥 이래 역대 중국의 지도자들이 앞 다투어 신기란을 만나 격려하고 칭송을 아끼지 않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의 발언이 나온 까닭은 다른 데 있었다. 70여 년간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벌어진 모든 투표 과정에서 찬성표를 던진 것에서 비롯됐다. 수천만 명을 아사시킨 대약진운동, 중국 대륙을 온통 휘저어 놓은 문화대혁명에도 찬성표를 던졌고 이를 청산하는 데도 찬성표를 던졌다.
한쪽에서 세월이 변해도 오로지 공산당의 입장만 지지한 것이 대단하다는 칭송도 했으나 다른 한쪽에서는 자기 성찰 없는 거수기에 불과하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뒤따르는 건 당연한 논란. 국민을 우롱하고 속이는 정치 행위에 대해서까지 찬성한다는 건 분명 잘못된 일이고 진영 논리에 갇혀 있었다는 비난은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신기란은 이에 대해 '구차하지 않았다'고 한마디 했다. 다소 장황하게 중국인 신기란을 얘기하는 이유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모두가 보다 신중해지고 어떤 예단과도 거리를 두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우리가 직면한 전례 없는 프레임의 강요(?)는 상상계에서 끼리끼리 그리는 그림 속으로 서로를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안과 밖, 위와 아래가 뒤집힐 정도를 넘어서 아예 안과 밖, 위와 아래가 중간 짝짓기를 하고 있다. 자기 불안이 반영된 '진실 조급증' 그대로다. 이제 조금씩 서로에게 다른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확정할 수 없는 진실에 대한 물음표도 가슴속에 담아 두지 말고 꺼내야 한다. 차이를 인정하고 아픈 과거를 소환해 늪에 빠진 공동체를 구출해야 한다. 상대를 탓하기 전에 자신부터 숨을 고르자.
서초동과 광화문의 촛불시위에서 참가자 수를 놓고서 주최 측과 경찰, 반대 진영의 참석자 숫자 논쟁을 예를 들어 보자. 본래 숫자 세기는 군중을 추적하고 통제하려는 욕망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참석자 숫자를 정확하게 세지 못 해서 집회의 의미가 퇴색하는 것도 아니고 파악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참석자 수효에 대한 추산 차이는 사람 수효를 세는 과학적 기법의 부재가 아니라 시민의 목소리를 모아내는 정치적 역량의 부재일 뿐 아닌가.
10만이든 200만이든 시민을 거리로 나오게 만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따져보고 서로를 협상의 파트너로 여겨 법과 제도를 바꾸어 시민의 마음부터 다독이는 일에 과감히 나서야 하는 힘 있는 여야 정치인의 구차스럽지 않는 자세가 지금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걸 누가 모를까. 구차하지 말자.
▣ 인순고식 구차미봉(因循姑息 苟且彌縫)
관습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일을 개혁할 때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대비하지 않고 지금이 편하니까 라는 사고 방식이 팽배한 것 자체가 우리의 모습 아닌가 싶다. 그 자체를 경계한 말인 듯 한데 살을 빼기위해서는 몸이 고달퍼야 살이 빠지고 현재 상황이 불편할 정도로 자주 바꿔야 새로운 변화에 적응을 하 듯 하는데 인간의 속성이란 그게 쉽지가 않은 것이다.
뭔가 자신이나 타인에게 핑계를 대고, 반면에 그런 변화를 주장하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와 조직의 모습처럼 보인다. 방법론이 잘 못 되더라도 변화의 방향은 손가락으로 가르키면서 나가야 하는데 그것 조차 없을 경우에는 그 조직이 온전하지 못하다.
원래 평소 공사구분 못하는 사람이 '장(長)'이 되면 그 조직의 원리 원칙이 무너지고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일순간의 사람들 칭찬을 한 몸에 받지만 그런 '장'은 오래 못간다는 우리 역사나 중국 역사에 나와 있다.
자신의 사리사욕으로 조직을 좌지우지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이런 모진 풍파의 개혁상황에서 성공할 수 있을거라 기대하며 풍랑에 몸을 맞기고 작은 배에 타 있는 우리는 불안하기만 하다. 그래도 어쩌겠나? 우리는 팔장끼고 이런 상황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인 것을...
업어다 뉠지 볼기를 칠지
인순고식 구차미봉(因循姑息 苟且彌縫), 연암 박지원은 만년에 병풍에 큰 글씨로 이 여덟 자를 써놓고 "천하의 모든 일이 이 때문에 무너진다"고 말하곤 했다 한다. 인순고식이란 낡은 습관을 따르며 당장의 편안함만 취하는 태도고, 구차미봉은 대충 해치우고 임시변통으로 메우는 수법이다.
제 몸 편한 것만 찾는데 나아지려는 의지가 자랄 틈이 있겠나. 그저 남들이 여태 해오던 것을 따라 하면 된다. 좋은 게 좋은 거다. 그러다 문제가 생긴들 무슨 걱정이 있으랴. 적당히 아랫돌 빼다가 윗돌 괴면 그만인 것을. 원인치료는 새 돌이 필요하니 번거롭다. 그냥 덮어두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굴러가게 마련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다.
고얀 놈들! 어이쿠, 연암의 불호령이 들리는 듯하다. '말만 요란하던 공기업 개혁이 딱 그 모양새가 아니더냐'하고 말이다. 정부 하는 게 죄 그렇지만 용을 그리겠다고 큰소리치더니 뱀 꼬리 감추는 데 급급한 꼴이 가소롭다. 위기관리대책회의라는 것이 우선 그렇다. 경제정책조정회의의 이름까지 바꿔가며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정작 관심은 국가나 국민의 위기가 아니라 정권의 위기 같아 보인다.
촛불 민심에 놀란 가슴, 공공노조 솥뚜껑만 보고도 벌벌 떤다. 세게 밀어붙이다 또 한번 촛불에 델까 겁나는 모양이다. 그래서 엉거주춤 물러서는 게 영락없는 인순고식이다. 그렇더라도 공기업 개혁을 관계부처별로 자율 추진하겠다는 건 가증스럽다. 차라리 안 하겠다고 하지, 각 부처들이 자신들의 퇴직 후 일자리인 산하 공기업에 개혁의 칼날을 들이대는 걸 기대한다면 생선 앞 고양이가 웃을 일이다. 아무래도 구차미봉과 다름 아니다.
인순고식도 위험하지만 구차미봉은 더더욱 위험하다. 대충 꿰매 입은 옷은 얼마 못 가 터지기 마련이다. 그때 천하의 모든 일이 그렇듯 옷 입은 이의 존재이유도 무너지고 만다. 이 정부의 존재이유가 경제 살리기 아니었던가. 게다가 지금은 밖으로 원자재가와 유가가 치솟고, 안으로 성장은 멈추고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위기의 사면초가 형국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고비용 저효율의 대명사인 공기업을 내버려 두고 어디서 우리 경제의 새 성장동력을 찾겠다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공공기관운영법상 305개 공기업은 매년 26조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땅 짚고 헤엄치기 장사를 한다. 이들이 민영화되면 수돗물 값, 전기 값이 열 배, 스무 배로 뛴다는 게 민영화 괴담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이들의 방만 경영과 도덕적 해이를 보상하느라 수돗물 값, 전기 값의 열 배, 스무 배를 세금으로 내고 있는 건 괴담 아닌 현실이다.
인기 없는 정부의 비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끝까지 인기 없는 정부가 되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그것만이 땅에 떨어진 신뢰를 주워담고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는 길이다. 그 후에 절로 따르는 게 인기다. 예쁜 여배우가 망가져야 뜨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경제 살리기의 엔진은 개혁이다. 개혁이 고통을 수반한다는 걸 모를 리 없다. 그 고통이 무서워 덮어둔다면 개혁도 없고 경제도 없으며 이 정부도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성격 까칠하기로 소문났던 연암이었다. 뛰어난 무술 실력으로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한 백동수가 그를 깍듯이 섬겼다. 그런데 하루는 백동수가 술에 취해 연암 앞에서 주정을 했다. 타일러 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연암은 말없이 백동수를 땅바닥에 엎어놓고 볼기 열 대를 내리쳤다. 그날 이후 백동수의 주사가 사라졌음은 물론이다.
연암은 이처럼 잘못을 그냥 넘기지 않는 성격 탓에 일생 동안 많은 고초를 겪었다. 하지만 그를 역사 속의 거목으로 우뚝 서게 한 것 또한 그런 기질이었다. 주정하는 사람을 업어다 누일지, 볼기를 쳐서 정신 들게 할지는 이 정부의 선택이다. 하나는 술 취한 사람이 고통스럽고, 다른 하나는 국민이 고통스럽다.
▶️ 因(따를 인)은 ❶회의문자로 囙(인)은 통자(通字)이다. 사방을 둘러싼(큰입구몸 囗部) 둘레에 사람이 팔 벌리고(大) 있다는 데서 '인하다'를 뜻한다. 에워싼 영토(領土)를 넓히려고 하는 데에는 반드시 큰 원인이나,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因자는 '인하다'나 '말미암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因자는 囗(에운담 위)자와 大(큰 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因자는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因자의 본래 의미는 '자리'였다. 그러나 후에 因자가 '인하다'나 '말미암다'와 같이 어떠한 원인과 이유를 뜻하게 되면서 본래의 의미는 더 이상 쓰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여기에 艹(풀 초)자가 더해진 茵(자리 인)자가 따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因(인)은 (1)원인(原因)을 이루는 근본(根本) 동기 (2)인명(因明)의 논식(論式) 중 논증(論證)의 근거가 되며 논증을 성립시키는 이유로서, 논리학(論理學)에 있어서의 매개념(媒槪念)과 같음 등의 뜻으로 ①인(因)하다(어떤 사실로 말미암다) ②말미암다, 원인이나 계기(契機)로 되다 ③의지(依支)하다 ④의거(依據)하다 ⑤겹치다 ⑥잇닿다(서로 이어져 맞닿다), 연달다 ⑦이어받다 ⑧따르다, 좇다 ⑨부탁(付託)하다 ⑩쌓이다 ⑪친하게 하다, 친하게 지내다 ⑫인연(因緣) ⑬연고(緣故), 연줄, 인연(因緣) ⑭유래(由來), 연유(緣由), 까닭 ⑮원인(原因)을 이루는 근본(根本) ⑯말미암아, 관련(關聯)하여 ⑰~의 이유(理由)로, ~에 의하여 ⑱~에서, ~부터,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인할 잉(仍), 인연 연(緣),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실과 과(果)이다. 용례로는 어떤 사물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를 인연(因緣), 원인과 결과로 먼저 한 일의 갚음을 인과(因果), 옛 습관을 그대로 좇음 또는 그 습관을 인습(因襲), 사물을 성립시키는 요소를 인자(因子), 이전부터 전하여 몸에 젖은 풍습을 인습(因習), 머뭇거리고 선뜻 내키지 않음 또는 낡은 구습을 버리지 못함을 인순(因循), 어떠한 일의 원인을 사인(事因), 어떤 일의 근본이 되는 까닭을 원인(原因), 어떤 일이 일어나는 핵심적 원인을 요인(要因), 확실한 원인을 확인(確因), 어떤 사물을 발동하여 일으키는 원인을 동인(動因), 죽음의 원인을 사인(死因), 일이 일어나는 원인을 기인(起因), 근본이 되는 원인을 근인(根因), 선악의 과보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는 행위를 업인(業因), 싸움에 지거나 일에 실패한 원인을 패인(敗因), 사물이 이루어지는 원인을 성인(成因), 어떤 사태를 이끌어 낸 원인을 도인(導因), 시집가고 장가듦을 혼인(昏因), 사물이나 현상이 생기는 원인을 생인(生因), 어떤 일의 근본 까닭이나 근본이 되는 원인을 소인(素因), 어떤 작용을 일으키는 직접적인 원인을 유인(誘因), 원인과 결과는 서로 물고 물린다는 뜻으로 과거 또는 전생의 선악의 인연에 따라서 뒷날 길흉화복의 갚음을 받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인과응보(因果應報), 원인과 결과가 서로 호응하여 그대로 갚는다는 말을 인과보응(因果報應), 구습을 고치지 않고 목전의 편안함만을 취함 또는 일을 행함에 있어 결단력 없이 우물쭈물 함을 인순고식(因循姑息), 남에게 의뢰하여 남의 힘으로 일을 이룸을 이르는 말을 인인성사(因人成事), 시기를 잘 이용하면 재화도 복리가 된다는 말을 인화위복(因禍爲福), 목이 멘다고 그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소한 장애를 두려워한 나머지 중대사를 폐함을 이르는 말을 인열폐식(因噎廢食), 언뜻 보이다가 바로 없어져 보이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인홀불견(因忽不見), 실패한 것이 바뀌어 성공이 된다는 말을 인패위성(因敗爲成), 안락은 고통의 원인이라는 말을 낙시고인(樂是苦因), 사람의 열로써 밥을 짓지 않는다는 뜻으로 남에게 은혜를 입는 것을 떳떳이 여기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불인인열(不因人熱), 부부의 의가 좋은 것은 중매에 의함이 아니라는 말을 친불인매(親不因媒), 착한 원인에 착한 결과라는 뜻으로 선업을 닦으면 그로 말미암아 반드시 좋은 업과를 받음을 이르는 말을 선인선과(善因善果), 악한 원인에서 악한 결과가 생긴다는 뜻으로 악한 일을 하면 반드시 앙갚음이 되돌아온다는 말을 악인악과(惡因惡果) 등에 쓰인다.
▶️ 循(돌 순)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盾(순)으로 이루어졌다. 순이란 음은 빙빙 돌다의 뜻을 나타낸다. 巡(순), 順(순)과 통한다. ❷회의문자로 循자는 '돌다'나 '돌아다니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循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盾(방패 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盾자는 투구의 차양막을 그린 것으로 '방패'라는 뜻이 있다. 그러나 갑골문에서는 盾자가 아닌 直(곧을 직)자가 그려져 있었다. 直자는 눈 위에 획을 그은 것으로 '곧다'라는 뜻이 있다. 이렇게 눈을 똑바로 뜨고 있는 모습을 그린 直자에 彳자가 결합한 循자는 도로를 순찰하며 질서를 잘 지키고 있는지 감시한다는 뜻이다. 소전에서 直자가 盾자로 바뀌게 된 것은 발음요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循(순)은 ①돌다, 빙빙 돌다 ②돌아다니다 ③좇다 ④미적미적하다, 주저(躊躇)하다, 머뭇거리다 ⑤어루만지다, 위무(慰撫)하다(위로하고 어루만져 달래다) ⑥질서(秩序) 정연(整然)하다(가지런하고 질서가 있다) ⑦차례(次例)가 있다 ⑧말하다 ⑨크다 ⑩결단(決斷)을 내리지 못하는 모양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돌 순(巡), 돌 회(廻), 돌 순(徇), 돌 알(斡), 돌 선(旋)이다. 용례로는 한 차례 돌아서 다시 먼저의 자리로 돌아옴 또는 그것을 되풀이 함을 순환(循環), 규칙이나 명령 등을 그대로 좇아서 지킴을 순수(循守), 명령을 좇아 행함 또는 여러 곳을 돌아 다님을 순행(循行), 관례에 따름을 순례(循例), 법도나 예절 등에 따라서 그대로 이행함을 순도(循蹈), 절의를 좇음을 순절(循節), 개인의 사사로운 정을 좇음을 순정(循情), 사사로운 정분에 얽히어 공평한 길을 돌아보지 아니함을 순사(循私), 풍속이나 습속을 좇음을 순속(循俗), 차례를 좇음을 순차(循次), 법을 잘 지키며 열심히 근무하는 관리를 순리(循吏), 정성으로 복종함을 각순(恪循), 머뭇거리고 선뜻 내키지 않음 또는 낡은 구습을 버리지 못함을 인순(因循), 잘못 따름을 곡순(曲循), 풍속이나 습관을 잘 좇아 따름을 유순(狃循), 잘 살피어 돌봄을 성순(省循), 구차하게 좇음을 구순(苟循), 사물의 성하여지고 쇠하여짐이 서로 바뀌어 도는 이치를 일컫는 말을 순환지리(循環之理), 어떤 고장에 가면 그곳의 풍속을 따르고 지킴을 일컫는 말을 입향순속(入鄕循俗), 사사로운 면분과 정의에 따라서 잘 보살펴 줌을 일컫는 말을 간순면정(看循面情), 개인적인 사사로움을 버리고 공변됨을 따름을 일컫는 말을 거사순공(袪私循公), 구습을 고치지 않고 목전의 편안함만을 취함을 일컫는 말을 인순고식(因循姑息) 등에 쓰인다.
▶️ 姑(시어머니 고)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계집 녀(女; 여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古(고)로 이루어졌다. 남편의 어머니 또는 아내의 어머니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姑자는 '시어머니'나 나이가 많은 여자를 통칭하는 글자이다. 姑자는 女(여자 여)자와 古(옛 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古자는 방패와 입을 함께 그린 것으로 '오래되다'라는 뜻이 있다. 이렇게 '오래되다'라는 뜻을 가진 古자에 女자가 결합한 姑자는 '오래된 여자' 즉 '나이가 많은 여자'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姑자는 집안에 나이가 많은 여성을 일컫는 말로 쓰이고 있다. 시집간 여자에게는 '시어머니'가 되겠다. 그래서 姑(고)는 ①시어머니 ②고모(姑母) ③여자(女子), 부녀자(婦女子)의 통칭 ④잠시(暫時), 잠깐 ⑤조금 동안 ⑥빨아 먹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지아비 부(夫), 며느리 부(婦), 생질 생(甥), 시아버지 구(舅)이다. 용례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고부(姑婦), 아버지의 누이를 고모(姑母), 임시 방편밖에 안 되는 것을 고식적(姑息的), 일시적으로 모면함을 고면(姑免), 죄인을 잠정적으로 석방함을 고방(姑放), 아직 천천히를 고서(姑徐), 우선이나 먼저를 고선(姑先), 다시 생각해 봄을 고유(姑惟), 그럭저럭 지낸다는 고의(姑依), 하던 일을 잠정적으로 중지함을 고침(姑寢), 당장 편한 것만을 택하는 꾀나 방법을 일컫는 말을 고식책(姑息策), 근본 해결책이 아닌 임시로 편한 것을 취하는 계책 또는 당장의 편안함만을 꾀하는 일시적인 방편을 일컫는 말을 고식지계(姑息之計),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지킬 예절을 일컫는 말을 고부지례(姑婦之禮), 되는 대로 말한다는 뜻으로 어떤 이야기라도 들려달라는 것을 이르는 말을 고망언지(姑妄言之), 구습을 고치지 않고 목전의 편안함만을 취함 또는 일을 행함에 있어 결단력 없이 우물쭈물함을 이르는 말을 인순고식(因循姑息), 마고라는 손톱이 긴 선녀가 가려운 데를 긁는다는 뜻으로 일이 뜻대로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마고소양(麻姑搔痒), 마고라는 손톱이 긴 선녀가 가려운 데를 긁는다는 뜻으로 일이 뜻대로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마고파양(麻姑爬痒), 며느리 늙어 시어미 된다는 말을 부로위고(婦老爲姑), 아버지의 육촌 누이를 일컫는 말을 재종고모(再從姑母), 아버지의 사촌 누이의 남편을 일컫는 말을 종고모부(從姑母夫), 부인네들이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높여 이르는 말을 존구고(尊舅姑) 등에 쓰인다.
▶️ 息(쉴 식)은 ❶회의문자로 自(자; 코)와 心(심; 마음)의 합자(合字)이다. 코와 가슴과의 사이를 드나들다 라는 말에서, 숨, 쉬다의 뜻이 있다. 또 옛 음(音)이 玆(자)와 관련이 있어 붇다, 자라다, 자식, 이식(利息) 따위의 뜻에도 쓰여진다. ❷회의문자로 息자는 '숨 쉬다'나 '호흡하다', '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息자는 自(스스로 자)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自자는 사람의 코를 그린 것이다. 호흡은 공기가 코를 통해 몸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말한다. 그러니 息자는 코(自)와 심장(心)을 함께 그려 '숨쉬다'라는 뜻을 표현한 글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息(식)은 (1)딸이 어버이에게 여식(女息; 딸)의 뜻으로 자기를 이르는 말 (2)거리 단위의 하나. 30리를 1식으로 함 등의 뜻으로 ①숨을 쉬다 ②호흡하다 ③생존하다 ④살다, 생활하다 ⑤번식하다 ⑥자라다, 키우다 ⑦그치다, 그만두다, 중지하다 ⑧망하다, 멸하다 ⑨호흡(呼吸), 숨 ⑩숨 한 번 쉬는 동안 ⑪아이, 자식(子息) ⑫여관(旅館), 휴게소(休憩所) ⑬이자(利子) ⑭군더더기 살 ⑮나라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쉴 휴(休), 쉴 게(偈), 쉴 게(憩), 쉴 헐(歇)이다. 용례로는 남에게 자기 딸을 이르는 말을 식비(息鄙), 이익과 손실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식모(息耗), 갚을 때에 이식을 붙이기를 약속하고 꾸는 곡식을 식곡(息穀), 논밭의 넓이를 어림으로 헤아리는 말로 한참에 갈 만한 넓이라는 뜻의 식경(息耕), 며느리를 식부(息婦), 노여움을 가라앉힘을 식노(息怒), 비옥한 땅이나 기름진 땅을 식토(息土), 쌀을 꾸어 주고 받을 때에 이자로 붙이는 쌀을 식미(息米), 이자를 주고 돈을 빌림을 식차(息借), 화해하고 송사를 그침을 식송(息訟), 숨이 가쁨을 식천(息喘), 아들과 딸의 총칭 자식(子息), 동물이 깃들여 삶을 서식(棲息), 하던 일을 멈추고 잠깐 동안 쉼을 휴식(休息), 남에게 자기 딸을 이르는 말을 여식(女息), 한숨쉬며 한탄함을 탄식(歎息), 눈 한 번 깜짝하거나 숨 한 번 쉴 사이와 같이 짧은 동안을 순식(瞬息), 계집과 자식을 고식(姑息), 쉬지 아니함을 불식(不息), 숨이 막힘을 질식(窒息), 못난 자식이라는 말을 미식(迷息), 소식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무소식(無消息), 낳지 못했거나 기르지 못하여 자식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무자식(無子息), 눈 한 번 깜짝하거나 숨 한 번 쉴 사이와 같이 짧은 동안을 일컫는 말을 순식간(瞬息間), 당장 편한 것만을 택하는 꾀나 방법을 이르는 말을 고식책(姑息策), 재난이 멎고 목숨이 연장됨을 일컫는 말을 식재연명(息災延命), 근본 해결책이 아닌 임시로 편한 것을 취하는 계책 또는 당장의 편안함만을 꾀하는 일시적인 방편을 일컫는 말을 고식지계(姑息之計), 스스로 힘을 쓰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쉬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자강불식(自强不息), 구습을 고치지 않고 목전의 편안함만을 취함 또는 일을 행함에 있어 결단력 없이 우물쭈물함을 이르는 말을 인순고식(因循姑息), 천천히 하여도 늘 끊임없이 꾸준하게 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불식지공(不息之工), 전쟁터에서 군기를 누이고 북을 쉰다는 뜻으로 휴전함을 이르는 말을 언기식고(偃旗息鼓), 바람이 자고 파도가 잔잔해진다는 뜻으로 들떠서 어수선한 것이 가라앉음을 이르는 말을 풍정낭식(風定浪息), 소식의 왕래가 없음이나 소식이 서로 통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소식불통(消息不通), 끊임없는 지극한 정성이란 뜻으로 쉼 없이 정성을 다하자는 의미로 지극한 정성은 단절될 수 없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을 지성무식(至誠無息)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