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하 카츠라 히데노부의 아내 오키코의 친우 중에 만주 출신으로 병사의 규율을 잘 잡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를 초빙하였다. 하지만 대장군 사타케 이에시게가 신장의 친척뻘되는 자인지라 한동안 등용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한편 프랑스가 뤼벡과의 전쟁에 일본을 소환했다. 명나라도 꺾은 지금 딱히 프랑스의 요청을 들어주기는 뭐했지만, 그래도 가기로 했다. 뤼벡이 가지고 있던 몰디브가 먹고 싶기도 했고.
몰디브 점령은 식은 죽 먹기였다. 애당초 상업국가여서 강한 육군의 전통이 없는데다 머나먼 몰디브에 대군을 갖다박을 힘이 없는 뤼벡이었다.
하지만 뤼벡 본국까지 가기에는 너무나도 거리가 있는 상황. 그래서 쇼군은 프랑스 해군을 믿고 동아프리카 일대에 상륙하기로 마음먹었다. 뤼벡의 무역회사와 근방에 있는 뤼벡의 동맹국인 아슈란의 영토를 가능하면 접수하려는 계산이었다.
동아프리카 군은 홈에서 싸우기 때문에 사기에서 우세에 있었다. 하지만 일본군은 오랫동안 싸움을 거듭했기 때문에 규율도 높고 전술에도 뛰어났다. 거기에 숫자까지 비슷하니 아슈란의 군세가 못 당해내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한편 일본의 군사 기술이 발전하여 개량된 머스켓으로 사격하는 보병대가 정립되었다.
프랑스가 뤼벡과의 전쟁을 서둘러 끝내려고 하기에 화들짝 놀라 몰디브와 동아프리카의 뤼벡 무역회사 일대를 얻어내고 얼른 전쟁에서 손을 뗐다. 어찌보면 단물만 빨아먹고 내뺀 격이지만, 그래도 프랑스로서는 원군을 보냈다는데서 의의를 보는 듯했다. 어라하는 새로 얻은 영토에 무역회사를 차리고 대 인도-희망봉 지역에서 교역을 하라고 지시했다.
한편 그간 쌓아왔던 교황청과의 관계를 이용하여 추가 교회세를 걷기로 하였다. 향후 20년동안 일본의 재정이 조금이나마 더욱 흑자세를 보일 것이다.
한편 쇼군은 요새에 대한 포병들의 일점사 훈련을 지시하였다. 이것은 험난한 요새로 가득한 명나라를 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1725년.
어라하 카츠라 히데노부는 아버지가 명나라를 무찌르고 저들의 천명을 무효로 돌렸다면 아들인 자신은 옛날 백제가 경략하였다는 산동지역을 점유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를 위해 명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걸어 천도한 수도인 양저우 일대를 치기로 하였다.
비록 훈련이 다 끝나지는 않았지만, 어라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일갈했다. 명나라는 이미 예전의 기세를 완전히 잃어버렸다. 천명이라는 여의주를 상실한 명나라는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한편 어라하는 이제 세상 탐험이 어느 정도 완료되었다고 판단, 탐험 이념을 폐지시키고 서구 열강에 맞서 바다를 지배하겠다고 결심, 해양 이념으로 교체하였다. 그리고 경제 정책을 새롭게 수립하여 넓어진 영토에서 일률적으로 이념을 정립할 수 있게 하라고 명령했다.
1726년, 일본에 유례없는 풍년이 들었다. 추가 세금이 걷히자 어라하는 이것을 전비에 투자하기로 했다.
일본 최고의 장수와 명 최고의 장수가 산동 지역의 펑양에서 붙었다. 애석하게도 명나라군은 흩어져 있었으며, 일본군은 두 군을 하나로 뭉쳐 싸운 덕에 승리는 일본군에게로 돌아갔다.
헌데 일본군이 시안에서 약탈을 일삼았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어라하는 이들을 과감하게 벌하는 대신 군대의 급료 지급절차와 규율 개선에 힘쓰라고 지시를 내렸다. 그래도 시안이 황폐화된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최소한 점령지의 민심 이반만은 막을 수 있었다.
우창까지 남하한 일본군은 명나라의 황위 자청군과 맞닥뜨렸다. 치열한 전투 끝에 '반란군'을 제압하는데 성공하였지만 어라하는 괜한 기시감을 지울 수 없었다.
한편 의회에서는 장기전에 대비하여 육군에 들어가는 자금과 인력을 줄이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리고 일본은 서서히 퍼져나가는 계몽주의를 전격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로써 일본은 물질적인 것 뿐 아니라 사상 또한 서구의 것에 꿀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지쿠젠에 석탄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쇼군은 석탄을 연료로 하는 용광로를 건설하여 공업입국 정책을 실시하기로 했다.
1728년의 일본은 국토도 확장되고 경제도 부유해졌으며 군사들은 엄정한 대국이 되었다. 이들은 태평성대를 노래하였고, 이 해를 기점으로 50년간 일본은 황금기를 누리게 되었다.
명나라는 엉망이 되었다. 일본군은 백제의 원수를 갚겠다면서 베이징에서 광저우까지 쾌속 남하했고, 프랑스는 란상에게서 빼앗은 인도차이나 땅에서 북상하였다. 그야말로 개판 5분 전으로 변한 양상. 명나라 사람들은 이런 악몽에서 한시바삐 헤어나오고 싶었다.
결국 명나라는 산동반도와 북쪽 강소, 산서성 일대, 그리고 수마트라섬 서북부 일부 지역을 떼내는 대가로 간신히 종전협상을 지었다. 문제는 25만이나 희생시키고도 아직 프랑스와도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문제점이 남아있었다. 뭐, 일본이야 카츠라 히데노부가 부왕에 버금가는 업적을 세웠다고 칭송하기 바빴지만.
한편 어라하는 향후 해군이 강한 서구 열강들과 필연적으로 맞붙을 것이라고 판단, 해군 교전능력을 향상시켜 해전에서 저들에게 밀리지 않게 하였다.
그리고 러시아에서 일본과 정략 결혼을 통해 양국의 연결을 단단히 굳히려고 하였다. 어라하도 여기에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포르투갈과의 싸움은 거리가 멀다는 핑계로 사양하였다. 그리하여 어라하는 포르투갈과의 결전은 한동안 미루도록 하였다.
한편 점령지에서 명나라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반란을 모의한다고 했다. 어라하는 이들을 미리 진압하여 후환을 남기지 않게 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준동은 옛 영토에 본격적으로 일본식 정치 체계가 자리잡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한편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안정되자 쇼군은 그간 미루어두었던 해군 증강 계획을 실현하기로 했고, 그 첫단계로 규슈 지역에 대규모 조선소를 건설토록 했다.
때맞춰 자원병으로 지원하는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다. 어라하는 이것이 하늘의 계시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하였다.
한편 오스만 투르크가 오만하게도 일본과의 무역금지령을 내리니 어라하가 "그들이 자신들의 물품을 우리와 거래하지 못하게 한다면 우리도 마땅히 그렇게 하리라!"면서 거래를 끊어버렸다.
한편 프랑스가 자신들의 전쟁에 일본을 끌어들였다. 란상의 영토가 프랑스 손에 들어간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 시점에서 프랑스와 손절한다는 것은 서구 열강들을 견제할 패를 스스로 던지는 것을 의미하였기에 눈물을 머금고 수락했다.
기껏 3만 5천의 군사를 이끌고 말라카 수도를 공략하고 있으려니 란상과 평화협정이 맺어졌다고 했다. 일본으로서는 닭 쫓던 개 꼴이 되었으며, 일각에서는 "이럴거면 우리는 왜 부르고 난리를 치냐!" 면서 프랑스 공사관에게 항의를 했다.
한편 어라하는 돈도 많이 남고 평화의 분위기가 전개되자 수도 및 주요 지역에 대대적으로 대성당과 회계실을 건설하여 세금을 거두는 루트를 다양화하고 생산의 효율성을 제고하였다. 이는 안그래도 부가 넘쳐흐르는 일본을 더욱 융성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늘어난 영토와 커진 경제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브리튼이나 네덜란드, 프랑스, 스페인 등이 경영하는 국립 은행을 건립하였다. 은행의 효과 덕에 인플레이션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에치고 등지에서 황금이 계속해서 나와 재정에는 도움이 되지만 동시에 인플레이션이 터지는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잘된 일이었다.
1740년.
프랑스가 또 다시 자신들의 전쟁에 일본군의 원조를 부탁하였다. 그런데 이번 상대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신성로마제국의 맹주(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헨와 브란덴부르크, 팔츠, 거기에 기사단과 교황령, 뮌스터 등 여러 세력들이 한꺼번에 덤벼든 것이었다. 비록 표면상의 병력은 많았지만 그 병력의 상당수가 일본군이라는게 문제였다.
프랑스는 신성로마제국 연합과의 전투에서 솔솔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 모습을 본 일본군은 비록 배알이 꼴리긴 했지만 프랑스가 약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지원군을 보내기로 하였다.
도합 20만 2천에 이르는 대군을 시베리아를 통해서 신성로마제국과 교황령의 배후를 찌른다는 바보같으면서도 멋있는 작전을 구사하였다. 사이에 있는 러시아가 동맹인데다 군사통행권까지 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본군의 선진적인 군세와 보급 체계가 이번 원정에서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여름의 끝자락에 출발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가야 시베리아의 동장군을 겪지 않고 유럽에 도착할 수 있었다. 티무르 제국과의 전쟁 때문에 러시아의 보급적 도움은 바라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본은 전설을 쓰게 되었다.
그로부터 1년 반 후, 카츠라 히데노부는 친위군을 이끌고 린츠까지 도달, 맹공을 퍼붓다가 사망하였다. 그의 아들인 카츠라 요시미츠가 3대 어라하로 등극했다. 공교롭게도 무로마치 막부의 3대 쇼군과 이름이 똑같았다. 이런 기막힌 우연의 일치에 사람들은 그가 어라하 지위를 바탕으로 천황 지위를 찬탈할려고 하는지 의심하였다. 뭐, 이미 명을 두 번이나 깨뜨리고 세계 만방에 일본의 명성을 드높였으니 어라하 가문이 원한다면 그 날이 천황 가문의 소멸이었지만.
한편 일본군은 베를린을 110일만에 함락시켰다. 브란덴부르크는 기겁하였으나, 이미 프랑스 영토 깊숙이 들어왔기에 회군하기는 곤란했다.
"좋다! 그대로 공격해라! 계속 공격해!"
아버지와 함께 종군했던 카츠라 요시미츠는 팔츠의 수도 튀링겐까지 공격하였다. 이대로 조금만 더 공격하면 적들은 녹아날 것이었고, 프랑스는 구원받을 것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허탈한 평화조약이 맺어졌다는 소식에 카츠라 요시미츠는 혀를 찼다. 프랑스는 결국 빚을 이기지 못하고 소소한 영토를 내주면서 끝을 맺었다. 하지만 단 몇달만 더 버텼더라도 승리를 프랑스-일본의 것이 되었을 것이기에 어라하는 혀를 끌끌 차면서 회군을 명했다.
그렇긴 하지만 헛심만 쓴 원정은 아니었다. 유럽의 중심이라 자부하는 신성로마제국에 난데없이 쳐들어와 깽판을 부린 일본. 이 원정을 계기로 일본군의 명성은 온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는 세계 최강국이라 자부하는 스페인조차도 긴장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
"후유. 첫 원정때와는 달리 큰 긴장 없이 끝낼 수 있었다. 뒤에서 프랑스가 협격을 하니까 더더욱 편-안했고."
"근데 말이지. 프랑스 놈들,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뤼벡전도 영 껄쩍지근하게 끝내도록 만들고, 란쌍 전은 알아서 할 수 있는데 괜히 우리를 불러서 말이야. 말라카도 못 먹게 만들었지. 거기에 아헨과의 전쟁은 또 뭐야. 좀만 더 버티면 적진 다 털고 완승으로 막을 내릴수 있는데, 빚 때문인지 뭔지는 몰라도 지들 멋대로..."
아하하... 감사합니다. 백제 아이디어는 어디보자... 무역력 +보정과 해전 +보정하고 수용문화 +보정과 주+보정이 어떨까요? 무역력이야 해상왕국으로 모딩하면 되고 해전은 백제 사료중에 수전에서 승리를 거둔 목간나를 주제로 모딩을 하면 되고, 수용문화는 외부와의 교류로 쓰시고 주+보정은 담로, 담로로 하면 어떨까 합니다. 설명이야 조사하셔서 넣으시면 되시고요. 그리고 8성 귀족의 후예라는 걸 넣어서 조언자 비용 -10%정도 하면 될수도 있겠네요. 싸울아비는 20세기 되어서야 쓰인 용어니 패스하고. 뭐, 그렇습니다.
첫댓글 ...시베리아를 맨몸으로...현실이었음 기록 신빙성 의심각일듯.ㅋㅋㅋㅋ
그것도 겨울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실행하고 나서 겜 시간으로 몇 달 지나고 나서야 "아, 이거 게임이었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20만 대군이 그 동장군을 뚫고 베를린까지 당도했으니! 더군다나 러시아는 티무르와 한판 뜨고 있어서 도움을 못 주는 판국에!
@박팽년과박원종 현실이었음 나폴레옹보다 더한 결과가.ㅋㅋㅋㅋㅋㅋㅋㅋ
유럽인들은 충격 제대로 받았을듯.
@931117 거의 몽골몽골스런 결과로 다가왔는데! 그나마 몽골놈들은 빈 근처에서 빠꾸돌렸지 일본은 독일 일대를 헤집고 프랑스가 항복만 안 했어도 신성로마제국놈들과 교황령놈들 통-수를 딱! 쳤을텐데!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팽년과박원종 걍 시베리아 넘는시간이 오래걸린...어쩔수 없죠.
@931117 근데 전쟁 원군 요청 시점에서 거리가 거리인지라... 프랑스 놈들. 기운 빠지게스리.
@박팽년과박원종 명하고 전쟁할때도 이쪽도 프랑스 썼으니 피차일반...
@931117 근데 엘랑!은 인도차이나에 알박고 있어서 지원이 쉬웠던 반면에 우리는 주력이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시베리아 그 추운 벌판을 왔다갔다 해야만 했으니... 안습.
글 보다가 삘이 왔습니다
네 오우치 가문이 백제를 재건 시킬수 있게 디시전을 만든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모딩하러 갑니드아(는 백제 아이디어를 뭐넣을지 못정함)
아하하... 감사합니다. 백제 아이디어는 어디보자... 무역력 +보정과 해전 +보정하고 수용문화 +보정과 주+보정이 어떨까요? 무역력이야 해상왕국으로 모딩하면 되고 해전은 백제 사료중에 수전에서 승리를 거둔 목간나를 주제로 모딩을 하면 되고, 수용문화는 외부와의 교류로 쓰시고 주+보정은 담로, 담로로 하면 어떨까 합니다. 설명이야 조사하셔서 넣으시면 되시고요. 그리고 8성 귀족의 후예라는 걸 넣어서 조언자 비용 -10%정도 하면 될수도 있겠네요. 싸울아비는 20세기 되어서야 쓰인 용어니 패스하고. 뭐, 그렇습니다.
@박팽년과박원종 모딩 완료! 아마 내일 짭죽+ 2차 수정으로 올라올듯 합니다..?
@서쪽 퍼런거 기대하겠습니다. 하하.
@박팽년과박원종 대충 이런식이니 기대하세요(는 모드 퀄이...)
@서쪽 퍼런거 그래도 기대해보겠습니다. 제 연대기가 영감을 제공했으니 그저 기쁠 뿐입니다.
@박팽년과박원종 올렸습니다 ㅎ,
@서쪽 퍼런거 감사합니다. 언젠가 한 번 플레이해봐야겠네요.
일본이 시베리아를 횡단해서 베를린 점령;;; 거의 몽골급 임팩트로 기록에 남겠군요
그나마 몽골은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스톱했지, 일본은 엘베강 건너 라인강에 육박해서 신롬쪽 국가들 등짝을 후려갈겼지요. 프랑스 얼리 GG만 아니었어도 대역전승 각이었는데!
@박팽년과박원종 이런 세계에서 중국을 제외한 동양인은 명예백인 취급받겠네요ㄷㄷ 기독교 믿지 능력좋지 돈많지..
@우르 쑤오밍(...)과 인도인들도 늦기 전에 일본, 아니 백제에 합류를!
연재글 너무재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