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3월 1일 러일 전쟁의 최후의 대규모 지상군 전투인 봉천(奉天 : 펑텐, 현재의 선양瀋陽)회전이 시작되었다. 러일 전쟁은 한 해 전인 1904년 2월 10일 일본의 선전포고로 시작되었다. 일본군은 압록강에서 러시아군을 격파하고 만주로 진출했으며 전쟁 준비가 부족했던 러시아군은 요양(뤄양-遼陽) 전투에서 패배하는 등 밀리는 형국이었다.
일본군이 해가 바뀐 이 해 1월 막대한 희생을 낸 끝에 여순(뤼순-旅順)공략에 성공하자 일본군 만주군 총사령부는 뤼순의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 군을 포함한 전 병력을 집중시켰다. 러시아군을 일거에 섬멸함으로써 전국(戰局)을 결정하려고 한 것이다. 일본군이 집결시킨 총병력은 5개 군 25만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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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러시아군도 봉천(奉天)에 총병력 32만 명을 집결시켰다. 러시아군은 11개 군으로 3개 병단을 구성하였다.
대치하던 양군은 마침내 3월 1일 전투를 개시했다. 그리하여 총 57만명이 움집하는 봉천 대회전(大廻戰)이 시작된 것이며, 만주에 대한 주도권역시 봉천 대회전의 승패에 달려 있게 되었다. |
1905년 1월, 일본군은 여순을 간신히 점령한 3군을 뒤로한 채 동청철도 남만주 지선을 따라 전력을 북상시키고 있었다. 1월 25일, 만주지구 러시아군 총사령관 쿠로파트킨 대장은 헤이커우타이에서 러시아 1·2·3군으로 맹공을 퍼부어 일본군을 위기에 빠뜨렸으나 결정타를 날리는 데는 실패하고 봉천 남방의 방어선으로 퇴각했다. 쿠로파트킨은 결전을 회피하고 일본군을 만주 깊숙이 끌어들여 고사시킬 요량이었다.
러시아군은 2월 말에 다시 일본 2군에 대한 역습을 기도했다. 그러나 1·11사단으로 편성된 일본 압록강군이 좌익을 파고들자 방어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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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를 엿본 일본 만주군 총사령관 오야마 대장은 북상하는 3군이 러시아군 우익으로 진출해 후위를 위협하는 동안 중앙에서 총공세를 펴 봉천을 함락시킬 계획을 세웠다.
37만 병력의 러시아군에 대해 25만 일본군은 1000여 문의 야포를 동원, 2월 25일 정면 공격을 개시했다. |
하지만 중앙 공격이 지지부진하자 오야마는 3군의 선전을 기대했으나 3군도 여순 전투의 후유증으로 병력이 3만8000명에 불과했고, 러시아군의 역습에 허덕이며 한계에 봉착했다.
그런데 쿠로파트킨 대장은 이때 치명적인 오판을 내렸다. 여순 전투의 주역 일본 3군의 전력을 10만 수준으로 과대평가하고 러시아군의 핵심 보급선인 동청철도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3월 6일, 러시아군은 봉천 방어선에서 병력을 빼내어 일본 3군 전면으로 증원하기 시작했다. 이어 9일에는 봉천까지 포기하고 하얼빈 방향의 티에링에 새로운 방어선을 수립하라는 전면 퇴각 명령이 내려진다.
이렇게 하여 일본군은 단 하루만에 봉천에 입성할 수 있었다. 즉 전투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러시아군의 퇴각으로 인한 부수적인 결과였던 것이다.
일본군은 1905년 3월 10일 봉천에 입성했으나 그간 발생한 사상자만 해도 7만5000명이나 되었다.
일본은 3월 10일을 육군 기념일로 제정할 만큼 봉천 전투의 표면적 승리에 고무됐으나 실상은 훨씬 참담했다. 러시아군의 손실은 4만여 명의 포로를 제외하면 사상자 5만 정도로 오히려 양호했으며, 쿠로파트킨의 원래 의도대로 일본군은 보급과 충원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참조글: 국방 일보 전자사전
이 회전 결과 일본은 전력의 한계를 느껴 이후 대규모 작전을 기획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앞서 지적하였듯이 쿠로파트긴의 장기전 구상은, 당시 불안정한 재정 러시아의 사정을 고려해 볼 때 적절치 못한 전략이었다.
이 전쟁에서 러시아 군이 숫적 우세를 바탕으로 좀더 밀어부첬다면, 일본군을 만주방면에서 밀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상 전투에서 일본군이 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1905년에서 1907년 사이 일어난 1차 러시아 혁명운동에 힘입어, 전세를 역전 시킬 수 있었다. 만주 주둔 러시아 군이 정면대결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동안, 결국 러시아 혁명이 심화되어 제정 러시아는 부득이 군대를 철 수 시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일본군으로서는 마치 원제국이 일본을 침범하였을 때 처럼 천운을 얻어 최종 승리를 한 셈이었다.
첫댓글 해전에선 도고의 지휘력과 신형함의 힘으로 노후한 제정 러시아 함대를 무찔렀지만 육전에서는 삽질의 연속이었죠. 전략적 목표야 달성했다지만 그 피해는 상상초월...;; 제정 러시아에 여력만 좀 더 있었더라면 해전에 졌다 할지라도 전쟁은 평행선을 그렸을 거라 생각합니다. 결국 전쟁을 결정 짓는 것은 지상전이니...
도고도 도고지만 당시 제정러시아의 극동함대가 여순에서 포위당하고 이를 구원하기 위해 출격한 북해함대도 실상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았습니다. 특히 영국의 기습을 두려워해서 극도로 스트레스가 누적된 상태였죠. (러시아 황실 및 정부의 영국에 대한 경계는 상상 이상이었죠.)
ㄲㄲㄲ.........분명 운이였다고밖엔.......[음.....]
뽀록빨 지대로 받은거임..ㅋㅋ
단순히 운이라고 하면 전쟁에 운빨 없는게 어디에 있겠습니까? 한니발도 적장이 멍청하지 않았다면 칸네전투는 없었을 것이죠. 전쟁의 결과는 단순히 어떤 한 요인때문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객관적으로 러시아군이 숫적으로 우세했음에도 주력부대가 유럽에 있었고, 철도의 빈약, 내부 사정, 애초에 황제의 업적용으로 "조그만 승리"가 필요하다 라는 이유만으로 만만하게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그야말로 사생결단의 각오였고 패배는 조국의 멸망, 이라는 마음으로 거국일치로 싸웠습니다. 일본은 전쟁자금도 부족했고 전술적으로도 큰 실수를 많이 저질렀지만 러시아군이 더 약하고 전술적 실수를 많이 저질렸기에 이긴 것입니다.
칸나에 전투에서....적-로마 지휘관이 멍청했었나요...?오히려 지휘관은 한니발을 고사시킬 계획을 세웟지만 정치적인 이유(압력)로 전투해서 패배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애초에 국력에 차이가 난다고 한다면 아무리 사상결단의 각오로 싸워도 패배할수 밖에 없죠...딱 존 프렌치경같은 말씀을 하시네요
그 당시 한니발은 계획을 세우고 거기에 로마 지휘관이 들어온 것이죠. 당시 로마 집정관이 멍청한게 아니라 한니발의 작전계획에 말려든 것입니다. 하지만 위 전투에서 일본이 계획된 전투를 치뤄서 승리했나요? 전혀 아니죠. 엄청난 숫자의 사상자와 표면적인 승리만을 거뒀는데, '운 좋게' 혁명이 일어나서 이긴 겁니다. 한니발과 일본을 같은 예로 생각하시면 안되죠. 철저한 계획과 지휘력을 갖추고 상대 장수를 끌여들이는거랑, 계획도 없이 그냥 했는데 상대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운으로 이기는 것과 같습니까?
적 지휘관이 멍청했었나...칸네전투를 논할때 바로는 통상 무능한 인간이라고 말하며 실제로 무능했습니다. 국력에 차이가 난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도 당연히 패할 수 밖에 없지 않나... 님이 말하는 존 프렌치경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베트남전에서 미국은 왜 졌습니까? 전체적인 국력이 앞서도 국지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국력이 제한되면 질 수도 있지요. 일본은 러일전쟁에 총력을 다할 수 있지만, 러시아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더더욱이 한쪽은 지면 끝장이라고 생각하고, 한쪽은 황제의 치적거리가 필요해서... 마음가짐이 같겠습니까?
한니발과 일본을 같은 예로 보자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단지 운이 좋아서 이기는 경우는 없다는 겁니다. 마치 일본이 무계획적으로 전쟁을 시작한 것처럼 얘기를 하시는데, 무계획적으로 전쟁을 시작한 것은 러시아쪽입니다. 러시아 극동함대를 기습으로 격파하여 전장을 한반도가 아닌 만주로 이동시켜 러시아군의 사기를 저하시킨 것, 친러시아였던 대한제국을 초전에 일본쪽으로 붙잡아 둔 것은 대단히 치밀한 것입니다. 국력상 월등히 열세함에도 거국일치화하여 시종 우세한 전투를 벌였다는 것(러시아는 되려 도처에서 반란이 일어났죠), 영국과 미국을 자기편으로 하고 친러세력인 프랑스를 중립으로 유지시킨 것은 외교적인 승리입니
다. 여순전투에서 일본이 무모한 공격으로 막대한 희생을 치루었지만 당시 전투양상자체가 그러했지 일본이 특별히 구식이었던 것이 아닙니다. 1차대전때 열강들의 군대가 여순전투때 일본군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였던가요. 왠지 일본이 이기면 운빨, 라는 편견을 보이는 듯하여 지적한 것입니다. 러시아군 지휘관들이 왜 소극적이었고 일본군의 전력을 과대평가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일본군이 그만한 전투력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전략상으로는 일본이 계획적이였다, 라는 소리를 들을수 있을지 모르나 지금 전투에서 보이는 전술상으로는 전혀 계획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수많은 인명 피해와 표면적이고 단편적인 승리가 계획적이였다고 말씀하시진 않겠지요. 지금 저희가 이야기 하는 것은 봉천 대회전이지, 결코 전체적인 전쟁이 아님을 먼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또한, 역사란 가정이 없는 학문이지만, 그래도 가정해보면 뭐가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을겁니다. 과연 로마의 지휘관이 머리가 좋았다면 그 당시 획기적인 계책이였던 한니발의 유인책에 말려들었을까? 혹은, 러시아의 장군이 실수하지 않아 일본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했다면? 운의 성질이 다릅니다, 이건
님의 말하는 전술상으로 무계획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말하는 건지요? 대열을 맞추어 기관총앞으로 돌격하는 것을 보고 무계획적이다라는 말인지? 저로선 님이 뭘 말하려는것인지 알 수가 없네요. 님은 봉천회전만을 말한다고 하시는데, 본문은 봉천회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쟁막판에 러시아혁명덕분에 "천운"으로 일본이 이겼다라고 하시기에 전쟁에서 운빨로 이기는 경우는 없다고 했습니다. 님이 잘 못 이해하신듯. 님의 리플을 봐도 봉천회전을 운빨로 이겻다, 라고 국한한 부분은 안 보이는군요.
전쟁이든 전투든 분대단위전투가 아닌한 단지 재수가 좋아서, 이기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리고 운도 실력입니다. 아무리 운이 따라주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조차도 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병사들에게 있어 뛰어난 지휘관을 만나는 것도 운이지요. 임진왜란때 이순신장군이라는 특별한 영웅이 나타났고 그가 마침 가장 적절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조선에게 운입니다. 운을 따지면 한도 끝도 없다는 겁니다. 한편으로, 한니발은 칸네에서 열세한 병력을 가지고도 바로에게 압승을 거두었지만 자바회전에서 스키피오한테는 우세한 병력을 가지고 칸네회전과 똑같이 포진했지만 패배했습니다.
러시아장군이 실수하지 않았다면, 라는 가정도 실로 역사에는 무의미한 가정입니다. 전쟁은 그런 단한가지 요인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한 것은 러시아가 일본보다 더 많은 전략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혁명의 위험은 러일전쟁 훨씬전부터 내포되어 있었고 차르시기에 매년 전국에서 수백, 수천건씩 반란과 소요, 시위가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1905년의 혁명은 어느날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따라서 러시아혁명이 없었다면, 라는 가정은 대단히 무의미하다는거죠.
깜빡이님과 저는 운이라는 개념이 다른 것 같군요. 깜빡이님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치자면 세상 모든 일이 운입니다. 하물며 아침 7시에 일어나든 8시에 일어나든 그것도 운이겠지요. 논쟁이 되질 않습니다. 또한, 지금 봉천 회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그에 따라 리플을 작성하였는데, 살짝 오해하신 쪽은 깜빡이님 같군요 ^^; 또한 가정에 대한 이야기도 사족에 불과하군요. 제가 리플에 가정은 역사에 무의미하다, 라고 해놓았습니다만. 무의미하다고 덧붙여 주시는 것은 제 생각을 뒷바침 해주시는 건가요?
님과 운의 개념이 다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렇게 치자면 세상 모든 일이 운이다, 라는 오히려 제가 님에게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제가 오해했는지 님이 오해했는지 모르겠네요. 역사에 가정이 무의미하다는 말은 님의 리플에 어디에도 없어 보이는데요. "역사란 가정이 없는 학문" 이 말 가지고 나는 그렇게 말했다고 하시는건지.. 실상 이건 너무 당연한 말이고 제가 님에게 드리고픈 말입니다. 님의 마지막 리플을 보면 저와 님의 의견이 충돌할 이유가 없는듯한데, 의견 표출시 좀 더 명확하게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시길~~
전 죄송합니다만 무의미하단 거랑 역사란 가정이 없는 학문이다, 라는게 어떻게 다른 방향을 가르키는지 모르겠습니다.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건 잘 알지 못해서요. 의견 표출은 명확히 해달라... 흠^^ 똑같이 말씀드리겠습니다.
러시아 혁명운동이 러시아와 관련된 모든 전쟁의 관건이죠. 나중에 1차대전때도 혁명땜시 독일이 이득을 많이 본것처럼.
국내적으로 불만이 고조되던 상황이던 러시아에서는 전투에서의 패배는 용납되기 힘들었죠. 전쟁을 통해 정세를 반전시키려던 러시아정부를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점에서, 결국 봉천전투는 일본에게 점수를 더 줘야하지 않을까합니다. 뭐랄까....똥쌀거같은 거인을 화장실에 못가게 붙잡고 개기다가 엄청 얻어맞았지만 결국은 싸움에선 이겨버린...
뤼순에서 기관총에 제대로 발렸지요 ㄱ- 이 전투에서 노기 장군의 두 아들도 기관총탄에 맞아 전사합니다.
원래부터 지는 요인은 나에게 있으며 이기는 요인은 적에게 있는 법이니까요 -_-ㅋ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만....러시아에서는 봉천전투보다는 여순전투에 더욱 큰 촛점을 두고 이야기 하더군요. 그에반하여 일본은 봉천전투에 더 큰 의미를 두려하고말입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