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떤 사물을 대하거나 특정한 일에 부딪혀도 예전 같지 않게 감각이 무디어 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어도 내게 선뜻 감동이 오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나이 탓인지 아니면 환경이 나를 그리 변하게 하는 것인지는 판단할 자신은 없습니다. 책을 읽고도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하고, 책을 통해 인생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더 이상 책을 읽질 말아야 하는데 하는 고민도 해 봅니다. 누군가가 최근 읽은 책 중에서 감동을 준 책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은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 물음 중 한 가지입니다.
그러나 어떤 책을 읽고 감동과는 다른 차원으로 "와! 정말 대단한 책이구나" 하는 느낌은 가끔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제가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폴 오스터>라는 작가의 『리바이어던』이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1년여 전부터 『거대한 괴물』이라는 이름으로 간판을 바꿔달고 재 출간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폴 오스터>는 미국작가 중에서 제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작가입니다. 그는 『리바이어던』외에도 『뉴욕 3부작』,『 동행』, 『문팰리스(달의 궁전)』, 『미스터버티고(공중곡예사)』,『우연의 음악』, 『스퀴즈 플레이』, 『빵굽는 타자기』, 『오기렌의 크리스마스이야기』, 『폐허의 도시』, 그리고 최근에 출간된 『환상의 책』,『신탁의 밤』등을 쓴 작가이지요. 참고로 『리바이어던』은 프랑스에서 외국작가에게 주는 " 메디치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거대한 운명이라는 괴물 - 리바이어던]
이 책의 원제는 "리바이어던-leviathan"이다. 제목이 되는 거대한 괴물은 바로 성경에 등장하는 거대한 괴물 리바이어던이며 또한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의 저서의 제목 역시 "리바이어던"이다. 홉스는 이 책에서 리바이어던을 개인을 삼켜버리는 거대한 권력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선 이 소설에서 이 거대한 괴물을 찾아보자면 그건 두말할 나위 없이 미국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을 특별히 (전체주의적) 국가라고 단정 짓는 것은 성급할 것이다.
어느 국가든 그 국민에게 있어서는 모두 거대한 괴물일 것이다. 특히 우리 역사를 돌이켜 보자면 한 개인이 엄청난 국가권력에 휘말려 그의 인생에 엄청난 시련을 겪게 된 경우는 무수히 많다. 우리 인간이 개미와 같은 미물들의 생명이 어찌되었던 간에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듯이 말이다. 물론 이 책 거대한 괴물에서도 미국이라는 "거대한 괴물"의 속성은 여지없이 들어난다. 하지만 폴 오스터는 한 개인의 개인사를 깊이 있게 다루면서 그 가운데 미국이라는 거대한 괴물의 속성을 괴물의 실체가 아니라 그림자나 발자국을 통해 우회적이긴 하지만 더욱 효과적으로 들어낸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소설의 화자인 소설가 피터 아론은 FBI의 방문을 받게되고 그들의 방문이 신문에 실린 한 테러리스트의 폭사暴死와 관련된 사실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 테러리스트는 피터의 오랜 친구였던 동료 소설가 벤자민 삭스였다. FBI는 피터에게 테러리스트와의 관계를 추궁하고 피터는 관계를 부인한다. 수사관들이 돌아간 후 피터는 삭스와의 지난 세월을 추억하며 그 사실을 글로 옮긴다.
70년대. 거대한 괴물로서의 미국에 저항하던 소설가 벤자민 삭스는 여러 작품들로 주목받는 작가가 되지만 80년대가 들어서면서 거대한 괴물의 역습을 받게 된다. 미국이라는 거대한 괴물의 역습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욱 거대한 괴물의 정체는 바로 삭스 자신의 운명이 비롯되는 존재 그 자체였다. 자웅동체였던 거대한 괴물으로서의 미국과 거대한 괴물로서의 삭스의 운명은 80년대가 되면서 서서히 그 분기점에 들어서게 된다.
70년대에 피터의 눈에는 성공적으로 괴물을 제압하던 것처럼 보였던 거대한 괴물은 변신을 시도하여 삭스를 움켜쥐기 시작했다. 삭스의 가장 커다란 약점은 자신의 도덕성에 대한 강한 회의였다. 부도덕하고 추악한 거대한 괴물에 대항하기 위한 자신의 무기는 자신의 지식인으로서의 도덕성이라고 생각했던 삭스는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자신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의심에 사로잡히게 된다. 하나처럼 보였던 거대한 괴물은 두 개로 나뉘어져 삭스를 괴롭혔고 갈라져 나온 거대한 괴물은 가장 치명적인 괴물 바로 자신의 내부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삭스에게 있어서 거대한 괴물로서의 미국의 추악함은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진실함, 도덕적으로 보장된 지성으로는 얼마든지 비난하고 공격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그러한 공격은 또한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거대한 괴물을 키워주는 자양분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삭스는 그러한 자신의 도덕적 결함을 견뎌내지 못할 정도로 민감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삭스는 보통사람들 처럼 자기 변명으로 자신을 자위하기보다는 자신의 도덕적 결함을 직시하려 했다. 그 추악함을 애써 외면하지 않고 바로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거대한 괴물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가 되어 패배를 선언하게 된다. 어쩌면 그 결과는 자신이 의도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 결과로서의 추락사고는 그저 단순한 사고 일수도 있고 자말 미수일수 도 있다. 삭스 역시 그 사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 채 단 한가지 사실만을 자신은 거대한 괴물에게 완전히 패배했음을 인정한다. 결국 그는 더 이상의 저항을 포기한다. 소설 쓰는것을 포기한다. (그가 쓰기를 중단한 소설 이름이 바로 "거대한 괴물-leviathan"이었다.)
그리고 그는 또 다른 거대한 -가장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괴물 "우연"과 조우하게 된다. 우연히 차도에서 만난 테러리스트를 살해하게 된 삭스는 자신이 살해한 사람이 전혀 모르는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던 한 여성 친구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테러리스트를 살해하고 얻게된 돈 가방으로 그의 이혼한 아내와 딸을 돕기로 한다. 그녀의 집에 기거하면서 물질적으로 그녀를 돕는 가운데 그는 자신이 죽인 테러리스트의 과거사를 역추적 한다. 그리고 그 역시 거대한 괴물의 희생자였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곧 삭스는 그러한 물질로서의 도움은 속죄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진정한 속죄를 위해서, 또는 자기 만족을 위해서, 아니면 그 두 가지 모두를 위해서 자신이 테러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 자신이 그의 테러를 이어받음으로써 거대한 괴물들과의 한판 싸움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지난 세월 글로써 해왔던 싸움을 이제는 폭탄으로 대신하는 것이다. 이 모두가 우연히 도로에서 만나게 된 테러리스트를 죽임으로써 벌어지게 된 일이다. 그가 테러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바로 자유의 여신상. 그에게 있어서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있던 그 거대한 흉상은 바로 미국이란 거대한 괴물의 아이러니한 상징물인 것이다. 그는 우선 미국 각지에 있는 복제된 자유의 여신상들을 폭파한다. 그의 테러가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실제로 소설 속에서 인명 피해는 없었다.) 물질을 대상으로 한 점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그의 치밀한 범행은 수사망을 미궁에 빠뜨리지만 결국 그는 폭탄의 조립 부주의로 도로변에서 차와 함께 폭사하고 만다. 삭스와 알고 지낸 15년 동안의 일을 기록하는 것으로 피터는 삭스의 "거대한 괴물-leviathan"을 완성시킨다. 그리고 곧 그 원고는 FBI수사관에게 사건경위서로서 전해진다.
한 인간이 외부의 조직화 된 거대한 권력과 내부의 자아와 운명 또는 우연이라는 세 마리의 거대한 괴물과 벌인 힘겨운 싸움은 이렇게 끝이 난다. 그리고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던 피터와 함께 독자들은 무엇을 느끼게 되는가?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 삭스는 승리자인가, 패배자인가? 언제나 이런 종류의 질문들이 그러하듯 빨리 그 결론을 내리면 내릴수록 그 결론은 서툴고 우스꽝스러운 것이 된다. 이럴 때는 약간 결론 내리길 망설여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 역시 여전히 이 거대한 괴물들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기에 그 결론은 각자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의 싸움의 가운데 깨닫는 것이 각자에게 있어서 최선의 해답일 것이다.
리바이어던, 제 개인의 리바이어던은 무엇일까?...문득 이렇게 좁혀서 생각해 봅니다..책에서 제시된 리바이어던에 대한 생각까지,..요즘 서재가 유레카님으로 인해 더욱 빛?이 납니다..이렇게 나마 새로운 것(책)을 알아 간다는 것,..또한 즐거움 아닐까요?..이 책은 꼭 읽어 보고 싶어집니다..제 개인 취향인 것 같진
첫댓글 학교에 입학해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기분입니다. 모든일을 단순화시켜 생각했었는데 좀 더 치열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군요.
방금 답글을 길?게 올렸더니,..유레카님,..오후에 다시 ...
리바이어던, 제 개인의 리바이어던은 무엇일까?...문득 이렇게 좁혀서 생각해 봅니다..책에서 제시된 리바이어던에 대한 생각까지,..요즘 서재가 유레카님으로 인해 더욱 빛?이 납니다..이렇게 나마 새로운 것(책)을 알아 간다는 것,..또한 즐거움 아닐까요?..이 책은 꼭 읽어 보고 싶어집니다..제 개인 취향인 것 같진
않지만요,..이 답글 새벽에 올렷다가 자꾸 에러가,..또 올려 봅니다..지금요,..일터입니다..토요일은 또 아침일이 있어서 바쁘거든요..일찍 출근하는데 비가 많이 오네요,..태풍도 온다는데,.. 수메르님 서재에서 자주 만나기를,..*^^
유레카님이 더욱 눈 부심으로 다가옵니다... 좀은 머리가 복잡하여 지나치고 싶으면서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책이였네요^^*^^* 비 오는 날은 이래서 좋지요^^*^^*저 역시 수메르님의 의견에 공감 합니다...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