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4050 `아재`들은 힘들다. 그야말로 `낀`세대, 어정쩡하다. 위로는 초롱초롱 자식들 눈망울을 떠올리며 김 부장, 최 이사 잔소리를 참아야 하지, 아래로는 어린 직원들 비위를 맞춰야 한다. 사내에서 분위기 잡으려고 농담 한 번, 눈길 한 번 잘못 줬다간 `개저씨(에티켓 없는 중년 남성을 일컫는 말. 개와 아저씨의 합성어다)` `꼰대` 비아냥이 그냥 쏟아진다. 요즘엔 이런 테스트까지 있다. 이름하여 개저씨 혹은 꼰대 테스트. 내용이 기가 막힌다. 말 나온 김에 한번 해보고 갈까(아재 독자분들도 직접 해보시길).
■ 개저씨 테스트
1. 여자 혹은 식당 직원이 어려 보이면 반말을 한다:음, 무조건 반말.
2. 술 마시고 공공장소에서 크게 떠든 적이 있다:맨날 그러고 산다.
3. 밖에서 모르는 여자를 힐끔거리며 쳐다보는 편이다:예쁘니까.
4. 틀려도 자존심 때문에 우긴다: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다, 내가.
5. `우리 때는 말이야~`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자주는커녕 매일.
이 항목 중 3개 이상 해당된다면 당신은 `개저씨`다.
필자는 뭐, 100% `개저씨`다. 이 테스트 아래엔 꼰대와 개저씨를 구분하는 친절한 설명도 있다. 개저씨는 사회 구성원 중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이기적인 아저씨`를 통칭한다. 꼰대는 다르다.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나 직장의 상사 혹은 간부들이 주 대상. 대화가 통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옳다고 내세우는 사람들, 그러니까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어, 너는 대답만 해)`식 업무 진행 방식을 고수하는 상사들이다.
개저씨가 너무 남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반대로 꼰대는 오히려 과도한 오지랖과 간섭을 일삼는 부류인 셈이다. 이러니 고개를 들 수 없다. 절로 어깨가 처진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브라보 마이라이프`를 몇 번이고 읊조려도 가슴이 먹먹하다. 억울한 게다. 따지고 보면 잘못한 게 없다. 가족들 지키려고 하루에도 수십 번 참으며 회사생활하는 것도 버거운데 개저씨, 꼰대로 오해까지 받아야 하는 건 정말이지 열받는다.
그런데 희소식이 들린다. 욜로(You Only, Live Once) 분위기를 타고 돈 안 쓰는 꼰대, 고개 떨구고, 묵묵히 참고만 살던 개저씨 아재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홈쇼핑 채널들은 `욜로족 아재` 모시기에 극성이다. CJ오쇼핑은 아예 온라인 쇼핑몰 `펀샵`을 운영하는 아트웍스코리아의 지분 70%를 인수했다. 펀샵은 `어른들을 위한 장난감 가게`를 표방한다. 손목 근력 밴드에 코털 제거 및 수염 정리기까지 생활의 불편함과 아재들에게만 생기는 신체적 불쾌함을 유쾌하게 해결해줄 수 있는 상품군을 갖춘 업체다. 펀샵 전체 회원 수는 40만명인데 그중 70%가 30~50대 남성, 즉 아재들이다.
패션·미용가에선 `큰손`으로 뜨고 있다. 고개를 숙이지도 않는다. 눈치 따윈 보지 않는다. 모르는 여성에게 당당하게 말도 건다. 트렌디한 패션 감각, 철저한 자기관리, 열려 있는 생각에 20·30대가 따라올 수 없는 중년미까지 더해져 `아재파탈(아저씨를 의미하는 `아재`와 치명적인 여성을 뜻하는 프랑스어 `팜므파탈`의 합성 신조어)`의 매력을 자랑한다. 비비크림, 립스틱까지 칠하고 눈썹 그루밍, 왁싱도 당당하게 받는 이들 덕에 작년 1조2000억원 규모였던 남성 화장품 시장은 올해 1조5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여행가도 예외는 아니다.
큰손은 역시나 `욜로 아재`다. AK몰의 패키지여행 상품 중 40대 남성 판매량 신장률이 전년 동기 대비 201%, 50대 남성은 840%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먹방 욜로 슈퍼리치 아재들을 겨냥해 만든 1억5000만원짜리 포시즌스그룹의 VVIP 여행 패키지는 올해판이 이미 다 동났다.
그러니 아재들이여, 기죽지 마시라. 어깨 펴시라. 그대들이야말로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아재슈머` 꽃중년이니까.
브라보 욜로, 브라보 아재다.
[신익수 여행·레저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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