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덜보스의 바울신학 해설 11강
IX. 결혼
우리가 지금 특별히 바울의 결혼에 대한 가르침을 연구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이들의 세상에서의 삶에 대한 다양한 측면이 결혼에 대한 가르침과 특이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도 하나님께서 혼인을 창조하시고 또한 제정하셨다는 것과, 신자가 결혼을 결정함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가 있다는 것이 기본 모티프가 된다. 사도는 고전 6:16, 엡 5:31, 딤전 4:4 등에서 하나님께서 결혼 제도를 제정하셨고, 제정할 시에 결혼에 관련된 규례도 주셨다고 한다. 바울은 부부 사이의 관계에 대해 권면할 때, 그리고 남편의 우월한 지위를 말할 때는, 하나님께서 결혼 제도를 제정할 때 하신 말씀을 기초로 한다(고전 11:3-7; 딤전 2: 이하. 참조: 14:34; 엡 5:22; 골 3:18; 딛 2:5). 그는 하나님의 창조와 창조질서에 속한 결혼 규정으로부터 출발하여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그리고 그 자유를 기반으로 한 결혼에 대한 권고를 펼친다. 앞에서 언급된, 금욕주의를 비판하는 구절인 딤전 4:3-5에서 바울이 분명한 어조로 명확하게 가르쳤다: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이 디모데전서의 구절은 성화에 대한 일반적인 모티프인데, 바울이 다른 곳에서는 특별히 결혼에 맞추어 구체적으로 가르친다. 고전 7:39에서는 단지 “주 안에서”가 아니면 결혼하지 말라고 명한다. 즉 신자끼리만 결혼하라는 것이다.
사도는 이것을 엡 5:22-33에서 가장 분명하게 가르치는데, 그는 그곳에서 남편과 아내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 관계라는 빛 아래서 본다(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혼인 관계로 설명한다). 이것은 아내가 남편의 주도권을 인정해야 하고, 남편은 아내에 대해 사랑의 의무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하나됨과 결혼 관계에 있어서 부부의 하나됨은 이곳에서 서로의 관계가 어떠해야 함을 설명해준다. 즉, 전자는 후자를 통해,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하나됨은 결혼 관계에 있는 남편과 아내의 신비한 하나됨을 통해 설명되고(5:32), 반대로 결혼에서의 하나됨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하나됨의 신비에 의해 설명된다. 고린도전서 6장(15-20)과 에베소서 5장(21-33)에 나오는 자연적인 관계는 그리스도 안에서 선사된 구원을 설명하는데 기여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결혼에 대해 긍정적이고 원칙적으로 반금욕주의적이다. 그의 권면은 혼인을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장려한다. 그러므로 그는 신자들에게 음행을 피하라고 권면한다. 모든 남자는 자기 아내를 „거룩함과 존귀함“ 가운데 얻어야 하고(살전 4:4), 그리스도의 계명에 따라 아내는 남편을 떠나서는 안 되고, 남편은 아내를 버려서는 안 된다(고전 7:10-11). 이 계명은 신자와 불신자 간의 관계에도 적용된다(고전 7:12 이하). 그러나 믿지 않는 배우자가 관계를 끝내려고 하는 경우에는, 믿는 배우자는 더는 이 계명에 매일 필요가 없다(15). 인간의 자연적인 욕구도 결혼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에 기여한다. 즉, 음행을 피하기 위해서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편을 가져야 한다. 결혼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시험에 들지 않게 하기 위해 부부 간의 동침을 지속적으로 피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고전 7:3 이하). 이런 이유에서 그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과 과부들에게 스스로 절제할 수 없는 경우에는 결혼을 하라고 권면한다.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8-9).
그런데 바울에게는 이것과 대조되는 다른 관점도 있었다(고전 7:1). 결혼은 음행의 위험 때문에 허용되었고, 이러한 이유로 부부는 동침을 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것은 “명령”이 아니라 “허락”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모든 사람이 자기와 같이 혼인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독신의 은사를 받아야 하는데, 누구나 그러한 은사를 받은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결혼하지 않은 사람과 과부는 절제할 능력이 있으면 결혼하지 않은 상태로 지내는 것이 좋다고 권면한다.
고린도전서 7장
1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2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25 <처녀와 과부에게 주는 권면>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27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28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38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이제 바울이 고전 7:1-7에서 독신 상태를 선호하는 그 동기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25절 이하에서 “처녀”들의 문제를 다루면서 다시 한 번 분명하게 그 문제에 대해 말한다. 그는 이에 대해서는 특별히 그리스도의 계명을 받은 것이 아니므로, 자기는 주의 자비하심에 의해서 충성스러운 자로(25)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말한다. 즉, 그는 자기 사도직의 권위를 상대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문제에 있어서는 자기 권위를 다 사용하지 않고 단지 자기 의견을 권면의 형식으로 제시하고자 한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그가 무혼인을 권면하는 근거가 “현재의 환란”(26)에 있음을 밝힌다. 그는 이 환란을 “메시아적 재앙”(재림의 임박 시에 받는 환란. 참고: 눅 21:23)이라가 보다는 신자들이 현재의 구속되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가며 겪는 환란을 가리킨다. 이러한 고난은 신자들의 삶의 특징이다. 신자들은 언제나 이것을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직접 느끼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늘 염두에 두고서, 마치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이 세상이 제공하는 좋은 것들과 즐거움에 집착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29절 이하).
이와 동시에 여기에는 결혼한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은 사람보다 이 세상에서의 삶에 더 집착하게 되고 자신의 배우자에게 신경을 써야 해서 마음이 분산된다는 신앙적인 동기도 한몫한다. 그러므로 그는 결혼하지 않은 자들은 결혼하지 말라고 권면하면서,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아서” 자유를 침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행하게 하기 위한 것이고, 전적으로 주에게만 헌신해서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35).
혼기에 찬 처녀에 대해서는, 결혼을 하는 것도 잘하는 것이지만, 결혼하지 않는 것은 더 잘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원리는 과부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결혼에 관한 사도의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바울이 금욕주의적이고 이원론적인 모티프를 가지고 부부간의 성관계를 죄로 여겼으며, 결혼을 이러한 관점에서 판단했다고 생각할 근거는 없다. 오히려 이와는 반대이다. 바울은 결혼을 하나님이 결정하신 제도이며, 그리스도의 명시적인 계명에 의해 보호받고, 신자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사용하여 결혼을 받아들이고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
2. 사도가 우리에게 준 가르침을 근거로 판단할 때, 바울이 결혼을 필요악으로 보았으며, 결혼을 귀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는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이러한 주장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딤전 4:4-5뿐만 아니라 사도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하나됨이라는 관점에서 혼인에 가르친 모든 것은(엡 5:22 이하) 바울이 쓴 것이 아니라고 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7장에서는 바울은 재혼을 결혼에 대해 원칙적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근거로 반대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상황을 근거로 했다. 그가 현세에서의 삶을 위한 선물이자 임무인 결혼을 상대화한 것은, 하나님 나라가 임박했고 이로 말미암아 세상의 삶에 대한 관점이 새로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결혼만이 아니라 현세에서의 삶의 모든 측면들에 적용된다(고전 7:29-31):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곧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현 세상의 실존방식은 마감되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고 사는 우리는 이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이해된 사도의 의견(Meinung)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구속력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생기는데, 여기에 대답하기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바울은 독신의 위험에 대해 자세하게 열거하면서도(음행의 위험), 교회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여 결혼하지 않고 지내는 것이 좋다는 것이 그의 의견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전서 7장에서 문제가 있는 교회에 권고하고 있다는 사실, 즉 미래는 이미 실현되었고 부활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이단적 가르침에 반박하기 위해 그는 예언적-종말론적인 인식에 따라 이 현세의 삶이 상대적이라는 것과 현 삶의 위험성을 좀 더 강하게 내세워야 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결혼을 제정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결혼의 거룩성을 설명할 때는, 이러한 것(상대성, 위험성)을 강조하지 않았다. 이것이 바울이 결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원칙적인 관점이므로 결혼을 포기하는 것이 하나의 (특별한) 은사라고 말한 것이다. 즉, 아무나 결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도가 고린도 교인에게 준 이 권면은, 해당 교회뿐만 아니라 장래에 세워질 수많은 교회에게도, 이 땅에서의 삶과 은사들과 부르심은, 완성되어 나타날 하나님 나라와 비교할 때 모두 잠정적이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의식하게 해 주는 자극이 될 것이다[1]. 결혼도 이땅에서의 은사에 속하므로 잠정적인 것이며, 또한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일”(32)에 헌신하는 것에 방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결혼까지도 포기할 수 있다는 사도의 가르침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이고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전 7:29-31에서 말하는 종말론은 기독론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이미 지금, 현세에도 신자는 그가 하는 모든 것이, 살아있는 동안이나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자기 주님이신 그리스도께 속한다는 것이다(참조: 롬 14:8). 그러므로 결혼뿐만 아니라 세상에서의 삶 전체는 고린도전서 7장이라는 특별한 관점에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신자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주의 것이므로, 바로 이러한 이유로 그가 먹고 마실 자유와 결혼할 자유도 있고, 이 세상에서 기본적으로 자신을 분리해서 세상의 종말에 대한 기대를 근거로 이 세상에서의 삶을 멀리할 수도 있다. 교회가 역사적으로 존재하면서 항상 반복해서 겪는 환란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는 교회가 이미 소유한 것(많은 은사)에서뿐 만 아니라, 앞으로 예상되는 것(환란, 어려움 등)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을 고린도전서 7장의 예를 들어서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결혼생활을 충실히 하는 것뿐만 아니라, 결혼을 포기하는 것도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자유에 속한다.
[1] 우리는 결코 이 땅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 되고, 명예를 추구하거나 재물을 쌓아두어서는 안 된다. 이생의 삶은 잠깐이면 지나가는 너무나 덧없는 것이다.
*강의자 : 송다니엘 교수
*본 리덜보스의 바울신학 해설 11강은 2024년 8월 25일(주일)과 9월 1일(주일)에 실시된 부천개혁교회의 사경회와 부천개혁성경신학교의 집중강의를 겸하여 강의된 내용에 수록된 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