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 가는 뻐꾸기 둥지
산길을 오르며 이마에 맿힌 땀방울을 쓸어냈다. 절기는 초여름을 향해 달리는데, 강원도엔 눈이 내렸단다. '소만(5.21) 바람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들판엔 풍성한 가을 추수를 꿈꾸는 파란 벼포기가 심겨지고, 시골 아낙들은 이마에 수건 두르고 밭농사에 땀흘릴때다.
이때쯤 집근처 지붕을 넘나들며 떼지어 우짓고 영역 다툼하던 까치와 까마귀는 어디로 갔을까? 뒷산을 오르니 먼곳 어디선가 뻐꾸기 소리가 들렸다. 살아 있었구나!
도심에 터잡고 산란하던 그들도 자연환경이 갈수록 나빠지니 보금자리를 옮겨 갈 것이다.
웅웅거리는 예초기의 날카로운 칼날소리, 도심의 경적과 그것을 피해 산으로 숨어드는 사람들의 터덜거리는 발자욱소리...
나는 공원과 수변관리를 한답시고 잘라내는 풀깍는 작업이 싫었다. 적당히 선택해서 해야지...해를 기다리며 종족번식을 위해 고개드는 야생초들의 목을 무참히 자르기 때문이다.
일부러 심지 않아도 자라난 것들, 수입건초로서 일부러 씨뿌린 듯한 알팔파(알팔파 밖에 몰라서...)... 하여간 보면 귀여운 것들이 인간들의 일거리 사냥감이 되어 사라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숲속에 들어서니 더 이상 뻐꾸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뻐꾸기란 생태상 남의 주인집에 빌붙어서 종족의 번식을 꿈꾸는 생물이다.
집짓지 않는 까마귀, 유해조수로 손가락질 받는 까치마져 숲을 떠나고, 작은 산새들마져 환경오염에 시달리다 신도시로 집단 이주해버린 이 산자락에 뻐꾸기가 터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이래저래 살것들의 환경이 파괴되어 간다. 지구의 시간은 얼마이며, 나의 남은 시간은 얼마일까?
멀리 내려다 보이는 넓게 펼쳐진 들판 군데군데 건물이 들어섰고, 나머지 공간은 벼농사를 준비한 흙색깔 평원이다. 이 평화로운 공간에 사람들이 살아 움직인다.
오염되고 파괴되는 지구, 영화 딥 임팩트의 주인공 모건 프리먼처럼 인간이 그들에 의한 발명품을 이용하지 않고, 감성만으로 이 아름다운 지구환경을 지켜 공존하기를 열망한다.
하산길 발걸음은 터프하다. 경사진 곳에서 갑자기 마주친 60대 후반의 남자, 다리와 손을 모은채 정중한 인사를 건넨다. 급당황 모드...나도 예를 갑추었다. 더불어 사는 세상, 이럴땐 삶에 흐뭇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