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팔고 사는 꽃바람 속에 너 혼자 지키려는 순정의 등불 홍도야 울지 마라 오빠가 있다 아내의 나갈 길을 너는 지켜라
구름에 쌓인 달을 너는 보았지 세상은 구름이요 홍도는 달빛 하늘이 믿으시는 네 사랑에는 구름을 걷어주는 바람이 분다
‘세상은 구름이요, 홍도는 달빛'
어려운 시대에 희망을 던져준 메시지,
'홍도야 우지마라, 오빠가 있다!'
우리나라 악극의 대명사격인 ‘홍도야 우지마라’.
임선규 작, 홍해성 연출로 36년 7월 23일, 극단 청춘좌에 의해 동양극장에서 처음 막을 올린 이래
조선 악극 사상 최장기 공연을 기록했다.
특히 주제가로 인해 그 명성이 더욱 높아진 이 노래의 주인공 가수 김영춘(1918~2006)선생.
최근 우리가요의 재평가 작업과 함께 재조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인물 중 한 분이시다.
김영춘선생을 필자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교통사고가 나기 두 달 전인 2005년 7월. 경기도 고양의 자택에서다.
이미 적극적으로 몸담고 활동했던 원로가수 모임인 ‘거목회’와 ‘만나리’ 모임에
참석하지 않은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시점이었다.
치매 증상으로 인해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못할 것임을 의식해서였을까.
주민등록 등본과 앨범사진 등 옛 자료들을 미리 준비해놓고 있었고
촬영이 시작되자 벽에 걸린 큰 액자들까지 일일이 손수 떼어다 옆에 놓아주는 등
필자의 방문을 매우 호의적으로 배려해주었다.
당시 선생은 악극배우 출신의 부인 박순희(83세, 본명 朴玉順)여사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아랑극단에서 활동하던 박여사는
또한 악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에서 홍도역을 맡은 동양극장 전속극단의 간판스타,
그러나 얼마 후 선생은 집 밖에 나섰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후유증으로
지난 2006년 2월 22일, 안타깝게도 타계했다.
본명 김종재(金宗才).
1918년 6월 29일, 부친 김치관, 모친 박금년 사이의 외동아들로
경남 김해 어방동 471번지에서 출생했다.
김해 동광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부산으로 건너가 양복 재단 일을 하던 중
그의 나이 스무살 때, 당시 조선일보사와 콜롬비아레코드사가 공동으로 주최한 신인가수선발콩쿠르에 입상하면서
콜럼비아 전속가수로 첫발을 내딛는다.
38년 첫 취입곡인 ‘항구의 처녀설(처녀림 작사, 김송규 작곡)’이었고
이어 발표한 ‘홍도야 우지마라’로 인기가수 대열에 합류한다.
고범 이서구 작사, 김준영 작곡의 ‘홍도야 우지마라’는
악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후편의 주제가.
전편의 주제가는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심연옥씨에 의해 취입되었다.
이 음반으로 콜롬비아 측은 부산항과 경성역을 왕래하는 직원의 숫자를 늘려야했을 정도로 대히트했다.
여성 수난극의 전형이자 한국적 신파극의 대명사인 이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는
당시 장안의 기생들이 공연을 보기 위해 인력거를 타고 와 인산인해를 이뤘다는 유명한 일화 함께 당시
‘장미화’라는 매우 이름난 기생이 18세 꽃다운 나이로 한강에 투신, 신문에 크게 보도되면서 더욱 유명해진 곡.
이어 1939년에는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김영춘선생은 대표곡 ’홍도야 우지마라‘를 비롯해 '
버들잎 신세', ’유랑 서커스‘ '잘있거라 인풍루', '바다의 풍운아', '당신 속을 내 몰랐소' '동트는 대지', ’북극 천리‘,
’국경 특급‘, '나그네황혼', '청춘마차', '향수천리', '남극의 달밤', '인정사정', '비련의 청춘항', ‘항구의 전야(듀엣 이해연)’ 등을
잇달아 콜럼비아와 자회사인 '리갈(REGAL)'을 통해 주로 발표했다.
그밖에도 ‘떠나는 배’, ‘가거라 사륜마차’, '희미한 달빛', ‘항구의 사랑’, '포구의 여자',
‘어서가자 노새야’, ‘두 남매’, 눈물의 항구‘, ’흘러온 항구‘ 등 40여 곡을 남겼다.
42년 오갑순씨와 혼인, 그 사이에 딸 둘을 낳는다.
그러나 귀한 집 외아들인지라 대를 잇기 위해 집안의 권유로 56년 11월19일, 아랑극단에서 활동하던 악극배우 박순희씨와 재혼,
이들 사이에서 출생한 장남 김무룡씨는 지금은 고인이 되었고 차남 김무술씨는 현재 일산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아울러 셋째 부인에게서 출생한 아들 김한준씨(42)는 현재 안산에서 연주인으로 활동 중.
지난 2005년 한국연예협회가 주관한 ‘스승의 날’ 행사 때는
‘아리랑술집’의 가수 김봉명 선생과 더불어 스승으로 추대되기도 했던 김영춘 선생은
일제시대 '저항가요'로 출발해 서민의 젓가락 장단에 실려 기쁨과 슬픔을 대신하며
'영욕의 세월'을 건너온 트로트의 대명사, ‘홍도야 우지마라’와 함께 여전히 우리들 가슴에 살아 있다.
글 l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 Copyrights ⓒ 韓國歌謠作家協會報 2007.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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