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인가 졸혼인가 그건 잘 모르겠고 마눌님이 늙으막에 사랑 찾아 갔단다. 딸들이 눈물로 호소해도 소용 없어 고이 보내주었단다. 집도 주고.
성인인가? 좀 모자라는 사람인가? 성인은 아닌 것 같고 모자라는 사람은 더더욱 아닌 것 같다.
못 생겼냐고? 아니다. 내가 봐도 미남이다. 배도 안 나왔다. 인상도 밝고 좋다.
부부 사이를 남들이 속속들이 어찌 알겼냐마는 이 나이에 사랑 찾아 떠나는 그 여자분도 대단하고 고이 보내주는 이 남자도 대단하다.
내 고향 친구의 친구라서 우리도 그냥 친구하기로 했다. 이 친구 가만 지켜보면 세상 즐겁게 산다. 아침 일찍 일어나 고양이 밥 주고(전에 한번 이야기했던 주인을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고양이다) 운동하고 온다. 뭔 운동 하냐고 물어보니 동호인끼리 탁구친단다. 이른 아침에... 그 시간에 나는 잠자고 있는데 ㅎ
집에 있는 동안에는 장구와 색소폰 연습을 한다. 귀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음색이 좋다. 이것으로 봉사활동도 한단다. 늘 바쁘게 사는 것 같다. 배우고 봉사하고 운동하고...
장구소리나 색소폰 소리를 내도 시끄럽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어 이 동네로 이사 잘 왔다고 한다. 고향 동네에 악기 연주하는 소리는 옛날 농악 놀이 그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가끔 국수 삶아놨다고 오라 하고 삼겹살 구워 놓고 기다린다고도 한다. 쉬고 싶지만 담금주 몇 병 들고 간다.
이 친구 거쳐온 직업이 다양했다. 살아온 곳도 전국 여러 곳이다. 추억 이야기 듣기만 해도 재밌다. 나는 평생 아이들만 가르치는 일만 해서 재미난 이야기가 별 없지만 말이다.
시집간 딸만 둘 있는데 어찌나 잘 하는지 보기 참 좋다. 듬직한 사위들 손주들 자주 온다. 주말이면 웃음소리가 담을 넘어 들려 온다. 동네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는 게 참 좋다. 사람 사는 동네가 된다.
이 친구 은근히 자랑도 한다. 골목에서 마주치면 이번 주말에 딸하고 손주 온다고... 나는 그게 부럽다.
아들만 있는 집은 그러지 못한 것 같다. 딸있는 친구들은 좋겠다. 주위 친구들 대부분 그런 것 같다. 전에 딸 같은 며느리 기대를 하기도 했는데 그리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밭 가꾸고 걷고 책 보고 글쓰고 심심할 틈이 없어 고향집에서 혼자 있으면서도 외롭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데, 딸네 식구들과 어울려 흐뭇한 미소를 짓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 가끔 허전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 친구가 가끔 보내주는 톡의 말미에 이런 구절이 꼭 있다. '나 태어난지 25,***일째' 세고 있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짐작해본다. 살아있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아닐까.
우리 살아온 날이 몇 백만도 아니고 몇 십만도 아니고 2만 몇천 일이다. 큰 수일까? 작은 수일까? 많은 날일까? 얼마 안 되는 날일까?
가을의 서늘한 공기를 느끼면서 이 나이에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자문해 본다. 답이야 늘 정해져 있지만 가끔은 흐려지기도 한다.
옛말에 이웃사촌이라 했다. 추리닝 복장에 쓰레빠 끌고 소주 한 병 들고가 이런저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이웃에 있어 고마운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