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겸호 과거 급제시 찾아가 축하 인사를한 명단(정묘 3년 10일 창방, 1867년 고종 4년, 식년시 문과에 갑과 급제)
가. 과거 시험은 상피제로 최소한 두곳으로 나누워 실시한다.
- 정묘년 3월 10일 창방 1소 은문 시험관 명단.
2소 은문 시험관 명단
나. 영문 : 급제자 민겸호 집으로 찾아가 축하 인사를한 인사들 명단
다. 도문시 (급제자가 집에서 여는 잔치 참석자, 일명 도문연)
2. 민겸호의 정치적 배경
민겸호는 국왕 고종의 외숙이며, 국왕의 생모인 府大夫人 閔氏의 친동생이고, 당시 攝政(섭정)을 하던 흥선대원군의 처남이며,
그의 중형 민승호가 민치록(민왕후 父)의 繼後(계후)로 입양되어 왕비 오빠의 생가 동생이다.
한국인물대사전에는 고종 2년 알성시 문과급제 갑과 1인(장원랑)로 되어 있고, 한국고사대전에는 고종 4년 식년시 문과갑과
2인(아원랑)으로 되어 있다. 위 영문록이 발견 되어 후자가 맞는 것으로 확인 되었다.
영문록에 급제자 성명은 없으나 민겸호가 분명한 것은 과거 급제자에게 국왕의 측신(側臣)인 전현직 승지가 11명, 고위관료인
판서가 2명, 참판이 5명씩이나 대거 영문을 했고 영문록 글씨도 사자관 서체로 당시 민겸호외는 있을 수 없으며, 조선왕조 5百
年史에서 드문 일입니다.
3. 행장
1838(헌종4년~1882년 고종19년) 조선말 척신, 자는 윤익, 본관은 여흥, 치구의 3남으로 고종 4년에 식년시 갑과로 급제하여
민씨 세도정치의 일원으로 권력을 잡아 여러 요직을 거쳐 5년만에 이조 참판 되고, 형조.병조.이조.예조판서를 역임,1880년에
판돈영부사가 되었다.
흥선대원군 실각 후 민씨 세도정치의 핵심 인물으로서 매형인 흥선대원군과 척을 짓고, 군무사 경리당상에 올라 신식무기에
의한 교련과 군제 개편을 실시하여 별기군을 창설 했다. 이듬해 선혜청 당상이되어 민비의 재원조달에 寵臣이 되었다.
별기군 창설 후 구식군대에 대한 차별 대우와 급료 13개월간 미지급으로 임오군란 발생(임오군란 생략) 난군에 의해 민겸호의
가옥이 불타고 대궐로 피신하였으나 난군들에 의해 대궐에서 살해당했다. 시호는 충숙이며, 민영환의 생부다.
첫댓글 귀한 자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