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뜻 안에서 영적 미사를 드리는 놀라운 영적 제사
사랑과 고통으로 영혼이 충만하면 성인이 된다. 고통을 품고 사랑으로 충만하면 인생을 완성하는 것이며 인생을 완전하게 완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통을 품고 사랑으로 충만하면 완덕에 이른다. (아버지의 말씀)
겸손의 전단계는 고통을 품고 사랑으로 충만한 상태가 되는 것이다. 성인(완덕으로 나아가는 길)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나에게 닥치는 모든 고통, 희생, 어려움들을 사랑으로 봉헌하면 영적 미사 즉, 영적 제사가 되어 그 순간 성인이 되는 것이다.
예1) 필자가 어느 시골 본당에 있을 때의 일이다. 광주에 안나라는 자매가 나를 찾아왔다. 사제관에서 대화를 하면서 안나 자매는 자기의 시아버지를 죽여야겠다고 나에게 말을 하였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얼마 전에 7년 동안 중풍으로 누워있던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이제 좀 쉬면서 성당에도 나가고 여행도 다니면서 여가를 즐기려고 했는데 사흘 만에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께서 중풍으로 쓰러진 것이다.
시아버지는 치매가 걸려 며느리를 도와준다고 생각하여 대변을 손에 묻혀 벽에 바르고 옷에 바르고 얼굴에도 발랐다는 것이다. 안나 자매는 시아버지가 너무도 힘들게 하므로 시아버지에 대한 미움으로 죽이고 싶다는 말을 한 것이다. 필자가 안나 자매에게 영적 미사를 드리라고 말을 하였다.
먼저 성경을 읽어주었다. “저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선생님네는 예배를 드려야 하는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 내 말을 믿어라.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너희는 알지도 못하는 분께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는 분께 예배를 드린다. 구원은 유다인들에게서 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들을 찾으신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요한 4, 20-24)
요한 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고 말씀하셨다. 미사는 가장 큰 기도이며 제사이다. 미사는 십자가 제사의 재현이다. 십자가는 고통과 사랑 두 가지이다. 미사는 예수님의 수난 고통을 사랑으로 성부께 봉헌하는 것이다. 미사는 예수님의 수난 고통을 인류의 죄를 보속하면서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히 순종으로, 온몸을 사랑으로 봉헌하는 것이다. 가장 큰 제사요, 예배요, 기도요, 사랑의 봉헌이 미사이다. 미사는 고통을 사랑으로 봉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작은 고통을 사랑으로 봉헌할 때 그것은 작은 미사가 되는 것이며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작은 미사들을 봉헌할 수 있다. 미사 때 미사 지향을 두듯이 지향을 두고 사랑으로 고통을 봉헌하면 하느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어 은총을 주신다. 필자는 안나 자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또한 평신도 삼직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평신도 삼직은 왕직, 예언직, 사제직이 있다. 왕직은 다스리는 왕이 아닌 섬기러 오신 예수님처럼 서로 서로 섬길 때 왕직에 참여하는 것이고, 예언직은 말과 행위로써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사제직에는 두 가지가 있다. 특수적 사제직과 일반적 사제직이다. 특수적 사제직은 필자처럼 사제로서 미사를 드리는 것이고, 일반적 사제직은 평신도들이 드리는 영적 미사이다. 사제라는 것은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고통을 사랑으로 봉헌할 때 제사가 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안나 자매, 제 얘기에 응답하시겠습니까? 시아버지의 대소변을 치우는 고통과 희생을 사랑으로 봉헌하는 미사를 드리겠습니까? 시아버지가 대소변을 보면 먼저 미사 준비를 하십시오. 수건, 대야, 비누, 화장지 등을 준비하고 입당성가를 부르십시오. ‘온 세상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리고 미사지향을 두십시오. 연옥에 있는 조상님들의 구원을 위하여. 그리고 본격적으로 미사를 봉헌하면서 성체성가 ‘주여, 임하소서’를 부르십시오. 그리고 다 끝난 다음 퇴장 성가로 ‘사랑하올 어머니여’를 부르고 감사 기도로 주모경을 바치십시오."
안나 자매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냐며 펄쩍 뛰었다. 계속 달래면서 한번 시도해보라고 충고했다. 신부님께서 하라고 하시니 한번 하겠다고 하면서 안나 자매는 사제관을 떠났다. 그로부터 한달 후에 안나 자매가 필자를 찾아왔다. 환한 얼굴에 기쁨을 머금고 나에게 이야기였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신부님께서 하라고 하신 대로 영적 미사를 드리니까 얼마나 큰 기쁨과 평화가 있는지. 하느님께 기쁨과 사랑을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신부님. 열심히 살겠습니다.”
예2) 필자가 군산 어느 본당에 잠시 있을 때의 일이다. 시집을 가지 않은 중년 여인이 나를 찾아왔다. 그 여인은 중풍에 쓰러져 누워있는 친정 엄마를 모시고 있었다. 항상 불평불만이고 마음에 평화와 기쁨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빠와 올케가 있었는데 그들이 자신의 어머니를 모셔야하는데도 시집 안간 여동생에게 친정 엄마를 맡겼고, 여동생은 오빠와 올케가 집에 오면 상처를 주고 불평불만이 가득한 모습으로 대하였다.
대화를 하면서 친정 엄마를 잘 모시는 방법을 이야기하였고, 위 예화에서 안나 자매에게 행했던 것처럼 영적 미사를 봉헌하라고 이야기하였다. 친정 엄마가 대소변을 보면 그 고통을 사랑으로 봉헌하고 지향을 두어 은총을 받으라고 하였다. 미사 준비, 입당 성가, 지향, 성체 성가, 퇴장 성가, 감사 기도 등을 하라고 충고하였다. 이 자매도 한달 후에 나에게 왔다.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모른다고 이야기하였다. 얼굴에는 기쁨과 평화가 가득했다.
그 자매는 오빠와 올케가 집을 방문했을 때 “걱정하지 마, 내가 엄마 잘 모실게 하면서 지금까지 불평불만하고 상처준 것을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하였다. 오빠와 올케는 눈물을 흘리며 고맙고 감사하다고 하였다. 그 뒤로 신자가 아닌 오빠가 천주교 신자가 되었고 열심한 불교 신자였던 올케가 가톨릭으로 개종했다고 하였다.
* 결론
미사는 십자가 제사의 재현이다. 가장 큰 고통을 가장 큰 사랑으로 아버지께 봉헌하는 제사이며 예배이다. 십자가는 고통과 사랑 두 가지이다. 고통을 사랑으로 봉헌하면 그것이 십자가의 제사이다. 또 그것이 미사이며 예배이다. 평신도 일반적 사제직이 제사를 드리는 것이라면, 밥 할 때, 빨래할 때, 청소할 때 ,고통과 희생을 실행하고 실천할 때 등 어떤 고통이든 사랑을 합치기만 하면 그것이 작은 미사가 된다. 미사 때는 꼭 지향이 들어가듯이 지향을 두면 은총을 받게 된다.
예3) 하느님의 뜻이시여, 하느님 뜻 안에서 사랑하올 엄마! 저는 지금 빨래를 하고 있습니다. 이 고통을 사랑으로
엄마의 티 없으신 성심께 온전히 봉헌하오니 성령님께 함께 예수님과 한몸 되어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 아빠께 온전히 봉헌해 주십시오.
하느님 뜻 안에서 사랑하올 아빠! 제가 빨래하는 고통을 사랑으로 봉한하였사오니 죄인들의 죄를 보속하고
또한 그들을 회개, 치유, 정화, 성화, 구원시켜 달라고 예수님의 오상을 생각하며 주님의 기도 다섯 번을 봉헌합니다.
아멘. (주님의 기도 다섯 번)
우리 모두 성인이 됩시다. 성인이 되는 것은 어렵지만, 그러나 어려운 것만도 아닙니다. 나에게 오는 고통(희생)들을 기쁘게 사랑으로 봉헌하기만 하면 완덕으로 나아가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악을 보지 말고 선만 보고 가십시오. 성모님께서는 세상의 악을 교회의 악을 보지 말고 오로지 선만 보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성인이 되는 길입니다. 피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