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석리는 용궁면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3㎞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은 본래 용궁현의 소재지로, 1413~1856년까지 약 440년 동안 용궁현청(龍宮縣廳)이 있었다.
그러나 1856년(철종 7) 대홍수로 현청이 유실되면서 읍부리로 이전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합에 따라 ‘향사리’, ‘성저리’, ‘석정리’, ‘무림리’, ‘교촌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향사와 석정의 이름을
따서 ‘향석리’라 하여 예천군 용궁면에 편입되었다.
향석리는 ‘구읍’, ‘시항’, ‘석정’, ‘교촌’, ‘샛마’, ‘성저’ 등의 자연촌락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향교가 위치한 곳은 ‘교촌’이다.
교촌(校村)은 ‘향교(鄕校)’라고도 불린다. 구읍 서쪽, 지금의 향석리 용궁향교가 있는 곳에 생긴 마을이라 하여 ‘향교골’이라 한 것이 변음되어 ‘생교골’이라고도 불린다.
구읍(舊邑)은 ‘향사리(鄕舍里)’ 또는 ‘안마’라고도 불린다. 1413년~1856년 이전까지 약 440년 동안 용궁현청(龍宮縣廳)이 있던 마을이다.
시항(市巷)은 ‘지잣걸’이라고도 불린다. 고을이 읍부리(邑部里)로 옮겨 가기 전의 장터거리였으며, 내성천(乃城川)가에 있으므로 이 지방의 산물인 쌀을, 소금배에 싣고 온 물화들과 교역을 하던 곳이다.
석정(石井)은 ‘돌우물’이라고도 불린다. 마을 가운데 옛 용궁현청(龍宮縣廳)이 식수로 쓰던 물이 돌 사이에서 용솟음 치는 샘이 있었다. 후에 용궁현청은 읍부리(邑部里)로 고을을 옮겨 간 후에도 물맛이 좋아 여름철만 되면 석정(石井)의 물을 가져다 썼다고 전해지고 있다.
샛마는 ‘생교골'과 ‘구읍’ 사이에 있으므로 마을의 위치를 마을 이름으로 삼았다. 원래 현청과 향교의 사무를 연락하던 인물이 생활의 편의를 위해 이곳에 집을 짓고 살면서부터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성저(城底)는 ‘성밀’이라고도 불린다. 이곳은 ‘구읍’의 남서쪽에 있는 내성천을 건너 용비산(龍飛山, 189m)에 둘레 871척, 높이 7척의 군창터와 우물 3개가 있던 곳이다. 돌로 싼 원산성(圓山城) 아래 마을로, 예천임씨가 개척한 마을이라고 한다. |
첫댓글 샛마는 권경숙이가 살고.....성저(성밑)에는 해강, 수범, 이미희, 전순희가 태어난곳....우리 마을은 예천 임씨가 개척한 마을인데 희식이네 처갓집이 우리동네 예천 임씨.....경주 이씨가 많으며, 최,윤, 장, 정, 신, 구씨 등이 모여 살고 있으며 학교 다닐때는 60가구 정도 되었는데 세월의 변화로 현재는 30가구 정도만 있다. 게다가 혼자 사시는 동네 어르신이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