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유현준, 을유문화사)’라는 건축에 관한 책을 읽다가 다소 충격적인 목차를 접했다. ‘교회는 왜 들어가기 어려운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친구가 절은 들어가기에 무리가 없는데, 교회는 부담스러워 들어가게 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교회는 불편한 데, 절은 편안하다는 것이다. 절은 개인기도 중심이고, 큰 행사의 경우 마당에서 진행되며 중소 규모의 건축물들이 마당, 조경과 함께 군집된 형태를 띠고 있어 방문객들이 그 사이를 산책하듯이 넘나들 수 있다. 반면 교회는 집회 중심이다 보니 대형건물 하나가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고, 추가 건물 역시 외부 공간 없이 그저 옆의 땅에 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축가의 입장에서 볼 때, 교회는 폐쇄적으로 보인다는 지적이었다. 그래서 외부 사람은 교회에 들어가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일 교회가 전도를 원한다면 교회의 건축 공간 디자인부터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조언까지 곁들여 있었다(이 책은 신앙서적이 아니다). 이러한 목소리를 접하며 교회 역시 도시라는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물론 교회가 사회의 모든 요구와 시선에 맞출 수는 없다. 교회는 교회 나름의 요구와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안과 구원의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 하는 것이 교회의 궁극적인 사명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교회는 내적인 필요를 넘어서는, 도시와 세상을 향한 더 큰 그림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도전에 좋은 가이드가 되어줄 책 한 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립 셀드레이크(Phillip Sheldrake)가 쓴 ‘도시의 영성(원제 : The Spiritual City)’이란 책이다.
저자 필립 셀드레이크는 영국과 미국에서 기독교 영성을 기반으로 공간과 장소의 본질에 대해 연구를 해온 학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서는 섣불리 ‘무엇 무엇을 하자’는 행동지침과 전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기독교 영성의 관점에서 신학의 기초를 세우며 교회와 기독교 신앙이 보다 큰 비전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 이론서라고 할 수 있다.
1. 도시란 무엇인가?
본서는 먼저 도시란 무엇인가?를 질문한다. 일반적으로 도시는 경계를 세우고 안전을 유지하며 경제활동을 위한 거점으로 인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 생활은 효율과 이익 중심으로 모든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게 만든다. 공간은 사유화되어지고 파편화 돼 삭막하다는 인상을 갖게 한다. 이것이 도시 생활의 전부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도시에는 그것을 넘어서는 가능성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도시에는 다양한 나이, 인종, 문화, 성, 종교가 모여 있고 이들에게는 물리적∙지적∙창의적 에너지들을 집중시키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혼합성과 다양성이 우리의 온전함을 위협한다고 보았다. 이런 방어적인 태도에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두 도시 이론-하나님의 도성과 죄 많은, 지상의 도시-이 원인 제공자로 지목된다. 그러나 본서에서는 이런 전통적인 견해에 반기를 든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분법적 도식의 핵심은 사랑의 방향을 어디로 정할 것인가? 변화된 사람들이 인간 도시 안에서 어떻게 봉사하는 삶으로 다가갈 것인가? 에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통합적인 관점은 수도원과 중세 대성당과 종교개혁으로 이어지면서 도시와 동떨어진 하나님의 도시가 아닌, 도시 속에서의 ‘신성함’이 기독교 역사에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밝혀낸다.
2. 도시 속 인간은 누구인가?
도시를 타락한 곳이라고 여기며 분리주의적으로 사는 게 틀리다면, 당연히 도시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시각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이것을 본서에서는 ‘정체성’의 문제로 보았다. 그리고 정체성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양식인 그리스어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에 해당하는 상호 연관성에 주목하며 ‘더불어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관계적 측면에서 볼 때에만 삼위일체가 이해될 수 있고,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 역시 관계적인 존재로 인식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구원 역시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 뿐 아니라 타자와 우주 전체로 확대할 것을 촉구한다.
3. 화해 : 참 인간됨의 삶의 양식
이렇게 인간이 관계적 존재임을 긍정할 때, 따라오는 삶의 양식이 있다. ‘화해와 환대의 삶’이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이 도시를 향한 기독교적 비전이 표현되는 핵심이라고 보았다. 관계성을 부정할 때, 인간은 두려움과 혐오로 타자를 대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내적으로만 강화하게 된다. 그럴수록 도시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방해하는 방해물이 되고, 피해야 할 장소로만 여기게 된다. 그러나 세상을 화해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할 때, 도시 안에 있는 모든 존재까지 교제의 삶으로 초대된다. 낯선 사람을 단순히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그들을 소중히 여기는 환대가 이루어지고, 마침내 세상은 하나의 성례가 된다. 이럴 때 우리의 일상은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곳이 되며 그 속에서 우리는 신성함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도시와 세상에는 한계와 유한성이 있다. 분열에 대한 상처 또한 도시에 각인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를 변화시키는 문제는 한 번에 쉽게 이루어질 수 없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다루며 그것을 영적인 문제로만 환원시키는 오류를 벗어나 구조적인 문제까지 포함시켜야 한다. 구조적인 문제와 영적인 문제를 균형 있게 다뤄야 한다는 말이다.
4. 영적 비전으로 새로워지는 도시
그렇다면 저자는 화해와 환대의 삶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낙관할까? 그렇지 않다. 저자는 진정한 화해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망은 끈질긴 노력과 헌신을 통해서만 회복될 수 있다고, 무엇보다 도시에 대한 비전은 인간으로부터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종말론을 통해 현실화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오늘 이 땅에서의 삶을 사라질 껍데기로 여기며 이상적인 ‘다른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계시된 인간과 피조물의 변화가, 악과 불의에 대해 선과 정의를 통해 최종적인 승리를 가져올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바로 이 희망에서부터 기독교는 ‘현재의 순간’과 역사 전체를 하나님의 승리를 향한 가능성과 기회의 시간으로 탈바꿈한다. 인간의 화해를 선포하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중심에 있으며, 우리는 도시를 향한 우리의 공적인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헌신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본서를 통해 저자가 주장하는 도시를 향한 기독교적 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본서는 그간 국내 신학계에서도 꾸준히 논의되어 왔던 ‘공공성’과 ‘화해’, 환대’에 대해 기독교 영성의 관점에서 ‘도시’라는 특정 주제로 논의를 좁혀 심도 깊게 다룬 역작이다. 이미 이러한 주제에 관련된 책들을 접해본 독자라면, 기독교 영성의 관점으로 이 주제를 다루는 저자의 접근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또한 국내에 소개된 기독교 영성의 주제에만 몰두해 있던 독자들에게는 저자가 역사와 철학, 사회와 신학을 적재적소에 인용하며 보다 구체적인 현대의 문제로 이끄는 안내에 따라 신학적 지평이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반면, 이러한 주제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나 기독교 영성에 대한 전(前)이해가 부족한 경우라면 다소 버겁게 여겨질 수도 있다. 만일 그런 경우라면 이 책의 서론과 맺음말을 읽고, 2부 ‘신학적 성찰과 도시’를 먼저 읽기를 권한다. 그리고 나면 1부 ‘기독교 사상 속 도시’에 역사에 얽힌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 속에 진지한 독서를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시 그리고 기독교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는 모든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