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40회 산행 용화산(342m) 2016-5
2016년 2월 9일 화요일 맑음 원성연 원의연 원석연 원달연 참가
전국엔 용화산이 4곳이 있다. 100대 명산인 춘천 용화산을 비롯하여 경남 함안의 용화산, 전북 군산의 용화산, 그리고 전북 익산시 금마면의 용화산이 있다. 익산의 용화산은 백제 무왕의 웅대한 꿈이 서려 있는 산이다. 고구려와 더불어 동아시아의 맹주였던 백제를 진정한 미륵불의 세계와 같은 이상 국가로 만들고자 했던 무왕의 정치적 의지가 담겨 있는 산이 용화산이다.
이웃의 미륵산과 마주보며 하나의 산줄기로 이어지고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한 산세를 나타내는 미륵산은 능선의 기복이 심하지 않아 편안한 산행을 할 수 있다. 또 아름다운 호수 금마저수지를 품고 있고 삼한시대 부족국가였던 마한의 생활상을 한 분에 볼 수 있는 마한관이 있고 휴식시설 및 산책을 할 수 있는 둘레길 코스가 있어 익산시민을 비롯한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고 있다.
서동공원서 마한관 오른쪽으로 나있는 나무 계단을 타고 등산이 시작된다.(9:10) 서동공원서 정상까지는 2.6Km쯤 되나 대부분 완만한 길이라 준족의 산객은 40분 정도 소요되고 1시간 20분 정도면 정상을 밟을 수 있다. 좌우로 나타나는 묘지 사이로 나있는 완만하고 널찍한 산길로 산을 올라간다.
중키의 소나무가 줄지어 서있던 완만했던 산길이 조금 경사가 급해진다. 3명의 대원은 등산을 잘하는 산돌이라 평지 길처럼 재빠르게 올라간다. 다시 산길은 완만해지고 나무에 가려 전망은 열리지 않는다. 원석연 원달연 두 대원은 너무 평범한 야산을 소개했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조금 후 장송이 나타나는 곳을 경유하여 삼각점이 박혀 있는 221봉에 올라선다.(9:30)
이어서 평탄하게 이어지던 산길이 가파른 오르막길로 바뀐다. 좌우 둥구나무 말뚝에 밧줄이 매여 있다. 손쉽게 올라서자 시야가 트이면서 오른쪽으로 왕궁면 일대가 잘 내려다보인다. 왕궁면은 백제의 왕궁터가 자리 잡은 곳으로 알려졌다. 능선 길은 가파른 오르막길이 계속되고 원의연 대원과 원석연 대원은 빠르게 오르기 경쟁을 하고 있다.
얼마 후 널찍한 헬기장으로 올라서며 조망이 터진다. 동쪽으로 완주군의 천호산을 비롯한 크고 작은 산들이 아름다움을 뽐낸다. 이어서 여전히 가파른 오르막 능선을 타고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용화산 정상에 올라선다.(9:50) 정상엔 무덤 1기가 봉긋하게 솟아있다. 금남정맥이란 표지판도 나무에 달려 있는데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산경표에 분명히 나와 있는 금남정맥을 무시하고 이렇게 함부로 자기마음대로 정맥을 정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 이정표 푯말엔 서동공원 2.6Km, 아리랑고개 2.6Km라고 쓰여 있다. 아리랑고개는 용화산과 미륵산을 이어주는 고개인데 차도가 나있다.
정상을 뒤로하고(10:05) 미륵산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 길로 나아간다. 조금 후 왼쪽으로 철조망 지대가 나타나고 이 지역은 직사공용화기 사격장이므로 지정된 등산로 이외에서의 활동은 일체 금지한다는 경고문이 서있다. 용화산엔 사격장이 자리 잡아 유서 깊은 산을 망치고 있었다. 한시 바삐 사격장이 폐쇄돼 백제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용화산으로 돌아와야 될 것이다.
곧이어 너럭바위지대가 나오면서 미륵산 전망이 환상적으로 열린다. 미륵사지와 익산시가지가 잘 내려다보인다. 미륵산의 아름다움에 푹 빠진 다음 얼음이 언 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이어서 평탄한 능선 길이 계속된다. 두 대원은 하산 코스가 너무 길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원래 산행 계획은 미륵산정상에 오른 후 미륵사지로 하산하는 것이었는데 산행을 수정한다. 얼마 후 이정표 푯말(아리랑고개 0.4Km)이 서있는 삼거리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본격적인 하산을 시작한다.
산길은 급경사 내리막이 돼 호젓한 산길로 한동안 산을 내려가 황각마을에 닿아 산행을 마친다.(10:50) 마을길을 따라 진행해 아름다운 금마저수지에 이르고(11:00) 나 혼자 차도를 따라 15분쯤 걸어 서동공원으로 돌아와(11:15) 주차된 차를 가지고 세대원을 태우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