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 론 Ⅱ.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인류무형문화유산의 이해 Ⅲ. 영월군의 지역무형문화 관련 세계화 추진 현황 Ⅳ. 단종국장과 왕실의례재현의 세계화적 가치 Ⅴ. 추진 과제와 기대효과 Ⅵ. 결론
<요약>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인류무형문화유산의 지정은 문화를 통한 관광산업적인 측면에서 세계인들에게 특별함을 각인시킴에 따라 각 지자체별 지역 고유의 역사문화를 개발하여 세계화시키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서울특별시의 경우를 보면, 일본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5월 골든위크에 세계유산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종묘와 관련한 종묘대제를 봉행한다. 그만큼 세계유산과 인류무형문화유산은 각 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문화관광 산업이다. 현재 영월에서는 ‘단종국장 재현’이 9년째 거행되고 있다. 국장은 조선 국가의례의 핵심으로 그 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런 관점에서 단종국장은 세계화를 위한 왕실문화 역사 콘텐츠로 타당하다고 본다. 지금까지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의 지정 종목을 보면 왕실 의례 관련한 콘텐츠의 지정이 없다. 영월군에서 재현하는 단종 국장은 조선시대 국가의례서인 국조오례의 흉례와, 국조상례보편, 영조국장도감의궤 등을 참고하여 고증에 충실한 재현을 해나가고 있으며,한번도 지정된적이 없는 왕실의례 문화를 세계화 하고자 기획 추진되고 있다. 영월은 2009년 세계유산으로 조선왕릉 40기가 지정되면서 영월 장릉이 조선왕릉에 속해 있으며, 조선시대 6대 왕인 단종대왕이 승하한 지역이다.
영월은 단종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540년 전부터 단종국장을 만들고자 한 2007년까지 단종에 대한 한결같은 휴머니즘 정신이 바탕이 되어 단종을 지켜왔다. 그리하여 강원도 영월에서는 서울에서도 볼 수 없는 조선시대 국장이 거행되고 있는데, 이는 제의적 요소를 가진 단종국장이라는 것, 매년 마음을 다해 거행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요소가 될 것이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사업 추진은 지역의 관광진흥에 이바지 할 뿐 만아니라 그 지역만의 차별화되고 독창적인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 할 것으로 예측되어진다. ※ 주제어 : 유네스코 세계유산, 인류무형유산, 단종국장, 왕실의례
Ⅰ. 서론
21세기 문화선도의 시대에 전세계는 총성없는 전쟁이 진행중이다. 현대사회에서 문화산업은 친환경 산업으로 각 국가별 대표 경쟁력이 있는 산업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고유의 콘텐츠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는 시점이다. 문화 산업은 다양한 유형의 형태로 구성이 되어있으나, 여기에서는 역사문화를 기반으로한 무형의 자산을 검토하여 지역에 소재하는 무형의 유산을 세계화 함으로써 관광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하는 기능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해외 관광객 천만명 시대, 이는 한류의 확산과 콘텐츠의 다양화, K-POP의 세계화 추세에 따른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연구는 다양한 콘텐츠가 갖는 부문으로 지역의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인류무형문화유산 지정이 갖는 세계화로 관광진흥에 미치는 파급력과 독창성을 검토하는 연구이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가 있는 대한민국은 각 지역별 수많은 역사문화유산이 산재 해 있다. 그 중 세계에서도 보기 드물게 기록화 되어 있고, 국가적으로 의례화 되어 있는 조선시대 왕실 의례를 참고, 영월지역의 역사문화유산을 세계화하여 영월의 대표 문화산업으로 발전시키고 관광진흥에 이바지 하고자 한다. 지역 고유의 역사문화유산의 세계화로, 중복 혼재되어 있는 각 지자체의 문화 산업의 방향을 그 지역만의 산업으로 차별화 하고 더욱더 활성화 될 수 있도록 집중 육성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 함을 모색해 보는데 의미가 있다.
Ⅱ.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인류무형유산의 이해 [출처 – 유네스코한국위원회〕
1.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이해
1) 세계유산이란 유산이란 우리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아 오늘날 그 속에 살고 있으며, 앞으로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산이다. 자연유산과 문화유산 모두 다른 어느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우리들의 삶과 영감의 원천이다.
유산의 형태는 독특하면서도 다양하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평원에서부터 이집트의 피라미드, 호주의 산호초와 남미대륙의 바로크 성당에 이르기까지 모두 인류의 유산이다. ‘세계유산’이라는 특별한 개념이 나타난 것은 이 유산들이 특정 소재지와 상관없이 모든 인류에게 속하는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인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연유산 및 문화유산들을 발굴 및 보호, 보존하고자 1972년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 보호 협약(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 약칭 ‘세계유산협약’)을 채택하였다.
2) 세계유산 현황 2015년 7월 현재 세계유산협약 가입국은 191개국이다. 세계유산은 전 세계 163개국에 분포되어 있으며, 총 1,031점(2015년 7월 기준) 가운데 문화유산이 802점, 자연유산 197점, 복합유산이 32점이다. 한편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목록에는 총 48점(2015년 7월 기준)이 등재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세계유산은 해인사 장경판전(1995년), 종묘(1995년), 석굴암 ·불국사(1995년), 창덕궁(1997년), 수원화성(1997년),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 유적(2000년), 경주역사유적지구(2000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년), 조선왕릉(2009년), 학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2010년), 남한산성(2014년), 백제역사유적지구(2015년)로 총 12점이 있다.
3) 세계유산 등재효과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것은 해당 유산이 어느 특정 국가 또는 민족의 유산을 떠나 인류가 공동으로 보호해야 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유산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저개발국의 경우,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세계유산기금 및 세계유산센터,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등 관련 기구를 통해 유산 보호에 필요한 재정 및 기술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국제적인 지명도가 높아지면서 관광객 증가와 이에 따른 고용기회, 수입 증가 등을 기대할 수 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 정부의 추가적인 관심과 지원을 받을 수 있으므로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면 세계유산이 소재한 지역 공동체 및 국가의 자긍심이 고취되고, 자신들이 보유한 유산의 가치를 재인식함으로써, 더 이상 유산이 훼손되는 것을 막고, 가능한 원 상태로 보존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선진국들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도, 해당 유산 보존을 위해 세계유산위원회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유네스코 신탁기금 등을 통해 저개발국 유산 보존에 기여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 것이 보편적이다.
4) 세계유산 등재정책 세계유산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갖고 있는 부동산 유산을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세계유산 지역 내 소재한 박물관에 보관한 조각상, 공예품, 회화 등 동산 문화재나 식물, 동물 등은 세계유산의 보호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어떤 유산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 위해서는 한 나라에 머물지 않고 탁월한 보편적 가치가 있어야 한다. 세계유산 운영지침은 유산의 탁월한 가치를 평가하기 위한 기준으로 10가지 가치 평가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2. 인류무형문화유산의 이해
1) 인류무형문화유산이란 무형문화유산은 전통 문화인 동시에 살아있는 문화이다. 무형문화유산은 공동체와 집단이 자신들의 환경, 자연, 역사의 상호작용에 따라 끊임없이 재창해온 각종 지식과 기술, 공연예술, 문화적 표현을 아우른다. 무형문화유산은 공동체 내에서 공유하는 집단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을 통해 생활 속에서 주로 구전에 의해 전승되어왔다. 유네스코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무형문화유산 보호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1997년 제29차 총회에서 산업화와 지구화 과정에서 급격히 소멸되고 있는 무형문화유산을 보호하고자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제도’을 채택했다. 이후, 2001년, 2003년, 2005년 모두 3차례에 걸쳐 70개국 90건이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지정되었다. 무형문화유산의 중요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이 커지면서 2003년 유네스코 총회는 무형문화유산 보호 협약을 채택하였다. 이것은 국제사회의 문화유산 보호 활동이 건축물 위주의 유형 문화재에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있는 유산(living heritage), 즉 무형문화유산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고 확대하였음을 국제적으로 공인하는 이정표가 되었다.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져가고 있는 한편으로 아직도 세계화와 급속한 도시화, 문화 통합 정책과 더불어 젊은 세대의 관심 부족으로 인해 많은 무형유산이 사라지고 있다.
2) 인류무형문화유산현황 긴급한 보호가 필요한 무형문화유산목록에 등재된 무형유산은 38건(2015년 3월 현재)에 이른다. 긴급보호목록은 2009년 처음 선정되었다.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된 무형유산은 전 세계 101개국 341건(2015년 3월 현재)에 이른다. 유네스코가 2001년, 2003년, 2005년 각각 선포했던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걸작’ 90건은 2008년 11월, 대표목록으로 자동 전환되었다. 대표목록 선정은 2009년부터 시작되었으며, 2009년 75건, 2010년 45건, 2011년 18건, 2012년 27건, 2013년 25건, 2014년 34건이 새로 대표목록에 등재되면서 전체 314건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종묘 및 종묘제레악(2001년), 판소리(2003년), 강릉단오제(2005년), 강강술래(2009년), 남사당(2009년), 영산재(2009년), 제주 칠머리당영등굿(2009년), 처용무(2009년), 가곡(2010년), 대목장(2010년), 매사냥(2010년, 다국적유산), 줄타기(2011년), 택견(2011년), 한산모시짜기(2011년), 아리랑(2012년), 김장문화(2013년), 농악(2014년) 등 현재까지 총 17건의 유산을 등재했다.
3)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정책 무형문화유산의 정의와 특성(무형유산협약 제2조)에 따라 언어 그 자체나 인권에 관한 국제규범에 반하는 전통은 무형문화유산 목록 등재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기준] 기준 1 무형유산협약 제2조에서 규정하는 무형문화유산에 부합할 것 기준 2 대표목록 등재가 해당 유산의 가시성 및 중요성에 대한 인식 제고, 문화간 대화에 기여하며, 아울러, 세계 문화다양성 반영 및 인류의 창조성을 입증할 것 기준 3 신청유산에 대한 적절한 보호 조치가 마련되어 있을 것 기준 4 관련 공동체, 집단, 개인들이 자유롭게 사전 인지 동의(free, prior, informed consent)하고, 가능한 최대한 폭넓게 신청과정에 참여할 것 기준 5 신청유산이 당사국 무형문화유산 목록에 포함되어있을 것
4)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효과 긴급보호목록 및 대표목록에 등재되면 무형유산협약에 따라 설치된 무형유산기금 및 관련 전문 기구를 통해 유산 보호에 필요한 재정 및 기술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국제적인 지명도와 관심이 높아지면서 이에 따른 고용기회, 수입 증가 등을 기대할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긴급보호목록 및 대표목록에 등재되면 국제적으로 해당 유산에 대한 가시성이 높아지고, 관련 공동체의 자긍심이 고취됨으로써 무형유산을 보호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Ⅲ. 영월군의 지역무형문화 세계화 추진 현황
1. 단종국장의 중요무형문화재 추진 현황
1) 사업의 목적 ① 단종국장 재현행사의 무형문화재 등재를 통한 역사문화, 관광 자원의 발전 ② 철저한 고증을 통한 역사문화 가치 상승과 영월지역 역사문화콘텐츠에서 전국적인 대표 축제로 발전 ③ 문화원형 복원을 통한 차별화되고 독창적인 문화행사 추진 ④ 세계유산 조선왕릉과 관련한 콘텐츠를 활용한 문화행사로 확대 ⑤ 향후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로 전 세계인들의 관심 축제로 발전, 역사문화 관광 자원화를 통한 영월지역 활성화
2) 사업 추진에 따른 연혁 1698년(숙종24) 단종 복위이후 270년 동안 제향祭香만으로 그치던 것을 1967년 "단종제" 시작 1990년 제24회 때부터 "단종문화제"로 확대 2007년 단종문화제에서 단종승하 550주년 단종국장 2008년 단종문화제에서 조선시대 국장 재현으로 운영 2009년 조선왕릉 40기 세계유산 등재(영월 장릉) 2011년 단종제례 강원도 무형문화재 지정
3) 단종국장 재현행사 추진 경과 및 규모 ① 2007년 4월(제1회) 참가인원 850명 규모의 발인반차 - 재현이 아닌 영월군민이 모시는 실제 단종국장으로 진행 - 재현내용 : 견전의, 발인반차, 노제의, 천전의, 반우반차 - 발인반차 구간 : 관풍헌(단종이 사약을 받은 곳)~창절서원~장릉 ② 2008년 4월(제2회) 참가규모 850명 규모의 발인반차 - 2007년 실제 국장을 치렀기 때문에 조선시대 국장재현으로 개칭하여 진행 ③ 2009년 4월(제3회) 참가규모 1,600명 규모의 발인반차 - 발인반차 구간 확대 : 덕포~동강대교구간 확대, 참가자 대부분이 영월군민중심으로 구성 ④ 2010년 4월(제4회) 참가규모 1,200여명 규모의 발인반차 ⑤ 2011년 4월(제5회) 참가규모 1,000여명 규모의 발인반차를 준비하였으나 우천으로 취소, 전날 행해진 견전의만 진행 ⑥ 2012년 4월(제6회) 참가규모 1,000명 규모의 발인반차 ⑦ 2013년 4월 (제7회) 참가규모 1,000명 규모의 발인반차 ⑧ 2014년 10월 (제8회) 참가 규모 1,000명 규모의 발인반차 ⑨ 2015년 10월 (제9회) 참가규모 1,391명 규모의 인반차(영조국장도감의궤에 나타난 도식을 그대로 반영 – 여사군/담배군 인원 조정)
4) 단종국장의 중요무형문화재 추진 배경
① 개념 무형문화재는 연극·음악·무용·놀이와 의식·무예·공예기술·음식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 또는 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 ‘무형(無形)’이란 예술적 활동이나 기술 같이 물체로서의 형태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기술적·예술적 능력을 지닌 사람이나 단체에 의해 구체적으로 실현될 수 있기 때문에 문화재로 종목을 지정하고 동시에 그 기·예능을 지닌 사람을 보유자나 보유 단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출처: 국립무형유산원(중요무형문화재)
무형문화재 중 ‘의식’은 ‘의례(儀禮)’ 또는 ‘제의(祭儀)’라고도 하며, 신이 설정된 공간에서 일정한 예식을 갖추고 행하는 법식의 행사를 뜻한다. 여기에는 종교적인 관념과 신앙체계가 포함되어 있다. 조상을 모시는 제사, 신에게 기원하는 무속행위 등은 모두 종교적인 염원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국립무형유산원(의식/무예/음식)
영월군에서 매년 재현하고 있는 단종 국장 재현행사가 이 무형문화재 의식에 해당한다.
② 배경 및 필요성 지역의 무형문화유산은 우리 과거의 전통과 삶의 모습이 담긴 소중한 문화자원으로 이에 대한 보존과 전승·계승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또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고 전파함도 큰 중요성을 가진다. 정부에서도 무형문화유산의 보존과 계승을 위한 법률 제정과 유네스코 등재를 위한 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작성과 관련 사업 전개, 무형문화유산 진흥계획 수립 등의 다양한 정책 방안을 강구·실천하고 있음. 출처: 지역 무형문화유산의 세계화 추진과 정책과제 (한상우)
또한 강원도에서는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강원도의 대표 문화인 강릉단오제와 아리랑의 보존과 발전은 물론이거니와 양양 수동골 상여소리 등 새로운 지역 무형문화재를 발굴하고, 관동팔경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신청을 위한 실무협의회를 추진하는 등 이를 통해 지역 민속과 무형유산에 대한 새로운 인식 전환과 세계화, 지역문화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③ 단절된 무형유산 복원의 중요성 일제강점기의 36년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자주권 상실과 국가적 혼란은 사회 경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우리의 전통문화가 소멸 혹은 훼손되어 전승의 단절과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따라서 1950년대의 학계는 식민지주의 역사관이나 문화관에서 벗어나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재정립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또한, 언론계에서도 무형문화재제도가 실시되기 이전부터 이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이러한 각계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인하여, 1962년 문화재보호법에 무형문화재를 지정할 수 있는 법적근거가 마련되었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호하는 것은 전통문화를 계승하는데 있다. 일본의 강압에 의해서 이미 소멸되고 단절이 우려되는 무형문화재를 다시금 전통적인 기․예능으로 계승코자 하였다. 특히 민속놀이나 의례, 연희 등은 이미 일제강점기 당시에 거의 전승이 단절되었다. 따라서 실현을 경험했거나 참여한 전승자를 찾아내어 이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연하고, 관계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수정 보완하여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한 종목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전국에 산재한 무형문화재와 전승자를 발굴하는 것은 많은 시간과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를 개최하여 입상한 종목을 대상으로 삼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러한 과정은 부적절한 측면이 있지만, 당시로서는 경험 있는 전승자를 찾아내고,이들이 생존 시에 복원하는 것이 원래의 형태에 비교적 가까웠을 것으로 판단해 시급히 추진하여 지정하였다. 완벽한 복원이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60,70년대의 고도성장과 실적을 추구하는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전승이 완전히 단절되기 이전에 지정해야 한다는 시급성을 인정하면서 신속히 중요무형문화재지정을 추진해 왔다. 중요무형문화재지정 제도가 운영된 지 40년이 지난 지금,새로운 문헌자료의 발굴과 학계의 지속적인 연구 성과로 인하여 현재 실현되고 있는 무형문화재지정종목은 그 내용에 대한 수정과 보완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연희에서 탈의 형태가 본래의 모습과는 다르다는 지적과 정재와 정악과 같이 문헌자료가 비교적 많이 남아있는 종목은 수백 년 동안 몇 차례의 변화과정을 거쳐 왔기 때문에 현재와는 다르게 전승내용을 수정하여야 한다는 등등의 다양한 논리가 전개되고 있다. 출처: 중요무형문화재 원형보존과 재창조 가이드라인 문화재청
5) 조선시대(단종) 국장의 의의
① 조선시대 국장(상례)의 의미 상장례는 한 인간의 죽음에 대하여 사회 문화적 의미를 부여하며, 생사관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의례로서 생활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의례이다. 우리 사회에서의 장례의식은 그 절차마다 각각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며, 상장례에 참여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관과 윤리관을 확인하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국민의 추앙을 받는 국왕의 장례는 개인과 가족차원을 넘어 국가의식, 국민통합 의식을 강화하는 기능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례로 간주되었으며, 국가상징, 국민통합, 국가정체성에 대한 사회․문화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② 국장 절차 조선시대 왕이 승하하시고 왕릉에 시신을 묻고 신주를 모셔오는데 까지 국장 소요시간은 약 5개월 정도 걸린다. 그러나 국장 의식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가신주를 혼전에 모시고 삼년상(대략 27개월 정도)을 지냈으며, 이 기간이 끝나면 혼전에 모신 가신주를 꺼내어 종묘 터에 묻고 새 신주를 만들어 종묘에 모셨다. 이를 부묘라 하였다. 이렇게 부묘까지 약 60여개 절차를 마쳐야 상례가 마무리된다. 따라서 왕이 승하하면 조정에서는 국장을 준비하는 임시 관청인 도감都監을 설치하고 업무를 담당할 관리를 뽑았다. 국장 관련 도감으로는 장례를 총괄하는 국장도감(國葬都監), 시신을 안치하는 빈전을 설치하고 염습과 복식을 준비하는 빈전도감(殯殿都監), 무덤을 조성하는 산릉도감(山陵都監)이 설치되었다. 오늘날의 장례의식으로 말하자면 장례를 총괄하는 집행부는 국장도감, 빈소를 차리고 조문객을 맞는 일은 빈전도감, 능을 조성하는 작업은 산릉도감이 담당했던 것이다. 출처: [신병주의 '역사에서 길을 찾다'] <40>조선 왕실 국장의 절차와 기록들
국장이 종료되면 의궤청儀軌廳을 설립하여 국장의 진행 절차와 국장에 소요된 품목, 참여한 인원을 상세히 적은 의궤를 제작하여 왕실 행사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출처: 조선왕릉전시관
왕의 국장(國葬)은 흉례(凶禮, 상례喪禮)의 일반인들에게 상례의 모범이 되었다. 상례는 그 자체로써 국민 예절의 중요부분을 이루고, 이것이 제사의식으로 환원되어 공동체의 귀속감을 강화시키고 국가풍속의 핵심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상의례가 나라 풍속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③ 영월만이 가지는 당위성 영월사람들은 이미 폐광에 대한 향수가 없다. 광산은 외부 사람들이 이익을 취했으므로 외부인들의 잔치였다. 또한 석탄이나 광산에 대한 유산이 남아 있지 않아 그것을 재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오히려 이곳은 단종에 대한 역사적 자부심이 강하다. 외부의 학자들과 영월에 살면서 영월을 보는 시각에는 온도 차이가 존재함을 느꼈다. 영월의 상징으로 동강, 서강, 박물관, 수려한 자연환경 등이 대표할 수는 있으나 실질적인 영월군민들의 내면에는 조선조 6대왕인 단종과 관련한 장릉과 청령포 등에서의 애달픈 삶을 기억하고 역사의식을 지키려고 한다. 영월군민들은 장릉이 영월에 소재함으로 인해서 외부사람들에게 영월에 대한 소개를 할 때 가장 먼저 단종의 묘인 장릉과 청령포가 주 소재가 되고 그 정신을 이어받아 영월사람들이 그 충절의 정신을 지켜 나아가려고자 한다. 따라서 이러한 조선시대 국장에 깃든 충절, 선비 등으로 불리는 조선시대 정신문화가 영월군민들에게 깃들어 있다.
④ 세계문화유산 장릉과 배식단 200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장릉이 있으며 단종 제례는 강원도 무형문화재 22호로 지정되어있다. 단종은 조선시대 27대 국왕 중에서 유일하게 ‘군(君)’으로 강봉되었다가 다시 왕으로 복위된 유일한 인물이다. 연산군·광해군은 왕위에서 쫓겨난 뒤 다시 복위가 되지 못했지만 단종은 1691년(숙종 17) 숙종은 노량진을 지나다 사육신묘가 옆에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충절에 감동하여 관직을 복구하고는, 단종이 영월 땅에서 승하한 지 햇수로 242년 만이자 노산군으로 강봉된지 243년만인 1698년 온 나라 백성들의 축하 속에 단종 복위가 반포됨으로써 단종 묘도 왕릉으로 조성되었다. 또한 이를 기념하여 1699년 영월에 도호부를 설치하였다. 특히 장릉에는 우리나라 왕릉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도 없는 배식단이 위치해있다. 1791년(정조15) 왕명으로 장릉 안에 장판옥과 배식단을 세워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종친, 충신, 궁녀 등 신분과 남녀 차이 없이 충절로 목숨을 바친 대표 인물 268명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위패를 모시고 매년 제향을 올리고 있다. 또한 배식단 정단 배향인물로 삼상신(三相臣)인 황보인, 김종서, 정분에게 ‘충정(忠定)’, ‘충익(忠翼)’, ‘충익(忠莊)’을 사육신(死六臣)인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에게 ‘충문(忠文)’, ‘충정(忠正)’, ‘충간(忠簡)’, ‘충렬(忠烈)’, ‘충목(忠穆)’을 내렸으며 이밖에도 민신은 ‘충정(忠貞)’, 김문기는 ‘충익(忠毅)’, 화의군은 ‘충경忠景’, 권자신은 ‘충장(忠莊)’, 송현수는 ‘충민(忠愍)’, 박쟁은 ‘충강(忠强)’, 이보흠 ‘충장(忠壯)’, 엄흥도 ‘충의(忠毅)’ 등 많은 배식단 배향인물들에게는 충절을 기려 나라에서 ‘忠’자를 가지고 시호를 내려주었다. 이러한 배식단은 단종의 혼을 달래고 충신들의 넋을 기리는 단종 국장재현행사의 의미를 잘 보여주며 조선시대 국장이 다른 왕릉이 아닌 영월 단종 장릉에서 열려야 하는지에 대한 차별성을 나타낸다.
⑤ 충절의 고장 영월에는 장릉 배식단 외에도 사육신을 비롯해 엄흥도·박심문 그리고 생육신인 김시습·남효온 등 10분의 위패를 모신 창절사(彰節祠), 단종을 모시다 순절한 종인(從人)과 시녀들의 위패를 모신 민충사(愍忠祠), 생육신 원호의 교지가 봉안된 모현사(慕賢祠), 엄흥도·정사종·추익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충절사(忠節祠)가 있다. 이 밖에도 청령포, 영모전, 어음정, 의호총, 배일치 등 단종과 충절을 기리는 문화유산을 비롯해 수많은 효자, 열녀 등을 배출했다.
⑥ 역사적 근거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국왕과 왕비의 상장례 전말·경과, 소요된 재용(財用)·인원, 의식절차, 행사 후의 논상(論賞) 등을 기록해 놓은 국장도감의궤, 빈전도감의궤, 산릉도감의궤, 부묘도감의궤 등의 의궤를 비롯하여 조선후기 왕실 상례를 총 정리한 국조상례보편, 조선전기 오례의 예법과 절차에 관하여 기록한 국조오례의 등에 다양한 기록 유산으로 기록되어 역사적 고증과 재현의 의의가 크다.
⑦ 종합 의례 조선시대 국장에 1만명 넘게 왕의 장지로 함께 떠나는 대규모 국장행렬 이외에도 왕릉이라는 유형의 건축과 무형의 왕실 상장례 의례, 각종 의장과 깃발, 당대 최고 문장가들이 국왕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담은 휘장인 만장 등 융합된 문화유산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종합의례이자 예술이다.
6) 조선시대(단종) 국장의 중요무형문화재 등재를 위한 중장기 계획
① 1차년도(2014년) - 자문(추진)위원회 구성 : 자문회의 3회 추진(2013년 12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조선시대 국장 관련 학술서 발간, 의례 고증 - 장비보강 : 12종57식(대도구 중심) - 강원도 무형문화재 신청, 국제무형문화도시연합(ICCN) 가입 - 단종국장 세계화를 위한 학술 심포지엄 개최
② 2차년도(2015년) - 의상보강, 의례 고증 보강 작업, 강원도 문화재 위원의 재현행사 실사 및 보완작업 - 단종국장세계화 및 2018 문화올림픽 왕실문화 재현을 위한 학술심포지엄(예정) - 단종국장 무형문화재지정신청(예정)
③ 3차년도(2016년) - 국장의례 추가 보강(염습, 빈전, 혼전 등) - 강원도 무형문화재 등재, 가칭 ‘단종 배식단 상’ 수여
④ 4차년도(2017년) - 추가 국장의례 재현
⑤ 5차년도(2018년) - 중요무형문화재 등재 신청 -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전문가 협의체 구성
7) 2014년 단종국장 세계화를 위한 심포지엄 세부 구성 [2014년 제1차학술 심포지엄 주제발표자 및 토론자(2014.12.11.)]
구분
대상자
주 요 경 력
비고
기조연설
정옥자
서울대 역사학과명예교수, 국사편찬위원장(전)
발표
정종수
중앙대학교 역사학과교수, 국립고궁박물관장(전)
발표
토론
박경하
중앙대학교 역사학과교수
토론
발표
안희재
(사)한민족문화대로 이사장
발표
발표
박상미
한국회대 국제학부교수, 문화재위원(세계유산분과)
발표
토론
임돈희
동국대학교석좌교수, 무형문화재분과위원장
토론
발표
이창환
상지대조경학과교수, 문화재전문위원,조선왕릉 등재
발표
토론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
토론
사회
유병하
전북 문화재위원, 국립전주박물관장
사회
8) 2015년 단종국장 세계화 및 2018 문화올림픽 왕실문화재현을 위한 학술심포지엄 세부구성
[2015년 제2차 학술 심포지엄 주제발표자 및 토론자(2015.11.17.)] - 예정 -
이 름
소 속(프로필)
역 할
주 제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
(전)문화재청사적분과위원장
(전)규장각관장,
(전)국사편찬위원회 위원
기조연설
조선시대 유교문화의 성격과
국장의 의의
임돈희
동국대사학과석좌교수,무형문화재분과위원회위원장
발표
단종국장의 세계유산적 가치
김시덕
문학박사,역사박물관교육과장,한국의 상례문화연구
발표
단종국장의 발전방향
신명호
부경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조선시대사 전공
발표
왕실문화의 복원과 연구과제
(왕실국장을 중심으로)
홍성덕
전주대학교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발표
2018 문화올림픽구현과 왕실문화
재현((단종국장을 중심으로)
유병하
국립전주박물관장,
전북문화재전문위원
토론
사회자
사회
Ⅳ. 단종국장과 왕실의례재현의 세계화적 가치 [출처 – 제1차 단종국장 세계화를 위한 학술심포지엄 발표문 중심으로~]
1) 정옥자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명예교수(심포지엄 기조강연 중)
결론적으로 국장의 세계무형문화재 등장은 우선 우리 국민의 먼저 국장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넓혀 중요성을 인식하는 게 선행되어야 합니다. 단종의 왕릉인 장릉이 있는 영월에서 국장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원통하게 죽어 국장도 못 치른 단종의 국장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얻어내서 중요성을 인식한 결과일 것입니다. 다른 지자체에서는 동기가 강렬하지 못한 조선시대 국장을 영월에서 주도하여 국장의 모델을 개발하고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기획의도는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합니다. 사실 유교문화는 조선에서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그래서 중국에서가 아니고 조선에서 더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조선은 유교국가의 어떤 모델이 된 거죠. 그래서 유교문화의 전성기가 바로 조선후기이고 18세기는 숙종 후반기, 영조, 정조때 그 때인데요. 이때는 유교, 즉 성리학에 기반을 둔 조선 고유문화 창달기입니다. 그래서 국장의례도 유교적 통치행위로서 더욱 정밀해지고 세련성을 더해서 1800년 정조의 국장을 당해서는 정형화되었습니다. 그래서 평화와 안정을 최고 가치로 삼는 유교국가, 조선왕조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국가의례가 국장입니다. 특히 효를 실천하는 하나의 의례이기 때문에 그래서 반차도, 제가 가로하고 해 놨는데 반차도 라는 시각자료까지 남아있기 때문에 국장의궤를 이용한 국장의례는 조선왕조의 문화능력이 이를 뒷받침하고 경제력, 관리능력을 제대로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행사였기 때문에 충분히 그런 문화재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2) 이창환 상지영서대 교수(세계유산 관련)
(조선왕릉 세계유산 등재 사례) 실사단이 와서 15일 동안을 같이 자고 같이 다녔는데 사실은 굉장히 위험했다. 단종 장릉이 빠져있었고 태릉이 지금도 논란이 있다. 태릉선수촌 때문에 문제가 있어서 빠져있었고 강남에 있는 선릉 가면 너무 많이 개발이 돼 있어서 뺐었고 그 다음에 서삼릉 가면 목장으로 돼 있어서 빠졌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이코머스 사무총장이 보고 serial nomination, 연속유산으로 갔으면 좋겠다, 라고 해서 40기 왕릉을 등재 신청 세계유산 등재 신청은 너무 어렵게 쓰지 말아야 한다. 중3 수준으로 써야 된다. 평가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문화를 모릅니다. 특히 이 문화는 평가위원들이 유럽 쪽에서 장악을 했다. 그래서 중3 수준으로 쉽게 수 차례 보고서를 수정했다. 문화유산도 단종과 관련한 역사문화유산이다. 세계유산으로 갔으면 한다. 청령포와 같은 스토리 공간이 다 있으면 추가로 하는 건 어렵지는 않다. 그래서 영월 자체를 세계유산도시로 끌고 가는 것, 이런 도시가 세계에 없다. 세계 문화유산하면서 느끼는 점은 이것을 유형유산에 넣어도 된다. 굳이 강조만 하지 않아도 단절이 됐잖아요? 단절될 것이 염려되니까 세계유산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관 주도로 되면 거의 안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행위자체가 민간의 주도로 돼야 된다. 평가항목에도 보면 민간인들이, 시민들이 얼마만큼 국민들이 참여하느냐가 상당히 그런 걸 평가를 보고 있다. 그래서 보고서 쓸 때 그 항목을 많이 넣어줘야 된다. 조선시대 국장 세계화는 완전성이나 이런 것들을 검증해서 진정성을 가지면 충분히 가치가 있고 동아시아에서도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후세에게 교육시키는 방법 중에서도 상당한 가치가 있고 영월에서 주도적으로 많이 했기 때문에 좋은 가치를 갖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그 다음에 진정성 면은 조금 고민해야 한다. 조선 국장의 말기 것으로 갈 것이냐 입니다. 어디에 시기를 맞출 것인지는 연구원들이 잘 고민하셔야 될 것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3) 안희재 문학박사(영월에서의 국장)
현재 영월에서는 ‘조선시대 국장재현’이 8년째 거행되고 있다. 국장은 조선 국가의례의 핵심으로 그 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다. 이런 관점에서 조선시대 국왕국장을 국가적 행사로 거행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본다. 오례 흉례 항목에 의거하는 국장은 왕위 계승을 위한 결정적인 절차를 포함하고 있다. 단종 역시 이와 같은 국장의 절차로 사위례를 행하고 국왕이 되었지만, 문종의 삼년상이 끝나고 3년 후 사사되었고, 예장조차 치르지 못하였다. 문종의 국상기간 동안 국장절차는 선대의 것을 지켜가는 상태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대신들의 영향력이 컸고 왕실어른인 숙부들이 제동을 걸면서 상황은 복잡하게 꼬여갔고, 상주인 단종이 국상을 주도하기 힘들었다. 고명을 받지 못한 단종은 사위례에서 유교를 받들지 못하였고, 졸곡도 하기 전에 탄신하례를 받아야 했다. 연제와 대상 사이에 계유정난을 겪고, 대상 직전에 국혼을 치르는 등 감당하기 힘든 사건들을 겪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단종은 성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의절의 대부분을 친행하며 부왕 문종국장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이렇게 국상의 한 가운데서 고군분투하던 어린 단종의 국장이 그가 죽음을 맞이한 영월에서 2007년 발인 의례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한편으로는 상상만의 국장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 속에 공백으로 남은 국장을 영월 군민의 정성으로 실현하게 되어, 대한민국 문화사상 본 적이 없는 상례로써 축제가 펼쳐진 것이다. 앞으로 국왕국장의 절차가 추가로 재현되며 더욱 발전해 나가겠지만, 발인반차 규모의 웅장함보다는 구성요소 의미를 살피고, 상주를 정해 축문을 지어 올려 혼백의 의미를 살리고, 배식단의 충신이 포함되는 축제가 이루어진다면 훨씬 짜임새 있는 국가행사가 될 것이다. 영월은 단종과 인연을 맺기 시작한 540년 전부터 단종국장을 만들고자 한 2007년까지 단종에 대한 한결같은 휴머니즘 정신이 바탕이 되어 단종을 지켜왔다. 그리하여 강원도 영월에서는 서울에서도 볼 수 없는 조선시대 국장이 거행되고 있는데, 이는 제의적 요소를 가진 단종국장이라는 것, 매년 마음을 다해 거행하고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요소가 될 것이다.
4) 박상미 한국외국어대학교 문화인류학 교수(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세계유산이라고 흔히 말하는 유형유산과 무형유산은 굉장히 평가기준이나 범주나 이런 것이 다릅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게 오늘 우리가 문화유산사업을 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유네스코의 어법을 따르고 유네스코의 기준을 사용해야 된다는 법은 없습니다.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한 무형유산사업에 있어서는 보존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습니다. 그리고 원형이라는 말도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형유산은 특히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방식의 일부일 때 의미가 있다, 이것이 거의 철칙처럼 굳어져 있거든요? 그래서 살아있는 유산이라는 표현을 굉장히 많이 씁니다. living heritage라는 말을 쓰는데 거기서 원형이라는 것을 우리가 특정 지어서 말을 할 수도 없고 또 우리의 삶과 유리돼서 원형이라는 것이 굳어져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도 그다지 의미가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적어도 유네스코 차원의 무형유산 사업에서는요. 그래서 보존보다는 보호라는 말을 씁니다. 보호라는 것은 그 형태나 내용이 변할 수는 있지만, 의미마저도 변할 수는 있지만 그 공동체에서 이 유산이 중요한 것이라고 인식하고 계속 삶의 일부분으로 가져가고 싶은 그런 것을 굉장히 중시하는 거죠. 오전 발표에서 세계유산 선정에 관한 말씀을 많이 들으셨잖아요, 조선왕릉 선정의 예를 들어서. 거기서 발표하신 선생님께서 OUV라는 말을 굉장히 자주 쓰셨습니다. 그것은 아주 뛰어난 가치가 있다, 뛰어난 탁월한 보편적 가치라는 것을 말하는데 무형유산에서는 그 개념을 아예 쓰지 않습니다. 문화상대주의로서 한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반드시 우월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문화는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신 문화의 기준 안에서 판단하고 그 자체만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덕목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무형유산에 있어서 어느 문화가 우수하기 때문에 뽑혔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문화유산을 global context에서 생각해 볼 때 global standard라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오랫동안 행해왔던 문화, 관습이나 이런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그게 오늘날의 기준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고 다른 민족의 다른 문화와 관련해서는 더욱더 오해나 갈등의 소지도 있습니다. 그래서 글로벌 한 시각을 갖출 필요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소중하고 멋있어 보이는 매력적인 문화요소들도 국제적인 감각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들이 있는 거죠.
5) 정종수 중앙대학교 국사학과 교수(조선시대 국장의례의 절차)
운구행렬을 보면 크게 다섯 가지로 자를 수가 있는데 첫 번째, 도가행렬인데 이것은 뭐냐면 선두예요. 선두에 누가 끌어가느냐, 선두에는 주부, 해당 부서의 주부가 서고 그 다음에는 한성부윤, 서울 특별시장이 서고 그 다음에 예조판서, 그리고 호조 판서. 대사헌, 병조판서 그리고 의정부 당하관 두명이 서요. 이게 선발대에서 국장행렬을 이끌어가는 거예요. 그리고 바로 뒤에는 소위 시위군, 그러니까 군사와 사대, 말 탄 군사들이 호위해 가는 것이죠. 그 앞에는 길장, 길례에 쓰이는, 왕이 생전에 행차할 때 썼던 깃발 같은 노부들을 세우죠. 그 다음에 뭘 세우냐면 혼백을 실은 가마가 따라가고 흉의장, 흉례에 쓰는 깃발을 세우고 거기에 바로 뒤에 명종이 따라 서고 대여가 들어가는 거예요. 생전에 왕이 썼던 깃발과 죽은 다음에 썼던 깃발을 같이 순서대로 하는데 길장을 먼저 세우고 흉장을 뒤에 세우게 되는 것이죠. 마지막 마찬가지로 군사를 후발주자로 호위해 가는 거예요. 이게 국장행렬의 핵심인데 이 순서는 도가, 군사사대, 길의장, 혼백, 흉장, 대여, 국왕을 수행하는 수가, 군사와 사대가 됩니다. 노제의는 대개 서대문 밖이나 동대문 밖, 동릉 갈 때는 동대문 밖, 저쪽 서삼릉이다 서오릉 갈 때에는 서대문 밖에서 노제를 지낸 것이죠. 대개 국왕이 여기까지 오는 경우가 많아요. 천전의는 재궁을 현실에다가, 광중에다 내리는 의식이에요. 입주전의는 뭐냐면 산릉에서 새로 신주를 쓰는 거예요. 우주는 뽕나무로 만드는데 뽕나무가 거칠다는 거예요. 여기에는 뭐를 쓰게 되냐면 묘호대왕이라고 해서 묘호라는 것은 묘호, 시호, 대왕 이 세 가지를 넣게 되는 것이죠. 반우위는 우주를 신주를 받들고 다시 죽은 장소로 돌아오는 거예요, 혼전으로~ 그래서 반차도에 흉장은 없어졌잖아요? 길장, 군사, 왕, 종친, 문무백관, 그래서 시신이 없어서 거 자를 써요. 혼백거라는 것은 대개 혼백거는 반우거로 혼백여는 반우여로 바뀌게 되는 거죠.
6) 임돈희 동국대학교 국사학과 석좌교수(단종국장의 세계화 관련 인터뷰)
지금 종묘제례에 제사 지내는 거 있잖습니까? 그거 진짜거든요. 정말 조상을 위해서 하는 거고 영월에서도 물론 옛날에는 단종을 위해서 지내주지는 하지는 않았지만 그게 정말 가슴에 안타까워서 지금 지내주는 거기 때문에 굉장히 문화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국장을 지낸다는 거는 다른데 선 지낼 수가 없습니다. 영월에서만 지낼 수가 있어요. 단종이기 때문에. 지금 뭐 다른데서 영조 국장을 지내겠어요? 뭘 하겠어요? 그건 정말 쇼가 되는 거라고. 그래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지금 뭐 유네스코 차원을 떠나서 영월에서는 단종을 붙들고 늘어져야 합니다. 한국에서 제가 조상숭배에 대해서 책을 썼습니다. 제가 73년에 경기도 한 마을에서 제사 이런걸 가지고 책을 써서 미국에서도 출판이 되었거든요. 그때 그 책 표지에 상여 메는 게 있었는데 너무 아름다운 거에요. 그래서 국장은 세계적인 문화입니다. 단종국장은 서울 사람들한테는 이게 쇼인지 몰라도 영월 사람들한테는 몇 백 년 전부터 내려온 단종에 대한 신앙이기 때문에 정도 느끼고 이거는 우리나라에 국장이라는걸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아주 좋은 아이템을 가지고 계신 거에요. 영월을 떠나면 아무 의미가 없을 거에요. 다른 데선 의미가 없고, 영월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Ⅴ. 추진 과제와 기대 효과
1) 추진 과제
지역 무형문화유산의 조사·발굴, 유네스코 등재 추진 후보 목록 작성 및 체계적인 학술연구, 국내외 홍보 및 학술적 교류 강화, 지역 무형문화유산 계승 및 보급 확대 방안 강구(지역 무형문화유산 보존·진흥 계획 수립), 지역 무형문화유산의 문화콘텐츠화 및 보급 확대, 지역 무형문화유산의 조사·발굴
지역의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총체적인 조사·발굴 활동을 통해 지역 무형문화유산자원을 총 정리하고, 이를 무형문화유산 보존·진흥 계획 수립, 대표목록 선정 및 유네스코 등재 추진 등에 기초자료로 적극 활용토록 해야 함. 이 과정에 관련 전문가·지역민·지자체 간의 거버넌스 구축과 상호 협력이 반드시 필요함
① 유네스코 등재 추진 후보 목록 작성 및 체계적인 학술 연구 지역의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와 도지정 무형문화재 등을 중심으로 유네스코 등재추진 후보 자원을 선정·목록화 하고, 우선 순위의 무형유산에 대한 심도 깊은 학술 연구를 먼저 진행해야 함. 이를 통해 등재 추진 후보 유산을 가시화하고 후보 무형유산의 가치와 중요성을 체계적으로 규명·도출하여 등재 추진을 용이토록 해야 함
② 국내외 홍보 및 학술적 교류 강화 지역의 대표적인 무형문화유산 또는 유네스코 등재추진 우선 후보 무형유산에 대한 국내외 홍보를 강화하여 국내·외적인 인지도를 향상시켜야 함. 국제적인 학술행사나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개최하여 그 중요성과 가치를 국내·외적으로 알리는 노력을 전개해야 함
③ 지역 무형문화유산 계승 및 보급 확대 방안 강구 지역 무형문화유산의 향유기회 확대 및 교육·보급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강구하여 지역민·전 국민이 우형문화유산을 널리 향유하고 이해를 증진토록 함이 필요함. 이는 등재 추진 과정에서도 중요한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함. 이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역 무형문화유산 보존·진흥 계획 수립이 필요함
④ 지역 무형문화유산의 문화콘텐츠화 및 보급 확대 지역 무형문화유산을 원형으로 하는 다양한 콘텐츠를 개발하고 상품화하는 문화콘텐츠산업적인 측면의 활성화에 관심을 경주해야 함. 이는 지역무형문화유산을 세계화하는 좋은 방안의 하나이자, 산업적인 측면의 경제적 효과를 동시에 가져올 수 있음. 최근 수년간 급성장한 상조회사가 대표적인 전통 상례의 현대화 및 상업화한 문화콘텐츠이다. 출처: 지역 무형문화유산의 세계화 추진과 정책과제(한상우)
2) 기대 효과
① 등재에 따른 파급효과 지역 무형문화유산의 세계화 또는 유네스코 등재에 따른 파급효과를 보면, 먼저 무형유산의 국내적·국제적 가시성 제고를 통한 무형유산의 이해 증진 및 지역·국가의 문화적 정체성 및 수월성 확보가 가능해짐. 또한 세계무형유산의 등재를 통하여 무형유산의 다양한 가치 창출 즉, 지역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 및 장소마케팅 활성화, 관광산업의 활성화 및 문화산업 측면의 경제적 효과 등을 기대 가능함 출처: 지역 무형문화유산의 세계화 추진과 정책과제(한상우)
② 관광 효과 사례 : 제주도 제주도는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2007년 세계자연유산 등재에 이어 2010년 세계지질공원 인증을 받아 유네스코 자연환경분야 3관왕에 올랐다. 제주 관광이 시작된 1960년대 이후 1966년 10만명을 넘어선 데 이어 1977년 50만명, 1983년 100만명, 1988년 200만명, 1991년 300만명, 2005년 500만명을 돌파했다.
그 뒤 2010년 757만8천명, 2011년 874만명, 2012년 969만1천명, 2013년 1,000만명을 넘어서는 등 눈부시게 성장해 왔다. 특히 2004년 외국인 관광객 30만 명 유치 겨우 달성한 이후 점진적인 증가세를 보이면서 2011년에 100만 명을 달성하고, 약 2년이 지난 2013년 그 갑절인 외국인 관광객 200만 명을 돌파했다. 출처: <제주 연간 관광객 1천만명 시대 개막> 연합뉴스
지난해 하와이 799만8천명, 발리 895만5천명, 오키나와 583만6천명으로 제주도에 한참 못 미친다.
Ⅵ. 결론
강원도 영월을 대표하는 역사문화유산은 단연 조선시대 6대왕을 모신 왕릉인 장릉이라 할 수 있다. 영월군은 이러한 대표 역사문화유산을 더욱더 홍보하기 위해 강원도 무형문화재로 지정시키면서 이를 발판으로 세계화하고자 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지정된 역사문화유산이 소재한 지역의 관광지는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관심을 갖는 지역임에 따라 이를 활성화 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유구한 역사를 기반으로 한 유·무형의 문화유산이 지역별로 많이 산재해 있다. 각 지자체별 이러한 차별화된 역사문화유산을 활용하여 그 지역만의 독창적인 콘텐츠로 개발한다면 현재 중복 재현되고 있는 행사나 축제들의 중복을 막고 그 지역만의 고유의 독창적인 콘텐츠를 기반으로 관광산업화 할 수 있다. 서울은 조선시대 궁궐을 배경으로 한 콘텐츠, 경주는 신라 천년을 기반으로 한 처용문화 콘텐츠, 공주/부여/사비는 백제의 역사를 기반으로 한 콘텐츠, 고인돌 밀집 지역은 고인돌 콘텐츠, 서삼릉/동구릉/서오릉은 왕릉을 배경으로 한 콘텐츠 등이 주요 대상이다. 지금 현재에도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추진되고 있기는 하나 좀 더 각 지역에 차별화 되고 독창적인 콘텐츠 중심의 세계화 추진은 각 지역의 관광산업을 발전시키는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 된다.
참고문헌
신병주 (2009) 조선왕실국장의 절차와 기록들(세계일보) 한상우 (2012) 지역무형유산의 세계화 추진과 정책과제(경남발전연구원) 세계일보 (2013) 제주연간 관광객 1천만명 시대 개막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국립무형유산원 조선왕릉전시관 문화재청 중요무형문화재 원형보존과 재창조 가이드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