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이면서도 콧등이 시큰할 만큼 감동적인 모녀 사랑의 가족 발레
<고집쟁이 딸>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전막 발레로 꼽힌다. 프랑스 대혁명 직전에 초연되었다. 19세기에도 잘 전승되다가 명맥이 끊겼는데, 1960년 영국의 국민적인 안무가 프레데릭 애쉬튼이 이 프랑스 발레를 가장 영국적인 작품으로 재구성했다. 등장인물과 줄거리, 심지어 음악도 19세기 프랑스 전통에서 찾았으면서도 아기자기한 유머, 아귀가 잘 맞는 전개는 과연 영국적이다.
엄마의 뜻을 따르지 않고 가난한 농부를 선택하는 리제가 주인공인데, 결국 고집을 꺾고 가난한 사위를 받아들이는 시모네 여사의 딸 사랑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 가운데 콧등이 시큰해진다. 다양한 형태의 리본 춤, 일명 '파니 엘슬러 파드되', 여장한 남자무용수가 추는 시모네 여사의 나막신 춤, 가장 인상적인 마임인 '내가 결혼하면' 등 명장면이 많다. 리제에게 구혼하는 부잣집 바보 아들 알랭과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우산도 매력 포인트다.
레슬리 콜리어가 전설적인 리제로 명성을 떨쳤지만 이제 아르헨티나 출신의 사랑스런 발레리나 마리아넬라 누네즈가 선배를 잇는 솜씨를 선보인다. 또한 리제의 애인 콜라스 역으로 쿠바 출신의 카를로스 아코스타가 출연하는 것은 대단한 보너스다. 그는 흑인 무용수로는 역대 최고의 인기스타다.
안무가 프레데릭 애쉬튼(1904~1988)은 에쿠아도르에서 출생한 영국인이며 페루에서 안나 파블로바의 춤에 감명 받고 발레를 하기로 결심한다. 뒤늦게 시작한 탓에 일찌감치 안무로 전향하였으며, 1935년 니네트 드 발로아가 새들러스 웰즈 발레와 로열 발레의 전신인 빅 웰즈 발레에 초청한 이래 35년간 이곳에 재직했다. 1970년 로열 발레의 예술감독직에서 은퇴했지만 이후에도 로열 발레와 일정한 관계를 맺고 1980년경까지 안무를 계속했다. 그는 '가장 영국적인 안무가'라는 평을 받는데, 대체로 푸근하고 서정적이고, 가족적이며, 아기자기하고 짜임새가 뛰어난 작품들을 만들었다.
<고집쟁이 딸>은 발레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전막 발레이자 평민을 다룬 전원 발레다. 유행가와 민요를 편곡한 음악을 사용한 장 도베르발의 안무로 1789년 7월, 프랑스 대혁명 2주전에 프랑스의 보르도 극장에서 초연되었는데, 도베르발은 시골 장터에서 본 판화(야단치는 엄마, 눈물 흘리는 딸, 도망치는 젊은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1828년 프랑스에서 페르디낭 에롤의 음악에 로시니 등의 선율을 가세한 형태로 재연되어 큰 인기를 누렸고(1837년 '파니 엘슬러 파드되' 추가), 1864년 헤르텔의 음악을 사용한 파울 탈리오니의 새 안무가 독일에서 초연되고 러시아로 전승된다. 20세기에는 프레데릭 애쉬튼을 비롯하여 하인츠 스푀얼리, 필립 알롱소 등의 안무로 새로운 작품들이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