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7일- 요한복음 6:1-15
잠언 10:1-5/ 찬송 569장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빈 들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오병이어’ 사건은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었습니다(마 14:15-21; 막 6:35-44; 눅 9:12-17; 요 6:3-14).
복음서는 공통적으로 예수님을 가리켜 기적을 행하시는 구원자로 증언하지만, 특히 요한복음은 이를 ‘표적’이라고 부릅니다.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14).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온 이유는 이미 여러 가지 표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요 2:11; 4:54; 6:2).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 때였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산에 계실 때에 큰 무리가 갈릴리를 건너 예수님을 찾아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은 큰 무리가 오는 것을 보시자 그들과 나눌 음식을 마련하고자 마음을 쓰십니다.
먼저 예수님은 빌립에게 대책을 물으십니다. 예수님이 문제 해결에 나서면서 제자 빌립을 시험하신 것입니다.
빌립의 대답은 매우 현실적이고, 지극히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는 이백 데나리온 어치의 떡이 필요하다는 계산만 할 뿐이었습니다.
빌립의 친구 안드레는 보다 적극적입니다. 그는 한 아이를 예수님께로 인도하면서 그가 가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9)를 내놓았습니다.
물론 안드레 역시 예수님이 행하실 능력을 헤아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9).
이제 예수님은 한 아이의 도시락에서 해결책을 마련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앉게 하시고, 떡을 축사하신 후 나누시고, 물고기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 숫자가 여자와 아이를 제외하고 오천 명쯤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원대로 배불리 먹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버리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으게 하셨는데, 모두 열두 광주리를 채웠습니다.
‘오병이어’를 나눈 사건은 마치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일과, 또 예수님이 베푸신 최후의 만찬을 연상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보고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14)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세와 비교되는 마지막 선지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원을 임금과 같이 세상적인 권력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을 피해 혼자 산으로 떠나가셨습니다.
유대인은 그들의 열망을 충족시킬 메시야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르시는 예수님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그런 메시야 상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 바른 신앙과 진실한 고백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샬롬샬롬
☀ 다시 봄
1) 요한복음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오해할 여러 이유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먼저 예수님과 제자들이 앉은 “산”(요 6:3)은 하나님 계시의 장소이며, 이는 모세의 시내 산을 연상시킵니다. 또한 “유월절이 가까운”(요 6:4) 시기나, 광야에서 나눈 기적 역시 모세의 출애굽을 떠올리게 합니다. 사람들이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요 6:14)라고 말하는 배경입니다.
☀ 새겨 봄
1) 요한복음의 기록은 훨씬 구체적입니다. 공관복음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마 14:17; 막 6:38; 눅 9:13)라고 했다면, 요한복음은 그 떡이 가난한 사람의 양식인 보리가루로 만든 것이라고 밝힙니다. 그 음식의 출처도 소개합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요 6:9). 가난한 아이의 도시락은 가진 음식의 ‘전부’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적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안드레는 비록 부족한 것을 소개했지만, 예수님의 목적을 위해서는 넉넉하였습니다.
첫댓글 주님을 따르는 바른 신앙으로 주님이 물으실 때 적극적으로 진실한 고백이 있게 하옵소서
"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
한 아이가 갖고 있던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리 두마리 가 모두를 먹인다는 이야기가 시처럼 들립니다. 공장식 농장에서 넘치게 생산하는 세상에 살지만 식량은 오엽되었고, 유전자는 변형되었고, 굶는 사람들은 여전하고, 음식물 쓰레기는 탄소 발생의 원인이 된 시대입니다. 주님 들으소서.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의 소박함과 그 안에 모두를 먹였던 사랑을 기억합니다. 그 아름다운 이야기를 오늘 우리에게 선물해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 오늘 갈하고 지친 우리의 영혼을 주님 주시는 생명의 양식, 말씀으로 채워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