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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에 전신마비 남편 돌보는 정해경씨 "한 달 만에 의식을 찾은 남편이 힘겹게 건넨 말이 '나 살고 싶어, 나 좀 살려줘'하는 말이었어요." 정해경(46)씨는 뇌병변으로 전신이 마비된 남편 박석순(49)씨에게 줄 약을 물에 개며 4년 전 남편이 그런 말이라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 감사했다며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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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정해경씨가 남편 배에 연결된 호스에 주사기로 약을 투입하고 있다. | 정씨는 물에 정성스럽게 갠 약을 남편 배에 연결된 가느다란 호스에 주사기로 밀어 넣는다. 방 한쪽에는 약봉지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건강하던 정씨 남편이 쓰러진 건 2008년. 지방에서 의류유통 사업을 하던 남편이 갑자기 의식을 잃어 병원으로 후송됐다. 하지만 응급처치가 너무 늦어 뇌 손상이 컸다. 정씨는 "남편이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머릿 속이 텅 빈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건강을 다시 찾게 해 달라는 정씨와 삼남매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남편의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조금만 움직여도 먹은 것을 쉴새없이 토해냈다. 짧게나마 몇 마디 하던 말도 더이상 할 수 없을 만큼 몸은 점점 굳어져갔다. 병원에서 그런 박씨를 돌봐줄 간병인은 없었다. 주변 환자에게 피해가 된다며 박씨는 하루종일 하얀 커튼에 둘러싸여 천장만 바라봐야 했다. 몸을 움직이지 못했지만 정신은 또렷했기에 박씨가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욕창으로 몸은 점점 썩어갔다. 정씨는 더이상 남편을 혼자 둘 수 없어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엄마의 손길이 한창 필요한 막내 아들도 뒤로 한 채 남편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병원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병원비가 쌓여가는 것도 문제였지만, 부모 보살핌을 받지 못한 막내가 겪는 어려움이 더 큰 문제였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막내는 아버지가 아프다고, 또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라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 아이는 화장실도 못갈만큼 몸과 마음이 망가졌다. 입원한 지 몇 달 만에 퇴원해 집에 돌아온 부부는 막내아들을 보고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정씨는 "움직이지 못하는 아빠 손을 꼭 잡고 잠자는 막내 얼굴을 보면서 집에 돌아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아픈 아버지를 정성으로 돌보는 삼남매가 곁에 있으니 더 바랄 게 없다는 정씨다. 하지만 가족들의 온갖 정성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상태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주일에 두 번씩 물리치료를 받지 못하면 몸이 더 굳어지지만, 남편을 병원에 데려가는 일 또한 여의치 않다. 사업 실패로 진 빚과 한 달에 수십만 원이 들어가는 남편의 유동식 값도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다. 현재 친정 언니 집에 얹혀 사는 것도 미안한 마음 뿐이다. 정씨는 "언젠가 우리 부부가 자녀에게 짐이 되지 않을까 가슴이 저릴때가 많다"며 한숨지었다. 그래도 남편이 가족 곁에 오랫동안 머물러 주길 바란다는 정씨는 "언젠가 가족들 이름 한 번 불러주는 게 소원이다"고 말했다. 백영민 기자 heelen@pbc.co.kr ▨후견인 : 대화마을본당 빈첸시오회 김애란(엘리사벳) 회장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가장을 몇 년째 사랑으로 돌보는 가족입니다. 부인은 남편 간호로 수입이 없고 맏딸도 아직 취업을 못해 아르바이트하며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본당에서도 작은 정성을 보태고 있지만 더 많은 이들의 도움을 호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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