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차·이태원 참사…대통령 '심기' 챙기다 사고 터져
집권세력, 보수우파 이념 아닌 '심기 이데올로기'로 무장
정책은 '심기' 아닌 국정철학·정책이념으로 추진해야
지난해 10월, ‘윤석열차’라는 제목의 만평이 장안의 화제가 된 바 있다.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작품인데, 부천만화축제에 맞춰 9월 말~10월 초에 전시한 것이 SNS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며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낳았다.
그 전까지 일반시민들 대부분은 그런 작품이 있었는지는커녕 해당 공모전의 존재조차 몰랐을 터다. 하지만 어느 영화에 나온 대사마냥 “문제를 삼으면 문제가 된다”고 했던가. 문화체육관광부는 즉각 보도자료를 내어 “정치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해 전시한 것은 학생의 만화 창작 욕구를 고취하려는 행사 취지에 지극히 어긋나기 때문에 만화영상진흥원에 유감을 표하며 엄중히 경고”하였다.
이 북새통이 있고 얼마 후인 10월 말, 서울 한복판에서 생때같은 젊은이들 1백 수십여 명이 삽시간에 목숨을 잃었다. 참사 원인과 분석, 경위와 책임소재에 대한 정부의 수사와 재판이 이어졌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유족들은 여전히 정부에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있으며 대통령은 참사 1주기 추모식에 불참한 대신 엉뚱한 교회를 빌려 자기들끼리 추모예배를 드렸다. 유족이 모인 추모식에 가기엔 아무래도 마음이 불편하셨나 보다.
지난해 열린 제23회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카툰 '윤석열차'
윤석열 정부 임기중 여러 논란, 대통령 혹은 김건희씨 ‘심기’와 관련
윤석열 정부 1년 6개월을 지나며 논란이 되었던 여러 사안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면, 묘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전부는 아닐지라도 참 많은 일들이 대통령(혹은 그 배우자)의 심기(心氣)와 관련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여 년 동안 해당 공모전에서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유명 정치인들이 학생들의 손에 의해 풍자의 대상이 되었지만 단 한 번도 문제가 된 적 없었음에도 유독 ‘윤석열차’가 문제가 되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분(들)이 ‘보시기에 좋지 않을 거’란 짐작 때문에 화들짝 놀라 문제 삼은 게 아니냐는 것 말곤 선뜻 납득할만 한 이유가 없다. (실제로 당시 만화계에선 왜 문체부가 긁어부스럼으로 일을 크게 만드는지 모르겠단 얘기가 많았다.)
‘카툰’ 부문에선- 카툰이라는 장르 특성 상- 언제나 정치적 이슈와 정치인들이 단골소재로 등장하기 마련이다. 매운 것을 먹으면 배변할 때 항문이 괴로운 것과 같은 이치다. 필연이란 얘기다. 헌데 ‘카툰’ 부문에서 수상한 작품을 두고 “정치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이라며 타박하다니, 대체 뭘 어쩌라는 것인가.
이태원 참사의 원인 또한 그렇다. 사건 발생 초기 언론을 통해 이미 드러났듯, 매년 대중통제를 해오던 경찰 병력 대부분은 해당 시간에 용산 대통령실 앞 시위통제에 동원되었고 용산구청 공무원들은 삼각지역 집회 현장에서 대통령 비판 전단지를 떼고 있었다지 않은가.
문체부는, 용산구청은, 세상 그 어떤 메뉴얼보다 그분(들)의 ‘심기’를 살피는 것을 우선한 거라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용산구청장 박희영이 이태원 참사가 터진 것을 알자마자 가장 먼저 연락한 상대가 용산을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 권영세라는 점은 이러한 추론(?)을 강력히 실증해주는 예가 아니겠는가.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16일 문체부 장관직에 취임한 유인촌 신임(!)장관의 첫일성은 “‘문화의 힘’이 문체부를 넘어 전 부처 정책에 녹아들게 하겠다”였다고 한다. 참으로 멋진 말씀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옳은 말씀이기도 하다. 기실 ‘문화’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삶 전반에 스며 있는 것이기에 더더욱 맞는 말씀인 것이다.
나는 문체부가, 나아가 대통령실 이하 모든 행정부처가 ‘정책적 판단’을 해주실 것을 소망한다. 여기서 ‘정책적 판단’이란 자연스레 이념(이데올로기)을 동반한다. 요즘은 이념을 ‘반국가공산주의세력이냐, 아니냐’ 정도로 이해하는 분위기라 생뚱맞게 들리겠지만, 기본적으로 정책이란 방향(노선)을 정해야 하고 방향은 목표(이념)를 가져야 하기에 이념이 소거된 정책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책이 왜, 어떤 논리·숙의 끝에 나오는 것인지 국민은 몰라
정책의 바탕이 되는 이념이 보수-우파적이든 진보-좌파적이든 상관없다. 당당하게 다수 유권자의 선택을 받아 합법적 정통성을 가진 정부 아닌가. 하고 싶은 것 힘 닿는대로 형편 되는대로 맘껏 다 하시라. 다만, 정책과 행정의 기준이 철저히 (그런 게 실제로 있다면) 굳건한 이념적 토대 위에 펼쳐졌으면 한다.
한-미-일 삼각동맹? 동의하진 않지만 존중할 수 있겠다. 홍범도 흉상 이전? 전혀 동의할 수 없지만 최소한 그런가 보다 할 수는 있겠다. 해당 정책들이 집권세력의 이념에 동의하는 전문가들의 치열한 논쟁 끝에 도달한 결론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이제껏 대부분의 정책들이 누가, 왜, 어떠한 논리와 숙의 끝에 도출한 결과물인지 국민들은 알 도리가 없다. 육사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을 옮긴대. 왜? 공산당 출신이래. 갑자기? 이게 일국의 안보를 책임지는 국방부와 육사의 정책결정 과정이다. 믿겨지시나? 우리 집 거실에서 화분 하나를 옮겨도 이렇게 날림으론 안 한다.
대통령 말마따나 거버먼트 인게이지먼트가 레귤레이션인데 해당 폴리시에 대한 프로세스를 아무도 익스플레네이션해주지 않는다. 정말 디스트레스드하다.
과연 국정철학이나 정책이념이 존재하는가. 이쯤 되면 현 정부와 집권세력은 보수-우파라는 이데올로기 대신 그분(들)의 ‘심기’ 이데올리기로 무장한 것이라 보는 게 맞지 않을까. 그분(들)의 ‘심기’가 대한민국 행정부의 정책과 행정 결정 기준이라면 얼마나 끔찍한 노릇인가.
어느 사기업 오너의 개인적 취향이 된장찌개에 멸치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라면 웃고 넘길 일이겠으나 그분(들) 취향에 맞춘답시고 국가가 나서서 멸치 관련 산업의 생산과 유통, 무역과 예산집행 등에 영향을 끼치면 더이상 웃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능하니 할 줄 아는 건 아부밖에 없고 또 그렇다 보니 윗분의 심기에 안테나를 맞출 수밖에 없는 그 구슬픈 처지야 잘 알겠지만, 위민봉사(爲民奉事)가 사명인 공직자 아닌가. 현 정권의 공직자들이 그분(들)의 심기가 아닌 이념에 충실한 정책만 펼쳐도 윤석열 정부는 역사에 그 업적이 조금 더 남고 지지율은 지금보다 좀 더 오르며 나라가 그나마 덜 망할 거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