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덩굴에는
하희경
올망졸망 풍선들이 매달려 있다. 건드리면 피식 웃고 날아갈 것처럼 바람이 빵빵하게 들어있다. 실가지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쓰는 폼이 허풍선이 같기도 하다. 길에서 만난 풍선초는 요정들이 들고 다니는 꽃등처럼 보인다. 아니, 까만 밤길에 눈먼 이가 들고 다녔다는 등불이 저렇게 생겼을지도 모른다. 문득 신나게 풍선을 불던 때가 생각난다. 색색의 풍선으로 꼬맹이들을 홀리던 때가 동동 떠오른다.
널따란 운동장이 왁자한 소리로 분주하다. 좌판이 하나둘 날개를 펼친다. 집에서 잠자던 잡동사니들이 모처럼 콧바람을 쐬는 날이다. 가족이 입던 옷들을 깨끗이 세탁해 온 은영이 엄마. 새 공책과 크레파스, 스케치북을 묶음으로 사왔다는 영훈 아빠는 연신 싱글벙글. 밤새 구운 과자를 포장까지 예쁘게 해온 송이엄마. 책 좋아하는 찬이 엄마는 책만 펼쳐놓고 보이지 않는다.
갑자기 아이들이 엄마아빠 손을 놓고 내달린다. 좌판을 내버려둔 찬이 엄마가 풍선을 불고 있다.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 풍선들을 동그랗게 불어 실에 매달아, 달려드는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준다. 아이들은 고개 흔들며 강아지를 갖고 싶다고 소리친다. 찬이 엄마가 웃으며 기다란 풍선에 바람을 넣고 손으로 모양을 잡는다. 하얀 강아지, 분홍 강아지, 까만 강아지까지 줄줄이 눈을 뜬다.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강아지 한 마리씩 데리고 간다. 햇살 푸르른 날 색색의 풍선들이 춤을 춘다.
정림동 ‘돈보스꼬의 집’은 사랑받으며 자라야 할 아이들이 풍랑에 떠밀리다가 멈춘 곳이다. 아이들을 지켜야 할 울타리가 무너진 가정을 대신해 신부님이 부모 역할을 해주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이 형제처럼 지내고 있다. 이곳과 인연을 맺게 된 건, 두 아이를 입양하고부터이다. 입양과 파양을 거듭하다가 우리 집에 정박한 두 아이는 날개 부러진 새 같았다. 아이들의 부러진 날개를 어루만지면서 이곳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두 아이가 성장하면서 혹시라도 길을 잃게 된다면, 마음 나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일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림동에 갔다. 미사 드리고 아이들과 점심 먹고 집으로 오는 동안 십여 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돈보스꼬 아이들과 두 아이는 형제처럼 잘 어울려 놀았다. 방학이 되면 돈보스꼬 아이들이 우리 집에 와서 지내고, 내 아이도 그곳에서 방학을 보내곤 했다. 한 아이의 생일은 모두의 생일이어서, 기다렸다는 듯이 파티를 열었다. 나는 파티에 어울리는 장식을 하고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어 풍선공예를 배웠다. 풍선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꿈을 꾸게 할 것만 같았다.
오월이면 우리는 동네잔치를 열었다. 돈보스꼬의 집에 사는 아이들과 작은 끈이라도 이어진 친척이 있다면, 가족의 끈이 끊어지지 않게 하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행사였다. 봉사자들 가족까지 한데 어울려 선물을 주고받으며 하루를 지낸다. 그날, 두 아이는 그곳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다니고 나는 풍선아줌마가 된다. 노란풍선에 웃음을 넣고, 빨간 풍선에 꿈을 담고, 파란 풍선에 기도를 실었다. 우리 아이들이 모락모락 자라나 세상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길 바라면서, 강아지를 만들고 꽃과 사과를 만들었다.
이제 슬슬 마무리할 때다. 하루의 파티가 끝날 무렵 불쑥 옆구리에 손이 들어온다. 재영이가 언제부터 옆에 있었는지 나를 빤히 보고 있다.
‘재영이 풍선 안 받았어? 뭐 만들어 줄까? 강아지, 꽃, 사과?’
“아니요. 아줌마 물어볼게 있어요.”
‘뭔데?’
“아줌마 오늘 데려온 꼬마 누구에요?”
‘아, 샘이. 걔 아줌마 아들이야.’
“아줌마도 할머니한테 샘이 맡겼다가 데려온 거예요?”
‘아니. 며칠 전에 아줌마 아들하기로 했어. 걔도 엄마아빠가 없거든.’
재영이가 고개를 숙이고 중얼거린다.
‘뭐라고?’
“나도 데려가지, 왜 걔만 아들 하냐고요.”
크게 외치고 재영이가 달려간다. 줄 끊어진 풍선들이 하늘에 오른다.
돈보스꼬의 집에 있는 아이들은 부모 없는 아이들이 아니다. 한쪽 부모만 있거나 양쪽 부모가 있어도 연락이 안 되는, 때로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라다가 이곳에 온 아이들이다. 재영이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소식이 없다. 할머니가 부모 역할을 했지만 나이 많고 병이 들어 이곳에 온 아이다. 그런 재영이가 나를 나무란다. 저도 데려가지 왜 다른 애만 데려왔냐고 눈물까지 흘리며 야단한다. 문득 풍선 하나로 책임을 면하려고 했던 손이 부끄럽다.
십여 년을 그렇게 지내다가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그곳과 멀어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에 빠져 정신없이 지내던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아줌마, 저 재영이에요. 잘 지내시지요?”
‘재영이? 세상에 이게 얼마만이니? 어떻게 지내니? 보고 싶다.’
“아줌마 보고 싶어 여기저기 물어봤어요. 저 결혼해서 아이도 둘 낳았어요. 둘 다 아들이에요.”
‘그래, 그랬구나. 축하해. 결혼할 때 알았으면 갔을 텐데. 언제 한 번 보자.’
“네, 이제 연락처 알았으니까 찾아갈게요.”
며칠 뒤, 아들 손을 잡고 온 재영이와 함께 점심 먹으면서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풍선덩굴에 풍선초가 열렸다. 풍선초가 익으면 까만 씨앗이 튀어나온다. 조그맣고 동그란 씨앗은 하트 하나씩 보듬고 있다. 까만 바탕에 하얀 하트 무늬는 어쩌면 신의 약속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캄캄해도 희망은 있다는 무언의 징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