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락과 경혈을 연구하면서 그것을 실제로 눈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궁금한 부분이었고 의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1961~1965년에 북한의 김봉한 박사가 경락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하면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봉한 학설’은 경락의 존재와 양태를 밝혔고 그 작동을 DNA로 구성된 미세입자인 산알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연구를 다윈의 진화론에 버금가는 과학성과로 여겨, 그의 논문은 세계 주요 언어로 번역, 널리 퍼졌다.
그러나 봉한학설은 1966년 무렵에 갑자기 사라졌다. 아직 그 정확한 원인을 모르고 있으나, 그의 연구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던 실력자 박금철이 권력다툼에서 패해 숙청을 당하여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경락연구가 깊어지면서 DNA 존재와 역할에 의문이 일어나고 기존 생물학 이론과 마찰이 커진 것도 한 원인이었다.
그는 경혈자리에서 지름 0.5~1.0 mm의 작은 덩어리 형태의 조직을 발견했고 그것을 ‘봉한 소체’라고 명명했다. 각 소체는 경락에 해당하는 ‘봉한관’이라고 명명한 관으로 직접 연결돼 전신에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퍼져 있음을 밝혔다.
봉한관은 피부조직에서 혈관 벽을 따라 내부 장기에까지 퍼져있는데 놀랍게도 혈관 속으로도 봉한관이 연결돼 있다고 한다. 기존의 해부학에서는 혈관 내부에는 적혈구나 백혈구, 혈소판과 투명한 액체인 혈장으로 구성된 혈액만이 존재하고, 다른 해부학적 조직이 없다고 했다.
이 발견을 재확인하기 위해서 서울대 물리학부 한의학물리연구실 소광섭 교수팀이 1999년부터 본격적으로 나섰으며, 연구의 초점을 혈관 내부 봉한관을 찾는 데 두었다. 이것이 봉한 학설에서 가장 특이하기 때문이며 또한 혈관 속 봉한관을 발견한다면 신경이나 림프 등의 다른 조직들과 혼동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소 교수팀은 혈관 속은 혈액으로 가득 차 있어서 밖에서 속을 보기 힘들며, 혈관을 열어보면 피가 쏟아져 나오고 엉기기까지 해서 혈관 내의 혈액을 투명한 포도당액으로 대체하여 혈관 내부를 투명하게 만들어 실험해야 했다. 그리고 봉한관은 생체에서만 나타나므로 해부한 쥐의 생체와 형광실체현미경을 사용하여 봉한관을 관찰할 수 있었다.
형광실체현미경은 광원으로 일반적인 백색광이 아닌 형광램프가 방출하는 특별한 파장의 빛을 사용하며, 관찰 시에도 필터를 사용해 염색된 핵이 내는 빛만을 볼 수 있도록 제작한 것이다. 쥐에 형광 염색물질을 주입하고 이 형광실체현미경을 통해 관찰하면, 다른 것은 보이지 않고 염색된 핵만이 보인다.
봉한관을 찾기 위해서 여러 염색기술을 개발하였고 형광실체현미경으로 관찰하던 중, 봉한관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이 염색기술 개발이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었다고 한다. 핵의 모양과 배열을 촬영한 사진에서, 혈관이 뚜렷이 보이고 그 안팎으로 간상핵이 가늘게 배열돼 있는 모습(봉한관)이 나타났다.
소 교수는 “새로운 조직을 발견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정체를 봉한관 또는 봉한소체라고 확정하는 데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간뿐만 아니라 모든 장기와 피부에서도 이런 조직을 발견해야 ‘경락 후보’로서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점은 이 조직이 어떤 생리적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규명해야 하고, 또한 이 조직이 어떻게 전신에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지도 조사할 계획이라고 한다.
현재는 김봉한 박사의 이론 검증단계에 불과하나 이 연구가 성공한다면 한의학은 해부학적 근거를 가짐으로써 과학적 연구의 토대를 마련할 것이다. 그리고 서구 의학은 새로운 체계의 발견으로 그동안 설명하지 못했던 많은 의문들을 푸는 계기가 될 것이며 더 한층 진보된 치료기법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동서 의학의 융합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발전시킬 새로운 장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다.
강지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