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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과 율법과 믿음
천 영 대
성경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갈라디아서 3:15∼26)」
약 속
주님께서는 그의 경륜 가운데서 창세 전부터 택하시고 예정하사 정하신 때에 그의 정하신 바를 이루신다. 이러한 것들 중의 하나가 그가 약속하시고, 또 그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서는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라고 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이루려고 하실 때에 대적자요, 원수이며, 거짓의 아비인 마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를 한다. 주님께서 사도를 통해 그의 뜻하신 바를 전파함으로 갈라디아에 있는 자들이 그 전하는 바 복음을 듣고 주 예수님을 믿어 구원함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 복음 안에서 잘 생활했으나 주님의 대적자요, 거짓의 아비인 마귀가 역사하여 갈라디아에 있는 형제들이 믿음으로 생활하는 데서 돌이켜서 율법으로 돌아갔다. 마귀가 유대교도들을 사용하여 그들을 미혹함으로 그들은 유대교도들에게 미혹되어 주님을 따르는 데서 유대교로 돌아가 주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데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는 데로 이끌림을 받았다. 그래서 사도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라고 했다. 그들은 거짓의 아비인 마귀에게 미혹이 되어 그렇게 되었기 때문에 사도는 ‘누가 너희를 꾀더냐’라고 한 것이다. 또, 갈라디아서 5장 7절에서는 “너희가 달음질을 잘 하더니 누가 너희를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하더냐”라고 했다. 이것은 주님의 대적자요, 거짓의 아비인 마귀가 달음질을 잘하고 있던 갈라디아의 형제들을 막아 진리를 순종치 않게 했다는 것이다. 주님만 끝가지 추구하지 않고 중도에서 마귀의 역사를 따름으로 진리를 따르는 데서 돌이켜 율법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타락한 육신은 비록 주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다 할지라도 기회만 있으면 육체에 상관된 계명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히브리서 7장 16절에서는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라고 했다. 율법은 영에 상관된 것이 아니고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이라고 했다. 또, 히브리서 9장 10절에서는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고 했다. 히브리서 7장 16절에서도, 9장 10절에서도 다 같이 유대교의 율법에 대해 육체에 상관된 예법이라고 했고 개혁 할 때까지 맡겨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로마서 8장 6∼8절에서는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며,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고, 또한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다. 육신 안에서는 착하게 보이는 일이든, 악하게 보이는 일이든 다 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거짓의 아비인 마귀에게 속아 타락한 육신의 수고와 노력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거나, 의롭게 되고자 하거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한다. 이로 인해 평생 동안 허탄한 수고만 하다가 생을 마감하고 만다. 이방종교를 신봉하는 자들 모두가 이러한 삶을 살다가 끝을 내고 만다.
우리 주님께서는 타락한 육신에 관계된 계명의 법인 율법을 주시기 전에 먼저 약속을 주셨다. 창세기 12장 1∼3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자신이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했고, 또 그에게 복을 주어 큰 민족을 이루고 그 이름을 창대케 하여 복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주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었다. 이 약속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시기 전에 하신 약속이다.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시기 사백 삼십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신 것이다. 율법이 먼저가 아니고 약속이 먼저다. 사람의 약속도 지켜야 하는데 신실하시고 미쁘신 주님의 약속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갈라디아서 3장 15∼18절에서는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고 했다. 사람의 언약이라도 한번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는 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하신 약속은 얼마나 더 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자손은 다른 사람이 아니고 그리스도라고 했다. 사람이 한 약속도 함부로 폐하지 못하는 데 하나님께서 사백 삼십년 전에 주신 약속은 더욱 폐하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율법이 주어졌다고 해서 그 전에 하신 주님의 약속이 폐하여지거나 없어지지 않고 여전히 그 약속은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은 그대로 있고 거기에 더하여 율법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약속도 있고, 율법도 그 정하신 때까지 있다는 것이다. 로마서 9장 3∼6절에서는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찌라도 원하는 바로라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라고 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다’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언약들과 율법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 이것은 언약이 없어지지 않고 율법과 함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지지 아니했다고 했다. 사도행전 26장 6절에서는 “이제도 여기 서서 신문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라고 했다. 사도는 주님께서 그의 조상에게 주신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폐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고 있다고 했다.
율 법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의도를 제대로 알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로마서 10장 2∼4절에서는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고 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해 열심히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했다고 했다.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과, 하나님을 위하는 것과,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면 우리의 하는 일이 주님을 위하기는 커녕 도리어 주님을 대적하는 길을 가게 된다. 갈라디아서 3장 17∼24절에서는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을 거스리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능히 살게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다. 주님께 약속하신 그 약속 보다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주님의 약속을 폐기하여 그 약속을 무효화시키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약속을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유업을 은혜로 주셨다. 이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율법을 주셨을까?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범법함을 인하여 더 한 것이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주님의 약속을 폐하고 그 대신에 율법을 주셨다고 말하지 않고 범법함을 인하여 더 했다고 했다. 곧,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존속하는 가운데 범법함을 인하여 더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기간은 약속하신 자손이 오기까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약속하신 자손은 그리스도이시다(갈 3:16). 그런데 주님께서 약속에 더하여 율법을 주신다고 해서 그의 약속을 거스르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주님은 생명을 주는 율법을 주시지 않았다고 했다. 또한, 성경은 모든 사람을 죄 아래 가두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한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나 믿음이 오기 전까지는 율법 아래 매인바 되어 믿음이 계시될 때까지 갇혀 있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도록 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그에게로 인도하는 일종의 가정교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온 이후에는 우리가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했다.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그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함을 받도록 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고 우리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도록 하기 위해, 믿음이 오기까지 보호를 받도록 하기 위해 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온 후에는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다고 했다. 즉, 율법에서 해방이 된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11, 12절에서는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고 했다. 이 성경에서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고 했기 때문에 믿음이 아닌 다른 것, 율법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이미 말씀하신 것이다. 하박국 2장 4절에서는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 주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후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다. 창세기 15장 6절에서는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했다. 아브라함은 모세가 율법을 받기 전의 사람이다. 그런데 이때도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을 말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서는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도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했는데, 이것은 주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의 일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율법과 상관없이 율법시대 전이나, 율법시대나, 율법시대 이후에도 없어지거나 변치 않고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했는데, 이것은 육신이 연약하고, 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도리어 그와 원수가 되기 때문이다(롬 8:3∼8). 로마서 3장 20∼22절에서는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고 했다.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 아니고, 율법으로 죄를 깨닫게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는데 그것은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들에게 미치는 의로서 차별이 없다고 했다. 갈라디아서 2장 21절에서는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고 했다.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가 되지 못하고, 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므로 그의 죽음은 헛된 죽음이 된다는 것이다. 전지전능하시고,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주님은 결코 헛된 죽음을 하실 정도로 미련하고 어리석은 분이 아니다.
믿 음
우리 주님께서는 그의 전지전능하심과 사랑과 은혜 가운데서 우리를 율법의 행위로 구원하는 길을 내지 않고, 그의 은혜로 그를 믿는 믿음 안에서 그 길을 내셨다. 에베소서 2장 8절에서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주님의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우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갈라디아서 3장 22∼26절에서는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라고 했다. 믿음이 오기 전에는 율법의 보호를 받으면서 믿음이 계시 될 때까지 갇혀 있다고 했다. 그런데 믿음이 온 후로는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했다. 주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고 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다. 이렇게 주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율법의 역할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율법의 역할이 없다. 그 이후로는 주님을 믿는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2절에서는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율법을 지킴으로 얻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그 믿음으로 받는다고 했다. 로마서 5장 1절에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다고 했다. 우리는 이렇게 믿음으로 의에 이르고, 또 그 믿음으로 산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다. 사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산다고 했다. 고린도후서 4장 13절에서는 “기록한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말하는 것도 임의로 하지 않고 믿음으로 말한다고 했다. 고린도후서 5장 7절에서는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고 했다. 행하는 것도 임의로 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한다고 했다. 이제 우리의 생활은 다른 생활이 아니고 믿음의 생활이다. 로마서 14장 23절에서는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했다. 이 내용에서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을 믿음의 생활이라고 한다. 심지어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는 것도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로마서 1장 5절에서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라고 했다. 또, 로마서 16장 26절에서는 “이제는 나타내신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비밀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이라고 했다. 이들 내용에서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을 말하고 있다. 로마서 4장 13∼16절에서는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고 했다. 약속은 은혜에 속하기 위해 믿음으로 받는다고 했다. 율법의 행위, 곧 특별한 삶을 살므로 약속을 얻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얻는다고 했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서는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다. 이렇게 약속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다고 했다. 이렇게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참으로 놀라운 것으로서 믿음으로 사는 자들은 참으로 복된 자들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