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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오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민주와 독재의 싸움이다.
온기철 2022년3월19일
2016년 트럼프는 예상을 뒤집고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민주당 후보는 힐러리 클린턴 이었다. 선거 일주일 전에 여론조사가 마감 되었다. 이전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클린턴이 우세 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와는 달리 트럼프의 승리였다. 미국은 트럼프 지지세력과 반트럼프 세력으로 양분 되었다. 2020년 재선에 실패한 트럼프는 2021년1월6일 상하원이 국회의사당에 모여서 바이든 당선을 인준 하는 과정을 폭력으로 뒤집기 위해서 극우 트럼프 지지자들을 선동 하여 국회의사당을 습격 하게 했다. 쿠데타에 가까운 반역 이었다. 미국이 푸틴의 계략에 말려들어가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무너질 뻔 한 사건이었다.
선거 약 일주일 전 힐러리 클린턴 선거 본부, 민주당 국회 선거위원회, 민주당 본부 컴퓨터가 해킹 당 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한 루비오의 캄퓨터도 해킹 당했다. 이중 힐러리 클린턴에게 불리한 정보가 인터넡에게 뜨기 시작 했다. 그리고 해킹으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악 선전이 돌았다. 해킹을 한 장본인들은 여러명의 개인 러시아 인 해킹꾼들이었다. 이들 뒤에는 푸틴과 그의 부하들이 있는 것으로 추측 되지만 증거를 잡기가 힘들었다. 물론 수상한 러시아인들이 트럼프 선거운동원과 측근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외에도 해커들은 21개 주의 선거인 등록 명부를 들여다 보았고 수천명의 개인정보를 가져 갔다. 로버트 뮬러 특검 수사팀이 트럼프와 측근들이 러시아와 협조하여 선거운동을 했는지 여부를 수사 했으나 확증을 잡지 못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하수인으로 의심되는 트럼프를 탄핵하는 데 실패 했다.
트럼프가 당선 되자 일부 러시아인들은 푸틴의 승리라고 축배를 들었다. 당선된 트럼프가 푸틴을 방문했다. 어느 기자가 트럼프에게 러시아 선거 방해 공작에 대해서 트럼프에게 물었다. 그는 푸틴이 그 사실을 극구 부인하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라고 말 했다. 그 옆에 있던 푸틴은 빙그레 웃었다. 푸틴은 트럼프의 은인 이었다. 푸틴은 트럼프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똘똘 뭉친 트럼프 지지자들로 인해서 미국 공화당이 타락 한 것을 보고 푸틴과 러시아 사람들은 미국민의 분열이 자기들의 작품이라는 자부심에 벅차 있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푸틴이 조지아를 침략하여 일부 영토를 강점하고 체첸에 러시아 괴뢰 정부를 세워도 크게 반발하지 않았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리미아를 강점하고 유크라이나 동부 단바스 지역 반군을 지원하여 내란을 조장 해도 푸틴과 러시아는 크게 손해 보지 않았다. 러시아인들은 옛 소련의 영토를 회복하려는 푸틴의 노력에 찬사를 보냈다. 80%의 러시아인들은 푸틴을 지지 했다.
푸틴은 20여년동안 공들여 온 우크라이나 합병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2021년7월21일 푸틴은 “러시아 사람들과 유크레인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하나 이다(On the Historical Unity of Russians and Ukrainians)”라는 제목의 아티클을 발표 했다. 그는 유크레인 과 러시아의 역사를 상세히 설명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진정한 유크레인의 독립성은 러시아와의 파트너쉽으로 만 가능하다고 확신 한다. 두 민족의 종교적, 인종적, 문화적 관계는 수 세기에 걸쳐서 같은 뿌리에서 이루졌고 공통된 시도, 결실과 승리에 의해서 굳어 졌다. 우리의 형제같은 관계는 자손대대로 내려 왔다. 형제애는 현대 러시아와 유크레인에 사는 사람들의 가슴, 마음, 그리고 피속에 존재한다. 이것은 수백만 가족들을 하나로 묶어 놓았다. 우리가 함께 하면 몇배 더 강해질 것이고 성공 적일 것이다. 우리 한 민족을 위하여”
유크레인은 유럽에서 두번째로 큰 영토를 가지고 있고 인구가 4천만이나 되는 큰 나라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비옥한 땅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영토가 평지 이다. 폭우가 쏟아지지 않고 항상 적당한 강우량을 유지하여 농사 짓기에 알 맞는 환경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유럽의 빵 바구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고 한다. 러시아와 서 유럽 사이에 끼어 있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외세의 영향으로 여러 민족이 얽혀 살고 있고 외국의 침략이 잦았기 때문이다.
스라브족은 러시아 사람의 대명사이며 그들의 종교는 러시아 정교이다. 장황하게 늘어 놓았지만 푸틴이 주장하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일체 주장의 역사적 근거는 키예프 왕국(공국)에 있다. 9세기에 슬라브 족은 동 북부 유럽에 지금의 우크라이나 수도 케에브를 중심으로 나라를 세웠는데 이를 Kievan Rus(키에브 루스국)이라고 한다. 모스크바를 포함하는 러시아, 그리고 핀란드, 폴란드, 발틱3국이 포함되는 북유럽과 우크라이나에 펼쳐져 있는 결속력이 약한 연방 국가 였다. 루스국은 13세기에 몽골족의 침략으로 망했다. 그리고 슬라브족의 중심이 케이브 에서 모스크바 공국으로 옮겼다.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가 각각 자기들이 슬라브족의 원조 국가라고 주장 하는 역사적인 근거이다.
. 루스 왕국 멸망 이후 우크라이나 땅에는 갈리치아-볼리니아 공국이 존재 했으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의해서 정복 되었다. 그 후 러시아, 폴란드, 오스트리아-항가리에 의해서 영토 분할이 오고 가고 한다.
20세기 초에는 서부 우크라이나는 오스트리아가 동부 는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었다. 1917년 볼셰비키 러시아 혁명 이후 이 두지역을 합쳐서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이라는 독립국가가 탄생 했으나 1922년 서쪽은 폴란드 에게 동쪽은 소비에트 연방으로 흡수 되었다.
Holodomor(to kill by starvation)
스탈린은 1932년에서 1933년에 걸쳐서 유크라이나 사람들을 인위적으로 굶어 죽었다. 1930년 자기 소유의 땅을 경작하여 먹고 살고 있는 우크라이나 농부들에게 청천벽력 같은 명령이 떨어 졌다. 스타린이 개인소유의 땅을 집단농장에 내놓고 일정량을 국가에 바치고 농장원들 끼리 똑같이 나누어 먹으라고 했다. 많은 농부들이 이를 거절 했다. 독립운동에 가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멀고 먼 시베리아로 이주 하기도 했다. 그곳에서는 자기 땅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멀리 블라디보스토크 까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최근까지도 러시아로 이주 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많이 있다고 한다. 이민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본국에서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우쿠라이나 보다 잘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현재 러시아에는 2백만이 넘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살고 있다.
기근은 우크라이나 뿐만아니고 소련 전역에서 일어 났다. 스탈린은 우크라이나 독립운동을 저지하기 위해서 우크라이나 사람을 모두 아사 시키려고 했다(genocide). 기근이 심한 데도 공동농장 공출 량을 모두 거두어 갔다. 러시아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서 였다. 곡식을 외국에 수출 까지 했다. 먹을 양식이 없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굶어 죽어야 했다.
사람들은 사람을 잡아 먹었다(cannibalism).
1933년6월 한 여의사가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아직 다른 사람에게 먹히지 않았지만 이 편지가 당신에게 도착 할 무렵에 많은 먹이감 중에 하나가 되지 않을 자신이 없네. 선량한 사람들이 먼저 죽었다네. 다음에는 도둑질 하기를 거부하고 몸을 팔지 않은 사람들이 죽고,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준 사람들이 죽었다네. 그 다음에는 시체 먹기를 거절 한 사람들이 죽고, 동료를 죽이기를 거절 한 사람들이 죽었다네. 마지막으로 자식들을 잡아 먹기를 거절 한 부모들 마저 죽었다네.” 라고. (wikipedia)
스탈린 굶어죽이기 작전으로 적게는 3백만 많게는 천만의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아사 했다고 한다.
소비에트 연방(소련)내 유크레인의 위상
소련 내의 연방국은 모두 15개국이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나라가 우크라이나 였다. 러시아 다음으로 인구가 많았다. 소련의 대부분의 농산물이 이곳에서 생산되었다. 스탈린은 농업이 발달한 우크라이나를
공업화 시켰다. 농부가 공장 노동자로 일해야 했다. 농사일을 할 사람이 없으니 수확이 줄었다. 이와 같이 공업화는 사람들을 굶어 죽게 하는 데 한몫 했다.
제철소가 건설 되어 막대한 양의 철강을 생산 했다. 로케트 엔진 공장이 우크라이나에 있었다. 우크라이나 엔진 제조 기술이 북한에 전수 되었다고 한다. 핵 누출로 유명한 체노빌 원자력발전소 도 우크라이나에 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의 방어 산업 기지 였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 되었지만 소련이 망할 무렵에 우크라이나는 농업과 공업이 발달 한 보물 같은 나라 였다.
소련의 붕괴와 우크라이나 독립
소련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카자흐스탄에 핵무기를 설치 했다. 우크라이나에는 러시아, 미국 다음으로 많은 핵무기가 설치 되었다. 세계 3대 핵 보유국이었다. 1922년에 만들어 진 소련은 1991년에 붕괴 되었다. 국가가 모든 재산을 소유하고 산업을 계획하여 똑같이 나누어 주는 공산주의는 사람이 일할 의욕을 상실하게 했다. 생산이 감소 되어 국가는 국민에게 나우줄 것이 부족했다. 국가는 파산 했다.
러시아와 미국은 우크라이나 에게 가지고 있는 핵을 모두 러시아에게 반납 하는 조건으로 독립을 보장 했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핵을 일부라도 가지고 독립 했으면 오늘날 같은 사태는 일어 나지 않았을 수 도 있지만 당시에 핵을 반납하지 않고 독립 할 수 있었을 지 의문이다.
우크라이나가 독립하자 러시아 사람들은 “이제 러시아는 망했 구나” 할 정도로 실망 했다. 우쿠라이나는 러시아인들의 자존심이었고 큰 재산이었다.
우크라이나는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경험이 없는 전 공산당간부들이 지도자가 되었고 지독한 부패에 시달 렸다. 우크라이나의 청렴도는 세계 144위 이다.
우크라이나의 서부는 친서방 국수주의 편향이고 동부 단바스 지역과 남부 크리미아 지역은 러시아 를 선호 하는 사람들이 다수 이다. 따라서 정권도 친서방 을 주장하는 대통령과 친러시아 성향의 대통령이 번갈아 가면서 바뀐다. 한편 러시아는 자기 쪽의 인사를 집권 시키려고 가진 술수를 쓴다. 서방 측은 부인하지만 러시아와 비슷한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 한다.
우크라이나의 두번째 대통령 Leonid Kuchma는 2004년 재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 했다. 그는 10년 이상 장기 집권 했고 수 많은 스캔들에 연루 되어 있었다. 그는 자기 정부의 국무총리 였던 Viktor Yanukovych를 추천 했다. 러시아가 선호하는 후보였다. 야당 후보는 Viktor Yushchenko 였다. 그는 유럽연합 가입을 원했다. 친서방 정책을 약속 했다. 엄청난 부정 선거 인 데도 친러시아 후보 야누코비치가 근소한 차이로 이겼다. 야당과 시민들이 시위에 나섰다. 대법원이 선거 무효를 선언 하고 재선거에서 친서방 후보 유쉬생코가 승리 했다 (Orange Revolution).
2010 대선이 실시 되었다. 오랜지 혁명 때 동지 였던 Yulia Tymoshenko 가 당시 대통령이었던 Viktor Yushchenko에 대항하여 출마 했다. 이 틈새를 노리고 Viktor Yanukovych가 또 대권에 도전 했다. 분열된 친서방 파는 친러파에게 정권을 내 주었다.
2013 야누코비치는 유크레인과 유럽 연합과의 협정에 조인하지 않았다. 대신 러시아와의 관계를 돈독히 했다. 대규모의 데모가 일어 났다. 시위대는 여러 정부건물을 점령 했다. 2014년2월 의회는 야누코비치를 탄핵 했다. 그는 의회의 결정에 불복하고 러시아 비밀 경호원의 보호 아래 러시아로 망명 했다(Euromaidan). 푸틴은 그에게 러시아 시민권을 주고 러시아에 살게 했다. 그는 푸틴의 2014년 러시아가 크리미아를 침공 할 때 찬성도 아니고 반대도 아닌 어정쩡 한 태도를 보였다. 그는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이 성공 하여 현 젤렌스키 정권이 몰수 되고 새로 들어설 허수아비 친러시아 정권의 수반 후보자 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
서방과 러시아의 세력 다툼
전 소련연방 국가들은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서 독립을 유지 하려고 미국과 서방 국가들에게 손을 내밀고 러시아는 이들을 러시아 세력권에 넣으려고 끊임없는 노력을 하고 있다.
냉전시대에 미국은 유럽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만들어 소련의 세력 확장을 막았다. 소련은 이에 대항하여 바르샤바(Warsaw) 조약 기구를 만들어 동구 위성국가들을 보호 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 하면서 동구 바르샤바 조약 기구도 해체 되었고 동구 유럽국가들은 자본주의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나토는 건재 했다. 러시아로서는 안심할 수 없는 구도 였다. 그래서 나토로 부터 나토의 세력을 독일 동쪽으로 확장하지 않 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옛 소련 위성국가와 소련에 속해 있던 국가들은 러시아의 위협으로 부터 자유롭기를 원 했다.
서방 또한 그들의 바람을 거절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2004년 체코, 슬로바키아, 항가리, 폴란드는 물론
발틱3국(Estonia, Latvia, Lithuania) 이 나토에 가입 했다. 유럽연합은 2008년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도 나토에 가입 시킬 의향이 있음을 발표 했다.
푸틴은 즉시 우쿠라이나를 나토에 가입시키려 하는 행위는 “러시아에 대한 적대감의 표시”라고 경고 했다. 수개월 후 푸틴은 조지아를 침공 했다. 1991년 소련붕괴 당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서방측에 끌어 드리는 일은 러시아를 공격적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고 하면서 우크라이나 서방화를 꺼려 했다. 그러나 소련 치하에서 어려움을 겪은 우크라이나는 유럽국가가 되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럴수록 러시아의 우크라이나를 자기 편에 넣으려는 압력은 가속 되었다.
2022년 2월24일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러시아는 15만 대군과 비교도 안되는 화력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 했다. 본인을 비롯 한 모든 사람들이 일 이주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 할 것이라고 예상 했다. 그러나 예상을 뒤집고 러시아군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군대와 시민은 의외로 선전 하고 있다.
유럽연합 국가와 미국은 러시아와 러시아 올리가크에게 강력한 경제 제재를 하고 있다. 러시아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루블의 가치가 반으로 떨어 졌다고 한다. 맥도날드 등 중요한 미국과 유럽연방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철수 하고 있다. 러시아 항공기가 미국과 서방국가로의 운행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러시아가 고립되는 듯 보이고 있으나 푸틴의 신음 소리는 아직 들리지 않는 다. 베네주엘라, 북한과 이란에게도 강력한 쌩숀을 가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없다. 푸틴이 권좌에서 물러날 지도 모르 지만 전례를 보면 독재자에게 쌩숀은 솜 방망이이다.
러시아의 청렴도 순위는 세계 127위이다. 지독히 부패한 나라이다. 돈많은 기업가가 지배하는 나라이다.
사업과 정치를 도맡아 하는 사람들을 Oligarchy 라고 한다. 푸틴 정부는 Oligarchy government 이다.
FSB는 옛 소련의 KGB를 승계 한 러시아 최고의 정보 기관이다. 푸틴은 FSB에게 우크라이나 국내에 흑색 선전을 하여 러시아군이 처 들어가면 민중봉기가 일어나서 러시아군을 환영하고 꼭두각시 정부를 지지하게 여론조성을 하라고 지시 했다. 침공 전에 FSB는 여론조성이 완료 되었다고 보고 했다. 푸틴이 원하는 맞춤형 보고를 한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현정부가 나치 정부라는 러시아 흑색 선전을 믿는 우크라이나
사람은 거의 없었다. 침공한 러시아군을 환영하기는 커녕 시민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용감하게 싸우고 있다.
“ 훈련하려 온지 알았는 데 전쟁 터로 내몰렸다”고 말하는 러시아 병사들이 많이 있다. 탱크를 버리고 도주하는 병사들 도 있다. 집시들이 이 탱크를 훔쳤다는 보도도 있다. 미국이 준 안티 탱크 포는 끝이 보이지 않게 한줄로 선 러시아 탱크를 하나 하나 박살을 내고 있다. 우크라이나 수도 케에브를 포위 한지 일주일이 지나도 러시아군은 시내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해빙기인 3월이 되면 진흙 땅이 녹아서 탱크가 도로를 벗어 나면 움직일 수 가 없다. 할 수 없이 탱크는 도로에 한줄로 서야 한다. 외길에 한줄로 서 있는 탱크는 앞차가 못 움직이면 뒷차는 고장난 앞차가 치워질 때 까지 꼼짝도 못 한다. 탱크는 앉아 있는 오리(sitting duck)이다. 전투 훈련이 부족한 러시아 병사들의 탈영이 비일비재 하다고 한다. 미국 정보 기관은 파괴된 탱크의 숫자에 탱크 한대에 타는 인원을 곱하여 러시아군 사망자를 추정 했는 데 약7,000명이라고 한다.
전쟁을 하려면 포병과 공군이 지상군과 연락 하여 포격과 폭격이 끝난 다음에 보병이 공격해야 하는 데 서로 연락이 잘 안되어 타이밍이 맞지 않아서 많은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한다. 물론 나토 측의 통신교란도 한몫 하고 있다고 하지만 러시아군의 자책도 자주 일어 나고 있다고 한다.
러시아군은 보급에 애를 먹고 있다, 병사들에게 제대로 된 식사도 제공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정보기관은 사상자 발생으로 인한 병력 손실을 10%-20%로 추산하고 있다. 10% 이상 병력이 손실 된 부대는 전투 불능이라고 한다. 보충병이 와야 부대가 살아 난다. 러시아 국내의 반전 분위기에 징집 하기도 힘든 모양이다. 푸틴은 시리아에서 높은 보수를 주고 용병을 모집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푸틴은 시리아 대통령 아사드의 은인이다.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어 젤렌스키의 리더쉽 또한 국내외의 절찬을 받고 있다. 그의 미국 상하원 연설은 2차대전 당시 처칠의 연설을 능가 한다는 평이다. 젤렌스키의 리더쉽 으로 똘똘 뭉친 우크라이나 군대와 시민은 종이 호랑이 같은 러시아군을 상대로 잘 싸우고 있다.
궁지에 몰린 푸틴은 무차별 폭격으로 도시를 파괴 시키고 민간인을 죽여서 우크라이나 정부로 하여금
러시아가 요구 하는 조건을 들어주게 하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과 미국은 렐렌스키의 리더쉽과 우크라이나 국민의 의지에 힘입어 전쟁초기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극적인 원조를 하고 있다. 푸틴의 비인간적인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폭격은 전세계 사람들을 분개 하게 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나라 젊은 이들이 자원해서 전쟁에 참여 하겠다고 우크라이나에 모여 들고 있다고 한다.
푸틴과 시진핑이 북경 동계 올림픽에서 만났다. 둘은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구 소련 국가가 참여 하는 새로운 경제 협력을 약속 했다. 일종의 독재국가 연합이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 했다.
전쟁에 필요한 물자가 부족해진 푸틴은 시진핑에게 원조를 요청 했다. 시진핑이 이를 거절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믿기 힘든 이야기 이다. 오늘 바이든이 시진핑에게 만약 러시아를 도우면 중국에 심각한 피해가 갈 것이라고 경고 했다고 한다.
트럼프는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 하자 푸틴을 스마트 하다고 극구 칭찬했다. 이에 공화당 트럼프 지지자들이 크게 반발 했다. 얼마 후 트럼프도 푸틴을 비난 했다. 전쟁은 공화당 내 트럼프 지지자들을 분열 시키고 있다. 미국 상하원은 한 목소리로 푸틴을 비난하고 우크라이나 원조에 찬성 했다. 전쟁은 미국을 하나로 단결 시키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세상을 독재국가와 민주국가로 갈라 놓는 계기 될 조짐이다. 트럼프를 앞세워 미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던 푸틴은 몰락의 위기에 처해 있다. 전쟁 전에 중국을 우방으로 확보 했다고 좋아 했지만 중국에게 러시아의 치부를 들어내어 중국이 동맹의 가치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반면에 푸틴의 망발은 민주주의 국가들의 결속을 강화 했다. 또한 미국은 민주국가의 리더 이며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음을 세상에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전쟁은 푸틴의 오산이었다. 미국을 깔본 푸틴의 운명은 모든 독재국가의 운명을 결정 해 줄지도 모른다. 시진핑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