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성악가 오현명(85세) 한양대 음대 명예교수가 24일 오후 지병인 간암으로 타계하셨습니다.
1924년 중국 만주의 푸순(撫順)에서 태어나신 고인은 중학교 2학년 때 선양 서탑교회에서 찬송가 ‘예수 나를 오라 하네’를 부르며 처음 무대에 섰다고 합니다. 일제 말기 일본군에 징병 1기로 끌려갔다가 일본에서 광복을 맞고, 이듬해인 1946년 서울대 음대의 전신인 경성 음악학교에 입학했고. 1948년 서울대 음대 성악과 졸업 후 서울예고 교감, 한양대 음대 학장 등을 역임하며 평생을 오페라와 가곡 발전과 성악 교육에 힘써온 한국 성악계의 산증인이었습니다.
1948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공연 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비롯해 50여 편의 오페라에 출연하였고 국립오페라단 단장(1964~82년)재직 시절에는 40여 편의 오페라를 연출하였습니다.
당신 스스로를 ‘노래 나그네‘라 칭하시며 63년부터 한국 가곡으로만 프로그램을 꾸민 독창회를 10 여회 열었고, 변훈(1926~2000) 작곡 가곡 ‘명태’를 구성지게 불러 대중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으며 한국성악예술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고. 한국 1세대 오페라 가수로 활동하였습니다.
상훈으로는 문화예술상대통령상(1975년), 국민훈장모란장(1990년), 보관문화훈장(1999년) 등을 받았습니다.
한편, 고인의 회고록 ‘다시 부르고 싶은 노래’가 24일 출간됐습니다. 고인의 삶과 60여년의 성악 인생을 정리한 책으로 오래 전 출간 된 ‘오페라 실패담’에 이어 가곡관련 뒷이야기와 고인의 인생사를 사진과 함께 실었습니다.
내가 음대 입학하던 1964년, 강사로 출강하시며 유난히 많은 관심을 보여주시던 선생님을 학교에서처음 뵈었고, 67년(대학4학년 때) 선생님의 추천으로 국립오페라단 주최 베버의 “마탄의 사수” (명동국립극장)와 그 후 풋치니의 “라보엠” 등 오페라에서 선생님을 모시고 함께 연주 했고, 선생님께서 연출하신 오페라 몇 작품에 출연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윗트가 넘치시고, 유난히 유머가 많으시어 선생님과 함께한 모든 모임에는 웃음이 떠날 줄을 모르게 재미있고, 화기애애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오랫동안 건강이 안 좋으시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찾아뵙지 못하고, 오늘(6/25) 장례식장인 한양대병원에 다녀왔네요. 원로 음악인 장례식이어서 많은 학교와 음악단체의 조화가 눈에 띄었고, 조문 첫날 낮에 다녀온 관계로 많은 조문객을 만나지 못했으나, 안형일교수님, 박노경교수님 등 평생에 함께 연주활동 하시던 원로성악가 선생님 몇 분과 박수길, 신영조, 신영자, 박영근, 정동희, 박정원, 이요훈 교수 등 제자들, 혹은 한양대음대 후배 교수들 몇 분을 만났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참고” 조영남 대중가요 가수도 64년 나와 함께 입학한 class-mate였는데 오현명교수의 애제자였음.)
첫댓글 음 악계의 거목이신 고 오현명 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謹弔 오현명교수 명복을 빕니다. 전 音에 門外漢. 靑川
아름답게 사신 양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편안하소서
음악계의 거목 오현명 선생은 가셨어도 그가 가르친 제자들이 대신하여 음악계를 지키고 있습니다. 또 오현명선생의 제자들이 오현명선생과 같은 거목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 가시는 걸음 걸음 사쁜히 가셔서 평안히 잠드소서 ...명복을 빕니다.
머리가 유난히 하얗게 멋진 모습의 교수님 직접뵙진 못했으나 멋있게 부르신 노랫 소리가 귓가에 맴돕니다 하늩에서도 멋진 모습 보여주실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