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馬軍大將軍伊昕巖(마군대장군이흔암)棄市(기시)昕巖業弓馬(흔암업궁마)
마군대장군
이흔암을 저자에 내어 죽였다. 흔암의 직은 궁마로써
見利躁求(견이조구)事弓裔(사궁예)以鉤距(이구거)得見任用(득견임용)
이로움을
보면 재빨랐으며 궁예를 섬길 때 은밀하게 염탐해 고변하여
신임을 얻었다.
至裔末年(지예말년)襲取熊州(습취웅주)因以鎭之(인이진지)
궁예 말년에
이르러 웅주를 습격하여 취하고 그곳에 주둔하였는데
聞王即位(문왕즉위)潛懷禍心(잠회화심)不召自至(불소자지)士卒多亡(사졸다망)
왕이 즉위한
소식을 듣고 몰래 나쁜 마음을 품고 부르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오자
사졸들이 많이 도망하여
熊州復爲百濟所有(웅주부위백제소유)守義刑臺令(수의형대령)閻萇(염장)
웅진이 다시
백제의 소유가 되었다. 수의형대령 염장과
與昕巖(여흔암)比隣(비인)知其陰謀具奏 (지기음모구주)王曰(왕왈)
흔암이 이웃에
나란히 있어 그 음모를 알고 모든 것을 왕에게 아뢰자
왕이 말하기를
昕巖(흔암)棄鎭自來(기진자래)以喪邊疆(이상변강)罪實難原(죄실난원)
“흔암은
진을 버리고 스스로 와서 변경을 잃었으므로 죄는 실로 용서할 수 없으나
然(연)與我並肩事主(여아병견사주)情分有素(장분유소)不忍加誅(불인가주)
그러나 나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주군을 섬겼으니 정분이 본래
있어 차마
죽일 수가 없다.
且其叛形未露(차기반형미로)彼必有辭(피필유사)
또 그가
배반함이 아직 노출되지 않았으며 저들은 반드시 변명의 말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萇請密令伺之(장청밀령사지)王遣內人(왕견내인)至萇家(지장가)從帳中候之(종장중후지)
염장이 은밀히
사람을 시켜 염탐하기를 청하여, 왕이 나인을 보내 염장 집에 이르러 장막 중에서 살피자
昕巖妻桓氏至厠(흔암처환씨지측)謂其無人(위기무인)旋已長吁曰(선이장우왈)
흔암의 처
환씨가 화장실에 이르러 사람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돌아 보고는 탄식하면서 말하기를
吾夫事若不諧(오부사약불해)則吾受禍矣(즉오수화의)言訖而入(언흘이입)
“우리 남편의
일이 만약 잘못되면 우리는 화를 입을 텐데” 하고서 말을 마치자 안으로 들어 갔다.
內人以狀聞(내인이상문)遂下昕巖獄(수하흔암옥)具伏(구복)
나인이 상황을
알리자 드디어 흔암을 하옥시키니 모두 자백하였다.
令百僚(령백료)議其罪(의기죄)皆曰(개왈)當誅(당주)
신하들에게
명령하여 그 죄를 논하게 하자 모두 말하기를 “마땅히 주벌하여야 합니다.” 하였다.
王親讓之曰(왕친양지왈)
왕이 친히
꾸짖어 말하기를
汝素畜兇心(여소축흉심)自陷刑辟(자함형피)法者天下之公也(법자천하지공평야)
“네가 평소에 흉악한 마음을 길러
스스로 죽을 죄에 빠졌으니 법이란
것은 천하에 공평한 것이니
不可私撓(불가사요)昕巖流涕而已(흔암류체이이)令斬於市(령참어시)
사사로이
어지럽힐 수 없다.” 하자 흔암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저자에서
참수하기를 명령하고
籍其家(적기가)黨與不問(당여불문)
그 집을
적몰하고 함께한 무리는 불문에 부쳤다.
○秋七月詔曰(추칠월조왈)泰封主(태봉주)以民從欲(이민종욕)惟事聚斂(유사취렴)
가을 7월에 조하기를 “태봉주가 백성들을 괴롭혀 자기 욕심만을 채우니 오직 거두어들이기만 하고
不遵舊制(불준구제)一頃之田(일경지전)租稅六碩(조세육석)置驛之戶(치역지호)賦絲三束(부사삼속)
옛 제도에
따르지 않고 일경의 밭에서 조세가 6석이며, 역에 속한 집에
세금으로 실 3속을 부과하였다.
遂使百性(수사백성)輟耕廢織(철경폐직)流亡相繼(유망상계)自今(자금)租稅征賦(조세정부)
드디어 백성들이
농사를 그만두고 길쌈을 걷어치우며 도망쳐 떠돌아다니는 자가 이어졌으니 지금부터는 조세의 부과를
宜用天下通法(의용천하통법)以爲恒例(이위항례)
마땅히 천하의
통상적인 법을 써서 상례를 삼으라.” 하였다.
○廣評侍郞荀弼(광평시랑순필)以病免(이병면)以兵部卿列評(이병부경열평)代之(대지)
광평시랑
순필이 병으로 면직되고 병부경 열평으로 그를 대신하였다.
○靑州領軍將軍(청주령군장군)堅金(견김)副將連翌(부장연익)興連(흥연)
청주영군장군
견김, 부장 연익, 흥연이
來見(래견)各賜馬一匹(각사마일필)綾帛有差(능백유차)
와서 뵙자
각기 말 한 필씩 하사하고 능백을 차등이 있게 주었다.
初王(초왕)以靑州人(이청주인)多變詐(다변사)不早爲備(불조위비)必有後悔(필유후회)
이전에 왕이
청주 인은 속임수가 많으니 일찍 대비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가 있을 것이라 하여
乃遣州人能達文植明吉等(내견주인능달문식명길등)往覘之(왕점지)
이에 고을
사람 능달, 문식, 명길 등을 보내어 가서 염탐하게 하였다.
能達還奏云(능달환주운)無他(무타)文植明吉(문식명길)私謂州人金勤謙寬駿曰(사위주인김근겸관준왈)
능달이 돌아와
아뢰기를 “다른 마음이 없었습니다.” 하였는데 문식, 명길은
은밀하게 이 고을 사람 김근겸과 관준에게 말하기를
能達雖奏無他(능달수주무타)新穀熟(신곡숙)恐有變(공유변)
“능달이
비록 다른 마음이 없다고 하였지만 신곡이 익으면 변란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及是(급시)堅金等言(견금등언)本州人(본주인)與勤謙寬駿金言規等(여근겸관준김언규등)
이에 이르러
견금 등이 말하기를 “본 고을 사람으로 근겸, 관준, 김언규
등은
在京都者(재경도자)其心異同(기심이동)去此數人(거차수인)可無患矣(가무환의)
서울에 있는
자들로 그 마음이 달라서 이들 몇 명만 제거하면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하자
王曰(왕왈)予心存止殺(여심존지살)有罪者(유죄자)尙欲原之(상욕원지)
왕이 말하기를
“내 마음은 죽임을 그치는데 있으며 죄가 있는 자라도
오히려 용서하고자
한다.
況彼數人(황피수인)皆有宣力扶義之功(개유선역부의지공)欲得一州(욕득일주)而殺忠賢(이살충현)予不爲也(여불위야)
하물며 저
두서너 사람은 모두 힘을 써서 의거를 도운 공이 있는 자들로 한 고을을 얻고자 충현을 죽인다니 나는 할 수 없다.”
하자
堅金等(견금등)慚懼而退(참구이퇴)勤謙言規等聞之(근겸언규등문지)奏曰(주왈)
견금 등이
부끄럽고 두려워 물러났다. 근겸, 언규 등은 그 말을 듯고
아뢰기를
日者能達(일자능달)復曰無他(부왈무타)臣等固以爲不然(신등고이위불연)
“일전에
능달이 다시 말하기를 ‘다른 마음이 없다고 하였는데’ 신 등은
실로 그렇지
않다고 여기니
今觀堅金等所言(금관견금등소언)不可保其無他(불가보기무타)
지금 견금
등이 말한바 대로 다른 마음이 없다는 것을 보장할 수 없으니
請留之(청유지)以觀其變(이관기변)王從之(왕종지)
그들을 머무르게
하여 변고를 살피기를 청합니다.” 하자, 왕이 그 말을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