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05.月. 맑음
03월04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나도 요즘 커피를 마십니다. 원래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고 즐기지도 않았는데 어쩌다저쩌다 보니 주변에 차고 넘치는 것이 커피라 손에 잡히는 대로 편안함 때문에 그냥 커피를 마십니다. 내가 본시 좋아하는 것은 숭늉인데 이제는 밥을 푼 뒤 자연스레 숭늉을 만들어내는 가마솥이나 백철 솥에 밥을 하지도 않을뿐더러 숭늉을 먹겠다는 사람도 극히 드물다보니 숭늉이라는 음료가 없어져버렸습니다. 그래서 다음으로 좋아하는 것이 우유였는데, 우유는 생각보다 값비싼 음료입니다. 보통 하루에 머그잔으로 너덧 잔 가량을 마시면 1000ml들이 종이 팩 한 개를 더 먹게 되는데, 그것이 가격 면에서도 만만치 않지만 더 큰 문제는 우유복용량이 문제가 된다고 합니다. 한때 완전식품이라고 불렸던 우유라는 음식에 대해 근래에 들어 전혀 다른 비판적인 시각이 존재하고 있고, 또 서양인西洋人 질환에 결석이 많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과다 섭취하는 우유 때문이라는 설을 읽은 뒤로는 하루나 이틀에 한 잔 정도의 우유라면 몰라도 이렇게 다량을 마시는 것은 좋은 섭식방법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 우유를 안 먹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끓인 수돗물이나 생수를 기호음료로 삼기에는 뭔가 좀 거시기하고 해서 한동안은 주말이면 절에 가서 차茶를 많이 마셨습니다. 그러나 집에서 다기茶器를 갖추어놓고 차를 다리고 마실 만큼 차 애호가는 못 되고 그저 시간이 무료하거나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또는 글을 쓰거나 할 때 간편하게 잠시 쉬어가는 그런 휴식 같은 음료를 찾다가찾다가 결국 제일 접근이 편한 커피에 손을 대게 되었습니다. 이제 씁쓸한 원두커피나 아메리카노의 떨부레한 맛에도 조금 익숙해져있는데 그래봐야 커피를 마신 지는 몇 달 가량 되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인터넷에 올라온 기사를 읽어보았더니 커피에 포함된 카페인이 치아에 아주 좋지 않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하루에 한 잔 이상을 계속 마시는 사람은 한 달에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사람에 비해 남아있는 평균 치아 수가 19개밖에 되지 않더라는 조사결과를 포함하고 있어서 얼마 전 치아로 한바탕 고생을 했던 서울보살님을 보고는 이크! 커피도 손 가는대로 마실만한 착한 기호음료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앞으로는 뭘 마시지? 하는 갈등에 앞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조근조근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이번 3월 첫 번째 일요법회에는 기도를 하고 싶어서 참석을 하기로 했습니다. 토요일 아침 서울보살님에게 내 뜻을 전했더니 그럼 나도 함께 가고 싶다고 해서 고개를 살짝 갸웃하면서 아직 보살님은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권했으나 결국 같이 일요법회에 참석을 하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다른 때 보다 집에서 출발이 조금 일렀습니다. 일요일 아침에 일찍 눈을 떠버렸기 때문입니다.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에 올라앉아 시동을 거는데 봄비로는 많다싶을 만큼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짙은 회색 구름 아래로 비를 품은 젖빛 대기가 안개처럼 멀고 가까운 풍경들을 둘러싸고 있어서 운전을 위한 시야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비오는 아침의 이런 도로 상황에 이런 분위기라면 천천히가 해답이 될 듯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천천히로 속도를 조절할 수만 있다면 비오는 고속도로의 주행도 나름 상큼한 맛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차창車窓에 퍽퍽 퍼지는 빗방울의 잔해를 한바탕 쓸어내어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아름다운 풍광을 주기적으로 만들어내는 시각적 즐거움도 생겨나고, 비스듬한 낙하로 인한 빗방울 부서지는 청각적 쾌감이나 눅눅하거나 눅신하거나 공기 중 습기의 매끄러움도 피부에 가벼운 자극을 만들어줍니다. 사시불공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화성휴게소에서는 굵고 힘 있어 보이는 허공의 빗줄기를 보면서 보온병에 담아간 커피를 한 잔 마시는 여유도 즐겨보았습니다. 그런데 서산에 들어섰더니 빗줄기가 거의 실처럼 약해지고 시야도 더 밝아지는 것이 아마 서울이나 경기도 지방보다 비가 내리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제1주차장을 지나 산길을 따라 돌계단 주차장으로 차를 몰아 달려갔습니다. 지난 금요일인 정월대보름날 동안거 해제를 했기 때문에 선방스님들이 모두 어디론가 떠났는지 주차장에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를 주차시켜놓고 경사 급한 비탈길을 따라 걸어 올라갔습니다. 성우당 처마가 보이는 곳에서 마침 마지를 들고 법당으로 가고 있는 락화보살님을 만났습니다. 예상치 않았던 우리들 출현에 락화보살님이 두 손을 잡으면서 매우 반겨주셨습니다. 성우당 아래 공양간에 들렸다가 신도회 회장님과 새로 오신 공양주보살님을 만나 인사를 하고 법당을 향해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정덕거사님 차가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악수와 포옹을 통해 겹으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법당으로 올라갔습니다. 천수경千手經과 관음정근觀音精勤과 축원祝願이 있는 사시불공을 마치고 일요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잠시 입정에 들었다가 주지스님으로부터 선문답禪問答을 이해하고 느끼는 법에 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죽비로, 다음에는 좌복과 사발시계와 갑티슈를 통해 구체적인 선문답의 예를 듣는 귀가 펄럭이도록 설명해주었습니다. 일단 언어도단言語道斷인 선禪의 경지를 말로써 설명을 듣고 보니 너무도 당연한 말인데 머릿속의 논리論理보다 등줄기를 통과하는 직관直觀을 저르르~ 울려주는 통쾌痛快함 같은 것이 그 말속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런 내용을 설명으로 듣지 않고 어느 순간 스스로의 힘으로 깨우쳐냈다면 그 통쾌함의 파괴력이 업장을 부숴낼 만큼 엄청난 힘이 생길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박또박 들어서 이해를 하는 것과 와장창~ 스스로 알아버린 것과의 차이가 못내 아쉬웠지만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조차 엄청 가슴 후련하도록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일요법회에 빠지지 말고 열심히 동참을 하시라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말해드렸잖아요!
동안거가 끝났으니 점심공양시간이 다시 정오인 12시로 바뀌었다는 말을 주지스님께서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공양시간까지 남아있는 시간을 이용해서 지장전 옆에 쌓여있는 기와들을 기와불사 접수대쪽으로 옮기는 작업을 했습니다. 보살님들은 수월스님 부엌으로 알려진 후원을 정리하고 청소를 했습니다. 울력을 한 뒤의 공양시간은 각별한 맛과 분위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아, 그리고 모처럼 수원에서 오신 보살님이 따님과 함께 일요법회에 참석을 해주시고 점심공양시간에도 함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공양을 마치고 차실에서 차담을 나누면서 지난 동안거 이야기와 앞으로 하안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시간이 오후1시반을 향해 움직이자 나는 기도를 위해 법당으로 올라갔습니다. 정덕거사님과 묘은혜보살님은 근처 매실 농장으로 우슬을 캐러 가신다고했습니다. 우슬이 관절에 특효가 있다는 말을 들은 서울보살님도 정덕거사님과 묘은혜보살님을 따라 우슬을 캐러가겠다고 해서 오늘의 기도는 온전히 내 몫이 되었습니다. 먼저 촛불을 켜고 부처님께 삼 배拜를 올린 후 좌복을 깔고 앉아 30분가량 입정에 들었다가 천수경을 독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가 나오자 쉼 없이 반복해가면서 대비주大悲呪를 독경했습니다. 이제 동안거가 끝난 산철이라 선방에 스님들이 계시지 않으니 독경을 크게 하더라도 마음에 부담이 되지 않았습니다. 내 독경소리가 목탁소리가 되고, 내 독경소리가 바람소리가 되고, 내 독경소리가 산울림이 되도록 목탁구멍만한 천장암 인법당에서 마음의 법고를 울려가면서 우렁우렁 독경을 했습니다. 짙었던 구름 사이로 언제 나타났었는지 부드럽고 긴 햇살을 뿌려대는 투실한 얼굴도 보였다가 사라지고, 푸르고 성긴 바람도 불었다가 흘러가고, 크고 작은 조각구름도 먼 하늘을 떠다녔던 모양입니다. 오후4시가 눈설치는 독경소리를 등에 업고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 삼 배拜를 올리고 촛불을 끄고 좌복을 정리하고 법당에서 일어났습니다. 천장암 인법당 마루에서 바라보는 저만큼 풍경들은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