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전 우미내 계곡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 류시화,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중에서, 아차산 등로 시판에서
▶ 산행일시 : 2013년 8월 21일(수), 맑음
▶ 산행시간 : 3시간
▶ 산행거리 : 도상 6.3㎞
▶ 교 통 편 : 시내버스 이용
▶ 시간별 구간
13 : 00 - 우미내(牛尾川) 버스정류장, 산행시작
13 : 30 - 대성암(大聖庵)
13 : 56 - 아차산(286m)
14 : 10 - 319m봉, 헬기장, Y자 갈림길, 왼쪽은 용마봉, 오른쪽은 망우산 가는 길
14 : 30 - ╋자 갈림길 안부, 왼쪽은 사가정역, 오른쪽은 아치울 가는 길
14 : 40 - △279.5m봉
14 : 50 - ╋자 갈림길 안부, 정자 쉼터
15 : 06 - 망우산(忘憂山, △281.3m)
16 : 00 - 정각사(正覺寺) 입구 버스정류장, 산행종료
1. 2주전 우미내 계곡
지난 주 금요일 설악산 산행이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안으로는 골았다. 예전에 접질린 오른쪽
발목의 고질이 도졌다. 마등령에서 내려올 때 여러 번 발목이 느닷없이 꺾여 그때마다 아무
준비 없이 고꾸라지곤 했다. 특히 설원교 지나고 쌍천으로 빠지는 산죽 숲에서 발목이 된통
꺾여 넘어진 채로 한참동안 꼼짝달싹 하지 못하고 진땀만 흘려야 했다.
이튿날 내 주치의나 다름없는 한의원에 가서 물리치료하고 침 맞고 사혈했으나 퉁퉁 부은 발
목이 전에 없이 불안하였다. 의사 선생님은 전에도 얘기했지만 발목 인대가 늘어난 것 같으니
제발 당분간만이라도 가만히 있으시라 당부하지만 겨우 하루 지나자 좀이 쑤신 듯 발싸심이
동하여 가만히 있으면 다른 병으로 전이될 것만 같다.
오른쪽 발목을 압박붕대로 칭칭 동여매고 걸음마 연습을 하기로 한다. 연습할 산은 아차산,
망우산이다. 들머리는 2주전 여름철 계곡의 진수를 보여준 우미내(牛尾川) 계곡 고구려대장
간마을이 그 기점이다. 태왕사신기를 촬영했다는 고구려대장간마을 세트장 입장료는 3,000
원이다. 먼발치로도 훤히 다 보이는데 요금을 받는다.
우미내 계곡은 쌍곡이다. 오른쪽은 온수가 흐르고, 왼쪽은 냉수가 흐른다. 이도 지난날 일이
다. 오늘은 먼지 이는 건천이다. 쌍곡 가운데 지능선이 등로다. 등로는 아차산 명물로 등장한
‘큰바위얼굴’ 전망대를 경유하여 쌍곡의 오른쪽 계곡을 거슬러 오른다. 이 큰바위얼굴은 태왕
사신기에서 열연한 우리의 배용준이 대장간마을에서 촬영하는 중 발견되었다고 한다.
마른 계류 건너고 슬랩 트래버스 하여 바윗길 지나고 너덜 골라 디뎌 대성암(大聖庵)이 나온
다. 대성암이 신라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천년고찰인 것은 그 연역의 공시보다 절집 마당
의 심재(心材) 깊게 파인 고목의 느티나무가 웅변한다. 등로는 절집 옆의 운동시설이 있는 공
터 위로 협곡의 슬랩을 오르는 철계단으로 나 있다.
새해 일출보기의 명소인 대슬랩을 오르면 아차산 주릉이다. 솔숲 암반에서 늘어진 일단의 연
만한 어르신네들의 한담이 귀에 거슬린다. 암, 전두환이 인물이제. 광주를 확 쓸어버린 것 또
한 강단이 있었고, 정치는 얼마나 잘 했던가. 그 때 살기 좀 좋지 않았나. 돈만 감추지 않았더
라면 박통의 대를 이은 명군이었는데 말일세. 내 말이 그 말이네. 난 장세동을 인물로 보네.
호남에 대중이 빼면 장세동일세.
그 사람 5공 청문회 때 의연하고 당당한 자세는 어떻던가. 그 형형하던 눈빛하며. 감옥에 갔
다 와서는 전두환이에게 각하 휴가 잘 다녀왔습니다 하는 인사는 또 어떻던가. 실로 장군이지
않던가. 노태우보다는 그가 대통령이 되어야 했었는데 참 아까웠지. 이구동성이다. 시원한 솔
바람이 아깝다. 나는 비겁했다. 한마디 끽 소리도 못하고 그 자리를 슬그머니 피했으니.
2. 우미내 계곡
3. 우미내 계곡에 있는 큰바위얼굴
4. 능소화(凌霄花), 능소화과의 낙엽 활엽 덩굴나무
5. 맥문동(麥門冬, Liriope platyphylla),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6. 고구려대장간마을 입구의 장승
7. 한강과 암사동 일대, 멀리는 예봉산과 검단산(오른쪽)
8. 남산
9. 관악산
솔숲길이다. 솔숲 너른 암반이나 무덤가에는 고스톱 판이 흥겹다. 이게 낫다. 똥이나 먹어라.
설사다. 막판에 설사가 어디 있냐. 흔들었다니까. 초도 쌍피라고 했제.
아차산 주봉은 축대를 보기 좋게 쌓아놓은 제4보루인 286m봉이다. 직등하였다가 긴 데크계
단으로 한차례 뚝 떨어지면 왼쪽이 긴고랑골인 ╋자 갈림길 안부다.
등로에는 햇볕이 작열한다. 작열(灼熱)이란 ‘불 따위가 이글이글 뜨겁게 타오르는 것’을 말한
다. 그렇다. 땡볕 직사하는 데크계단 피해 성곽 숲길로 간다. 319m봉. 헬기장이다. 용마봉을
들리지 않고 망우산으로 직행한다. 솔숲길이 이어진다. 박무로 흐릿하지만 봉화산과 불암산,
수락산이 눈에 들어온다. 봉화산은 안쓰럽게도 고층 아파트에 갇혔다.
‘구리 둘레길’에 세워놓은 여러 시판 중 하나다.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유심초가 부른 대중가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의 가사인 줄로만 알았다. 여태.
노골적인 사랑타령이 아닌 무언가 가슴 뭉클케 하는 시의에 다만 유심히 들었을 뿐이었다.
『성북동 비둘기』의 시인인 이산 김광섭(怡山 金珖燮, 1906~ 1977) 선생의 『저녁에』라는
시인 줄을 비로소 안다. 부끄럽다.
╋자 갈림길 안부. 왼쪽은 사가정역, 오른쪽은 아치울 마을로 간다. 직진은 망우리 공동묘지.
예전에는 지나기 약간 찜찜했지만 이제는 내 삶을 뒤돌아보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다. 돌로 두
른 묘를 보거나 잡목 우거진 묘를 보면 사자가 갑갑하다고 하소연하는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풀숲에 묻힌 묘비명. 사자가 아닌 산자를 위한 것이지만 누가 그 이름을 알아줄까.
╋자 갈림길 안부. 정자가 있는 쉼터다. 위인들의 묘소 안내판에 있다. 방정환, 문일평, 오세
창, 한용운, 조봉암, ……. 하루라도 허투루 살아서는 그 분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망우산 정상. 삼각점(성동 311, 1994 복구)을 확인하고 다시 묘비명 들여다보며 내린다. 가급
적 길게 가자하고 ‘엄마약수터’ 가는 길보다는 ‘형제약수터’ 가는 길을 택하였다가 갈림길에
서 더 긴 ‘구리시청’ 가는 길로 바꾼다.
산 아래는 홍진(紅塵). 불암산과 수락산 바라보는 즐거움으로 간다. 래성군 충의공 정기원(鄭
期遠, 1559~1597) 선생의 묘소로 내렸다가 정각사(正覺寺) 절집이 궁금하여 뒤돌아가서 사면
으로 내려 들린다. 산자락 동네에 자리 잡은 절이다. 본전의 현판을 ‘大雄殿’이 아닌 ‘큰법
당’으로, 또한 주련도 한글로 풀어 쓴 것이 이채롭다.
발목 테스트는 어떠했는가? 한의원 치료가 효과를 보는 것인지, 사~알살 걸어서인지, 걸음걸
음에 부쩍 신경을 써서인지, 산행거리와 산행시간이 너무 짧아서인지, 아무런 이상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조심할 일이다.
10. 왼쪽은 아파트 숲에 가려진 봉화산
11. 불암산, 그 뒤는 수락산
12. 불암산, 그 뒤는 수락산
13. 무릇(Scilla scilloides),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14. 불암산, 그 뒤는 수락산
15. 불암산
16. 정각사 입구 분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