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것에 욕심을 버리되 정성을 기울여야
경기도 양평에 위치한 선경사를 찾아 갈 때만 해도 고즈넉한 사찰을 떠올렸다.
그 곳에서 학처럼 생식 공양하는 스님을 만나 뵙고 세상에 찌든 마음을 잠시 놓아
둘 요량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스님들에게야 불심을 닦는 곳이지만 세속인에게는 때때로 쉬어가고픈 곳이 산중의 절간 아닌가.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익히 그리고 있는 사찰 대신 조립식 건물만 덩그러니 있다.
게다가 스님은 승복바지에 젊은이들이나 입을 법한 셔츠를 걸친 채 땀을 뻘뻘 흘리며
텃밭에서 배추 모종에 열심이다. 머리에 쓴 밀짚모자를 벗으니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비로소 스님임을 증명한다.
그런데 20년간 생식만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한 체격에 탄력 넘치는 피부라니,
얼핏 세수(世壽)도 짐작 못하겠다.
선경사는 일종의 토굴이다. 스님들이 만행을 하다 쉬어가기 위해 만든 움집. 그러나
요즘 토굴은 조립식으로 지어 일반 가정집과 닮았다.
“걸망하나만 메고 다녀야 하는 데 그러지를 못해 이렇게 몸을 누일 방을 빌었어요.
몇 년 공부하다 다시 절에 들어 가야죠.
” 경주 불국사에서 출가한 이후 셀 수 없이 많은 절을 거치다 2년 전까지 지리산
화엄사에 있었고 지금은 혼자 공부하기 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요즘은 황토방을
짓고 있다.
인근 주민 뿐 아니라 멀리에서 스님과의 연에 이끌려 찾아오는 보살들에게 방을
내어주기 위해서다.
직접 채취하고 다듬는 생식거리는 그 자체가 정성
스님은 자연스레 생식 습관이 들었다. 큰절에 있을 때는 큰스님들과 다 같이 공양하니
일반 화식(火食)을 했다.
그러나 간혹 혼자 있게 되자 스님 한 몸이 먹기 위해 밥을 하는 행위 자체가 시간 낭비요,
구차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깊은 산중에서 혼자 공부에 매진하는 노스님 대부분이 제대로 공양을 못해
건강이 나빠져 있는 것을 많이 봐 온 터라 굳이 화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출가 사문이 먹는 것에 연연하는 것이 스스로 못마땅했던 해봉 스님은 먹는 것에
들이는 시간과 품을 줄이기로 하고 생식을 시작했다.
지금도 일년에 두 차례 3월말과 9월말 께면 지리산을 찾는다. 아직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솔잎이지만 스님은 지리산 참 솔을 최고로 친다. 보드랍고 타박타박한 솔잎을 따와
깨끗한 물에 헹궈낸 뒤 마른 수건으로 닦아 그늘에서 5일 정도 잘 말린다.
그런 다음 절구통에 넣어 멍이 들도록 찧은 뒤 다시 그늘에서 말리기를 반복한다.
완전히 마르면 곱게 가루가 될 때까지 잘 빻아둔다.
한 때 솔잎만 먹었더니 변비가 생겨 요즘은 검은콩을 섞어서 조절한다. 마찬가지로
콩만 먹으면 설사가 나기 때문에 상호 보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게다가 자칫 부족해질 수 있는 단백질을 섭취하는 데도 콩이 좋다.
밤을 넣어도 좋은데 생밤을 그늘에서 잘 말린 뒤 절구로 찧으면 율피가 고슬고슬 벗겨진다.
벗겨진 것을 키로 가려낸 다음 알맹이를 다시 그늘에서 말려 빻는 과정을 반복한다.
마와 검은 콩, 깨 등도 같은 방법으로 가루로 만든 다음 잘 섞어서 보관하면 스님의 반년 치
식량 준비는 끝이다.
해봉 스님은 아침에 기침하자 마자 냉수부터 한 잔 마신다. 그 전에 한 모금 입에 품고서
입과 목을 충분히 헹궈 낸 다음 뱉어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수도를 통해 나오는 지하수는 그냥 마셔도 괜찮을 만큼 깨끗하지만 스님은 반드시 하루
전날 옹기에 받아 재워 둔다.
물도 그냥 마시는 법이 없다. 입안에서 씹는 시늉이라도 한 뒤에야 목뒤로 흘려 보낸다.
“모든 먹을거리는 사람의 몸에 흡수되기 전에 사람과 친화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스님의 아침 공양은 거의 과일 한 두 조각이나 오이 등의 채소 한 쪽이면 충분하다.
마침 점심공양 시간이라 집 짓는 일을 거들기 위해 잠시 머물던 보살들이 스님 공양
상을 차려 들여왔다.
상에는 스님이 장만해둔 생식 가루와 물, 양배추, 고소 등의 야채조금, 호두와 잣으로
속을 채운 곶감 등이 올려져 있다.
고소 등의 야채는 스님이 직접 텃밭에서 가꾼 것이다. 방금 전까지 밭에 심어져 있던 야채를
쑥 뽑아와 뿌리째 물에 슬슬 헹궈내 상에 올리면 준비 끝이다.
스님은 물에 생식 가루를 개어 꼭꼭 씹어 드신다. 그냥 물처럼 술술 마시면 더 편하겠지만
가루 음식일수록 소화가 되지 않기 때문에 더 열심히 씹어야 한단다.
스님 드시는 생식가루를 청해 한 술 맛을 보니 솔 향이 입안에 퍼지는 것이 머리가 맑아진다.
점성이 있는 마(摩) 때문인지 씹는 맛도 있고 포만감도 느껴진다. 상이 들어온 지 5분께나 지났나,
스님은 손수 상을 물린다. 아무리 꼭꼭 씹어 먹어도 10분을 넘기지 않는다.
“요즘 살만하니까 건강에 신경들을 쓰고 생식에 관심도 많아졌어요. 하지만 정성을 들여서
자기 몸에 맞는 방법으로 직접 만들어야 효과 있지, 대량으로 만들어져 나오는 것을 마구
섭취하는 건 좋지 않아요.
때때마다 요리하는 정성의 조금만 기울여도 생식거리 장만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야채도
손바닥만한 공간이라도 직접 길러 먹고, 무엇이든 유행처럼 퍼져서 따라하는 건 좋지 않아요.”
스님의 저녁 공양은 일정하지 않지만 대개 6시경에 하는 데 점심상과 거의 같다.
“생식을 하면 숙면(熟眠)은 취하되 혼침(昏沈)에는 빠지지 않지요”
스님도 생식을 처음 시작할 때는 무작정 생쌀을 물에 불린 다음 씹어 먹었다. 얼마 동안
쌀만 먹기를 계속하자 이가 날카롭게 상한 것은 물론이고 어지럼증 때문에 방법을 바꾸었다.
스님은 지금도 쌀을 비롯한 곡류는 잘 드시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굳이 스님과 같이 할 필요는 없다고.
예전에는 여행길을 떠날라치면 생식을 환(丸)으로 만들어 가지고 다녔다.
하루 동안 재워두었던 생수도 반드시 챙겨야 했다. 그러다 이 역시 욕심이고 집착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금은 가루만 조금 가지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생식을 하면 혼침(昏沈)에 빠지지 않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면 늘 청명하다는 스님.
그 청명함을 유지하려 새벽 예불을 올리기 전 30분 가량 요가를 한다. 세수(世壽)로 50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30여 년을 요가로 단련한 덕에 그 유연함은 이를 데 없다.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요가를 하면 건강한 몸은 물론이고 정신도 건강해져요.”
오전에 모종을 하다 말았다며 서둘러 나가 밭에 물을 대는 스님. 어느 정도 일이
끝났나보다 했더니 이번에는 늦봄 볕에 황토가 마른다며 집 지을 황토에 손을 대러 쫓아가신다.
삽을 집어들어 오전에 하던 일을 얼추 추스리는데 힘이 예사롭지 않다.
스님이 하루 동안 섭취하는 열량이라야 얼핏 계산해 봐도 1000 ㎉ 가 되지 않을 성싶은데
대체 저 기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옆에서 일을 거들던 보살에 의하면
황토방을 손수 다 짓고 있다고 한다. 인근에 사는 보살들이 와서 거든다고 해도 힘쓰는
일은 거개가 스님 차지.
“몸이 이제 아는 거지. 정성껏 준비하고 정성껏 공양을 하면 위나 장도 필요 이상의 일을
하지 않아도 되고 피도 깨끗하니 혈액 순환도 잘 돼 기운이 날 수 밖에 없지요.”
해가 저물어 일어서는 일행에게 장뇌삼 꽃을 말려 만든 차를 대접하신다. 그런데 스님 찻잔은 비어있다.
“차(茶)도 화식이지요. 생식만 하는 습관이 있어서…” 이런, 이렇게 좋은 차를 못 드신다니.
그래도 대접하는 것으로 만족해하는 스님 눈빛을 읽는다.
해봉 스님께 배우는 ‘가정에서 쉽게 만드는 생식’
·솔잎은 사철 좋지만 봄이 가장 좋다. 그 다음으로 치는
것이 9월말 경에서 10월 초순 가을 초입의 솔잎. 만져
봐 보드랍고 길이가 짧은 어린잎을 따서 잘 씻은 뒤 그
늘에서 5일간 말린다.
·송진을 없애기 위해 마늘 찧는 기구 등을 이용해서 멍
이 들 때까지 살살 찧는다. 다시 그늘에서 바짝 말린 뒤
믹서기에 넣고 간다.
·검은 콩 역시 그늘에서 충분히 말려 믹서기로 간다.
·밤은 겉껍질을 깐 뒤 칼집을 내서 약한 불에 살짝 볶으
면 율피가 잘 벗겨진다. 율피를 벗기고 그늘에서 말린
뒤 간다.
·그 외 깨, 조, 수수, 마 등도 마찬가지로 말리거나 볶아
물기를 없앤 뒤 간다.
·재료들을 섞어서 잘 밀봉해 두었다가 식사 때마다 물
에 걸쭉해지도록 개어서 복용한다. 재료의 양은 처음
에는 1:1 비율로 맞추고 복용하면서 적절히 조절한다.
·양배추, 오이, 당근, 고소 등의 생 야채를 곁들여 된장
에 찍어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