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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방재-수리봉-함백산-매봉산-삼수령(피재) 21.45km
9시간
강한 걸음으로 부드럽게 가라 "Hard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고 Soft 하지 않으면 살아갈 자격이 없다."
01:54
새벽 두시. 산을 오른다.
말초 신경이 약한 나는 야간 산행이 무척 부담스럽다.
다리 신경이 충분히 휴식을 취하지 않은 상태라 다리가 쉽게 저리고 통증도 심해진다. 게다가 차멀미까지 겹쳐지면 여간 곤혹스럽지가 않다.
누구나 산행을 시작하고 30분에서 한 시간 사이는 소위 데드 포인트라는 것을 겪게 되지만 정말 어떤 때는 스스로 내가 대체 이렇게까지 나를 괴롭혀 얻을려는것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묻고 싶을 때가 있다.
02:24
수리봉은 마치 신경병증에 걸린 젊은 여자의 모습을 하고있었다.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는 차가운 외모의 여인을 닮았다고나 할까. 지지난주 화방재에서 처음 대한 모습은 잘 벼루어 놓은 칼날처럼 여간 날카로와 보이지 않았다.
산행의 첫 시작부터 클레오파트라의 콧등을 타고 오르는듯한 된비알이었다. 정말 내 코가 땅에 닿을것같은 급경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산길은 탄식 하나 없이 고요하고 배동 오른 오려같은 상현달만 캄캄한 참나무 숲을 허느지게 비춰주고 있었다.
비단봉 지나자 간간히 녹지 않은 눈길이 나타났지만 노란 불빛만이 적막을 안고있는 용도미상의 군사시설을 지나 주인없는 만항재에 이르기 까지의 구간은 비교적 순탄했다.
03:17
만항재
야밤에 산행을 하는것이 한밤에 학교 운동장을 걷는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비아냥을 완전히 반박할 수는 없지만 백두대간 긴 길을 내 입맛대로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기왕이면 그 길을 대체로 이어 걷고싶은 열망에 오늘처럼 산방 기간에 걸린 구간이 생기면 부득이 산불 감시 공무원의 눈길을 피해 이렇게 꼭두새벽에 원행을 나오게도 된다.
하지만 나를 대간길로 나오게 했던 이 결정적인 아름다운 길을 눈을 가린 채 걷는다는것은 일종의 비극이다. 이 날 내 시야로부터 버림받은 풍경들을 추억을 되새기는 의미로 지난 산행 중에 찍은 사진으로 대체한다.
만항재 숲의 정갈한 아름다움. 그 겨울의 고요.
만항재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고개이다. 두번째 높은 고개가 우리가 지나야할 두문동재다.
그러므로 만항재에서 함백산 오르는 구간은 맨 마지막 정상 아래의 급경사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완만한 길이다.
매봉산 풍력 발전 단지의 바람개비들. 저 아득하고 우련한 풍경이야말로 나를 대간길로 나서게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저 길이 사무치게 그리워 나는 결국 매봉산으로 가게 되었다. 생각보다 그 길은 더 아름다웠고 나는 그 길을 지나며 '다음번 이 길을 걸을 때는 꼭 대간을 타고 있을것이다.'라고 예언같은 결심을 하게되었다. 오늘 산행은 그 예언을 실현하는 길이되는 셈이 된다.
여름에 걸었던 그 길을 겨울에 걸으면 어떨까? 다행히 오늘 밤하늘의 별은 눈이 시릴만큼 초롱하고 하얀 상고대의 숲을 걷는것처럼 황홀했다. 아! 내가 이 많은 별을 오늘처럼 가까이 바라 본적이 언제였던가. 생각해보니 그 역시 산중에서였다.
영남알프스 환종주를 하며 간월재에서 허접한 비닐을 하나 덮어쓰고 비박을 했을 때 머리 위로 쏟아지는 뭇별들을 바라 보았던 추억 그대로 오늘도 거센 함백산 댓바람에 어울리는 영롱한 별들의 잔치를 보게되었다.
04:27
함백산 정상
함백산 댓바람이야 워낙 유명하지만 새벽 네시에 맞는 바람은 정신이 버뜩들고 산신에게 순연히 복종해야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매섭고도 야멸찼다.
산을 먼저 올라간 일행들도 순식간에 흔적을 거두어 우리만 외톨이가 되는 바람에 그만 내려가는 길을 그만 잃고 말았다.
다행히 곧 산대장님이 오셔서 길을 수습해 주었다. 동쪽 사면은 서쪽과 달리 눈이 녹지 않아 길이 많이 미끄러웠다. 어둔한 발걸음으로 산을 내려가니 일행들이 보였다. 그기서 부터는 아이젠을 착용했다.
중함백 지나 은대봉으로 시원하게 이어지는 능선
육산의 넉넉한 품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버지의 든든한 등처럼 믿음직한 능선이다.
산에대한 진정한 복종이란 결국 산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서 나온다.
순탄한 기쁨과 가파른 고통에 순연히 나를 맏기는 이 믿음 덕분으로 내 삶은 오늘 또 이렇게 풍요해진다.
상고대 뒤로 펼쳐진 함백산 능선의 아름다움
이 겨울의 고통들을 처연히 견뎌내며 결국 내가 얻는것은 듬쑥한 자기 성장이 아닐까. 사진을 찍으며 같이 간 일행이 장난삼아 내뱉던 말이 생각난다.
"살아있네!"
다들 쉰이 넘은 나이,이미 지울수 없는 세월의 그림자가 드리운 얼굴이지만 눈부신 햇살아래 도두어진 깊은 삶의 윤곽들을 사진으로 남기며 아직 살아있다는 희망을 느끼는것. 이 얼마나 소박하고 건강한 즐거움이냐.
그래 살아있다.
캅카스 산의 프로메테우스처럼 고통의 과정들을 분연히 이겨내며 내가 비로소 얻는 기쁨의 결실. 그것은 살아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행복이다. 살아있음.
세상 모든 인간에게 고루 평등하고 무애한 이 진리에 도달하는 길이 이토록 온 몸을 던져야만 비로소 얻어지는것이기에 내가 오늘 걷는 이 발걸음은 얼마나 진중한것이냐.
은대봉 부근에서 비로소 헤드 랜튼을 벗었다. 마치 전기가 다시 들어 온것처럼 불현듯 세상이 밝아졌다. 세상의 첫 빛은 푸르스럼한 색이다. 한밤을 지배한 검은 먹빛은 인디고 불루처럼 푸르게 푸르게 해체된다. 마치 큰 병을 앓고 난 뒤의 얼굴처럼 세상이 헛헛해 보인다. 헛헛한것은 단지 세상만 아니었다. 새벽길을 걸어 온 오장육부도 서서히 헛헛한 신호를 보내었다. 따뜻한 물 한모금이 간절히 그리웠다.
06:17
"Hard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고 Soft 하지 않으면 살아갈 자격이 없다."
레이몬드 챈들러의" long goodbye"에 나오는 대목이다. hard한 프레임도 soft한 마인드도 없는 나는 어쩌란 말인가. hard할수록 세상을 더 잘 살아갈 수 있다는 말, 꽤나 독선적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강한자가 세상을 더 잘 헤쳐가는것이 아니라 잘 헤쳐나온자가 결국은 더 강하다는 말처럼 인생의 끝에는 반드시 강한자를 위한 변론만 존재하는것은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편이야 무수하다해도 한사람의 인생 앞에는 결국 하나의 길만이 존재한다.
강한자의 삶에는 강한 인생이, 거칠고 강한 밀도의 삶이. 유연한 자의 삶에는 봄날의 화원과도 같은 부드러움이 놓여있다. 삶을 바라보는 취향과 성향의 문제이다.
06:23
soft,하지 않으면 살아갈 자격이 없다는것도 소설가의 수사같다. 곧고 강직한 가운데 일관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허다하다.
하지만 삶을 바라보는 유연성, 관점의 확대를 통한 타인의 삶에대한 포용력,이해, 이런것들은 자신을 넘어 인류를 향한 보편적 덕목에 해당된다.
살아갈 자격과 행복의 조건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양을 둘러싼 모험' 나오는 글처럼 '도넛의 구멍을 공백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존재로 인식하는냐는 어디까지나 형이상학적인 문제다.
그것으로 도넛의 맛이 조금이나마 변하는것은 아닐테니까.' 인생을 소프트하게 살던 하드하게 살던 결국은 도넛과 마찬가지로 형이상학적인 문제다. 야음을 이용해 산을 하염없이 걷는다것는 일이 버튼을 누르면 쏴하고 내려가는 변기의 휴지처럼 내 삶의 완전한 공백이될지 쇼팽의 안단테 스피아나토처럼 짧은 스타카토 뒤의 영롱한 여운 같은것이 될지는 오로지 이 길의 말미에 내가 내릴 선택에 달려있는것이다.
삶에 있어서 여백은 삶의 가치를 결정한다. 수단과 가치가 충돌할 때 내가 어디를 지향해야하는지는 분명하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수단만을 위헤 살아갈 만큼 용의주도하지 못하다. 악착같지도 않다. 공백이 아니라 삶의 여백이 모처럼 분명히 느껴지는 그런 산행이다.
06:25
사랑
물결이 물결을 불러 그대에게 다가가듯 산과 산 사이에 당신이 있었으면 좋겠다.
산을 넘어가는 나의 격렬한 발걸음이,거친 호흡이 다 그대를 향한 열망이었으면 좋겠다.
어둠을 피해 총총 나아가는 나의 발걸음도 관목이 팔을 열어 세상을 열어보이는 그 순간도, 그 몸짓하나, 걸음 하나 하나, 다 그대에게 나아가기 위함이었으면 좋겠다.
수만 구비 파란과 고통은 다 잊고 오늘은 물수제비 뜨듯 가벼운 마음으로 그대에게 갔으면 좋겠다.
천의봉 마루금 위를 외로이 돌고있는 저 바람개비처럼 그대만이 내 유일한 희망이되어 그 희망을 향해 몸 던지는 그런 순수함으로 살고싶다.
오팔광산의 광부
오팔 광산의 광부처럼 누구도 저 높은 산을 향해 오르라 하지는 않는다. 산행이 하나의 삶의 방식이 되어버린것이다.
마음을 적시는 쓸쓸한 글한 줄. 그래도 기적과도 같은 깨닫음을 만난다면 즐거울 것이다. 오팔 광산의 광부처럼.
삶의 기본
세상에는 기본이라는것이 있다. 어떤것이 덧붙여진다해도 변하지 않는 기본 핵심같은거다. 정석이라고나 할까.
길을 걷다보면 계속 진행하는 현상만 보인다. 어떤 구간을 얼마만큼의 빠르기로 걸었다거나 어디서 무얼 보고 사진을 찍었다거나... 열심히 어딜 다녀왔다는거는 알겠는데 그래서 어쨌다는거냐? 열심히 걸었다고? 걸어온 궤적을 추억하는것이 고작 산행일까?
공부를 하고, 대학을 졸업해 취직을 하고, 결혼하여 애 낳고 잘 살다 가면 ... 살다보면 만나는 현상일 뿐. 삶을 꿰뚤고 지나가는 그 기본이라는게 보이지 않는다.
아예없다면 찾을 필요도 없겠지만 손 닿는데서 아주 친숙한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을 그 삶의 기본을 찾아 나는 오늘도 산을 헤멘다.
06:28
은대봉 지나 싸리재에 이르는 구간, 궁싯거리며 내뱉는 혼자말처럼 죽은 채 말라가고 있는 나무들을 만나게된다.
삶의 고통들이 휘어진 길 위에서 너울거리며 말라간다. 인간의 고통을 비유하기에 이만큼 좋은 풍경이 있을까. 저 고통 뒤에 육산은 묵언의 법문처럼 빛난다.
갈 길을 바로 발 아래에두고 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버리고 갈 수 없는 조바심으로 자꾸 사진을 담게된다. 아마 또 함백산을 찾게된다면 그 역시 겨울이 될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06:39
두문동재 (싸리재)
마침내 두문동재에 도착했다. 초소에는 인적이 없고 우리의 야습은 성공한 셈이다.
아침을 먹는 일이 남았으나 조금전 느꼈던 시장기는 이미 달아나고 없었다.
하지만 몸으로 전해지는 이 변덕스러운 헛헛함을 채우지 않는다면 앞으로 오르고 또 내려야 할 길이 한없이 힘든것이 될터이므로 나는 배고프기 전에 먹어야한다는 산행의 철칙들을 떠 올리며 바람을 막아 줄 아늑한 밥자리를 찾아갔다.
07:07
07:27
금대봉에 오르자 금빛같은 아침 햇살이 쏟아져 세상이 온통 황금빛이었다. 산길을 다 걸은것만 같은 안도감이 밀려왔다.
이제 남은 길은 지난번 태백산 구간에 비하면 그저에 가까울 만큼 편한길이다.
그리고 산행 말미에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 비움의 여백이 자력처럼 나를 끌어주었다. 간절함이란 자석처럼 묘한 마력을 지닌다.
아침 일곱시의 햇살, 세상 어떤 미물도 아름다와지는 황금시간. 이 황금 시간 속에 빛나는 산님들의 우정이 있어 더 아름다운 순간이다.
아직 눈길이 어지럽다.
어린시절 말뚝박기 놀이 하던 때가 그리운 모양이다. 아버지들의 장난을 자식들이 보게되면 어떤 마음이 들까. 이미 자식들의 가슴에 하나의 관념으로 자리 잡았을 부성. 그 부성도 언제나 마찬가지로 이렇게 인간적이란 사실을 그들도 알았으면.
저기 비단봉이 보인다.
오늘 산행의 클라이맥스는 매봉산 천의봉이 될터이지만 그 정도야 이제 산을 내려가는 탄력만으로도 쉽게 오를것 같은 당찬 자신감이 생긴다.
저기 보이는 비단봉이 깔딱고개 또한 길이기에 그 또한 지나갈것이다. 지나가지 않은 길은 없었으니까.
화사한 아침 햇살에 일행들의 얼굴이 빛난다. 다 예뻐보인다. 한사람 한사람 불러 사진을 찍어보았다. 하지만 내게도, 그들에게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라 사진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인물사진이 어렵다.
08:45
함백산과 오투 리조트 스키장을두고 의견이 분분하였다. 개발은 보톡스로도 감출수 없는 주름처럼 풍경에 큰 상처를 남겼다. 세상은 꼭 개발을 필요로 하는가? 물기를 머금은 푸르고 희미한 공기층 너머로 수천만년을 지녀 온 견고한 풍경의 한쪽 어깨가 무너져 내리며 앓아누운듯 보였다.
은대봉과 금대봉 사이로 만항재에 이르는 꼬불길이 흘러나오고 있다. 은대봉과 금대봉을 왜 한쌍의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는지는 이 풍경을 보면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의 존재가 더없이 허전할것만 같은 풍경의 유니즌.
1000m가 넘는 산들이 지니는 저 오붓한 평화의 모습이야말로 산을 즐길대로 즐긴이의 가장 나중 즐길만한 거룩한 풍경이 아닐까.
은대봉과 금대봉을 닮은 영원한 友誼를 다짐하며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본다.
08:51
비단봉을 용맹스레 앞장 서 올라가는 나를 보고 뒤에서 동료들이 산행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그런가. 나를 줄곳 지켜 본 일행의 평가기에 그런가 생각되었지만 막상 나 자신은 아직 산행 실력이 는것을 체감하지는 못하겠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내가 백두대간에 나서는것을 보고 은연중에 몇가지 반응을 보였다. '저 사람이 대간을 탄다니 나도 가만있을 수 없지' 하며 같이 대간길에 나서 준 사람들이 있는 반면 (내가 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한 셈이다.) 도저히 믿기지 않아 자기도 한번 대간을 타 보고 싶다고 하는 부류가 있다. (동기 부여는 되었지만 아직 망설이고 있는 친구들이다.) 사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를 지켜본 누구도 쉽게 나에게 대간을 타보라고 권한 사람은 없다. 유일한 분이 지금 11기 대간을 타고 있는 교장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은 진정으로 나에게 대간길을 권유하셨다. 나에게 결정적인 용기를 주신 분이다.
오늘로서 나는 10번째 대간 산행에 나서게 되지만 여전히 산행은 내게 힘에 부친다. 그럼에도 이 길이 즐거운것은 내 주위에 이처럼 믿음직한 동료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분들의 기량으로 치자면 어디에 내놓아도 결코 뒤지지않는 산행 실력을 갖춘 분들이지만 여전히 말미에 남아 강철의 후미조를 지켜가고 있다.
잘 걷지 못해 만날 뒤처지는 나로서야 어디 내세울 입장이 아니지만 빨리 걸을 수 있음에도 함께 자리를 지켜주는것은 동료애 이전의 일종의 미덕이다. 사람이 꼭 지녀야할 덕행을 찾아 산에도 오르는것이지만 이들에게는 이미 찾아야할 그 덕을 스스로 갖추고 있는것이다.
櫛風之交(즐풍지교)
강철의 후미조를 결성하고 난 뒤 격에 맞는 이름을 찾아 고심하던 중 櫛風沐雨(즐풍 목우)란 글이 떠올랐다.
'바람으로 머리를 빗고 비로 목욕을 한다'는 사자성어인데 바람부는 능선길을 머리를 헛날린 채 걸어가며 비가 오면 또 온 몸으로 비를 맞는 우리 산꾼들의 모습과 너무 흡사하지 않은가!
그래서 즐풍을 함께하는 친교라하여 '櫛風之交'라고 우리 모임의 이름을 만들었다. 이름 그대로 고생을 함께 공유한 모임이니 그 이름만큼 친교가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거제수 나무
거제수 나무야 말로 나목이다.
고냉지 채소밭과 매봉산 풍력 발전 단지
09:09
채소밭 입구에 진입금지 푯말이 서 있고 질러 가는 길과 둘러 가는 길이 양심을 괴롭혔다.
둘러가는 길을 택한 나에게 함께 간 일행이 '그리로 갈려고' 하며 불편한 내 융통성을 툭 건드렸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모른척하며 얼른 그의 뒤를 따랐다.
땅을 밟을 때마다 크랙커 부숴지는 소리가 났다. 봄이 재잘거리며 발아래에서 놀고있었다. 봄길을 걷는다기 보다는 봄 위를 날아가듯 채소밭을 빠져 나왔다.
09:14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또 어디로 가고있는지 알고 있는가?
각성과 지남력은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산길을 걸으며 아무리 내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봤자 기준을 모른다면 나는 단지 산길에 버려진것이나 마찬가지다. 산행에 입문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기에 청도 남산 산행을 따라 나선 적이 있다.
비가 내리는 날, 나는 몇차례 알바를 하다 길을 잃게되었고 시그날이 뭣에 쓰는것인지도 모르는 나였기에 산중에 홀로되어 길을 잃는다는것은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때 문득 전화가 왔다. 신경질이 가득 실린 목소리로 "지금 그기 어디에요!"하는 소리가 쩌렁 쩌렁 핸드폰을 울리며 전해졌다.
"여기가 어디지?" 아마 내가 세상에 태어나 들은 질문 중에 가장 막연하고 기막힌 질문이었을 것이다. 뭐라 뭐라 하는 소리가 멍멍 개 짖는 소리처럼 핸드폰을 타고 전해졌지만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아 먹을 수가 없었다. 하도 답답해 "여기는 큰 소나무 밑이야"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러자 내 미련한 대답에 화가 폭발해버렸는지 더 흥분된 소리로 "처음 걸어 온 자리로 돌아가세요"라는것이었다. 처음 걸어 온 자리라니. 거의 두시간을 헤메어 여기가지 올라왔는데 차라리 나보고 산을 내려가라는 편이 더 낫지 않은가. 나는 서글픈 생각을 가슴에 꾹국 누른 채 불편한 다리를 끌며 뒤돌아 걷기 시작했고 천만 다행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앞에 성난 황소처럼 풀풀거리며 걸어오는 일행들을 만났다.
산길을 걷다보면 수많은 이정표가 나온다. 세상에 나 혼자 고립된다는것은 이정표 없는 산길을 걷는것과 마찬가지다.
"where I am going to be."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정신과 용어로는 지남력이라고 하는데 이 지남력이 없는 산행은 산행이 아니라 방랑일 뿐이다.
산길이 이렇듯 삶의 길 또한 마찬가지이다. 삶의 궁극적 끝은 죽음이지만 이 죽음보다 더 힘든 삶을 살아가며 나의 현재를 똑바로 응시하는것, 그것이 기쁨이 되었던 슬픔이 되었던 그 속에서 오롯이 깨어 있는 각성. 그 각성의 매 순간이야말로 행복이 아니겠는가.
더없이 넓은 공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로 돌아온다. 나를 햇갈리게 했던 세상의 고민이라고는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다.
자궁처럼, 회유어의 모천처럼 궁극적으로 그리움인 이 곳. 마침내 내 定處로 돌아 온 기분이다.
전봇대가 서 있는 저 지점으로부터 풍차가 서 있는 저 곳까지의 풍경이 내게는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면과 선으로 분할되는 세상의 아름다움. 몽드리앙의 직선적 분할이 아닌 곡선과 직선의 빈틈없는 조화가 주는 묘한 공간의 해석.
그 어디에도 어울리는 넉넉한 하늘과 땅. 그런 아름다움이 직감처럼 펼쳐진 곳이 바로 이 곳이다.
비행 연습이 있었는지 하늘은 상처 투성이다. 점잖은 풍경을 익살스레 망쳐놓는다.
그 그리움의 선 위에 사람을 장치 했는데 주문보다 너무 멀리 가버려 의도가 훼손되어버렸다.
09:37
사진을 찍다 찍다 지쳐버린 표정이다.
제트구름이 있는 몇장의 하늘
09:41
10:00
매봉산에 오르고도 아직 열시다.
10:03
매봉산에서 바라 본 백암산
아득하면 아름답다.
울타리를 따라 묘하게 이어지는 대간길
함백산 정상에서 바라보았던 그 처연함의 뒤란은 보다시피 처절한 현실이다. 삶을 위해 쉼없이 땅을 일구고 수확을 하는것은 주된 인간의 의무이다.
삶과 존재의 대립에서 무엇을 택할것이냐를 두고 말들이 많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양식으로서 양자택일 하여야 한다고 하면 나는 당연히 존재 양식을 택하겠다. 일찌기 에리히 프롬은 세상을 사는 양식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소유 양식과 어떻게 살것이냐를 늘 진지하게 묻는 존재 양식으로 대별했다.
소유에 대한 만족은 입안의 설탕처럼 당장에는 즐거울 수 있지만 늘 설탕을 달고 살 수 없듯 소유가 삶의 영속적 가치가 될 수는없다. 삶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을 위해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에 놓여있다. 산행을 통해 얻는 즐거움은 삶의 존재 양식에서 얻는 즐거움이다. 행복은 우리 외부의 대상이 아니라 노력을 통해 얻는 내면의 능력이다.
10:29
낙동 정맥 분기점
이 길 따라 죽 내려 가면 내 삶의 터가 나온다. 길과 내가 이렇게 이어져 있는것이다. 길 가운데 내가 있고 내 속으로 길은 관통한다. 인간의 삶은 이처럼 길과 불가분 하게 얽혀있다.
자작나무 숲을 지나며
자작나무 숲을 지나며 산을 올라오는 사람들과 조우했다. 지금 산에 올라와서 언제 내려가실려고 저러지? 가만히 시계를 보니 아직 11시도 안된 오전이었다.
매봉산을 오르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닌가. 살다보니 오전에 산을 내려가는 수가 다 있구나!
어떻던 충분히 즐긴 산행이었고 풍경을 만끽하기에 흠결없는 여유였다. 뒤돌아 보니 마당 깊은 집을 거닌 기분이 들었다.
뒤란에 백화가 난만한 계절이지만 태백의 겨울은 여전히 완고한 채 그 흔한 봄꽃 하나 틔여주지 않았다.
10:47
마침내 삼수령(피재)
- 후 기-
지난번 걸었던 길을 다시 걸었다. 조건이 다른 길이기에 꼭 같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다시 한번 주어진 삶을 사는것처럼 길은 편안했고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처럼 길은 감미로왔다.
잘 익은 포도주를 마신듯 격조가 느껴지는 산행이었다. 나에게 정말 삶이 한번 더 주어진다면 퍼즐 조각을 다시 맞추듯 망설임없는 삶을 살게 될까.
인생의 끝에서 삶을 바라보는 기분. 참 홀가분하다. 생을 마감할 때의 느낌 또한 이런것이었으면 한다.
하이든 첼로 협주곡 2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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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과 함께한 산행 모습들...
늘 아름다움이 흘려 나오는 산행기....
아주 즐겁게 감상하고...
내일도 편안하고 즐거운 산길 되었으면
하는 마음 입니다...
좀 성의 있는 후기를 만들어 올려야한다는 생각은 늘 염두에 두면서도 막상 월요일만 되면 무엇이 바쁜지 후다닥 글 한줄 붙여 올리게 됩니다.
충실한 산행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
드릴 줄은 모르고 항상 받기만 하네요^^
수고 하셨습니다.
석정산인님이야말로 제게는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끝까지 함께 갑시다.핫팅!!!
업무중이라 잠시 시간을 내어 대충 읽어 보았습니다.(한가한 시간에 다시 보기로 하고..)
좋은글 좋은사진 잘 보고 나니 또 다음 산행이 기다려 집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우리가 못보고 지나간 산이 많이 아쉽지요.산이 이사가는 일 없으니 다음번에 또 볼 기회가 있겠죠.
내일 보입시다^^*
poll 님의 글 그림 감상 잘하고 갑니다.
배려에 항상 감사합니다.
배려라니요, 오히려 제가 좋은 길동무를 만난것 같습니다.^^*
나 또한 야간산행은 별로데,
왜냐면 장청소를 아침 일찍 하는습관때문 참느라 힘이 들던데
poll님도 체질이 조금 비슷한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힘든 산행이지만 함께해서 즐거웠습니다
제 처지를 알아주시는 분이 계셔서 정말 반갑습니다.사실 여간 곤혹스럽지 않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