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수원으로 수도이전을 하려다가 노론세력에 의해 못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보수세력이 반대해 실패했다.”
인세로만 20억을 벌었다는 밀리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올해 2월호 시사 월간지 신동아와의 대담에서 이같이 밝혔다.
130만부가 팔린 밀리언셀러의 저자로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연합)과 관련해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은 유 청장은 박정희 정권의 문화재복원에 대해 “영웅주의 사관을 창출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며 “마치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 혼자 싸우고 나머지는 무서워 도망간 것처럼 돼버린 문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경주 천마총과 불국사 복원 등에 대해서는 ‘박정희 시대의 작품’이라며 “역대 대통령 중 박 대통령만큼 문화유산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정조, 노 대통령과 비슷
유 청장은 지난해 10월 노 대통령 가족과 창덕궁 후원을 돌아보고 청와대에서 점심식사를 같이 하며 ‘실세 청장’이라는 평을 받았다. 당시 그는 “역대 왕 중에서 정조가 노 대통령하고 가는 길이 가장 비슷하다”며 우선 수도를 옮기려다 실패한 예를 들었다.
“천도는 권력분산 의도였다. 정조는 수원으로 수도이전을 하려다가 노론세력에 의해 못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보수세력이 반대해 실패했다”
그는 “정조의 개혁에 관해서도 얘기를 했더니 (대통령께서) 흥미를 느끼시는지 정조에 대한 책을 보고 싶다고 했다”며 “박광용 교수의 ‘영조와 정조의 나라’와 정옥자 교수의 ‘정조시대의 문화’를 보내드렸다”고 밝혔다.
유 청장은 노 대통령과 정조 대왕을 비교하며 ‘아부했다’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 지난달 26일 “역대 군주 가운데 가장 개혁을 주장했던 정조의 경험을 배우는 게 좋겠다는 차원에서 했던 발언”이라며 “문화재청장의 입장에서 대통령에게 누구를 닮으라마라는 식의 말투를 쓸 수 없어 비교하는 발언을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박정희, “문화재 관심 지나쳐 문제”
1974년 4월 박정희 유신정권에 의해 소위 ‘민청학련’ 사건으로 1년간 징역살이를 했던 유 청장은 박 전 대통령과의 악연에도 불구하고 문화유산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관심을 높이 평가했다.
“권력이 개입해 문화재를 살려놓은 사례와 망쳐놓은 사례를 들어달라”는 질문에 유 청장은 “경주 천마총과 불국사 복원은 박정희 시대의 작품”이라며 박 전 대통령의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관심이 지나쳐서 문제”라고 꼬집고 “옆에서 문화재 전문가와 건축가 한 사람이 보좌를 해줬다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는 지적을 잊지 않았다.
“아산 현충사, 칠백의총, 신사임당 기념관은 천편일률적으로 콘크리트 한옥에다 미색 수성페인트를 칠해 놓았다. 지역적 환경에 맞춰 건물을 지었다면 근사한 근대 유산으로 남을 수 있었을 텐데 아주 박제화하고 획일화해 놓았다. 그 시절엔 대단한 것이었지만 소득 1만달러를 넘어가니까 우스운 집이 돼버린 것이다.”
충무공 동상 ‘항복한 장수’의 자세
“박정희 정권이 군사쿠데타에 정당성을 부여하려 이순신을 비롯한 군사 영웅관을 조성했다고 썼는데 이순신 장군은 그 이상의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분 아닌가”라는 질문에 유 청장은 “그렇다”며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 유적인지, 박정희 기념관인지 모를 정도로 과장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본래 있었던 현충사는 옆으로 밀어내고 한산섬도 마찬가지”라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순신 장군 개인만 놓고 보면 지금 이상의 대접을 받아야 하는데 정치적으로 오버랩 되니까 사람들한테 오히려 주저하는 마음이 생기게 된 것이다. 역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유 청장은 세종로 충무공 동상에 대해 ‘항복한 장수의 자세’라며 유감을 드러냈다. 그는 “김세중 씨의 작품으로 동상 자체가 왼손잡이로 돼 있다”며 “오른손에 칼을 쥐고 있어 항장(降將)의 자세라는 지적이 있고 북도 세워놓지 않고 뉘어 놨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공간에 영웅적으로 우뚝 세워놓는 것이 좋을지, 광장을 세워서 시민들이 기념사진을 찍으며 같이 어울리게 하는 게 좋을지,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됐다”고 말해 충무공 동상과 관련된 변화를 암시하기도 했다.
김지하, 탁월한 리더...386 평가도 눈길
이해찬 국무총리, 장영달, 유인태 열린우리당 의원,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보좌관, 이철 전 의원, 이강철 씨 등과 함께 민청학련으로 옥고를 치룬 유 청장은 학창시절 서울대 미학과 8년 선배였던 시인 김지하 씨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59학번인 김지하 시인은 폐병으로 요양소 생활을 하느라 대학을 7년 반이나 다녔는데 대학에서 학생운동과 문화 딴따라 선배로서 지휘를 했다”며 음악 김민기, 미술 오윤, 춤 이애주 채희완, 연극 홍세화, 미학 유홍준, 판소리 임진택 등을 김지하사단 출신으로 꼽았다.
유 청장은 김 시인에 대해 “재야 문화운동의 교주이자 문화운동의 탁월한 리더”라며 “우리가 따라갈 수 없는 천재성, 포용력, 지식을 갖고 있어 나를 포함해 내 또래 사람들은 다 그 선배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이외에도 유 청장은 386세대와 관련해 “이념화하고 조직화하고 투쟁화해 운동 자체로는 엄청난 비약이었다”며 “그러한 힘으로 6월 항쟁을 끌어낸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공적”으로 평가해 눈길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