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5104]書仲說題畵屛詩後(서중열제화병시후)
박은이 쓴 그림 병풍의 시 뒤에 쓰다 (書仲說題畵屛詩後)
묵은 종이에 번져날 듯한 먹물 흔적은 남아 있는데
푸른 산 어느 곳에도 혼백을 불러볼 곳이 없구나.
적막한 한 평생에 머리털은 온통 하얗고
비바람 치는 빈 방에서 홀로 문을 닫네.
古紙淋漓寶墨痕
靑山無處可招魂
百年寂寞頭渾白
風雨空齋獨掩門
이 시는 30대 중반에 쓴 작품인 듯하다.
박은이 죽은 지 10년이 되기 전에 친구를 회상하고 그를 그리워한 칠언절구로 원(元)운이다. 제목에 쓴 대로 그림을 그린 병풍에다가 언젠가 박은이 제화시를 썼고, 그가 죽은 뒤에 그 시를 보고 이행 자신이 시를 썼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친한 벗을 잃은 상실감과 그에 대한 그리움을 볼 수 있다. 그는 “시란 뜻을 말하는 것이다.(詩者所以言志)”라고 하였다.(李荇, 皇華集附錄序 및 外舅 成堯叟 淸風錄序, 容齋集 卷9. 참조.) 이는 물론 <서경> 순전(舜典)에 나오는 ‘시는 뜻을 말하는 것이고 노래는 말을 길게 한 것이다.(詩言志 歌永言)’라는 말에서 온 것이지만, 그가 말하는 ‘뜻을 말한다(言志)’라는 것은 언어표현의 차원과 의경(意境)의 차원을 나누어서 의경을 기르는 것이 언어표현을 연마하는 것보다 먼저라고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뜻(志)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여기에 대하여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으므로 확실히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뜻을 말한다(言志)’고 하면서 아울러 뜻(志)을 기른다고 하였으므로 이 때 뜻(志)이란 의미만이 아닌, 의미와 정서의 측면을 가리키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렇다면 이행의 시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의미와 정서란 무엇일까? 이것을 여기에서는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실감과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다.
기구에서 그림 병풍에 쓴 박은의 시를 묘사했는데, 먹물 흔적이 지금도 뚝뚝 떨어질 듯하다고 하여, 그 글씨가 힘차서 마치 글을 쓴 이가 살아있는 듯함을 표현했다. 승구에서 친구는 죽어서 이제는 혼백조차 불러볼 곳이 없고 청산만 푸르다고 하여 벗을 잃은 처절한 상실감을 청산과 대비시켜 드러냈다. 허균은 이 구가 비창한 말(愴語)이라고 평했다. 전구에서는 시상을 전환하여 자신의 처지로 돌아왔는데, 벗을 잃고 난 후의 시인은 평생이 적막하고 공허해서 온통 머리털이 하얗게 되었다고 했다. 결구에서 시인은 벗이 없는 세상은 비바람 치는 곳이고 삶의 의미도 없는 곳이므로 홀로 문을 닫고 친구만을 생각하겠다는 것이다. 친구를 잃은 상실감이 지나쳐서 정서가 폐쇄적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한갓 ‘기이한 생각과 기이한 말(奇想奇語)’을 고집하는 송시(宋詩)의 영향만이 아닌 박은에 대한 우정의 절실함에서도 기인한다고 해야 하겠다. 그는 박은이 죽은 후에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를 간행했고, 박은과 함께 시 짓고 노닐었던 일을 회상하는 많은 시를 지었다. 그는 박은에 대하여 말하기를, 함께 자라고 함께 배웠으며 뜻한 바도 같은 지기(知己)였는데, 조정에서 직언을 다하다가 끝내 화를 당했다고 하고, 그의 시가 사람들의 의표를 뛰어넘어 거짓된 수식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글이 되니 아마 천고에 드문 글이라(李荇, 朴仲說墓誌 및 挹翠軒遺稿序, 容齋集 卷9, 참조. 洪萬宗, 小華詩評. 참조.)고 하여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그는 이렇게 천재시인과 벗했음을 자랑으로 여기고 유고를 간행하고 그를 추억했으며 또 그와 같은 시인이 되기를 기약하여 결국 시인으로 대성했다는 평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정서에는 친구와 함께 했던 젊은 날에 대한 상실감과 그리움이 지속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오래된 종이에 먹 자국[寶墨] 생생한데 푸른 산에 혼 부를 곳 없어라. 적막한 백년 인생에 머리가 온통(渾) 세었는데 비바람 치는 빈 서재[空齋]에서 홀로 문을 닫는다
古紙淋漓寶墨痕 靑山無處可招魂 (愴語) 百年寂寞頭渾白 風雨空齋獨掩門
*측기식. 평성 元韻(痕, 魂, 門) *《용재집》에 제목이 〈書仲說題畫屛詩後〉로 되어 있다. 《속청구풍아》에 제목이 〈書仲說朴誾題畫屛詩後〉로 되어 있다. 《기아》와 《대동시선》은 위와 같다.
*淋漓: 물이 뚝뚝 듣는 모습. 또는 생동감이 있는 모습. *寶墨: 진귀한 먹이나 이로써 그린 도서(圖書)를 가리키는 말이다. *청산: 묘지를 가리킨다. 소식 시에 용례 있음. *초혼: 죽은 이의 넋을 부르다. *공재: 빈 집.
*이행(1478~1534):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택지(擇之), 호는 용재(容齋). 1495년(연산군 1) 증광 문과에 급제해, 권지승문원부정자로 관직 생활을 시작해 예문관 검열·봉교, 성균관전적을 역임하고, 『성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500년 하성절질정관(賀聖節質正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홍문관수찬를 거쳐 홍문관교리까지 올랐다. 1504년 갑자사화 때 사간원헌납을 거쳐 홍문관응교로 있으면서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하다가 충주에 유배되고, 1506년 초 거제도에 위리안치되었다. 이 해 9월에 중종반정으로 풀려나와 다시 홍문관교리로 등용되고, 이어 부응교로 승진되어 사가독서했다. 1515년 사간원사간이 되고, 이어 대사간으로 승진하였다. 이 때 신진 사류인 담양부사 박상(朴祥)과 순창군수 김정(金淨) 등이 폐비 신씨(愼氏)의 복위를 상소하자 이에 강력히 반대하였다. 1517년에 대사헌이 되었다. 그러나 왕의 신임을 얻고 있는 조광조 등 신진 사류로부터 배척을 받아 첨지중추부사로 좌천되자 사직하고 충청도 면천에 내려갔다. 1519년 기묘사화로 조광조 일파가 실각하자 홍문관부제학이 되고, 이듬해 공조참판에 임명됨과 동시에 대사헌과 예문관대제학을 겸하였다. 1524년 이조판서, 1527년 우의정에 올라 홍문관대제학 등을 겸임하였다. 1530년 『동국여지승람』의 신증(新增)을 책임맡아 끝내고 좌의정이 되었다. 이듬해 권신 김안로(金安老)의 전횡을 논박하다가 오히려 그 일파의 반격으로 판중추부사로 좌천되고, 이어 1532년 평안도 함종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1537년 김안로 일파가 축출되면서 복관되었다. 문장이 뛰어났으며, 글씨와 그림에도 능하였다. 중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용재집』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定)이었으나 뒤에 문헌(文獻)으로 바뀌었다. 남곤(南袞), 심정(沈貞)과 함께 《속동문선(續東文選)》을 편찬했음. 허균은 성수시화에서 ‘조선의 시를 크게 성취시킨 조선 제일의 시인’이라고 지목했음. 해방 후의 한문학사들도 대충 이 의견을 그대로 수용 (김혜숙 1999:162)
*용재집: 1634년 간본. 문집총간20(규장각본 奎1703) 10권 7책. 용재집 번역은 이상하. 주세붕이 행장을 썼다 함. 호는 용재 외에도 청학도인(靑鶴道人)과 창택어수(滄澤漁叟)가 있음. 연산군대에 박은의 논사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고 관노로 유배된 적이 있음. (27세, 1504년)
*평설 1513년 경 지기 박은(朴誾, 1479~1504)가 죽은 후 그의 유묵을 어루만지면서 비감에 젖은 작품이다. 박은이 써놓은 시구는 아직도 먹이 마르지 않아 금방 쓴 것 같은데, 박은은 이미 죽고 없어 다시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 다음, 홀로 살아남은 자신은 고민에 머리가 온통 백발인 채, 그를 추억하며 홀로 상념에 잠긴다 하였다. 이행이 박은을 그리워하여 지은 시에는 이와 같이 처창한 느낌을 주는 것이 많다. 承句의 개탄을 두고 허균은 처창(悽愴)한 말이라 평했다. (강석중 외, 허균이 가려뽑은 조선시대의 한시2, 286~287쪽)
*참고 김혜숙, 「이행의 생애와 시-이행 시의 주류적 정조와 정감의 흐름」, 한국한시작가연구 4, 한국한시학회, 1999. 이행 시의 주류적 정조를 1) 삶의 고달픔과 애상(입춘후 유감) 2)귀거(歸去)의 욕구와 서성임(여산도중 등), 3) 벗의 상실과 고독감, 그리움, 쇠락의 슬픔(위의 시, 8월 18일 夜 등) 4) 자연과 마주하는 안정과 기쁨이라 지목했음. 이행 시에 대한 논의로 이종묵, 이창희(고대 박사), 안병학, 홍순석 등이 있음 |
용재집 제1권 / 칠언 절구(七言絶句)
容齋先生集卷之一 / 七言絶句
書仲說題畫屛詩後
古紙淋漓寶墨痕。靑山無處可招魂。
百年寂寞頭渾白。風雨空齋獨掩門。
중열(仲說)이 화병(畫屛)에 제(題)한 시 뒤에 적다.
낡은 종이에 질펀한 보배로운 먹 흔적 / 古紙淋漓寶墨痕
청산 그 어디에도 초혼할 곳이 없어라 / 靑山無處可招魂
적막한 백 년 인생 머리털 온통 흰데 / 百年寂寞頭渾白
풍우 치는 빈 집에 홀로 문 닫고 지내노라 / 風雨空齋獨掩門
ⓒ 한국고전번역원 | 이상하 (역) |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