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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보물 제6호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이고
당신 인생 최고의 날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이다
--- 고도원, 「아침편지」중 ‘토마스 바샵의 파블로 이야기’에서
▶ 산행일시 : 2012년 5월 9일(수), 맑음, 산정에는 시원한 바람
▶ 산행인원 : 9명
▶ 산행시간 : 4시간 28분(휴식 포함)
▶ 산행거리 : 도상 9.3㎞(창녕 조씨 문중 묘소에서 고달사지까지 들길과 도로 2.6㎞ 포함)
▶ 교 통 편 : 이계하 님 카니발
▶ 시간별 구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 따랐음)
09 : 23 - 상일육교 출발
10 : 52 -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上橋里) 고달사지(高達寺址), 산행시작
11 : 31 - 능선 진입
11 : 45 - 너른 공터, ┤자 갈림길, 우두산 정상은 왼쪽으로 200m 떨어져 있음
11 : 49 - 우두산(牛頭山, 484m)
12 : 19 - 474m봉, ┬자 갈림길, 오른쪽은 상교리로 가는 길
13 : 00 - 고래산(△541.1m)
14 : 20 - 옥녀봉(玉女峰, 423m)
14 : 45 - 창녕 조씨 염곡문중 묘소
15 : 20 - 고달사지, 산행종료
1. 상일육교 아래 화원에서
▶ 우두산(牛頭山, 484m)
오기산악회 창립 때부터 지금까지 근 7개월 동안 산행시마다 회비로 2,000원씩 갹출하여 모
았던 것이 거금 208,000원. 오늘 다 먹어버리고 하였다. 음식메뉴는 바야흐로 여름철이 오고
하니 보신탕이 적당하고 장소는 양평 무왕리에 있는 김기월 대장님의 별장에서다. 어제 대장
님과 몇 분이 천호시장에서 장을 보았다.
혹시 내가 그간 기여한 바가 얼마인데 느그덜끼리 그러기냐 하고 언짢이 생각하는 회원이 계
시다면 언제라도 오기산악회 수요산행에 나오시라. 기여 이상의 대접을 해드리겠다.
지평면 지나 금당천(金塘川) 건너 산속 깊숙이 들어간다. 아늑하고 아담한 별장이다. 대장님
을 비롯한 네 분이 남아서 음식을 장만하고, 나머지는 구자현 회장님을 앞세우고 미리 공지한
산행을 위해 고달사지로 간다. 345번 도로 타다 여주 주암에서 88번 도로로 갈아타고 뺑치고
개 가기 전에 고달사지 방향표시 따라 우회전하면 확 트이는 개활지가 나온다.
고달사지(高達寺址)다. 이 너른 규모로 미루어 폐사한 고달사는 엄청나게 큰 절이었다. 고달
사지는 이따 산행 마치고 나서 둘러보기로 하고 허름한 고달사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원
점회귀 산행하려면 만만하지 않을 것이라 서두른다. 고달사 절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지계곡
건너 뚜렷한 등로가 있다.
낙엽 깔린 길이다. 녹음 우거진 한갓진 숲속 길 산보려니 하고 걷는다. 오름길 사면은 바람막
이이기도 하여 무척 더운 날이다. 30분 남짓 거친 숨 예열하여 능선에 진입하면 부드러운 능
선 길이 이어진다. 하늘 가린 굴참나무 숲길이다. 넙데데한 사면이 나오면 괜히 들려 드물게
보이는 참취와 고사리, 삽주 꺾는다.
360m봉 넘으면 아름드리 소나무 숲길이다. 약간 떨어졌다가 비로소 산을 가는 것처럼 가파
른 긴 오름이 시작된다. 우리더러 힘내라는 응원이리라. 검은등뻐꾸기가 멀리서 또는 가까이
서 ‘카카카 코~’하고 지저귄다. 혹자는 ‘홀딱벗고’처럼 들린다고 하여 홀딱벗고새라고 부른
다. 휘파람 소리로 모창하는 것도 재미있다.
된 오름 멎은 너른 공터. ┤자 갈림길이 있다. 우두산 정상은 능선 마루금 벗어나 왼쪽으로
200m 더 가야 한다. 다니러 간다. 평탄한 등로다. 우두산 정상은 소나무 숲 두른 적적한 공터
다. 조그마한 정상 표지석이 있다.
2. 상일육교 아래 화원에서
3. 애기똥풀(Chelidonium majus subsp. asiaticum)
양귀비과의 두해살이풀. 5~8월에 노란 꽃이 산형(繖形) 화서로 잎겨드랑이에서 피고 열매
는 삭과(蒴果)이다. 마취와 진정 작용이 있어 약용한다.
4. 우두산 가는 길
5. 우두산 정상
▶ 고래산(△541.1m), 옥녀봉(玉女峰, 423m)
다시 ┤자 갈림길 공터로 오고 고래산 가는 주등로는 오른 것만큼 가파르게 떨어진다. 밧줄이
달려있다. 높은 파고 출렁이듯 요동하는 산등성이 오르내린다. 474m봉을 오르고 나서 잔잔
하다. 안부가 얕아 국사령(國士嶺)을 짚어내지 못하였다. 숲길 가다보면 거미줄 타고 내려오
는 애벌레를 다 피하지는 못한다. 목덜미가 스멀스멀하여 더듬어보면 틀림없이 애벌레가 물
러 터져 잡힌다.
고래산 정상. 너른 공터다. 오석의 정상 표지석 뒤에 간이 평벤치가 있다. 삼각점은 2등 삼각
점이다. 여주 24, 1988 재설. 김장호의 「명산의 유적을 찾아서」(월간 산, 1998년 8월호)에
따르면 고래산이라는 이름에는 이설이 있지만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경기도의 곡창이라
할 여주 들녘에서 한바다에 뜬 고래등처럼 쳐다보여 그 이름이라는 속설이 그렇고,
옛적 고려장터여서 고려산이었다가 고래산으로 변성(變聲)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한
다. 이 고래산 북동쪽 431m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아래에도 이 고장사람들이 ‘고려장굴’이라
일러오는 바위굴이 남아 있다고 한다. 거기 아니래도 우리가 옥녀봉 가는 길에 빠지면 살아남
기 어려울 수직굴과 몇 개의 함몰지대를 보았으니 그 근거는 충분하다. 이영상 님의 말도 그
럴 듯하다. 당초에는 ‘고달프게 오른다’ 하여 고달산이었는데 나중에 고래산으로 개칭하지 않
았겠느냐는.
옥녀봉 가는 길. 실수하였다. 정상에는 햇볕이 쨍쨍하여 정상 살짝 벗어난 나무그늘 아래에서
잠시 쉰 것까지는 좋았는데 다시 정상으로 가서 진행방향을 살피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이
뚜렷한 등로(금동으로 내리는 길이었다)가 당연히 옥녀봉으로 가겠지 하고 따랐다. 한 차례
뚝 떨어지고 옥녀봉 방향이 틀어지기에 사면 오른쪽으로 트래버스 하여 옅은 능선 잡아 우르
르 내리쏟는다. 등로는 우리를 유인해놓고 사라졌다.
이런 경우에도 고래산 정상으로 되돌아가서 길을 바로 잡아야 하는데 너무 내려왔다. 아예 골
로 가서 바로 건너편인 옥녀봉 북사면을 오르자고 한다. 오기산행이 오지산행이다. 산에 가는
맛 난다. 더덕향기 진한 골짜기 너덜로 떨어지고 마른 지계곡 건너 가파른 자갈지대 오르니
흐릿한 인적이 안내하여 고래산 내린 주등로 안부에 이른다.
박성태의「신산경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남한에 있는 옥녀봉은 65개다. 옥녀봉은 선녀의
다른 말인 옥녀(옹녀가 아니다)가 즐겨 노니는 봉우리이라 첨봉이기 마련인데 이 옥녀봉은 아
주 순하다. 외려 방금 전에 길 잘못 들어 흠뻑 흘린 땀 식히며 간다.
옥녀봉 정상. 아무런 표시가 없다. 사방 나무숲 둘러 조망도 없다.
증골을 겨냥하고 내린다. 인적이 뚜렷하다. 잡목 숲 헤치다 암벽 밑으로 돌아내리고 저 앞에
보이는 것이 저수지인가 다가가자 물 가득 실은 논이다. 그 아래는 창녕 조씨 염곡문중 묘소
다. 약사암으로 내리고 증골. 증골은 폐가가 더 많다. 그래도 목련과 으아리는 이 봄날 빈 뜰
일망정 화사하게 꾸미고 있다. 도자기 굽는 가마를 지나 농로 따른다.
7. 고래산 정상, 이계하 님과 정국진 님(오른쪽)
8. 미나리냉이(Cardamine leucantha), 옥녀봉 가기 전 골짜기에서
십자화과의 여러해살이풀. 잎은 어긋나고 우상 복엽이며 피침 모양이고 가장자리에 불규
칙한 톱니가 있다. 흰 꽃이 줄기 끝과 가지 끝에서 총상(總狀) 화서로 피고 어린순은 식용
한다.
9. 큰꽃으아리 (Clematis patens), 증골마을에서
미나리아재빗과의 낙엽 활엽 덩굴나무. 잎은 마주나고 세 쪽 겹잎 또는 우상 복엽으로 작
은 잎은 피침 모양이다. 열매는 둥근 수과(瘦果)로 가을에 익는다.
10. 고달사지 옆 느티나무
▶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신석(身石, 碑身)을 찾아서
고달사지를 둘러본다. 우선 이 방대한 절터에 놀란다. 하긴 고달사는 고려 중기 5대 사찰의
하나였다고 한다. 다른 넷은 이 근방 미륵산의 거돈사(居頓寺), 합천 삼가의 영암사(靈岩寺),
거창 기백산의 지곡사(智谷寺), 황해도 해주의 신광사(神光寺)라고 한다.
고달사지 석조대좌. 불상은 없고 대좌만 남았다. 보물 아니래도 솜씨 좋은 조각의 수작에 그
저 아연할 수밖에. 이럴진대 석불은 어떠하였을까? 알현할 수 없어 아쉽다.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만 있다. 이수에는 ‘慧目山高達禪院國師元宗
大師之塔(혜목산고달선원국사원종대사지탑)’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혜목산(慧目山)은 우두산이라는 설도 있으나 이 산줄기의 주산인 고래산을 말한다는 것이 유
력하다. 귀부(龜趺)는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碑石)의 받침돌을 말하는데 나는 이 받침돌이
거북이라는 것에 흔쾌히 동의하기 어렵다.
작년에 유홍준 교수의「나의 문화유산답사기(6)」내용 중 비석을 이고 있는 ‘돌거북’ 또는 ‘돌
거북받침’ 이라고 하여 이는 돌거북이 아니라 용의 새끼라는 ‘비희(贔屭)’가 아닌가 하고 출판
사에 물었는데 아직 대답을 받지 못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돌베개, 김혈조 옮김, 2009) 제3권 418쪽 ~ 420쪽을 보면,
명나라 사람 용수(用修) 양신(楊愼)의 『丹鉛錄』(단연록)이라는 책에,
“용은 용이 되지 못할 새끼를 아홉 마리 낳는다. 첫째, 비희(贔屭)라고 불리는 놈은 모양이 거
북처럼 생겼으며 무거운 것을 잘 짊어진다. 지금 비석의 바탕돌로 거북이 모양으로 만든 것이
이놈이다. 둘째 치문(鴟吻)이라고 불리는 놈은 그 성질이 멀리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지금 지
붕의 용마루에 올려놓은 놈이 그놈이다. 셋째, 포뇌(蒲牢)라고 불리는 놈은 성질이 울기를 잘
한다. 지금 종을 매다는 꼭지 부분에 새기는 놈이 그놈이다. ……”
이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설명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비는 일찍이 무너져 신석(身石)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져, 현재는 경복궁 근정전 서쪽 회
랑에 진열되어 있으며 …”
이 신석을 찾으러 갔다.
경복궁을 갔다. 매표원에게 이 설명문을 보여주며 신석을 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언젠가
어느 사람도 그렇게 물었는데 찾지 못했다고 한다. 안내소에 가서 알아보라고 한다. 안내소는
매표해야 들어갈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검표원에게 잘 말하란다. 검표원이 나를 위아래로 훑
어보더니 진정성이 보였는지 그냥 들어가라고 한다.
안내소에 들어갔다. 젊은 남자 안내원이 창구에 앉아있다. 신석 좀 보자고 했다. 컴퓨터를 몇
번 만지작하더니 경복궁에는 없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알아보라고 한다. 국립중앙박
물관 전산자료실로 전화 걸었다. 그 신석이 어디에 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유물관리부에 알아
보라고 한다. 유물관리부로 전화 걸었다. 여주군에 있던지 문화재청 소관이라고 더듬거린다.
아니 그 신석이 이리로 왔다는데 그 소재를 모르시느냐고 다그쳤더니 연락처를 남겨두고 기
다리란다. 자세히 알아보고 나서 연락하겠다고 한다. 2시간쯤 기다렸을까. 알아냈다고 한다.
국립중앙박물관 홈페이지 ‘유물마당’에 가서 소장유물 열람신청서를 서면으로 작성하여 제출
하라고 한다. 신청서는 팩스로 보내도 된다고 한다. 신청사유를 심사하여 타당하면 열람할 수
있다고 한다.
유물마당에 갔다. 열람자격이 매우 까다롭다.
① 공공기관ㆍ교육기관ㆍ학술기관 또는 연구단체에 근무하는 직원으로 연구의 목적을 가진
사람
② 석사학위 소지 이상의 연구자로서 연구의 목적을 가진 사람
③ 석사과정 수료자로서 소속 학교 학과장의 추천을 받아 학위논문을 작성하는 사람
④ 기타 우리 관 관장이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
신청서에는 주민등록증과 위 자격을 입증하는 서류를 첨부해야 한다.
나는 ‘④ 기타 우리 관 관장이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을 노렸다. 신석을 보고자
하는 사유를 별도로 구구절절이 썼다.
신석 찍을 카메라를 청소하며 열람허가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전화가 왔다.
“그 신석은 여러 조각이 났고 훼손정도가 심하여 어느 누구에게라도 열람시키지 않고 있습니
다. 죄송합니다.”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열람하지 못하는 것도 비극이고 신석이 상한 것은 더 큰 비극이다.
무왕리 김기월 대장님 별장. 먹고 마시고 웃고 또 먹고 마시고 웃고 ….
우리의 춘유가 고려 말 문장가 한수(韓修, 1333~1384)가 고달사를 찾아 읊은 시 후단과 비슷
하다. ‘웃고 떠들다가 돌아갈 일 잊었으니(笑談竟夕忘歸路)’
서산에 해지자 돌아갈 일 생각한다.
20년 전 옛일이 꿈만 같아라 二十年前似夢間
소년시절 사귄 벗들 절반은 가고 없네 少年交契半黃泉
오늘 다시 고달사를 찾아온 것은 今來高達古精舍
원통(圓通), 큰 복전(福田)을 만나고자 함이니 爲有圓通大福田
사방으로 둘러친 산, 푸른 절간 에워싸고 四面山屛圍紺宇
빗돌 하나만이 하늘에 기대었네 一條碑石倚靑天
웃고 떠들다가 돌아갈 일 잊었으니 笑談竟夕忘歸路
그 때 묘련(妙蓮)에 놓였던 시절을 되만난 것 같구나 還似當時在妙蓮
(월간 산, 1998년 8월호, 김장호의 「명산의 유적을 찾아서」에서)
11. 고달사지
12. 고달사지 석조대좌, 보물 제8호
13.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보물 제6호
15.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이수
16.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첫댓글 안탑깝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