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2. 06. 주일오전예배 설교문 본 문 : 마태복음 13 : 3 - 9
제 목 : 신앙생활의 장애물을 제거하라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은총이 이 시간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직도 북풍한설은 몰아치는 겨울인데 절기상으로는 어제 그제 입춘이 지났습니다. 조금후에 봄이 오면 만물이 생동하는 계절입니다. 우리들의 신앙도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믿음이 생동감 있게 소생하는 절기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이 역사 하십니다.
(행10:44-46)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 말씀을 들을 때에 모든 죄악을 이기게 됩니다.
(계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이 시간도 말씀을 들을 때에 가지가지 모든 은혜와 은사가 여러분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여 천국의 복음을 가르쳐 주신 「씨 뿌리는 비유」 입니다. 씨가 땅에 뿌려져서 열매를 맺고 알곡이 되어서 거두어 질 때까지 수많은 어려움과 환난과 고난과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통과해야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의 심령의 밭에 하나님의 복음의 씨가 뿌려져서 열매를 맺기까지는 수많은 역경과 고난과 환난과 또 수많은 장애물들을 잘 통과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들이 믿음의 생활을 하는데 우리들이 나아가는 천국 길을 가로막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무엇이며 그 장애물들을 어떻게 통과를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에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예기치 못했던 어려운 일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그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끝까지 달려 나가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상급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마24:13)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고, 사도 바울은 (딤후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입니다. 이 비유의 뜻은 하나님의 천국 복음을 듣고 결실 하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본문 말씀에서 또 한 가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서 결실하기까지 수많은 시련과 고난과 위험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새들이 쪼아 먹어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위협을 받기도 하고, 때로는 비가 오지 않아서 가뭄에 시달려야 하고, 또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장마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각종 잡초와 병충해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모든 어려움의 과정을 다 겪고 나서야 비로소 결실의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오늘의 우리들의 신앙생활에도 이와 같은 위험 요소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장애물입니다.
1.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입니다.
(마13: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사람이 살아가는데 이 유혹이야말로 당하지 않을 수가 없고, 또 가장 힘든 장애물입니다. 이 유혹의 장애물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넘어졌는지 모릅니다. 마태19;16-22 말씀을 보면 어떤 부자 청년 관원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구원의 도리를 알려고 할 때 예수님께서는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고 말씀하시니까 “그 청년이 재물이 많음으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시험을 물리칠 때에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리라” 고 하셨습니다. 또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마6:31-32)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2. 세상을 사랑하는 장애물입니다.
딤후4:10 말씀에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다” 고 하였습니다. 데마 는 바울의 동료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옥에 갇히게 되자 바울을 떠나서 고향 데살로니가로 갔습니다. 데마 는 세상의 물질과 향락과 쾌락을 좋아하여 바울을 떠났습니다. 데마가 바울을 떠난 것은 곧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믿음을 떠나고 신앙을 떠난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의 말씀 중에 부자는 날마다 연락을 즐기다가 지옥에 갔습니다. 오늘날 성도들 중에서도 세상을 사랑하여 믿음을 배반하고 세상길로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장애물을 이기고 넘어야 합니다.
3. 육체의 정욕의 장애물입니다.
정욕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육체와 영혼까지 파멸시킵니다.
사탄이 사용하는 무기 중에 아주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 장애물에 넘어진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성군 다윗 왕도 그만 이 장애물에 넘어져서 옥에 티가 되었습니다. 솔로몬 왕도 말년에 이 장애물에 넘어졌습니다.
민25:1-8절 말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을 향하여 갈 때에 모압 나라 발락이라는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하려고 계교를 짤 때 발람이라는 선지자의 자문을 받아서 자기 나라의 미녀들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하여 음행 죄를 짓게 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염병을 보내어 24,000명을 죽게 하였습니다. 오죽하면 하나님이 십계명 가운데 “간음하지 말라” 는 계명을 주셨습니까? 지금도 이 장애물에 넘어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장애물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도 옵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이 장애물에 걸리면 여지없이 넘어지고 맙니다.
그런데 이 정욕의 장애물과 시험은 남자들에게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여자들에게도 이와 같은 시험이 옵니다. 사탄은 이제 말세가 되어서 온갖 궤계를 다하여 우리 성도들을 미혹하여 넘어뜨리려고 하고 있고, 우는 사자처럼 우리를 삼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잠7:25-27)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되지 말지어다. 대저 그가 많은 사람을 상하여 엎드러지게 하였나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하니라. 그의 집은 스올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
4. 나태함과 게으름의 장애물입니다.
(잠6:9-11)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사탄은 우리 성도들을 시험할 때 게으름의 장애물을 갖다 줍니다. “내일 하라” “천천히 하라” “다음에 하라” 고 속삭입니다. 그래서 교회 가지 못하게 하고, 예배드리지 못하게 하고,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헌금도 하지 못하게 하고, 열심도 내지 못하게 하고, 충성하지 못하게 합니다. 모처럼 새벽기도 하려고 결심하면 다음부터 하라고 합니다.
(잠6: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이 게으름과 나태함의 병에 한 번 걸리게 되면 좀처럼 헤어나기가 힘이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계2:5절 말씀에 에베소 교회에게 하신 말씀 중에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 고 책망하시면서 “회개하라” 고 하셨고
계3:19절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신 말씀에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고 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믿음은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미지근하였기 때문입니다.
(롬12:11) 사도 바울은 로마의 교인들에게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대하29:11) “내 아들들아 이제는 게으르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미 너희를 택하사 그 앞에 서서 수종들어 그를 섬기며 분향하게 하셨느니라”
게으름과 나태함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진 자는 빨리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주위에서는 빨리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일어나서 빨리 달려가야 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앞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5. 환난과 핍박의 장애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고난 중에 환난과 핍박의 고난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것입니다. 이유도 없이 미워하고 핍박을 합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환난의 역사요 핍박의 역사입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다만 예수를 믿는 다는 이유만으로 핍박을 받아도 미워할 수 없는 것이 기독교인입니다. 오히려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고 하였습니다.
(마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눅6:28)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우리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마5:10-12)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6. 실패와 좌절의 장애물입니다.
누가복음 5장 1절 이하의 말씀에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기 전에 그는 밤새워 고기를 잡으려고 하였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이제는 다 틀렸다고 포기하고 그물을 씻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라” 는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니 고기가 어찌나 많이 잡혔는지 그물을 들을 수가 없어서 다른 배까지 불러 두 배에 가득 채웠습니다. 베드로는 이때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 중에 실패하신 분이 있습니까? 좌절하지 마십시오. 실패의 장애물을 넘어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백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실패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서 성공의 아침을 맞이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성공 뒤에 오는 교만과 자만의 장애물도 있습니다. 사울 왕이 그랬습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삼손도 그랬습니다.
(신8:11-14)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2022년에도 우리들의 앞에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환난이나 고난을 잘 극복하고 나면 그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주시고 합력 하여 유익 되게 해 주십니다.
(시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쪼록 우리가 금년 한 해 동안 신앙생활 할 때에 어떤 형태의 장애물이 있다고 하여도 우리 주님이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과,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