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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를 회복하여 예슈아를 닮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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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슈아께 초막절은 정체성이다.
예슈아께서도 초막절을 지키셨다. 그뿐 아니라 왕의 대관식을 하셨다. 굉장히 큰 무리가 예루살렘에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슈아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즉 예슈아께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다스릴 왕으로서 오실 것이며 구원자이시다. 예슈아는 왕중의 왕이시며 온 나라를 다스리는 영광을 얻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초막절은 예슈아께 너무나 중요한 절기이다. 우리에게도 초막절은 가장 중요한 절기여야 한다. 유월절이 예슈아의 영광스러운 죽음으로서 중요한 절기이지만 유월절도 초막절을 위해 있는 것이다. 죽으신 목적은 영원한 승리로 우리의 왕이 되시기 위함이기 때문이다(요12:12,13).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요12:12,13)
2 선지자의 말을 이루셨다
예슈아께서는 겸손하셔서 멍에를 매는 나귀의 새끼를 타셨다. 이것은 왕으로 오실 메시아에 대한 스가랴의 예언의 성취였다(슥9:9 마21:4,5). 이처럼 신약은 구약의 성취이다. 계속해서 구약은 신약을 통해 성취될 것이다. 예슈아께서는 삶을 통해 구약을 살아냄으로써 말씀을 성취하셨다. 그러므로 신약은 간증, 증언, 증거와도 같다. 우리도 태초부터 보이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위해 구약의 말씀을 성취하며 살아야 한다. 방법은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그것이 말씀의 성취이며 하나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는 방법이다.
스가랴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슥9:9)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마21:4,5)
3 대관식 후 성전으로 들어가셨다
예슈아께서 왕의 대관식을 하시며 성전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 저는 자들을 고치시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온전한 찬미를 받으셨다. 그것은 앞으로 올 메시아 왕국에서의 대관식을 보이신 것이다. 또한 대관식 후 성전에 도착하자 마자 하신 일은 상을 엎고 희생 제물이 될 동물들을 파는 자들의 의자를 엎으신 것이다. 그리고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다. 그런데 왜 강도의 소굴을 만드느냐"라며 이사야 말씀으로 분노하며 책망하셨다. 성전은 마땅히 온 민족이 기도하는 집이어야 한다. 그러면 희생 제물을 반대하고 성전에서 필요한 것을 판매하지 말라는 뜻일까? (마21:12-16)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마21:12-16)
4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란?
예슈아께서 성전을 엎으시면서 인용하신 말씀은 이사야서이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의 의미를 잘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신약은 구약을 통해 설명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섬기려고, 그분의 이름을 사랑하려고, 그분의 종이 되려고, 여호와의 언약을 붙들기 위해 샤밧을 지키고 스스로 여호와와 연합하는 모든 이방인을 시온산에 있는 성전으로 인도할 것이고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제단에서 기꺼이 받을 거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성전은 만민 즉 모든 사람이 기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희생 제물을 반대하거나 예배에 필요한 것을 팔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성전은 유대인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여호와와 연합된 모든 자들을 위해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고 여호와의 언약을 굳게 지킬 것이다. 그래서 회복된 성전에서 우리의 제물을 기쁘게 받으실 것이다(사56:6,7).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내가 곧 그들을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나의 제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사56:6,7)
초림하신 예슈아께서 나귀를 타시고 왕의 대관식을 하신 후 성전을 엎으신 것은 앞으로 오실 예슈아께서 하실 일을 보이신 것이다. 초막절에 왕으로 오실 예슈아께서는 여호와와 연합된 모든 민족을 위해 다시 성전을 정결케 하시고 세우실 것이다.
5 전쟁을 준비하라
예슈아께서 다니엘서를 인용하시면서 마지막 때를 말씀하셨다. 지금은 마지막 추수에 해당하는 초막절 시즌이므로 우린 예슈아의 경고를 주의깊게 들어야 한다. 앞으로 거룩한 곳인 성전이 예루살렘에 세워질 것이다. 처음에는 거룩한 성전이었으나 후에 그곳에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설 것이다. 곧 세상의 절대 권력자인 짐승의 형상이 세워질 것이다(계13:14,15). 그때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없던 크고 두려운 환란이 있을 것이다. 동시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표적을 보이고 기적을 일으키며 성도들을 미혹할 것이다. 환란을 피하기 위해 기적을 따라가는 자들은 모두 미혹될 것이다. 앞으로 있을 환란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통과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린 초막절의 시즌을 맞아 미혹과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많은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사역자들은 거짓을 가르치고 목숨까지도 위협할 것이다 사람의 어떠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신뢰함으로 걷는 것, 그것이 전쟁하는 방법이다. 이처럼 짐승에 의해 더럽혀진 성전을 예슈아께서 오셔서 정결케 하시고 말씀대로 세우실 것이다(마24:15-2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 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마24:15-25)
6 혼인 잔치에 가기 싫어하는 백성
천국은 혼인 잔치와 같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은 혼인 잔치에 가지 않고 자기 밭에 일하러 가고 자기 사업장으로 달려간다. 심지어 하나님의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인다. 그렇다면 이들은 천국에 가기 싫어하는 자들일까? 정말 천국에 관심이 없어서 자기 사업하러 가고 밭으로 달려가는 것일까? 물론 아니다. 천국에 가기 싫은 자들이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 이들은 초청을 받은 자들이었다. 즉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천국에 들어갈 유업이 있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왜 이들은 혼인 잔치에 가기 싫어하는 것일까? 그리고 초청하는 주의 종들을 모욕하는 것일까? 왜냐하면 이들은 혼인 잔치가 천국을 의미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초막절은 혼인 잔치를 연습하는 절기이다. 그런데 초막절이 혼인 잔치의 절기인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니 이 사실을 아는 주의 종들은 얼마나 될까? 절기는 장차 올 세상 즉 천국의 그림자이다. 그러나 오히려 초막절을 지킨다고 하면 이상한 집단으로 바라보는 자들이 많다. 예슈아께서 미리 경고하신 대로 주의 종들을 모욕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다. 그러므로 핑계치 못할 것이다. 예슈아께서는 이런 자들을 '자격이 없는 자들' '합당하지 않은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마22:1-8).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마22:1-8)
7 예복을 입어라
원래 천국에 초청을 받은 자들은 합당치 않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천국을 볼 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졌고 이들에게 요구되는 한가지 조건은 '예복'이었다.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바깥 어두운 곳에 던져질 것이고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예복'이 무엇일까? 원어로 예복은 결혼할 때 입는 옷으로 '웨딩드레스'를 말한다. 즉 신부가 마땅히 입어야 할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자들이 천국에 초대를 받는다. 그러나 웨딩 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아주 소수일 것이다. '적다'는 원어로 '아주 작은, 거의 없는'의 뜻이다. 그러므로 수적인 부흥을 꿈꾸는 것은 마지막 때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마22:9-14).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22:9-14)
8 계명을 위해 순교하는 자들
추수의 때에 알곡은 곡간으로 즉 천국으로, 가라지는 영원한 불에 살라질 것이다. 계시록은 추수의 때 즉 초막절 시즌을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때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나 손에 표를 받으면 밤낮 쉬지 못하고 영원토록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슈아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들은 끝까지 인내하고 죽기까지 이를 것이다. 그래서 "이후로는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되다"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꼭 기억하라. "죽지 않고 살아 남은 자가 복되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는 자들이 복되다"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이 후로는 큰 심판들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늘 성전으로 부터 예리한 낫을 가진 천사가 내려와 모든 곡식을 추수하고 포도를 거두기 시작할 것이다. 이러한 첫번째 대접 심판을 시작으로 7가지 심판이 이어질 것이다.
여기서 또 알아야 할 것은 성도들이 순교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때문이고 그래서 결코 이마나 손에 표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왜일까? 하나님의 계명과 짐승의 표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사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표로 삼으라고 하신 것이 있다.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신6:8) 놀랍게도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표를 이마와 손목에 매라고 이미 명령하셨다. 그런데 그것을 짐승은 따라하고 있다. 그래서 영혼들을 자신의 종들로 삼으려고 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짐승의 명령을 따르는 자들을 만들려는 것이다. 우린 신명기 말씀이 있는 테필린을 이마에 두르고 손목에 맨다. 그럼으로써 우린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한다. 생각도 계명대로 하고 행동도 계명대로 순종하기를 다짐하며 기도한다. 우리가 그 말씀을 기억하고 테필린을 한다면, 그것이 여호와께서 명하신 표라는 것을 안다면 우린 쉽게 짐승의 표를 이마와 손에 두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계명(원어는 명령들이다)으로 우리의 주인이 되고 아버지가 되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린 다른 주인의 이름을 결코 이곳에 둘 수 없다. 계명대로 우리가 행할 때 그 계명이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계14:9-15).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계14:9-15)
9 열매가 없어서 망한다
예슈아께서 세상 끝에 대해 말씀하시다가 아침에 배가 고프실 때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왜 예슈아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셨을까? 그것도 영원히 열매맺지 못하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마태복음 21장 전체에서 예슈아의 가르침을 보아야 한다. 예슈아께서는 초막절에 어린 나귀를 타고 대관식을 하셨으며 성전에 이르러 강도의 소굴로 만든 자들의 상과 의자를 엎으셨다. 그리고 진정한 성전으로 회복하고 세워야 함을 가르치셨다. 즉 마지막 때 회복하실 메시아의 나라를 말씀하고 있다. 사실 마태복음 20장부터 25장 까지 모두 천국 비유와 마지막 때 이야기이다. 결국 마지막에 의인들은 영생의 보상으로 불법한 자들에게는 영원한 벌의 심판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 중에 무화과 나무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예슈아께서는 무화과 나무 잎이 나오면 마지막이 가까운 줄 알라고 말씀하셨다. 즉 무화과 나무가 가르치는 것이 마지막 때인 것이다. 이 가르침과 함께 예슈아께서는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셨고 그 나무는 열매가 없어서 영원히 열매가 없는 저주를 받았고 말라버렸다. 그말은 마른 나무가 불에 살라졌을 것이다. 그러면서 예슈아께서는 믿음만 있으면 산도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즉 열매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충성함으로써 맺는 것이다. 우리에게 열매가 없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는 무화과의 때가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다. 예슈아께서 무화과의 때가 아님에도 이러한 기적을 보이신 것은 우리에게 마지막 때 열매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표증을 보이신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린 더욱 두려움으로 믿음을 가지고 충성함으로써 열매를 맺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열매가 없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고 충성하지 않아서 없는 것이다(마21:19-22).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마21:19-22)
10 예복을 입으라
우리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위해 스스로를 준비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유일하게 입도록 허락된 옷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이다. 즉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이 신부의 예복이고 웨딩드레스인 것이다. 그리고 예복은 옳은 행실이라고 말한다. 무엇이 옳은 행실인가? 물론 자신이 생각하는 옳은 행실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의로운 행실이다(계19:7,8). 모세는 여호와의 모든 명령을 삼가 지키면 그것이 우리의 의로움이 될거라고 증언하고 있다(신6:25). 우리에게는 의로움이 없다. 그러나 우리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의로움을 행한다면 그것이 의로운 옷이 되어 우리의 부끄러움을 가려줄 것이다. 우리가 노력하는 것은 벗기 위함이 아니라 덧입기 위함이라고 바울이 증언했다. 만약 우리가 의로운 행실로 옷을 입지 못한다면 그날에 옷을 입지 못한 부끄러운 자로 드러날 것이다. 이처럼 오직 의로움은 주께로부터 온다(고후5:3).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계19:7,8)
신6:25 우리가 그 명령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 (신6:25)
11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예슈아께서는 목자가 없는 것처럼 배고프고 목말라 기진해 있는 양떼를 보시고 안타까워하셨다. 그리고 추수의 때에 마땅히 구해야 할 기도 제목을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 제목이다. 그것은 추수할 영혼들이 많으므로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는 것이다. 그 말은 약속과도 같다. 이미 일꾼들을 보내려고 작정하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것이다.
이 말씀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양들이 고생하고 기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들에게 목자가 없는가? 아니다. 이들에게 목자가 있다. 그럼에도 목자가 없는 것과 같이 고생하고 못먹고 못마시고 있다. 왜냐하면 목자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없고 생명의 물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추수 때에 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 많은 촛대들이 옮겨질 것이다. 많은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교사들 때문에 많은 양들이 기진해있고 괴로워하고 있다. 진정한 목자를 찾아다니고 있다. 왜냐하면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고 말씀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양떼을 다른 곳으로 보내실 것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말씀을 먹이고 생명수를 마시울 수 있는 목자들에게 양떼를 보내실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더욱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뜻이 어디있는가 분별해야 한다. 우리의 전쟁은 미혹과의 싸움이다. 미혹은 계명, 하나님의 모든 명령으로 물리칠 수 있다(마9:36-38).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마9:36-38)
샤밧 예배: 토요일 11시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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