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그리고 피지컬 AI
최희태 민주노총 경남본부 정책국장
인공지능은 과연 어디까지 왔는가?
#1. 얼마 전 인공지능 업체 앤트로픽에서 새로운 인공지능 모델을 개발하였으나,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보안망을 손쉽게 뚫고, 그 과정을 스스로 삭제·봉인하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앤트로픽은 이 사실을 미국 정부에 알렸고, 미국 재무부는 금융그룹 최고책임자들을 불러 대책을 논의하였다. 이후 앤트로픽은 아마존, 애플, 구글, MS, JP모건 등에 제한적으로 제공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 대책을 모색하기로 하였다.
#2. 오픈AI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의 집에 화염병을 던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공지능 산업에서 정보·기술 독점이 심화된 데 따른 항의였다. 올트먼은 우려에 대해 이해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AGI를 경험하면 눈을 뗄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차세대 범용 인공지능인 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기술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자신은 그것을 이미 경험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말을 한 것이다.
#3. 앤트로픽은 이란 침공을 앞두고 군사작전에 자사의 인공지능 모델을 사용하지 말 것을 미국 정부에 요청하였다. 미 국방부는 이를 거부하였고, 계속 거부한다면 앞으로 어떤 정부 계약도 맺지 못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압박하였다. 앤트로픽은 직접적 살상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내부 윤리 원칙을 갖고 있으나, 이것이 무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이번 이란 침공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은 수뇌부를 정밀 타격하고 핵심 거점을 무력화하였다. 인공지능이 방대한 정보를 집적·분석·판단하고, 최고 지도부가 그 결과를 '승인'하는 방식으로 비대칭적 초정밀 타격이 가능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최근에 들려온 인공지능 관련 소식이다.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하다. 우리가 미처 느끼고 이해할 틈도 없이, 인공지능은 인간 사회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스펀지가 물에 젖듯 소리 없이, 예상보다 빠르게 우리의 삶 속으로 파고들며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가장 강력한 영역은 어디인가?
인공지능이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영역이 있다. 수리화되고, 공식화되고, 체계화된 업무일수록 인공지능은 인간을 압도한다. 회계, 법률, 의료 진단, 설계—우리가 '전문직'이라 불러온 영역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복잡해 보이는 일일수록, 사실은 일정한 규칙과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그 패턴을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한다.
이제는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설계하고 강화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한마디로 전방위적이다. 다만 인공지능이 제시하는 것은 '정답에 가까운 것'이지, 검증 없이 확신할 수 있는 정답은 아니다. 이 점을 놓치면 안 된다.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확장 가능한가?
인공지능은 이미 물리적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대표적이다. 내가 즐겨보는 영상을 인식하고, 그와 비슷한 콘텐츠를 계속 제시한다. 자동차 주행보조장치도 마찬가지다. 센서와 수학적 원리에 기반하여 운전자를 보조하는 기능이 거듭 발전하고 있다. 최근 운전자 없는 자율주행 차량의 등장은 단순 반복이나 제한적 기능을 넘어선 사건이다. 기계가 스스로 예측하고, 판단하며, 결정함으로써 자율 주행이 가능해진 것이다.
테슬라는 로봇을 자동차 생산 공장에 투입하여 사람의 행위를 학습시키고 있다. 인간의 노동을 지속적으로 학습함으로써 데이터를 축적하고, 예측·판단·실행을 가능케 하려는 것이다. 다른 로봇과 구별되는 점은, 단순히 물리적 능력이 뛰어난 로봇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 자체를 대체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구현하기 어려운 인간만의 섬세한 동작까지 학습·모방함으로써, 생산 영역에서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려 한다.
현대자동차의 로봇 투입도 기본적으로 같은 방향이다. 테슬라가 설계부터 인간형 로봇을 지향한다면, 현대자동차는 물리적 능력을 우선하는 모델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최대한의 데이터를 학습함으로써 같은 목표에 도달하려 한다. 당장은 인간형 로봇과 단순반복형 로봇의 중간 지대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을 현실적 목표로 삼고 있다.
HD현대와 한화오션은 '스마트 야드' 프로젝트를 통해 자동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조선업의 특성상 인공지능의 전면 도입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래서 자본은 낮은 단계에서부터 단계적으로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확산시키고 있다. 자동차처럼 직접적인 로봇 투입이 어려운 만큼, 인공지능 센서를 통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강화 학습으로 역량을 높여가는 방식이다.
누가 희생을 강요 당하는가
사무전문직은 급격한 변화를 강제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인공지능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해고가 잇따르고 있다. 신규 채용이 급격히 줄어들고, 기존 인원이 빠져나가면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사무전문직이 먼저 타겟이 되는 이유는 앞서 말한 것과 같다. 표준화되고 체계화된 업무일수록 인공지능이 이미 인간을 앞질렀고, 속도와 역량 면에서 경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전문직'이 오히려 일차적 타격 대상이 된 것이다.
중소영세 노동자는 어떠할까. 자본은 기술 발전을 명분으로 단순반복적 인간 노동을 자동화로 대체하려 한다. 대기업 자본의 지배 체제 아래 놓인 중소영세업체 노동자들은 자본의 일차적 구조조정 대상이다. 대기업 자본은 이익률을 높이기 위해 하청·협력업체들에 끊임없는 구조조정을 요구할 것이다. '경쟁력 강화'와 '자동화'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대기업 자본의 이해를 위한 인간 노동의 거세와 대체이다.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가
인간 노동의 완전한 기계 대체이다. 인간과 닮은 지능을 보유하고, 물리적 능력은 인간을 훨씬 넘어서며, 섬세하고 복잡한 노동은 물론 비정형적 노동까지 수행할 수 있는 지능형 로봇 — 이것이 바로 피지컬 AI, 육체를 갖춘 인공지능이다.
물론 이것은 자본의 목표이며, 일부 국가권력의 목표이기도 하다. 이것이 현실로 될 것인가는 확정되지 않았고, 고정불변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예측보다 빠르게 인공지능 산업이 발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자본과 권력의 의도·목표에 맞선 노동의 전략과 대응이 이루어진다면, 그 경로와 형태, 그리고 지향점은 달라질 수 있다.
세계의 변화를 깊이 들여다보고 분석하며, 대응을 위한 고민과 토론을 심화해야 한다. 방향을 모색하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장이 출발이며, 핵심 근거지이다. 우리 사업장에서부터 주체적 대응을 모색하고, 조직적·지역적 전략을 만들어가야 한다.
노동의 길
19세기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은 기계 파괴 운동이 아니다.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한 노동자의 정당한 투쟁이었다. 이 운동을 통해 노동자들은 노동의 권리, 인간다운 삶을 위한 사회적 구조의 중요성을 절감하였고, 노동조합, 노동법, 그리고 정치투쟁으로 현실을 바꿔냈다. 21세기 지금의 현실이, 그 때와 너무나 닮아 있다. 노동의 권리, 인간의 존엄을 위한 ‘전략’과 ‘투쟁’을 다시 조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