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3월 어느 봄날, 내가 경동고에 입학하고 처음 갖는 체육시간. 체육선생님이자 훈육주임선생님이셨던
함우영 선생님의 특별훈육이 시작된다.
“험,,,, 산악부나 빅토리
같은 불량서클에 가입하는 학생은 퇴학을 각오해야 해요오~!~”
허억~! 산악부가 불량서클이라니, 이게 뭔 황당한 상황이란 말인가? 동네 형님이던 자경형님(25기 구자경)의 권유로 이미 3학년 산악부 선배님들께 입회신고까지 마친 나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리였다. 아아, 알차고 멋지게 고교 3년을 보내려고 대단한 각오를 했었는데, 날 샜구나………
이후 나는 소위 불량서클의 일원으로
낙인이 찍히고 학교에서는 나를 비롯한 7명의 27기 산악부
악우들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놓고는 교내의 크고 작은 사건이 있을 때마다 지도부실로 불러 가담여부를 취조하는 등 여간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산을 찾는 산악부가 왜 불량서클이지? 이러한 의문은 늘 내 머리
속을 떠나지 못했다. 2학년이 시작되자마자 나는 과감히 지도부실을 찾아 갔다.
“ 산악부를 정식 과외활동부로 만들어 주세요.”
그러나 이렇게 건의하는 순간
내 머리에서는 번쩍 섬광이 빛나고 배추(훈육주임 선생님의 멋진 별명이 되시겠다.)의 야유 섞인 잔소리만 돌아 올 뿐이었다. 이러한 수모를 겪으면서도
나는 기회만 되면 산악부를 정식 서클로 인정받기 위한 꼼수를 부리고는 했다. 등반대회에 참가하게 해
달라, 장비전시회를 열게 해달라 등등. 그러나 이미 미운오리새끼가
되어버린 산악부의 그러한 건의를 선생님들은 고려하기는커녕 봄가을로 가는 소풍도 참가를 금지 시키는 등 교내의 모든 활동을 억제할 뿐이었다. 그렇게 울분을 곰삭히며 3년을 보내고 졸업할 수 있었지만 나의 후배들이
여전히 음지에서 미운오리새끼로 남아 지내야 한다는 것은 늘 마음에 걸릴 수 밖에 없었다.
2011년 8월 26일 금요일.
나는 이날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 틀림없다.
학교 교정에서의 야영이라는 그
꿈같은 일이 내게 현실로 찾아 왔다. 미운오리새끼들이 이렇게 당당하게도 교정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다니, 지난 사십여 년 동안의 아픈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간다. 시간은
새벽 2시가 넘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옛 성밖 묏부리는
이미 어둠 깊이 고요히 묻혀있는데 늦도록 사진전을 준비하는 산악부 재학생들의 마무리 손놀림 소리만이 정적을 깨고 있다. 재학생 후배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자니 녀석들의 모습에 내가 시나브로 오버랩되며 나는 40여 년 전으로 돌아가 고교생이 되어 있었다. 간절히 소망하면 꿈은
이루어진다더니 정말이었다. 밤의 교정에서 고개를 들어 바라본 별들이 유난히도 아름답다.
드디어 날이 밝았다. 일찍부터 등교하는 학생, 교사 그리고 학부모들. 교정은 서서히 축제의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무려 40여 년을 기다려온 이날이 아니던가. 산악부 재학생들이 준비한 모든
행사가 부디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기를 바라며 절로 기도하는 마음이 든다.
2동의 주황색 텐트가 아침햇살을 받아 요염하게 빛을 발하고 있고, 24개의 책상 위에 전시해 놓은 암벽등반장비며 동계등반 장비는 그 종류며 수량이 압도적이라 학교를 찾은 학생들은
물론 교사들에게도 집중적인 관심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재학생들의 그 동안 등반사진들에는 재치 있는
설명문이 붙어 있고 학생들은 커다란 호기심을, 교사들과 총동창회 회장단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선배들이 재학생 교육에 열성을 보여 주어 고맙다는 총동창회 임종웅 회장님(18회)과 정상윤 경동고 교장선생님(30회)의
진심 가득한 격려의 말씀에 공연히 눈시울이 붉어진다.
오전 9시 30분, 또 하나의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다. 학교 교사에서의 현수하강. 세 명의
재학생들이 각자 힘차게 외친다.
“2학년 박찬휘, 하강준비 끄읕~!”
”하강~!”
2학년 박찬휘군을 필두로 1학년
권재휘, 김도현군이 차례로 하강을 멋들어지게 마치자 밑에서 관람하시던 총동창회 회장님과 부회장님들 그리고
교장선생님이 달려와 뜨거운 박수와 함께 격려의 악수를 건넨다. 드디어 미운오리새끼들이 용감한 독수리로
인정받는 순간이다. 언감생심 학교교사의 옥상에서 현수하강이라니, 나는
심장이 뛰는 것을 도저히 억제할 수가 없었다. 이날, 열다섯
마리의 아기 독수리들은 마음껏 창공을 훨훨 날았다. 그래, 우리
모두는 이제부터 미운오리새끼가 아니라 경동의 용맹스러운 독수리들이다~!
첫댓글 음~ 이젠 오리나 닭 계열이 아니고 수리가 되었단 말이지!!!
ㅋㅋㅋㅋㅋ 형님 센스...
진화는 되었어도 여전히 DNA는 조류계열..ㅋㅋ
성님,, 2011년8월26이옵니다..ㅋ
왜냐구요 ㅡ.-; 작년이면 지는 없었거들랑요,,
헝께 바로잡아줘유ㅜㅜㅜ우,,,ㅋ
글구 이젠 독수리니깐두루,,,야영시엔 오리괴기 올라감다!!! 꽝꽝꽝 ㅋㅋ
형님의 독수리가 무려 40여년의 시공을 넘어야 했다니,,눈물겨운 경사이옵니다..
다시한번, 경하드립니다.
하이고, 옛일을 회상하다 보니 잠시 시계가 멈추었나 보네...ㅎㅎ
바로 잡았네, 고마우이~~^^
송 회장 수고 했네. 아무런 도움도 못 주고....미안허이^^ 뭐 그리 바쁜척을 하며 사는지...마음은 항상 함께 하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