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정상인이 되소서>
“尋(심)”이라는 한자는 “찾다, 캐묻다, 탐구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 글자이다. 따라서 尋天道(심천도)라는 말은 하늘의 뜻, 즉, 천도(天道)를 묻고, 찾고, 탐구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하늘의 뜻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까지 수많은 선지자(先知者)들이 나름대로 심천도(尋天道)의 참뜻을 찾았지만 만인(萬人)이 공감하는 참뜻은 아직 찾지 못한 듯하다. 사람마다 가지는 신념과 신앙과 인생훈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람마다 공감할 수 있는 참다운 심천도(尋天道)는 정말 없는 것일까? 우리는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하늘과 땅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들이다. 하늘과 땅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우리는 당연히 가장 먼저 하늘과 땅의 뜻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하늘과 땅의 뜻은 과연 무엇일까?
하늘과 땅은 말이 없으므로 하늘과 땅이 해놓은 일을 가지고 하늘과 땅의 뜻을 간파할 수밖에 없다. 하늘과 땅은 가장 먼저 성질이 전혀 다른 밤과 낮을 반반씩 만들어 놓았고, 남과 여를 반반씩 만들어 놓았다. 낮은 생필품을 만들 수 있도록 밝고 환하게 만들어 놓았고, 밤은 편히 쉬도록 어둡고 음침하게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낮에는 모두가 자유롭게 일하고 나다니지만 밤에는 대부분 집에서 쉬며 잠잔다.
이런 어둡고 잘 보기 힘든 밤을 동양에서는 음이라 하고, 밝고 잘 드러나 보이는 낮을 양이라 한다. 천지가 이렇게 음과 양으로 구분되듯 인간사회도 남(男)과 여(女)라는 서로 다른 두 성체(性體)로 구분된다. 천지의 양적 이치를 본떠서 만들어 놓은 남자는 속을 잘 들어내고 행동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항상 달릴 준비가 되어있는 말처럼 서 있기를 좋아하고 공격하기를 좋아한다. 남자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경쟁이 있고, 투쟁이 있고, 승패가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천지(天地)의 음적 이치를 본떠서 만들어 놓은 여자는 밤처럼 속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밤잠을 자듯 편하게 눕거나 앉기를 좋아한다. 아줌마들의 지하철과 버스의 자리 쟁탈전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여자들은 그만큼 서 있기보다 앉기(안정)를 좋아한다. 이렇게 남과 여는 밤낮처럼 극과 극으로 전혀 다르다. 그러나 밤낮은 동전의 앞뒤처럼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이듯, 남녀도 밤낮의 흑백처럼 전혀 다르면서도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이다.
이런 천리적 하나를 이심동체(異心同體)라고 한다. 이심(異心)은 서로 다른 마음이므로 남녀라는 이심동체(異心同體)는 항상 동전의 앞뒤처럼 서로 다른 마음을 가진 동체(同體)이다. 즉, 남녀라는 동체는 앞은 같은 사람이면서 뒤는 밤낮처럼 서로 다른 괴물로서의 동체이다. 남녀의 결혼생활이 겉으로는 하나인 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영원히 둘로 나누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원히 일체(一體)이면서 영원히 이체(異體)인 것, 그것이 바로 남녀동체(男女同體)로서의 결혼생활이다.
남녀만 그런 것이 아니다. 동서를 불문하고 인간사회가 있는 곳에는 어디서나 찬성파가 있으면 반드시 반대파가 있고, 좋은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나쁜 사람이 있고, 여당이 있으면 반드시 야당이 있고, 주류가 있으면 반드시 비주류가 있다. 이 또한 동전의 앞뒤처럼 떨어져 존재할 수 없는 이심동체(異心同體)로서의 일체(一體)이다. 이런 이심동체로서의 인간사회는 천복(天福)이기도 하고 천형(天刑)이기도 하다.
신앙 역시 그렇다. 저 넓은 하늘이 서로 떨어져 있는 여려 개가 아닌 크나큰 하나이듯 전지전능한 신은 두 개가 아닌 하나라는 일신(一神) 사상도 일리(一理)가 있고, 하늘에 무수한 별이 있듯 인간사회에도 무수한 신이 있다는 다신(多神) 사상도 일리(一理)가 있다. 또 인간사회의 현실적 출발점은 신이 아니라 나를 탄생시킨 부모님이고, 그런 인과관계를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부모님의 부모님, 즉 조상님이 나를 태어나게 한 원점(原點)이므로 조상님이 그 어떤 전지전능한 신보다 먼저라는 주장도 충분히 설득력을 지닌다.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신이 문제되는 것이지 태어난 내가 없는데 신이 나에게 문제될 리는 없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조상신(祖上神)을 모시고,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국립묘지를 만들어 호국영령(護國英靈)들을 기리는 이유가 바로 어떤 신보다 조상신이 먼저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실제로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 부처님의 성전인 사찰, 알라신의 성전인 회교사원을 찾지 않는 사람은 많아도 때마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묘를 찾지 않는 사람이 없고, 나라마다 호국영령들이 묻힌 국립묘지를 찾지 않는 나라가 없다. 왜 그럴까? 조상신과 호국영령들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상식이고 우리가 찾는 참된 심천도(尋天道)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조상신을 버리고 하늘의 신을 먼저 찾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모형제와 나라를 버리고 남의 부모형제와 남의 나라를 먼저 돌보는 사람들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하겠다.
위와 같은 참된 심천도(尋天道)를 놓고 볼 때 나라를 불문하고 인간 세상의 정상인은 자기를 낳고 길러준 자기 부모와 자기 조상과 조국을 먼저 찾고 섬기는 사람일 것이다. 남의 부모, 남의 조상, 남의 나라를 먼저 섬기는 사람을 정상인이라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님이여, 사상도, 신념도, 신앙도 좋지만 제발 무엇보다 먼저 내 부모, 내 조상, 내 나라를 생각하고 섬기는 정상인이 되소서!
<손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