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양양 낙산사(홍련암)과 강화도 보문사, 그리고 남해 금산 보리암은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 꼽힌다. 각각 동해, 서해, 남해의 관음도량을 대표하고 있다.
관음보살은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관음보살에서 기도하면 소원 하나는 꼭 이뤄진다고 한다. 그래서 관음성지에는 언제나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들로 가득하다. '소원은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이뤄진다'고 하지만 행운이 찾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법화경]에는 '백천만 억 중생이 큰 바다에 들어갔다가 폭풍이 불어 나찰(악귀)에 잡혔을 때 한 사람이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는 이가 있으면 악귀에서 벗어나게 된다' 고 쓰여있다. 그래서 관음보살은 소원을 들어주는 보살이다. 관음보살은 바다와 인연이 깊어 대부분이 바다를 마주하고 있다. 중국, 인도, 베트남도 그렇다. 바다에 있는 관음보살상이라고 해서 해수관음상이라 불리운다.
보리암은 금산(681m)의 깍아지른 절벽에 위치해 있다. 걸어 올라가면 2시간이나 걸리지만, 찾는 이들이 많다보니 산중턱까지 아스팔트가 깔려있어 입구까지는 자동차로 쉽게 오를 수 있다.
주차장에서 보리암까지 가는 길
보리암까지 가는 길에서 보는 남해의 절경
소원을 들어준다는 해수관음상
걸어서 2시간이나 올라와야 하는 이 고산준령 바위산에 터를 닦고 절을 창건한 건 가득한 불심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보리암은 신라 신문왕 3년(683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풍수지리로 보면 보리암 해수관음상은 천하의 명당자리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보리암에 서면 장쾌한 남해바다와 금산의 기암괴석이 시야를 꽉 채운다. 무엇하나 막힘이 없이 탁 트인 절경이다. 이 멋진 풍경에 어찌 행복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마 행복한 기분 덕에 소원도 금방 이뤄질 것 같다.



보리암에서 보는 풍경. 이곳에서 근심걱정은 저절로 사라진다
보리암은 불교 사찰이지만, 도교와 민간 신앙도 모여있다. 보리암 내에 '별을 보는 건물'이라는 간성각은 특히 남극노인성을 보는 곳이다. 남극노인성은 도교에서 신성하게 여기는 별로, 이 별을 보면 장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보리암과 인연이 있는 인물로 태조 이성계를 빼놓을 수 없다. 이성계는 이곳에서 관음보살이 아닌 남해 금산의 산신령에게 기도를 올린 뒤 건국에 성공했다. 민간 신앙의 자취도 남아있는 셈이다.
이성계는 보리암에서 기도하면서 "만약 내가 임금이 되면 이 산을 온통 비단으로 둘러주겠다"고 했다.
정말로 건국에 성공한 뒤 이성계는 고민에 빠졌다.
도대체 이 넓은 산을 어떻게 비단으로 두를 수 있단 말인가!
한 신하가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
"비단 '금'자를 넣어 산이름을 지어 그 이름을 하사하십쇼".
금산의 이름이 생겨난 배경이다.
이성계는 이곳에서 기도를 드리고 조선을 건국했다

보리암에서 15분 정도 산길을 걸어가야 선은전에 도착한다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선은전'은 해수관음상에서 15분정도 떨어져있다. 비교적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좁은 산길만 계속되다보니 그나마 몇명 오던 사람들마저 돌아가고 나 홀로 남겨졌다. 산길 속에서 드디어 선은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이성계의 소원이 얼마나 깊고 간절했으면 보리암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이 조용한 산속에서 기도를 드렸을까. 간절히 기도하면 하늘도 움직인다는 말이 역시 틀린 말은 아닌듯하다.
고대 가락국의 김수로왕도 여기서 기도를 올린 뒤 대업을 이뤘다고 하는데, 아마 연대상으로 보면 보리암이 창건 되기 전에 있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천하의 기운이 모여드는 영험한 장소였다. 보리암전 3층 석탑은 김수로왕비 허태후가 인도에서 돌아올때 태풍을 만나 어려움을 겪다가 이 탑을 싣자 뱃길이 열려 무사히 돌아갔다는 전설이 있다. 원래 가야 본거지였던 김해시 호계사에 봉안되었던 걸 원효대사가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한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해수관음상

라면과 파전만으로도 백만불짜리 풍경이 되는 금산산장
금산에는 보리암 외에도 요즘 SNS에서 화제되는 장소가 있다. 바로 금산산장이다. 금산산장은 금산의 기암괴석을 등지고 드넓은 남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기막힌 곳에 위치해있는데, 이곳을 배경으로 라면과 파전을 먹으면서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되며 금산산장 때문에 금산을 찾는 여행자들도 늘어났다. 원래 금산산장은 비구니 전용 암자였다고 한다. 수백년 동안 도량으로 이용되던 곳이 일제 시대때 무슨 이유에서 개인에게 넘겨지게 됐고, 금산에 오르는 이들의 휴식처가 됐다.
산장에 도착하니 젊은 여행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SNS에서 본 대로 사진을 찍고 있다. 백만불 짜리 뷰가 보이는 테이블은 이미 만석이고 구석에 겨우 자리 하나를 잡았다. 여기는 산장 방으로 들어가 손님이 직접 메뉴를 주문해야 한다. 할머니 두분이 계셨다. 예전에는 막걸리도 팔았다고 하는데, 국립공원이 된 뒤로 술판매가 금지되어서 메뉴는 단촐하다. 라면대신 식혜를 주문했다. 뜨거운 여름날씨에 엿기름으로 밥알동동 띄어 만든 얼음 식혜를 바랬건만, 할머니는 냉장고에서 캔식혜를 꺼내준다.
아무렴 어때. 공장에서 만든 식혜지만, 이 멋진 풍경에 그저 기분이 좋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살아있는금산산장
금산산장에서 짧은 휴식을 취한 뒤 금산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은 30여분 정도면 올라갈 수 있는데 무난하게 걸어갈 만한 코스다. 정상인 망대에 오르면 남해 바다에 떠있는 섬들이 마치 산처럼 겹겹이 능선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절경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참으로 멋진 풍경이다!
보리암 주련(기둥에 새로로 새겨진 문구)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잠시첨양제번뇌(暫時瞻仰除煩惱) 잠시동안 우러러 보는 것만으로 번뇌가 모두 없어지니
일심억년수원성(一心憶念隨願成) 한마음으로 생각하면 원하는 것을 이루리라
무차평등함해탈(無差平等咸解脫) 차별없이 평등으로 모두 해탈케 하시네


금산 정상에 오르는길

어떻게 바위속에서 나무가 자라고 있는 걸까



금산 망대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