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자비로우신 하느님,
오늘 저에게 명을 내리시어 무엇을 해야 할는지 알게 하시고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저로 하여금 성공에 의기양양하거나 실패에 풀이 죽거나, 그러지 않게
해주십시오. 저는 다만 당신께서 기뻐하실 만한 일로 기쁘고 당신께서 슬퍼하실 만한
일로 슬프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당신의 사랑을 위해서라면, 잠시 있다가 사라질
위안들을 모두 기꺼이 유보하겠어요. 당신이 함께 하지 않는 모든 즐거움에 싫증을
느끼게 하시고, 당신이 일으키지 않은 사업에 지루함을 느끼게 하소서. 틈나는 대로
제 생각의 머리를 당신께로 돌려, 불만 없이 순종하고, 투덜거림 없이 참고, 방종 없이
즐기고, 낙담 없이 참회하고, 근엄 없이 진지하게 하소서. 당신을 겁내지 않으면서
두려워하고, 조금도 교만하지 않으면서 남들의 모범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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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지으신 창조주님,
당신은 하늘에 별들을 달아 놓으시고, 해로 하여금 떠올랐다 지게 하십니다.
당신 지혜의 밝은 빛을 제 마음속 어둠에 비추소서. 제 머리를 당신에 대한 지식으로
가득 채우시어 저로 하여금 당신의 빛을 남들에게 전하게 하소서. 당신은 어린 젖먹이들도
진리를 말하게 할 수 있는 분이시니, 제 혀를 길들이고 제 펜을 이끌어 복음의 놀라운
영광을 제대로 옮기게 하소서. 저의 지능을 예민하게 기억을 분명하게 말을 우아하게
하시어, 당신이 저에게 드러내 보여주신 신비들을 충실히 해설할 수 있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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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예배합니다, 숨어 계신 하느님!
당신은 몸소 지으신 것들 뒤에 숨어 계십니다.
제 가슴이 당신께 굴복하고 제 머리도 당신께 굴복합니다.
당신을 생각하는 일에 견주면 다른 모든 일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당신을 손으로 만질 수도, 혀로 맛볼 수도, 눈으로 볼 수도 없습니다.
귀만 빼고서, 저의 모든 감각들이 당신에 대하여 속게 합니다.
당신 아드님은 말씀하셨고, 저는 그것을 듣습니다.
제가 듣는 말씀을 넘어서는 진리가 없습니다.
십자가에서는 당신의 신성(神性)이 감추어졌고
지금 이 땅에서는 당신의 인성(人性)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 곁에서 죽어간 강도처럼
당신을 알고 당신께 부르짖습니다.
저 토마스처럼, 당신 상처를 보지는 못합니다만,
그래도 당신이 하느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주님, 저에게 강한 믿음과 확실한 소망
그리고 당신께 바치는 깊은 사랑을 주십시오.
당신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는
거룩한 면병(麵餠)을 통하여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죽음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제가 그 빵을 먹음으로 당신이 제 안에 사시기를!
그리고 언제나 당신께로 돌아가 힘을 얻게 되기를!
오, 만인을 위하여 가슴을 내어주신 그리스도님,
당신의 흘리신 피로 제 죄를 씻어주십시오.
그 피 한 방울이면 만인의 죄를 씻어내어
은 세상을 구원할 수 있으십니다.
너울이 당신 얼굴에 드리워져 있어서
저는 당신을 뵐 수가 없습니다.
부디 당신 자신을 저에게 보여주시어
얼굴과 얼굴로 당신을 보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제 영혼이 평안할 것입니다.
● Thomas Aquinas, 1225-1274
중세기를 대표하는 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마침내, 기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만나는 것에 견주어 이성으로 하는 신학의 무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몬테카시노에서 수도자 교육을 받고, 1224년 도미니카 수도회에 입회한 뒤로
파리에서 신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로 생애 대부분을 보냈다.
- 이현주 역편, ‘세기의 기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