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면제의 규례
(신명기 15:1-3)
성경에 나오는 숫자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중에 7은 우리가 흔히
완전수로 알고 있는 숫자이지만, 저는 성경을 볼 때에 7이라고 하는 숫자는 ‘회복의
숫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제 7일에 안식하면서 예배드리고,
영혼과 피곤한 육신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곱째 달에는 나팔절
이나 속죄일, 장막절과 같은 절기를 두어서 일 년간 지은 죄를 속죄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라고 하셨으므로 일곱 번째 달도 회복의 달입니다.
그리고 신명기 15장은 특별히 제 7년의 규례를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1절을 보면
“매 칠년 끝에 면제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제 7년은 ‘안식년’, 혹은
‘여호와의 면제년’이라고 부릅니다. 안식년은 보통 토지에 적용되는 말입니다. 6년
동안은 농사를 짓되 7년째에는 파종이나 추수를 하지 말고 토지를 그냥 두어야 합니
다. 그렇게 해서 토지의 산성화도 막고 토지도 쉬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
다.
또한 안식년은 토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에게도 적용됩니다. 사람에게 적용
될 때에는 ‘여호와의 면제년(The Lord's Release)’고 부릅니다. ‘Release’란 말
은 ‘놓아주다, 풀어놓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 7년째인 여호와의 면제년
에는 빚에 눌려 고통당하는 사람이 빚으로부터 놓임을 받게 됩니다. 또한 빚 때문에
노예가 된 사람도 노예의 신분을 벗고 자유인이 됩니다. 경제적인 부채로부터의 회
복, 신분적인 예속으로부터의 해방, 이것이 면제년인 제 7년 회복의 해의 의미입니
다.
물론 그 대상자는 이방인이 아니라 같은 동족인 히브리인입니다. 왜냐하면 이방인에
게 빌려줬던 돈을 제 7년에 갚지 말라고 한다면 이스라엘의 국부가 모두 유출되어 이
스라엘이 가난해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끼
리 서로 면제할 것은 면제하고, 회복시킬 것은 회복시키고, 용서할 것은 용서하고, 해
방시킬 것은 해방시키라는 교훈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이요, 하나님의 백성
이 지켜야 될 하나님의 규례입니다.
1. 세상법과 하나님의 법의 차이
모세의 율법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법은 세상법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
이 존재하던 주전 1,800년경에 바벨론에도 이미 함무라비 법전이 존재하고 있었습니
다. 함무라비 법전은 함무라비 왕이 만든 바벨론의 국법입니다. 함무라비 법전에 따르
면 바벨론 사회는 귀족과 시민과 노예라는 3개의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함무
라비 법전에 따르면 노예도 보호를 받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실상 노예는 시민과 동
일한 차원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시민보다는 한 차원 낮은 단계에서, 귀족보다는 두
차원 낮은 단계에서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
의 율법은 가난한 자나 약한 자나 노예들에 대해서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
나님께서는 약한 사람들을 더 높은 차원에서 보호해주셨고, 또 그들의 탄원에 더 귀
를 기울이시고 응답해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약한 자, 가난한 자, 소외된 자에
게 더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신명기 15장은 세 가지 내용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규정은 이웃에게 돈을 꾸
어준 채주는 매 7년마다 빚을 면제해주고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규정은 빚으로 인해 노예 된 동족이 6년 동안 노예생활을 했다면 제 7년째에
는 노예 신분에서 해방을 시켜주고, 해방 후 독립해서도 먹고 살 수 있도록 양과 포도
주와 곡식을 주어서 보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규정은 우양의 처음 난
수컷은 여호와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법입니다. 이 세상의 어
느 법에도 매 7년마다 부채를 탕감해주거나, 노예를 6년 동안 부려먹은 뒤에 제 7년째
는 해방시켜주라는 법은 없습니다. 또 첫 월급봉투를 받으면 여호와께 바치라는 법도
세상에는 없습니다.
우리 한국 침례교회가 속해 있는 미국의 교단은 SBC라고 칭하는 남침례교단(Southern
Baptist Convention)입니다. 왜 이 교단의 이름 앞에 Southern(남부의)이라는 말이 붙
었을까요? 그 이유는 19세기 중반인 1840년대에 노예로 말미암아 분쟁이 일어났기 때
문입니다. 1860년대에는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나게 됐는데, 이 남북전쟁이 일어
난 원인이 노예제도입니다. 남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플렌테이션이라고 부르는 큰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노예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노예를 해방
시키되 경제의 발전을 지켜보고 서서히 해방시키자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북부
의 산업은 공업이 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남부에 비해 노예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북부의 사람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노예를 둘 수 있는가? 노
예를 두는 사람은 그리스도인도 아니고 형제도 아니다. 그러므로 노예를 두는 사람과
는 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남북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북부의 승리였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노예는 해방되고 링컨은 위대한 대통령이 되
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은 노예를 부리더라도 제 7년째에는 반드시 해방시키라고 말씀합니다. 만
약 미국이 성경의 원리대로 6년 동안은 노예를 부렸더라도 제 7년째에 해방을 시켰다
면 아마 노예로 인해서 남북전쟁까지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의 법은
이런 하나님의 법을 향해 불합리하고 이상한 법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
라에서 이 법은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상적인 목표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
들은 이런 이상한 법을 실천하여 사는 것을 도리어 이상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입니
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매 페이지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발견하게 됩니다. 신명기
15장에 나타난 하나님은 자기 백성 가운데 약한 자, 가난한 자, 노예가 있다면 손해
가 될지라도 제 7년에 면제해주고 해방시켜 주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이십니다. 신명기
가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기 속에 하나님의 성품을 이
루어서 세상에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
해 하나님을 알지만 불신자들은 우리의 언행심사를 보고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삶 자체가 불신자들에게는 성경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배워 그것을 실현하고, 그 성품을 세상에 나타내서
불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저런 분이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하도록 하십니다. 이
것이 신명기가 계속해서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신명기 15장은 하
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위해서 거룩한 손해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2. 면제년에 대한 해석
신명기 15장에는 면제년에 대한 다섯 가지 특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7년이
되면 이웃에게 돈을 꾸어준 채주는 빚을 탕감해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볼 때에는 비
상식적이고 이상한 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스라엘의 사회를 생각하면 쉽게 이
해할 수 있는 법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토지는 여호와의 소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여
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땅을 공평하게 분배해주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
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배받은 땅을 이용하여 농업도 하고 목축도 하면서 생업
을 이어갑니다. 이스라엘은 근본적으로 상업국가나 공업국가, 혹은 무역국가가 아닙니
다. 솔로몬 시대에 남들이 무역을 하면 중간에서 세금을 떼는 수입으로 부자가 된 적
은 있어도 근본적으로는 무역국가가 아닙니다.
농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농업이 떼돈 버는 일은 아닙니다. 물론 큰
땅을 가지고 농업을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스라엘처럼 할당된
땅에서는 짓는 농사로 많은 돈을 벌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에 농사짓는 사람
이 빚이라도 지게 된다면 갚을 길조차 막막하게 됩니다. 그렇게 빚이 점점 커지게 되
면 결국 이 사람은 자기 몸을 팔아서 노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
님은 제 7년째에 노예의 빚을 탕감해 주고 노예 신분으로부터 해방시켜서 이스라엘 사
회에 신분적인 차별이나 계급적인 차별이 없도록 하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국의 예표입니다. 천국에는 영원한 안식년만이 존재하며, 상급의 차이는 있
을지라도 신분과 계급적인 차별이 전혀 없습니다. 이스라엘을 제외한 다른 사회에는
계급적인 차별이 늘 존재했습니다. 바벨론 사회에는 귀족과 평민과 노예가 있었고, 봉
건사회에는 영주와 기사와 시민과 농노가 있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에도 양반과 중인
과 천민이 존재하는 시대가 있었지 않습니까? 한국이 양반과 천민의 계급차이를 두어
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이 뭐가 있습니까? 지금 우리 사회에 양천의 계급이 없어졌다
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나는 양반이다”라고 가슴 내밀고 다니시는
분은 꿈 깨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계급사회의 구별을 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6
년 동안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을지라도 7년이 되면 회복하시는 회복의 하나님이십니
다.
어떤 사람은 이 본문을 제 7년 한 해 동안만 빚을 독촉하지 말고 제 8년째에는 다시
빚을 받아도 된다는 식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안식년에는 농사를 지을 수
가 없기 때문에 소득이 없게 될 것이고, 따라서 빚 독촉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으므
로 1년 동안 빚을 유보해 줄 수밖에 없다는 논리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분명히
‘빚을 면제하라’고 말씀합니다. 아예 빚이 없는 것처럼 탕감해주고, 해방시켜 주며
(Release), 취소(Cancelation)해주는 것이 공평을 원하시고 재출발의 기회를 다시 주
시는 하나님의 의도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재출발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받아서 모두 허랑방탕하게 허비
하고 망해버린 탕자에게도 재출발을 주시는 아버지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재출발의 기
회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가운데 인생이 절망스럽고, 끝장이라고 생각되
는 분이 있다면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하나님은 기회를 주시고, 재출발하게 하시는 분
이십니다.
둘째로 오늘 본문은 면제년이 가까웠다고 해서 빚을 독촉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합니
다. 면제년이 한 달 남았다고 해서 빚을 받지 못할까봐 계속 빚을 독촉하는 행동을 해
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셋째로 면제년이 가까웠다고 해서 가난한 형제가 도움을 요청할 때에 악한 눈을 들고
아무 것도 주지 않는 행동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이러한 마음을 ‘악
념(惡念)’이라고 말합니다. “삼가 너는 마음에 악념을 품지 말라 곧 이르기를 제 칠
년 면제년이 가까왔다 하고 네 궁핍한 형제에게 악한 눈을 들고 아무것도 주지 아니하
면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리니 네가 죄를 얻을 것이라”(9절)고 기록되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먹고 살 게 없어서 부자에게 돈을 꿔달라고 요청했는데, 면제년이 한
달 밖에 안 남았다고 해서 돈을 꿔주지 않겠다고 하는 행동은 악념이며 여호와께 죄
를 얻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7절에서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
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쥐지 말고 반드시 네 손을 그에게 펴서 그 요구하는대로
쓸 것을 넉넉히 꾸어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넉넉히 꾸어주어야 합니다. 손을 움켜쥐지 말고 펴야 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
들은 돌 때부터 움켜쥐게 만드는 풍습이 있습니다. 돌잔치 상에 만 원짜리 한 장, 연
필 하나, 실 뭉치 등을 놓고 아이에게 집어 들게 만들지 않습니까? 우리는 은연중에
아이들에게 한 번 쥐면 놓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서는 움켜쥐지 말고 네 손을 펴서 요구하는 대로 넉넉히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은 이처럼 넉넉하고 풍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성도들도 그와 같이 되시기를 주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로 ‘여호와의 면제년’에는 하나님을 위하려는 동기로 빚을 면제해주라고 말씀하
십니다. 제 7년에 노예 된 형제를 해방하는 동시에 빚을 탕감해 줘야하는 동기는 다
름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과거에 애굽에서 종
되었을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을 받았으니, 은혜주신 하나님을 위하여 약한 자,
노예 된 자를 돕고 해방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른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
른 정신과 바른 동기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선행을 하더라도 ‘내가 저
사람에게 무엇을 보답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베푸는 선행은 아무런 의미가 없
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바라보고 선행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런 질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은 왜 빚진 것을 채주에게 모
두 부담시키십니까? 빚을 모두 탕감해서 채주가 그 빚을 모두 떠안는다면 채주에게 막
대한 손해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답하십니다. “네
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만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을 다 지
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
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신 대로 네게
복을 주시리니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
를 치리할지라도 너는 치리함을 받지 아니하리라”(4-6절)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이와 같이 너그러운 마음과 관용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
에게 치리할지언정 치리 받지 않으며, 꾸어줄지언정 꾸지 않으며, 그 중에 가난한 자
가 없게 하시는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기꺼이 손
해 보고자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큰 이익으로 되갚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
해서 기꺼이 망하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크게 흥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
을 위해서 기꺼이 죽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영영토록 보존하십
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의 법칙입니다.
언젠가 대구 대명교회에 교회에 불이 난적이 있습니다. 불이 난 후 예배당을 새로 짓
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느 권사님이 천만원을 헌금하였습니다. 이 분은 시장 모
퉁이에서 사과상자를 놓고 깻잎이나, 오이를 파시는 모판장수였습니다. 목사님이 그
분의 형편을 모두 아시는지라 그 헌금을 받은 셈칠테니 도로 가져가시라고 권면하였습
니다. 그러자 그 권사님이 이와 같이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께서 1월에 주
를 위해서 망하려면 흥한다고 설교하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10년 전에도 모판장수요,
지금도 모판장수입니다. 제가 이 헌금을 드린다고 해도 모판장수요, 드리지 않는다고
해도 모판장수인데 내가 노력해 봐도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 차라리
제가 주를 위해서 망해보렵니다. 제가 가진 것이 천만원이 전부이지만, 사과상자야 밖
에 나가서 다시 구해오면 되고 문제없으니 이 헌금을 받아 주십시오.”
하나님의 존재를 빼버리고 신명기 15장을 생각한다면 이처럼 어리석은 법이 없을 것입
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를 계산한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
나님이십니다. 약한 형제를 위해 거룩한 손해를 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크게 갚
으십니다. 이것이 면제년의 정신입니다.
3. 거룩한 손해에 대한 보상의 예
하나님을 위해서 거룩한 손해를 보면 하나님께서 보상해주신다는 예는 성경 속에도,
역사 속에도 수없이 많이 존재합니다.
사무엘상에 보면 엘가나의 아내인 한나라는 여자가 등장합니다. 한나는 아이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엘가나의 또 다른 아내인 브닌나를 통해 늘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그러
나 한나는 결국 하나님 앞에서 원통한 마음을 품고 기도하여 아들을 얻게 되었습니
다. 그 아들이 사무엘입니다. 그런데 한나는 이렇게 어렵게 얻은 아들을 젖 뗄 때까지
만 기르고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얼마나 허전하겠습니까? 그러나 하
나님께 서원한대로 사무엘을 바쳤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받으시고 한나에게 아
들 셋과 딸 둘을 더 주셨습니다. 아이를 가지지 못했던 한나의 태의 문을 계속 여셔
서 무려 다섯 배로 갚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거룩한 손해를 보면 최소한 다섯
배, 혹은 만 배로 되돌려 받게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 문둥이 집에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오늘날로 치면 백만원도 넘
는 순전한 나드 향유가 든 옥합을 깨뜨리더니 그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
다. 그러자 예수님의 제자들은 “왜 비싼 나드 향유를 허비하느냐? 그것을 팔아서 가
난한 사람들을 도우면 얼마나 좋겠느냐?”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
념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여인을 기념 성도가 되게 하셨습니
다. 여러분들도 모두 강남중앙침례교회가 영원히 기념하는 기념성도들이 되시기를 주
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2세기에 프랑스에 왈도라고 하는 장사꾼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성경을 읽다가 예
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너는 네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고 나를 좇으
라”는 말씀에 감명을 받고 그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였습니다.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나눠주고 예수님의 말씀만 읽고 따르며 설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성경을
읽다가 성경에는 면죄부나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는 연옥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
니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을 설교하다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이단으로 선고를 받았습
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종하여 왈도파(Waldenses)라고 하는
한 분파를 형성했습니다. 그리고 이 왈도파는 16세기의 루터, 칼빈의 종교개혁의 선두
주자가 되었습니다.
데이빗 리빙스턴은 19세기 스코틀랜드 사람으로서 유명한 의사이자 아프리카의 선교사
였습니다. 이 사람은 아프리카 대륙을 최초로 횡단한 사람인데, 풍토병으로 죽을 위기
도 겪고, 짐승의 위험도 많이 당했으며, 아내와 헤어지는 고독감을 경험하는 등 수많
은 고생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빙스턴은 후에 캠브리지 대학 학생들에
게 강연을 할 때에 다음과 같은 유명한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희생
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하나님께 빚진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희생이 아니라 도리
어 특권입니다. 내 마음에 평안과 천국 상급에 대한 밝은 소망과 그리고 내 일에 대
한 만족감, 이것을 생각할 때에 어찌 이것을 희생이라 하겠습니까? 이것은 특권입니
다.”
결 론
서로마는 476년에 게르만 족의 대 이동을 통해 망했습니다. 그러자 로마의 사람들은
동방의 콘스탄티노플이라는 곳에 정착해서 동로마 제국을 존속시켰습니다. 이 동로마
제국은 1453년에 멸망했는데, 이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콘스탄티노플을 비잔티움
이라는 이름으로 바꾼 나라가 바로 오토만 터키입니다.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돌궐족
이라고 배웠던 사람들이 바로 터키 족입니다. 이 오토만 제국의 국교는 회교였습니
다. 따라서 회교 국가가 기독교 국가에 쳐들어와서 기독교 국가를 멸망시키고 지배를
한 것입니다.
이 오스만 제국의 16세기 술탄왕 가운데 슐레이만 대제라고 불리는 왕이 자신이 지배
하고 있는 기독교 국가의 기독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왜 기
독교를 포기하고 회교로 개종합니까? 한 번 믿은 신앙을 왜 포기합니까?” 그러자 기
독교인들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회교인이 되어야 세금을 덜 내기 때문입니
다.” 세금을 덜 내기 위해서 믿음을 팔았던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자기중심적 신앙
이요,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신앙이요, 말씀을 멸시하는 신앙이요, 내세에 대한 소망
이 부재한 신앙이요, 더 이상 표현하기 힘들만큼 엉터리 신앙입니다. 이들의 신앙이
이만큼 엉터리였기 때문에 회교족들에게 점령을 당하고 회교 국가의 최하류층으로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물질의 유익을 위해서 신앙을 팔아먹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작은
물질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인이 되었다가, 부처를 섬기는 불자가 되기
도 하는 이중 신앙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이 같은 사람의 기도와 성경 지식은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 거저 구원을 받았으니 구원하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형제에게 거룩한 손해를 본다고 할지라도 기꺼이 이를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
다. 거룩한 손해, 거룩한 희생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으십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충
성하시고 거룩한 손해를 기꺼이 감당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아가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