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 6막48장 (7부-1)
내가 "장모 예찬론"을 들고 나오는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년중 8월 초순 한여름이 되면 처가댁 추풍령은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다.
포도하면 "황간포도", "추풍령 포도"를 전국적으로
알아주니 유명세에 걸맞게 수확시기가 다가오면 농협 직판장과 공판장을 비롯하여 추풍령근처가 검푸른 물감을 수놓듯 알맞게 익은 검은 포도로 추풍령 전개가 검게 물들고 만다.
지금은 검붉은 켐벨포도가 사라지고 유사한 변종인
샤인머스켓 포도를 심어 그때의 검은 자태는 사라지고 말았다.
남녀노소할것 없이 제철의 포도를 수확하기 위해 한여름 뙤약빛 아래서 옹기종기 모여 다니며 집게같은 가위로 포도송이를 따서 바구니에 담고 경운기로 옮기는 일이 년중행사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나는 일손도 도울겸 온가족이 추풍령으로 몰려가 포도수확에 한손 거들었고 장모님은 저녁나절 장모님이 직접 담구신 포도주에 고기한접시 들고 나한테 오셔서 다감하게 말씀 하셨다.
"박서방 고생했네."
하며 포두주 한잔을 따라주신 모습이 지금도 어제일처럼 선명하다.
그리고는 우리 가족이 서울로 상경할때는 자동차가 꽉차도록 (그당시에는 싼타페 차량 이었음) 시골 농산물과 포도,각종 먹거리를 주시여 차가 끼우뚱거려 차를 운전하는데 고생 한적이 있었다.
그런 장모님의 자상함은 시골의 평범한 어머니의 상이거늘
나한테는 내 어머니에게서 느껴볼수 없는 또다른 따스함 마음이 전달되여와 나를 감동시키곤 하였다.
그런 장모님이 오늘따라 새삼 그리운것은 왜이뇨...
어느날은 장인어른이 나한테 말씀하셨다.
"박서방.
이렇게 싸 주는것도 한때여.
우리가 죽고 없어지면 포도 한송이도 제대로 못얻어 먹을걸..."